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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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편력의 시작, SF소설

기억을 되돌아보면 나의 독서편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화전집으로부터 시작됐다. 찾아보고 싶어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을 어릴 때 수십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이후 백과사전, 교과서, 위인전기 같은 책들을 미친듯이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이 책들은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내가 골라서 읽은 책들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사오신 책, 그냥 집에 있던 책을 그냥 읽은 것이다. 내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먼지 풀풀 날리던 도서관에는 당시에 아무도 읽지 않아 대출기록이 전혀 없었던 SF소설, 추리소설들이 가득했다. SF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이때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같은 작가들과 친해졌다. SF소설은 어린 나에게 상상을 돋워주고, 독서에 취미를 붙여준 장르이다. 

장르소설은 그 목표가 명확하다. 추리소설은 알 수 없는 범인을 찾아가면서 마지막 범인을 찾아냈을 때 그 통쾌함이 극대화된다. 무협소설은 대의에 따라 영웅이 되어가는 대협의 풍모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판타지 소설은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재미가 우선이다. SF소설은 과학적 상상력을 현실과 잘 조합해서 마치 있을 것 같은 세계를 창조해서 지적 쾌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장편 《신의 궤도》를 읽은 후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일부러 찾아서 읽었다. 《신의 궤도》에서 멋진 설정에 비해 스토리텔링이나 장르적 쾌감이 아쉬워서 그걸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안녕, 인공존재》는 배명훈이 그동안 발표했던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으로 동명의 단편을 포함해 소설 여덟 편이 실려 있다.

1978 ~ . 한국의 SF소설 작가. 2011년에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자가상 수상

설정과 아이디어는 좋았다

여덟 편의 소설이 모두 소재가 다르다. 다르면서도 굉장히 소설간의 간극이 크고 다양하다. <크레인 크레인>은 실체화된 종교를 다루고 <누군가를 만났어>는 고고학과 심령현상을 다룬다. 심지어 <안녕, 인공존재>에서는 철학까지 다룬다. 그외에도 마법, 우주론, 거대로봇 등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설정들도 좋다. 굉장히 다양한 지식을 지닌 작가라는 걸 잘 알 수 있다. 설정은 《신의 궤도》에서도 감탄을 한 바 있는데 《안녕, 인공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한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부러운 점이고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안녕, 인공존재>에서는 그저 존재만 할 뿐 어떤 효용도 없는 물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장르적 재미는? 회수되지 않는 떡밥들

그런데 아이디어와 설정만 가지고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잘 살려야 좋은 소설이 될텐데 《안녕, 인공존재》는 아이디어와 설정을 보여주는 중반까지만 재미있다. 그 이후로는 어설프다는 느낌이 결말도 모두 어정쩡하다. 계속해서 하나의 아이디어에 집중하다가 명확한 결말을 지어주지 않고 소설들이 끝나거나 데우스엑스마키나가 등장한다.

그냥 끝난다. 뭔가 의미를 찾아 보려고 해도 찾기 힘들다. <안녕, 인공존재>는 철학적인 사변만 난무한다. <매뉴얼>은 그냥 궁금증만 잔뜩 풀어 놓고 망한다. <누군가를 만났어>는 도대체 뭐지? 던져놓고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문학적인 효과를 노렸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만 SF소설로 놓고 보면 실망스럽다. 멋진 소재를 만들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진행하던 소설들은 어느 순간 힘이 쭉 빠져 버린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풀어 놓은 것들을 회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SF소설이라면 가질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문학상을 받을 정도이니 전문가들이 보기에 좋은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SF소설 팬의 한사람으로서 《안녕, 인공존재》은 읽고 나서 다른 SF 팬에게 읽어보라고 선뜻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

★★☆

별로 재미없는 책이다. 뭔가 그럴싸하게 전개해 나가다 아무 것도 아닌 결말을 맺는다. 설득력있는 원인도 없고 개연성있는 결말도 없다. 대체로 뒷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너무 아쉽다. 이 정도 상상력이면 훨씬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등산을 열심히 하다가 정상을 찍지 못하고 하산하는 느낌이다.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쉽다.

