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들은 영원히 바보를 알아볼 수 없어. 그래서 수많은 바보들의 책이 출판되고 있는 걸세. 언뜻 보면 근사하거든. - P1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기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심각한 동기가 없어진 셈이고, 심각한 동기가 없어지고 말았으니까 글을 쓸수도 없는 노릇이고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주인공이 되는 대신에 지적인 방관자가 되겠노라고 한 벨보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 P50

오, 참하고 순한 짐승이여. 이 기계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을 도와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대를 도와 주기는 한다.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만 거기에서 지내면 답이 마련될 수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면 문을 닫는 시각에 박물관에 눌러앉아 여기에서 밤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명성을 잃은 목사

에라스무스 선더리 목사는 목사이면서 박물학자로서 화석을 연구하여 큰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발견했다고 발표한 네피림 화석이 사실은 조작이라고 밝힌 한 잡지의 기사 때문에 도망가듯이 살던 곳인 켄트에서 떠나 부인 머틀, 14세인 딸 페이스, 6세인 아들 하워드, 처남인 마일스 캐티스톡과 함께 베인 섬으로 이주한다. 처음에는 저명인사가 섬으로 온 것에 환영일색이던 섬 사람들. 하지만 목사에 대한 신문기사가 베인 섬에 알려 지면서 섬 안 사교계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한편, 선더리 목사의 딸인 페이스는 재기발랄한 소녀로서 7세에 우연히 희귀 화석을 발견하여 유명세를 치룬 적이 있고, 발굴 작업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19c 말, 똑똑한 여자아이가 환영을 받는 시대가 아니다. 여러 제약 때문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동생인 하워드를 돌보며 현실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어느날 아버지에게 잘못을 고백할 것이 있어서 서재에 들어갔다가 아버지가 마치 마약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을 한 것을 보고 놀란 페이스. 아버지는 그런 페이스를 붙잡고 무척 혼을 내긴 하지만 페이스와 함께 보트를 타고 바닷가 동굴로 가서 한 나무를 함께 본다. 아버지와 함께 간직할 수 있는 비밀을 갖게 된 페이스는 기뻐하지만, 그날 아버니의 시신이 절벽 및 나무에 걸쳐진 채로 발견이 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려고 했으나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톰 패리스는 선더리 목사가 자살했기 때문에 교회묘지에 매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어머니 머튼은 절대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당시 자살은 죄악이고, 죄지은 자의 재산은 모두 국가에 귀속되기 때문에 선더리 가족은 빈털터리가 될 위험에 처해 버렸다. 이 문제는 치안판사 람펜트에게 공이 넘어가는데, 페이스는 아버지가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의 서재에서 일기장을 본 페이스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식물이 거짓말을 먹는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나무에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그 나무는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어떤 지식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인류의 기원, 창조인지 진화인지를 알고 싶었던 아버지는 자신의 명성을 더렵혀 가면서까지 사람들이 믿을만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나무의 비밀을 알게 된 페이스는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 나무에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기로 결심을 한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 판타지

처음 ‘거짓말을 먹는 나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이게 상징적인 의미로 쓴 것인지 아니면 정말 나무가 거짓말을 먹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표지의 신비로운 분위기로 봤을 때, 신비한 나무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봤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아닌가 생각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말 나무가 거짓말을 먹는다. 그리고 거짓말을 먹고 난 후에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는 열매를 맺는다. 큰 거짓말을 하면 더 큰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더 큰 진실을 환상으로 알려 준다.


배경은 빅토리아 시대, 180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영국의 문화를 묘사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목사이면서 과학자인 지식인들, 화석을 발굴하면서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가설과 실수. 예를 들어 성경에 나오는 네피림의 화석을 발견했다든지,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시신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힌 후 기념사진을 찍는 풍습같은 건 흥미롭다.


