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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족에게 닥친 최악의 불행
매켄지 앨런 필립스(맥)는 어릴 때의 불행을 딛고 내냇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위로 세 명의 아들 존, 테일러, 조시, 그리고 캐서린(케이트)와 멜리사(미시)라는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어느 여름, 매켄지는 조시, 캐서린, 미시를 데리고 왈로와 호수 주립공원으로 캠핑을 간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캠핑 마지막 날, 조시와 케이트가 카누를 타던 중에 카누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고 맥은 미시와 함께 물밖에 있다가 급하게 뛰어들어 겨우 두 아이를 구해 낸다.
두 아이와 함께 물밖으로 나온 맥. 그런데 아이들을 구하는 사이에 막내 미시가 사라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미시를 찾았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맥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경찰까지 동원된 대규모 수색에도 미시는 찾을 수 없고 공원 관리인이 미시가 트럭에 실려 공원밖으로 나간 것을 목격한 것을 듣게 되어 수색범위는 넓어진다. 최근 인근에서 유소년 여아들이 납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슷한 유형의 연속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듣고 더욱 불안해 하는 맥의 가족.
결국 트럭의 흔적을 쫒던 중 어느 오두막에서 핏자국과 함께 미시의 드레스가 발견되고.. 미시는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결론난다. 그로부터 3년 반 후 눈오는 어느날, 집에 혼자 있던 맥은 우편함에서 이상한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의 내용은..
"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
파파는 맥의 아내인 내냇이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었다. 맥은 장난편지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지만 편지의 내용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있는 어느 주말, 맥은 악몽을 되살리며 그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맥이 만난 사람은..
윌리엄 폴 영 William Paul Young 1955 ~ . 캐나다 작가.
묘한 소설
특이한 이력을 지닌 소설이다. 작가인 윌리엄 폴 영은 뉴기니에서 활동한 캐나다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여섯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쓴 책이 《오두막》으로 처음에는 열다섯 권만 복사본으로 만들어 나눠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돌려 읽던 사람들이 출판을 권유했고, 자비출판한 이 책은 입소문만으로 밀리언 셀러를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처음엔 실화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 도입 부분이 실화처럼 씌여 있다) 실화가 아니고, 읽다 보니 기독교 소설인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굉장히 노골적인 기독교 소설이다. 하나님이 나오고 예수와 성령까지 등장한다. 예수가 직접 등장하는 소설은 조반니 과레스키가 쓴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두막》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소설 속 배경인 왈로와 호수. 주립공원으로 오리건 주에 있다.
헉! 이게 뭔 소설이야?
맥이 아이를 잃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일텐데.. 맥이 오두막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세 사람이 맥을 기다리고 있다. 엘루시아라는 흑인 여성, 죠슈아라는 아랍 남자, 사라유라는 아시아 계열 여자. 이 세 사람은 맥을 보고 굉장히 반가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맥을 초대한 파파라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실화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이 부분에서 실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만약 실화라면 정신병자나 광신도(결국 같은 범주겠지만)의 이야기일테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우화.. 뭐 그런 것도 괜찮다. 앞에서 말한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에서도 예수가 돈 까밀로 신부와 대화하면서 어루만져 주고 깨우쳐 주고 했으니까.. 그런데 《오두막》은 좀..
막내 미시는 살해되고 시신도 찾지 못한다.
위로가 아닌 강요와 교리문답 투성이 소설
결론적으로 맥을 초대하고 오두막에서 만난 세 사람은 사기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다. 그것도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세 명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인종과 성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지 성부와 성령은 여성의 모습으로 성자의 모습은 남성으로 설정했고 인종 역시 제각각이다. 여기까지는 우화의 한 형태로 인정해 줄만하다.
그런데 세 명의 신이 맥을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이 엉뚱하다. 위로가 아니라 교리 강독을 하고 있다. 읽으면서 대충 적어 본 것만 해도 하나님의 성별에 관한 문제, 자유의지론, 삼위일체론, 예수의 신성과 인성, 성육신, 원죄론, 교회론 등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 내용들을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딸을 잃은 남자에게 과연 가당키나 한 설명인가? 이게 위로가 될 수 없을텐데.. 작가는 맥의 상처를 보듬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저항감을 가지는 주제에 대해 설명을 나열한다. 그러니까 맥은 독자 포지션이고 하나님들은 저자의 포지션에서 설명하는 중이다. 이런 정확하지도 않은 교리 강독이 무슨 쓸모가 있지?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가장 민감한 삼위일체론같은 경우, 사실상 교회에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언급하면 안되는 금기사항같은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이 확립된 이후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은 적대파를 이단으로 몰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두막》에 표현된 하나님의 모습은 이단으로 공격받기에 딱 좋다. 즉, 어설프게 교리를 비유로 설명하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교리 지식이 계속 인용되고 있다. 도대체 상실감이 큰 맥을 위로하는데 교리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책 후면에 추천사를 쓴 목사님들은 이게 전혀 걸리지 않았나? 나는 이단으로 이 책을 단정지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책에 나오는 하나님(들)이 실제로 맥을 위로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기독교 교리 강해를 하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는 거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교리가 그다지 정교하지도 않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에서는 다루는 순간 이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민감한 주제인데 소설에서는 너무 쉽게 다루고 있다.
★★
이런 책들이 가끔 있다. 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론을 줄줄 늘어놓는 소설. 사실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발표해야 하는 하는 책.. 우리 불쌍한 매켄지의 비극은 그저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억지로 만들어 놓은 비극일 뿐이다. 만일 매켄지가 '제4의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다면 저자인 폴 영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폴 영이 자신이 만든 인물인 맥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고 느꼈다. 단지 계몽되어야 할 무지몽매한 '믿음을 잃은 자' 정도로 생각한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마지막에 감동을 받아야 할 장면에서도 전혀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없었다. 또 마지막에 차사고는 왜 나는 건지.. 사건의 개연성도 없고 의미도 없다. 기독교라는 엄청난 시장을 잡은게 이 소설의 성공비결인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윌리엄 폴 영은 제대로 소설을 쓸 줄 모르는 아마츄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천 만 명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나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신앙적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있는 소설이 꽤 많을텐데.. 《오두막》은 아닌 것 같다. 착해 보이는 소설이라고 해서 좋은 소설이 아니다.
별로 추천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