위에서 쓴 것처럼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배명훈의 소설을 또 찾아서 읽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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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매트 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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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가 죽었다

1829년 10월 9일. 모차르트의 여섯째 아들인 볼프강은 병석에 누운 고모를 찾았다. 모차라트의 아들의 고모이니, 어릴 때는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재능을 보였고, 모차르트, 아버지와 함게 연주 여행을 다녔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넬, 소설 속에서는 나넬이라고 되어 있지만 난네를이 더 맞는 발음이다)이다. 나넬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다른 유산은 아들인 레오폴트(모차르트 남매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에게 남기지만 볼프강에게 가죽으로 장정한 노트 한 권을 남긴다.


책의 내용은 1791년 12월의 기록이다. 나넬은 아버지 레오폴트가 모든 유산을 받은 후 수년간 소원한 사이였던 동생 모차르트의 소식을 듣는다. 동생이 죽었다. 35세라는 굉장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재 음악가인 동생 모차르트가 죽었다. 이미 장례식은 엄수되었고, 나넬은 모차르트가 살던 빈으로 찾아간다.

 

Matt Ross 1967 ~ . 영국의 소설가


미스터리 투성이(인 듯 보이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소재로 한 팩션

모차르트의 죽음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어떤 음모나 미스터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시의 의학 수준이 낮아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사망원인은 발열과 좁쌀같은 발진이라고 되어 있는데, 발병한지 겨우 15일만에 급작스럽게 죽었다고 한다.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나이에 단명하고 말았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죽은 직후에도 음모에 의한 죽음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이 소문의 피해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가장 억울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빈의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이다. 천재의 죽음에 납득하지 못한 민중들이 엉뚱한 누명을 살리에리에게 뒤집어 씌웠고, 지금 그의 음악은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악명만은 여전히 떨치고 있다. 심지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살리에리의 독살설이 대중에게 퍼지도록 희곡을 쓴 피터 셰퍼가 제일 나쁘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역시 모차르트가 석연치 않게 죽은 것을 소재로 하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그의 죽음을 바라본다. 살리에리는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모차르트 추모 자선 공연에서 지휘를 하는 모습으로만 등장할 뿐 주요 인물이 아니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빈으로 여행을 하는데 때마침 열리는 자선음악회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내정되어 있던 호프데멜 대신에 연주를 맡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 뿐만 아니라 배우인 기제케, 황제인 레오플트 2세, 프러시아의 대사인 아코비 남작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모차르트가 죽기 전에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든지, 모차르트 주위의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의 영향하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결정적으로 황실도서관장인 슈비텐 남작으로부터 모차르트의 죽음이 알려진 바와는 달리 독살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모차르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로 마음먹는다.

 

모차르트 일가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그리고 프리메이슨

이 책에서 말하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마술피리》이다. 극한의 기교를 지닌 소프라노 콜로라투라만이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흔히 말하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정확하게는 밤의 여왕의 두 번째 아리아이다)가 있는 그 오페라이다. 모차르트가 말년에 프리메이슨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마술피리》에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여러가지 상징을 표현했다는 것도 여러 논문을 통해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마술피리》와 프리메이슨의 관계에서 소재를 잡아내서 모차르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만들어 낸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파헤치던 중에 모차르트가 독일에 새로운 프리메이슨 지부를 만들면서 여성이 참가하는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리메이슨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 즉,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어기는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모차르트가 독살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리아 중에 하나인 <Der Ho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로 유명하다. 사진 속의 여왕은 디아나 담라우이다.


밋밋한 미스터리

《마술피리》는 모차르트 죽음의 미스터리를 나넬이 파헤쳐 나가는 형식이지만 너무 밋밋하다. 먼저 소재 자체가 특별할 것이 없는게 모차르트의 독살설이라든지 《마술피리》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소재를 잘 엮어서(예를 들면 댄 브라운처럼) 미스터리를 촘촘히 잘 깔았으면 좋았을텐데,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결국 미스터리의 핵심은 '모차르트를 독살한 범인이 누구인가'인데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궁금증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궁금증을 풀어 나가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은데 단지 '모차르트의 누나'라는 신분 외에는 권력도 지성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나넬이 추궁만 하면 모두들 중요한 비밀을 술술 불어 버린다. 나넬은 딱히 대단한 추리를 추리를 하지 않고서도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나넬이 미스터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감하기 어렵다.


