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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매트 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2년 1월
평점 :
모차르트가 죽었다
1829년 10월 9일. 모차르트의 여섯째 아들인 볼프강은 병석에 누운 고모를 찾았다. 모차라트의 아들의 고모이니, 어릴 때는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재능을 보였고, 모차르트, 아버지와 함게 연주 여행을 다녔던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애칭 나넬, 소설 속에서는 나넬이라고 되어 있지만 난네를이 더 맞는 발음이다)이다. 나넬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다른 유산은 아들인 레오폴트(모차르트 남매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다)에게 남기지만 볼프강에게 가죽으로 장정한 노트 한 권을 남긴다.
책의 내용은 1791년 12월의 기록이다. 나넬은 아버지 레오폴트가 모든 유산을 받은 후 수년간 소원한 사이였던 동생 모차르트의 소식을 듣는다. 동생이 죽었다. 35세라는 굉장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재 음악가인 동생 모차르트가 죽었다. 이미 장례식은 엄수되었고, 나넬은 모차르트가 살던 빈으로 찾아간다.
Matt Ross 1967 ~ . 영국의 소설가
미스터리 투성이(인 듯 보이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소재로 한 팩션
모차르트의 죽음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어떤 음모나 미스터리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시의 의학 수준이 낮아서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려진 사망원인은 발열과 좁쌀같은 발진이라고 되어 있는데, 발병한지 겨우 15일만에 급작스럽게 죽었다고 한다.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릴 나이에 단명하고 말았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죽은 직후에도 음모에 의한 죽음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이 소문의 피해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가장 억울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음악가이자 빈의 궁정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이다. 천재의 죽음에 납득하지 못한 민중들이 엉뚱한 누명을 살리에리에게 뒤집어 씌웠고, 지금 그의 음악은 거의 연주되지 않지만 악명만은 여전히 떨치고 있다. 심지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한 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살리에리의 독살설이 대중에게 퍼지도록 희곡을 쓴 피터 셰퍼가 제일 나쁘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역시 모차르트가 석연치 않게 죽은 것을 소재로 하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그의 죽음을 바라본다. 살리에리는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모차르트 추모 자선 공연에서 지휘를 하는 모습으로만 등장할 뿐 주요 인물이 아니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빈으로 여행을 하는데 때마침 열리는 자선음악회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내정되어 있던 호프데멜 대신에 연주를 맡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 뿐만 아니라 배우인 기제케, 황제인 레오플트 2세, 프러시아의 대사인 아코비 남작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모차르트가 죽기 전에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든지, 모차르트 주위의 사람들이 프리메이슨의 영향하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결정적으로 황실도서관장인 슈비텐 남작으로부터 모차르트의 죽음이 알려진 바와는 달리 독살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모차르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파헤치기로 마음먹는다.
모차르트 일가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 그리고 프리메이슨
이 책에서 말하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마술피리》이다. 극한의 기교를 지닌 소프라노 콜로라투라만이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흔히 말하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정확하게는 밤의 여왕의 두 번째 아리아이다)가 있는 그 오페라이다. 모차르트가 말년에 프리메이슨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마술피리》에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여러가지 상징을 표현했다는 것도 여러 논문을 통해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마술피리》와 프리메이슨의 관계에서 소재를 잡아내서 모차르트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만들어 낸다.
나넬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파헤치던 중에 모차르트가 독일에 새로운 프리메이슨 지부를 만들면서 여성이 참가하는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리메이슨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회원을 받지 않고 있다. 즉, 모차르트는 프리메이슨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어기는 지부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모차르트가 독살을 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리아 중에 하나인 <Der Ho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로 유명하다. 사진 속의 여왕은 디아나 담라우이다.
밋밋한 미스터리
《마술피리》는 모차르트 죽음의 미스터리를 나넬이 파헤쳐 나가는 형식이지만 너무 밋밋하다. 먼저 소재 자체가 특별할 것이 없는게 모차르트의 독살설이라든지 《마술피리》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소재를 잘 엮어서(예를 들면 댄 브라운처럼) 미스터리를 촘촘히 잘 깔았으면 좋았을텐데,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그리 대단하지 않다. 결국 미스터리의 핵심은 '모차르트를 독살한 범인이 누구인가'인데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궁금증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궁금증을 풀어 나가는 방식에도 문제가 많은데 단지 '모차르트의 누나'라는 신분 외에는 권력도 지성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나넬이 추궁만 하면 모두들 중요한 비밀을 술술 불어 버린다. 나넬은 딱히 대단한 추리를 추리를 하지 않고서도 사건의 진실에 다가선다.나넬이 미스터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개연성있는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감하기 어렵다.
더욱 이해가 안되는 것은 대단한 귀족도 아니었던 나넬이 추궁을 하자 백작이나 남작같은 귀족 뿐만 아니라 황제와 왕자까지 위축되고 우물쭈물대는 모습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준다. 특히 페이크 흑막인 페어겐 백작의 죄상을 황제 앞에서 밝힌 후, 황제가 여성이 가입할 수 있는 프리메이슨 지부의 창단을 거절하자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틀리셨습니다."라고 얘기하는 모습은 너무 심했다. 절대권력인 왕에게 기껏해야 하급귀족부인인 나넬이 그렇게 얘기를 하고서도 무사하다고? 작가는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당당한 여성상을 그리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설득력이 너무 떨어진다.
프리메이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 직각자와 컴퍼스. 분별과 심판을 통해 피조물의 삶을 설명해 준다. 로지 마스터의 상징으로 회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윤리적 규약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을 모아 조화롭게 만드는 도구의 상징이다.
★★☆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미스터리를 구성할 소재는 다 준비해 놓았다. 천재의 급작스런 죽음, 죽음의 미스터리, 사건을 좇는 누나, 죽음의 위협,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회같은 비밀결사단체, 범인을 잡아내는 극적인 장치, 마지막에 독자의 뒷통수를 강하게 치는 반전까지. 하지만 이런 좋은 소재들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은 아니다.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마지막에 미스터리가 해소되는 과정에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차르트 당시의 상황을 조합해서 팩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당시 빈의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좀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이 구성되었으면 좋았을텐데.. 많이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음반을 다시 듣고 싶어져서 여러번 들었다. 담라우의 힘넘치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다시 찾아 보기도 했다. 그건 좋았다. 하지만 이건 소설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는 모차르트에 대한 몇가지 음모론을 알 수 있는 소설, 딱 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