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라면 야훼의 적대자 바알의 신화를 읽을 때 조금 불경스런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구약성경보다 훨씬 고대의 기록을 읽거나 구약성경이 전하는 내용과 다른 문헌을 읽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를 있는 그대로 대면해야 한다는 용기는 인문학이든 신학이든 꼭 필요한 자질일 것이다. - P40

원문을 실제로 읽어 보면 고대근동의 사료 자체가 이미 저마다의 독특한 시각을 드러냄을 느낄 수 있다. 모든 문헌자료는 ‘객관적 보도‘가 아니다. 고대근동의 텍스트는 고도로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며, 늘 ‘자신의 진실‘을 전한다. - P40

도시의 의미는 컸다. 성벽 안팎은 크게 달라졌다. 주변의 위성마을은 물론, 먼 곳과도 교역하는 중재자요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재화와 서비스가 도시 안에는 있었다. 도시의 중앙을 차지한 신전은 도시의 중심이자 주변 지역의 중심이었고 먼 곳까지 위세를 떨쳤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의 도시들은 쉼없이 경쟁했다. - P53

사르곤이 등장했다. 기원전 24세기였다. 그는 아카드제국을 세워 뛰어난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일했다. 동서남북의 다양한 민족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 P61

사르곤은 인안나(=이쉬타르)를 섬겼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이쉬타르 여신의 특별한 은총에 힘입은 것으로 여겼다. 그 감사의 표현으로 사르곤은 자신의 친딸 엔헤두안나(Enheduanna)를 우르로 보내 인안나와 난나(Nanna = Sin)를 섬기는 여사제로 임명하였다. - P69

사르곤 이후 아카드어가 고대근동에 퍼졌다. 아카드어는 처음부터 수메르어와 한 배를 타야 할 운명이었다. 아카드어는 셈어의 일종으로 수메르어와는 아예 어족이 다르다. 아카드인들은 오랫동안 고급의 언어, 일종의 문화어의 지위를 누린 수메르어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카드인들은 광범위하게 수메르어를 포용하는 정책을 썼다. - P70

우르는 남부의 수메르인들을 규합해 새로운 제국을 세웠다. 이른바 ‘우르 제3왕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원전 22세기였다. 전쟁보다는 외교가 중시되었다. 문치(文治)의 시대가 열렸다. 함무라피 법전보다 더 이른 ‘인류 최초의 법전인 우르-남무 법전이 선포되었다. - P74

새로운 제국을 이룬 수메르의 도시국가는 우르였다. 『수메르 왕명록』에 따르면, 아카드가 붕괴하고 약 100년간의 혼란기를 종식시킨 우르의 새 왕조는 우르의 세번째 왕조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를 ‘우르 제3왕조‘라고 한다. - P76

아카드적인 것이 대체로 실용적이며 호전적이고 현세적인 북부의 경향을, 반대로 수메르적인 것이 원칙적이며 지혜롭고 종교적인 남부의 경향을 띤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경향은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계속해서 병행하며 드러난다. - P78

고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4천 년대에 문명이 시작되었지만 서로 퍽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고대 이집트의 자연, 사회, 종교, 이념, 문화, 역사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강력하고 우월한 하나의 중심이 대비되는 두 세계를 통합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면 유리할 것이다. - P85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종살이했고 이집트의 이웃으로 오래 살았던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두 개의 미츠‘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집트 종살이‘라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두 미츠르의 종살이‘가 된다. 왜 그랬을까?
이집트를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나누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하 이집트는 서로 다른 지역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 P87

고대 이집트의 강력하고 우월한 중심인 마아트와 파라오를 알아보자. 마아트는 삼라만상의 근본적 원리요 상지(上智)였고, 파라오는 마아트가 체현된 인격이었다. 파라오는 ‘짐이 곧 국가‘라는 중세 유럽의 절대왕권보다 훨씬 더 강력했고 우월했다. 파라오는 최고의 인간이자 최고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이집트 역사를 관통했다. - P89

마아트의 체현, 파라오
호루스의 현현인 파라오는 그 자신이 곧 마아트의 의지였고, 마아트를 지상에 실현하는 존재였다. 이런 개념은 강력한 왕권신학과 통한다. 파라오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전능하고 전지한 존재였다.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대근동학의 범위
고대근동학이 다루는 공간과 시간을 정의하면서 시작하자. 우선 공간을 질문하며 시작하면 효율적일 것이다. 우리는 왜 ‘고대중동학‘이라고 하지 않고 ‘고대근동학‘이라고 하는가? - P17