더욱 이해가 안되는 것은 대단한 귀족도 아니었던 나넬이 추궁을 하자 백작이나 남작같은 귀족 뿐만 아니라 황제와 왕자까지 위축되고 우물쭈물대는 모습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준다. 특히 페이크 흑막인 페어겐 백작의 죄상을 황제 앞에서 밝힌 후, 황제가 여성이 가입할 수 있는 프리메이슨 지부의 창단을 거절하자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틀리셨습니다."라고 얘기하는 모습은 너무 심했다. 절대권력인 왕에게 기껏해야 하급귀족부인인 나넬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서도 무사하다고? 작가는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당당한 여성상을 그리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설득력이 너무 떨어진다.

 

프리메이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직각자와 컴퍼스. 분별과 심판을 통해 피조물의 삶을 설명해 준다. 로지 마스터의 상징으로 회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윤리적 규약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을 모아 조화롭게 만드는 도구의 상징이다.


★★☆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미스터리를 구성할 소재는 다 준비해 놓았다. 천재의 급작스런 죽음, 죽음의 미스터리, 사건을 좇는 누나, 죽음의 위협,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회같은 비밀결사단체, 범인을 잡아내는 극적인 장치, 마지막에 독자의 뒷통수를 강하게 치는 반전까지. 하지만 이런 좋은 소재들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다.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마지막에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과정에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차르트 당시의 상황을 조합해서 팩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 빈의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좀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이 구성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많이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음반을 다시 듣고 싶어져서 여러번 들었다. 담라우의 힘넘치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다시 찾아 보기도 했다. 그건 좋았다. 하지만 이건 소설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모차르트에 대한 몇가지 음모론을 알 수 있는 소설, 딱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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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범인 없는 살인의 밤 (개정판) -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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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마음이 닿으면 어떤 책이든 읽지만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동안 읽었던 일본소설의 경험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일본소설은..
1. 자극적이고 참신한 소재로 금세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2. 호흡이 짧아서 읽기는 쉬운데 밀도가 낮다.
3.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하지만 결말 부분이 허술하다.
4. 글로 쓴 만화책같다.
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참신한 소재와 짧은 호흡으로 중반까지는 몰입해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중후반으로 가면 결말에 대한 부담감으로 무너져 버린다'고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나의 일본소설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바꿔줄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장편이 아니네?
두번째로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전에 읽은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상당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소설이고 특이한 소재를 옴니버스식으로 잘 풀어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한 작품이 괜찮았으면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큰 고민없이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를 때, 일부러 찾아서 보는 책이 아니면 정보를 미리 보지 않는 편이라 <범인없는 살인의 밤>도 어떤 정보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집이었다. 첫 단편인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날 때까지 몰랐다. 어.. 어.. 하는 순간 첫 번째 소설이 끝이 났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일곱 개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일곱 개의 살인사건을 다룬 단편소설집
정확히는 모두 살인사건은 아니고 일곱 개의 죽음을 다룬 단편소설집이다. 어느날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 살인사건도 있지만, 자살로 죽은 사람도 있고, 사고사로 죽은 사람도 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범인들은 살인사실을 감추려고 하지만 결국, 형사(또는 형사 역할을 하는 지인)에 의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죽음의 미스테리가 밝혀진다. 모든 개별 단편의 구성이 그렇다. 죽음 → 미스테리 → 반전 결말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런 소설이라면 대체적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 기대가 컸다.
기대에 못 미친다


작가가 누구인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예전에 멋진 아이디어로 소설을 쓰는 외국의 소설가의 단편집을 읽고서 굉장히 실망한 적이 있다. 장편소설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단편소설은 재미도 없었고 충격적인 반전을 주려고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확실히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작품을 구성하는 솜씨가 다른 것 같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 역시 그렇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에 범인 또는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모든 개별 소설의 결말이다. 하지만 너무 헐겁다.


