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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박명준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 2020년 4월
평점 :
성경 한 번 읽어 본 적 있어?
나는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은 아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해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거의 모태신앙에 가깝다. 철들기 전부터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많은 문화적 소양을 교회에서 키웠다. 당시에는 교회가 모든 문화의 첨단을 달리는 곳이었다. 합창도 성가대를 통해 교회에서 처음 해 봤고, 그림도 그려봤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도 교회에서 배웠다. 그리고 성경은 나의 지식을 이루는 근간이면서 기준이었다.
성경은 어린 나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그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들은 굉장히 흥미진진했고, 어릴 때 거의 활자중독이었던 나에게 성경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책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차츰 성경이 이상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면서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의문에 대해서 아무도 명확한 해답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롭게,성경 다시 읽기
‘다시, 성경으로’의 저자인 레이첼 헬드 에반스는 나와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었고,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졌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교회를 떠났다가 성경을 다시 읽게 된 프리랜서 작가이다. 어린 시절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저자는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하지만 그 의문점을 풀어주는 신앙의 선배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저자를 윽박지르면서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할 뿐이었다. 나와 비슷하다.
성경은 ‘거룩한 책’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 의심을 갖거나 반박을 하는 것은 신실한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온갖 세대의 사람들이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 상황을 토대로 쓴 글들이다. 당연히 그 생각들이 인간의 관점에서 완벽하게 들어맞을 리가 없다. 게다가 성경이 씌여질 당시에는 (기원전 12세기에 모세가 썼든, 기원전 5세기경 바빌론 포로시기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썼던 말이다) 지금같은 과학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과학적 정합성이 떨어지는 글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반구형이고 하늘은 벽같은 느낌이며, 별들은 하늘에 박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배제한 채 읽으면 안된다. 더구나 지금의 과학적인 지식에 끼워맞춰서 성경을 해석하는 창조과학론적인 해석도 터무니없는 짓이다.
저자는 성경을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의 문화를 토대로 하여 성경을 재해석한다. 이 책의 첫 이야기는 바빌론 포로 시대, 바빌론의 주신인 마르둑의 축제를 즐기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 하는 학개라는 꼬마를 보여준다. 학개의 아버지는 이전에 우리의 고향 예루살렘에는 더 위대한 야훼의 성전이 있었으며, 야훼는 마르둑보다도 더 위대한 신임을 아들에게 알려 준다. 나라를 잃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유대 민족의 슬픔을 알려 주고, 민족의 정체성을 후대에 전수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성경은 아마도 이런 전수과정에 씌여진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성경은 바빌론 포로시절에 씌여지기 시작하여 귀환기에 오경이 완성이 되고, 이후에 성문서와 선지서들이 추가로 완성되었다고 하는 설을 지지한다.
소외된 자와 여성을 위한 성경
저자는 이 책에서 주인공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다. 소외되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해서 기억한다. 특히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인 고대 유대인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는다.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는 쫓겨났다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다시 돌아온 하갈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하갈이야말로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이름(엘로이, 보시는 하나님)을 지은 사람이라고 추켜 세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지은 하갈의 의도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넘어가자) 그리고 에스더, 크세르크세스라고도 알려진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되어 유대 민족을 절멸의 위기에서 구해낸 민족의 구원자 격으로 칭송한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까지. 많은 부분 저자의 애정은 당시에 약자였던 사람들, 특히 여인들에게 향해 있다.
나는 이 점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가장 큰 가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나?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경을 읽고 있는 걸까?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글자 뜻 그대로 읽는다. 최소한 2,000년, 길게는 3,500년 전에 씌여진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강단에서 우겨댄다.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비기독교인을 적으로 설정한 후 절멸해야 할 존재로 삼는다. 여자를 남자에게 복종해야 할 존재로 만들고, 남자는 사랑을 주면 된다고 한다. 고아와 과부를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의 정신 대신에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당시 사회에서 잘 나갔던 인물들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사회적 성공만을 성경에서 읽어낸다. 성경을 바로 읽고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근본주의적인 믿음을 갖고 그것을 그대로 지켜나가는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분쟁을 보면 종교에서 근본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성경은 그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 당시의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서 씌여진 책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문화적 배경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3,000년 전 유목을 하면서 농사를 짓던 중소민족의 지침서가 지금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그 안의 뜻을 다시 파악하여 변용하고 적용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성경은 성스러운 말씀이 아니라 저주의 주문을 모아놓은 책이 되고 말 것이다.
★★★★☆
저자는 ‘성경이 씌여진 당시의 믿음을 오늘날 우리가 이어받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믿음을 이어받아야지 성경의 글자 하나, 구절 하나를 이어받으면 안된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해왔던 고민과도 많이 맞닿아 있다. 그리고 내가 내려야 했던 결론을 저자가 먼저 명확하게 내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책을 읽는 재미도 있고, 지루하지도 않다. 특히 성경을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성경을 그저 경전으로 생각하고 읽어온 사람이라면 읽어 보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을 쓴 멋진 저자가 겨우 37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 버려서 더 이상 그의 재기 넘치는 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