고대근동학이 다루는 시대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정복 이전, 곧 ‘헬레니즘화 이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 P19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도 남북의 갈등과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문화적으로 강한 남부에서 문명이 발흥해 북부로 확산되었고, 시대가 지남에 따라 ‘남북의 강역‘이 훨씬 확장되었다는 점을 주의하자. - P23

이들 사이에 낀 지역, 곧 지정학적 요충지가 바로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대근동 지형에서 실질적으로 중앙을 차지한다. 하지만 땅이 협소해 작은 도시국가들이 발전했을뿐, 큰 제국을 세운 적도 강대국이 발흥한 적도 없다. 이 지역은 ‘길‘의 역할을 맡았다. 강대국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거나 모든 강대국들이 지리멸렬했을 때 번영기를 구사하기도 했지만, 강대국들이 충돌할 때는 전장(戰場)을 제공해야 했다. - P25

반달 모양의 땅
이렇게 교역이 가능한 땅을 이으면 대략 반달 같은 모양이 된다. 이 반달지역이 사람이 물을 얻어 농사를 짓는 지역이자 고대근동 세계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을 ‘비옥한 초승달 지대‘ (The Fertile Crescent)라고 한다. - P28

현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물론 아나톨리아 반도와 시리아-팔레스티나를 모두 포괄하는 상위개념으로 점차 고대근동학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 P33

고대근동학은 처음부터 구약성경 연구와 관련이 깊었고 지금도 그렇다. 사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연구결과보다 이스라엘에 대한 연구결과가 훨씬 많고 다양하다. 그 이유는 물론 그리스도교 때문이다. - P35

만약에 내가 고고학자라면 지금 당장 꼭 찾아야 할 발굴지는 어디일까? 학자들에 따라 여러 곳을 말할 수 있겠지만, 아마 아카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시모나 체카렐리 그림, 김영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운 글이 아름다운 그림을 만났다.
어릴 적 상상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쇼핑몰 2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13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를 속이는 탐정은 공정하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촌은 피라미드 회사 다이아몬드급의 인맥을 갖고 있었다. 은옥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가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으로 허덕일 때, 삼촌이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초야의 고수로 소문난 은옥을 찾아온 그는 레드코드에게 도검 연수를 해주는 조건으로 생계를 지원했다. 정작 그녀에게 연수를 받은 레드코드는 민혜 한 명뿐이었다. - P93

"살아남아라, 정지안."
삼촌의 목소리가 비장했다. - P95

"정지안, 그런 일로 이사를 가자니 말이 돼? 때로는 말야, 위치가 무기일 때도 있는 거야." - P96

알렉스 일당은 나를 살해할 기회가 충분했다. 명중률 높은 스나이퍼를 고용했다면 큰 소란 없이 나를 제거했을 터였다. 지금은 계속 겁은 주되 목숨은 붙여놓은 채 나를 편의점으로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15

지금껏 삼촌이 민혜를 짝사랑한 줄만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어긋났다. 먼저 고백을 한 것도 민혜, 거절당하고 은둔한 것도 민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삼촌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것도 민혜였다. - P121

삼촌은 좀비 영화를 질색했다.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배고픈 인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아우성치는 모습이 보기 괴롭다는 이유였다. 그 얘길 들었을 땐 웃어넘겼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삼촌은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 P141

죄를 짓는 한 죄책감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삼촌이 찾아낸 자구책이라고 해봐야 애써 인간을 사물로 착각하게끔 만드는 습관이 전부였다. 인간 모양의 과녁에 총알을 명중시켰다고 자기 최면을 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세계였다. - P146

"넌 나 못 죽여. 너 때문에 자식 잃은 어미를 감히 쏠 수 있어? 그러고도 인간 행세하면 안 되지."
알렉스가 총구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 P152

"너네 삼촌 쫌 멋진데?"
"어디가?"
"선은 지키잖아. 어두운 일 하면서 조카도 부양하고, 끝내주게 복수하면서 마약이나 매춘 사업은 안 하는 게 어디야." - P157

하필 다나는 내가 유기한 선인장 앞에서 알렉스와 통화했다. 삼촌은 화분물받이에 숨겨놓은 소형 카메라로 다나의 실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나와 브라더가 바빌론의 수스앱 걱정을 하며 매출 압박을 했을 때, 삼촌은 이미 알렉스가 누구이며 어디에 은신해 있는지 알아냈다. - P159

다나는 서점에서 책을 고르듯, 행거에서 옷을 꺼내듯 죽음을 툭 건드렸다. - P169

배신이라는 결과는 조금만 고민하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삼촌, 아니 우리 가족의 음험한 특성이었다.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마치 한 가족 안에게만 통하는 농담처럼, 우리는 서로의 배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 P1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