이 책은..
1. 추리가 너무 허술하다. 허술하다기보다는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별로 추리가 없다. 그렇다고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하기엔 모든 소설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2. 반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전개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중요한 정보들을 숨기고 마지막에 모든 정보를 보여 주며 결말을 짓는다.
3. 내용에 긴박감이 전혀 없다. 그냥 잔잔하다. 그렇다고 일부러 잔잔하게 쓴 것 같지도 않다.

 

읽는 내내 <명탐정 코난>이 오버랩됐다.


★★☆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페이지도 굉장히 빠르게 넘어간다. 이 책의 굉장히 큰 장점이다. 평소에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큰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과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 같다. <명탐정 코난>의 재미없는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이 아니라 <명탐정 코난>이라고 하는 건 두 만화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프로필을 살펴 봤는데, 엄청난 다작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좋아서 하나 떠오르면 순식간에 한 권의 책을 써내는 작가일 것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는 개별 작품의 편차가 큰 경우가 많은데,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수작은 아닌 것 같다. 맨 처음에 적어 놓은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일본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지는 못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미리 평을 읽어 본 후 잘 골라서 읽어야 할 것 같다.


가볍게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을 사람이라면 말릴 생각은 없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재미는 별로 없다.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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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미스터리 세계사 - 법의학과 심리학으로 파헤친 세계 왕실의 20가지 비밀과 거짓말
피터 하우겐 지음, 문희경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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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예전에 알 수 없었던 건 지금도 알 수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역사란 것은 이미 흘러 가서 결정이 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 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지금 이렇지 않을텐데..' 따위의 말은 아무 의미없는 공염불이라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미스터리라는 것은 절대로 풀릴 수 없는 형사사건이나 마찬가지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천년 전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실제로 역사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추측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얘기할 때는 항상 '가설'로 얘기할 뿐이지 '사실'로 얘기할 수는 없다. 보통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사실이라고 보긴 하지만 사관이 잘못써서 오타가 나거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변형시키지나 않았을지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

<투탕카멘은 Tut+Ankh+Amun이 합쳐진 말로 '아멘의 살아있는 상징'이라는 뜻이다>​

법의학과 심리학으로 왕실의 비밀을 들여다 보다..

이 책은 역사에 있었던 사건들 중에서도 특히 왕실에 관련이 된 스무 가지를 골라서 소개를 하고 있다. 수천년전에 있었던 이집트 투탕카멘의 죽음에서부터 가장 최근까지는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에 이르기까지 답도 없고 답을 낼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항상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법의학'과 '심리한'으로 파헤친다고 하니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혹하는 책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유명한 여러가지 미스터리들을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잘 모르는 사건들에 대해서 미스터리와 함께 소개를 하고 있으지 흥미롭기는 하다. 특히 나같은 경우는 철가면에 대해 약간의 로망같은 것이 있어서 이 책을 구매했다.

흥미는 있지만 너무 복잡하고, 복잡하긴 하지만 겉핥기다.​.

스무 개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흥미로운 주제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몇가지 에피소드들은 제목만으로도 흥미롭고 관심을 끄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짧게짧게 다루는 책의 가장 큰 단점이 이 책에서도 나타나는데 주제가 굉장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한 권의 책에 스무 개의 에피소드를 집어 넣은만큼 짧은 하나의 장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다​ 보니 배경이 되는 역사에 대해서 축약해서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열식 설명이 되고 만다. 그래서 특정 에피소드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도대체 맥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나라 왕이라고는 세종대왕밖에 모르는 외국인에게 어째서 태종이 장자인 양녕을 폐세자하고 충녕을 왕으로 삼기 위해 조선의 건국과정동안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나열해 놓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복잡해 질 수밖에 없지만 이해하긴 힘든 책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내가 영국역사를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이 책을 읽을 리가 없을테니.. 특히나 현재에 가까워질수록(즉,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질수록..) 너무나도 많은 내용을 축약해서 썼기 때문에 더더욱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다. 인물을 하나하나 찾아 보면서 읽을 수도 없으니 결국은 수박겉핥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투탕카멘왕과 헤롯왕 그리고 아서왕을 다룬 첫 세장이 훨씬 읽기 편하고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 온다.

