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8년 어느 날, 대구의 사족 유유가 갑자기 집을 나가 종적을 감춘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562년 채응규라는 자가 사라진 유유를 자칭하고 나타났다. - P5
<유연전>은 유연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쓰인 글이므로 모든 자료는 이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되고 배치되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기억하고자 하는 주체, 곧 기억 주체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P14
유예원의 삶은 당시 지방 사족의 전형이었다. 지방수령으로서 인근의 친한 사족에게 자잘한 선물을 보내고, 모임을 가져 음주가무를 즐기며, 가까운 벗에게 아들을 보내 공부를 시키는 등의 일이 사족의 일상이었다. 유연도 마찬가지였다. - P27
‘유유 사건‘은 지방의 안정된 사족가문의 맏아들로서 과거를 준비하던 유유가 1558년 33세의 나이에 집을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 - P29
유유는 일찍이 산에 들어가 독서하다가 홀연 돌아오지 않았다. 유예원과 백씨는 "미쳐서 달아났다"고 하였다. 말이 집 밖으로 나갔지만, 이미 아버지와 아내의 증언이 있었으므로 향리의 사람들은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 P31
유유는 몸이 왜소하고, 수염이 없고, 음성이 부인과 같다. 이것은 유유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성을 강하게 갖고 태어났음을 시사한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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