<헤롯왕의 영아학살, 당시 베들레헴의 2살 미만의 아이는 20명이 안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역사책은 자세히 봐야 훨씬 알기 쉽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역사는 참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암기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가 역사에 나온 사건들을 외우기가 힘들어서 항상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졸업을 한 후에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가지면서 자세히 보게 되니 오히려 더 잘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훨씬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야 역사는 암기하는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 깨달은 것이다. 이 책도 그런 면에서 볼 때 두세 가지 에피소드를 좀더 자세히 파헤치는 내용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짤막한 소개는 인터넷을 뒤져보기만 해도 충분히 나오는 내용들이라 조금 실망을 하긴 했다. 그리고 딱히 '법의학'과 '심리학'을 앞에 내세울만한 별다른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흥미는 유발할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몇가지 에피소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원래 조금 알고 있던 내용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들은 그냥 알게만 되었다. 소제목에 있는 정도까지만 머리에 남는다. 그리고 제목부터가 사실 마음에 안든다. '왕실 미스터리 세계사'라기보다는 '왕실 미스터리 유럽사'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제목일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서양 음악의 아버지(이것도 왜 바흐가 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인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격상시키는 것처럼 서양 역사를 마치 세계의 역사인 것처럼 격상시켜 놓은 것도 마음에 안든다. 그래서 원제를 보니 'Was Mapoleon Poisoned? : and Other Unsolved Mysteries of Royal History(나폴레옹은 독살되었나? 풀리지 않은 왕실역사의 미스터리)'인 걸 번역하면서 저렇게 제목을 정했나 본데 서양인의 시각으로 제목을 풀어 놓은 것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좀 삐딱한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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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역사를 탐험하라..
미시사(문화사의 범주에 들기도 한다고..)에 관해 관심을 갖던 중 읽은 두 번째 책이다.. 로버트 단턴은 예전에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읽지는 않았던 책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뭘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미시사라는 것 역시 전혀 모르는 분야였는데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로 관심을 갖게 된 후 미시사의 저명한 저자의 책을 읽고 나서 이제야 대충이라도 어떤 분야인지 맛은 보게 되었다. 

이 책은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일종의 유행가라고 볼 수 있는 시를 도구로 해서 왕을 비롯한 궁정의 인물들을 모독한 '14인 사건'에 주목한 후 그로부터 파생한 여러가지 사회현상들과 당시의 시대상황, 그리고 시를 통한 여론의 형성 등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중후반을 넘어가면 유행하던 노래의 후렴구에 시를 붙이고 가사를 관심사에 맞게 자유자재로 불렀던 '매춘부 사생아'라는 시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매춘부 사생아'의 구성은 우리나라 민요로 치면 '옹헤야'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 두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정말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하나의 필화사건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당시의 사건 수사기록, 샹송집, 일기 등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황, 특히 우리가 흔히 보는 큼직큼직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민초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비록 직접적인 연관성을 자세히 밝혀내기 힘들더라고 중간중간 작가로서의 합리적인 상상력까지 보태서 당시의 사회를 재구성해 나간다..

이럼 과정들이 사실상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 지식이 거의 전무한 나로서는 즐기기 어려웠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조금의 상식이라도 있었으면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우리나라 일반적인 독자가 대부분 그럴테니..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미시사'의 연구방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 든다.. 그야말로 작고 세세하다.. 자료도 그렇고 결론도 그렇다.. 사실 큰 의미에서의 역사와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의 작은 삶에 대해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같은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위에 말한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에서 이루어졌으니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에 대해서는 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역자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역사학자이긴 하지만 전문번역가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1. 쉬운 내용이 분명한 부분도 너무나 번역투여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여러번 읽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2. 우리나라 문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하이픈과 괄호를 이용한 부연 설명이 많아서 읽는 흐름이 깨진다..
3. 번역을 할 때 가장 많이 거슬리는 단어와 단어의 소유격 연결이 많아 어색하다..
4. 도대체 전혀 접해 본 적이 없는, 영한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이런 요소들 때문에 가뜩이나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 머릿속에 더 들어 오지 않는 건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미시사의 연구방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
그외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어려운 문장을 공들여 읽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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