미스터리와 판타지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감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분명히 장르소설이다. 그것도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풀어내는 미스터리이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거짓말을 먹으면 진실을 통해내는 나무를 주요 소재로 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장르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많이 있겠지만 나는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책을 3분의 1 정도 읽었는데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흘러 가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메인 사건인 아버지가 죽는 장면은 책을 거의 반이나 읽은 후에 발생하고, 페이스가 나무를 알게 된 것 역시 그 후에 아버지의 일기를 통해서이다. 그 앞은 여러가지 배경지식을 풀어내는데 사용하고 있다. 특히 배경지식 속에 빅토리아 시대의 풍습까지 엮어 넣어서 사건 발생까지 살짝 지루한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시대배경이 문제인 것 같은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잡은 작가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작가가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애정이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여성의 권리가 억압받던 시대에 지혜롭고 용기있게 사건을 풀어나가는 어린 여자 주인공을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책의 호흡이 너무 느려진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배경이 꼭 빅토리아 시대여야만 했을까? 같은 소재로 현대를 배경으로 해도 전체 플롯은 크게 변하지 않으면서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익숙한 배경으로 소설을 쓰면 좀 불필요해 보이는 배경설명이 필요하지 않을테니 더 속도감 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자세한 설명이 붙으면 좋을 소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소설이 있는데 장르 소설은 아무래도 자세한 설명보다는 빠른 호흡이 필요해 보인다.


★★★☆

소재는 참 좋아 보인다. 거짓말을 해야 진실을 알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시대적인 상황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버지가 죽은 이유를 알아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딸. 반면에 진행이 느린 편이고 갖가지 부가적인 시대상황 설명이나 이해하기 힘든 배경 때문에 긴박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이해도가 짧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환상을 본 후 그것을 토대로 페이스가 진상을 알아가는 과정도 애매하다. 어떻게 저 환상이 이런 뜻이 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를 푸는 것보다는 그저 빨리 범인이 누군지 페이스가 풀어내는 것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애매하다. 추천하자니 좀 지루하고 결말은 평이하다. 비추하자니 나름 작품 자체의 매력이나 개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냥 읽고 싶은 사람은 읽어도 나쁘지 않을 정도.

거짓말을먹는나무, 프랜시스하딩, FrancesHardinge, 판타지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관리국
캘리앤 브래들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 사람들을 데려오는 관리국

어머니가 캄보디아 난민인 ‘나’는 국방부에서 캄보디아어 통역을 하다 어딘지 모르는 ‘국’에 지원했다. 6차 면접이 진행되면서 알게 된 이 ‘국’의 정체는 ‘시간관리국’이었고, 나는 이주자 감시원으로 지원한 것이었다. 내가 관리할 이주자는 1847년 북극 항해 중 죽을 위험에 빠져 있던 그레이엄 고어. 타임머신이 발명되었고, 과거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와 현재 사회에 적응하는 동안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 내 임무다.


과거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다섯 사람. 1645년부터 1916년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현재로 옮겨졌다. 타임 패러독스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이주자들은 모두 죽기 직전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현재로 온다고 해서 미래의 타임라인이 바뀌지 않을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적게는 100년에서 많게는 400년의 세월을 넘어 현재로 온 사람들. 이들은 현재 세계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을 데리고 온 것은 정말 과학적인 연구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타임머신이라는 흔한 소재

흔한 소재인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SF 소설이다. 너무 많은 SF 소설에서 소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는 닳고 닳았을 법도 한데, 여전히 새로운 타임머신 소설이 등장한다. 너무 많지만 흥미로운 소재이기 때문에 타임머신이 등장하면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동안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대충 어떤 진행일지 예측해 보고 글을 읽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타임머신을 다루는 소설가들의 관점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보통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미디어는 타임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갖는 편이었다. 과거가 변화함으로써 변하는 현재의 모습이라든지, 과거를 변화시켜 미래를 바꾸려 하지만 결국 결과는 변화가 없다든지, 아니면 과거를 변형하면 다른 우주가 생긴다든지. 어떻게든 발생할 수밖에 없는 패러독스를 해결하고 나서야 이야기가 진행됐다.


‘시간관리국’은 좀 다르다. 과거에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미래의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그냥 퉁치고 넘어간다. 나비효과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신체가 과거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자체가 미래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지만, 작가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예전에 읽은 소설 중에는 과거에 가서 발자국 한 번 남겼다가 역사가 바뀌는 결과를 빚어내는 것도 있었는데 말이지.


가장 최근에 읽었던 ‘킨 Kin (옥타비아 버틀러)’도 그렇고 ‘시간관리국’도 그렇고, 시간 이동에 따른 과학적인 흥미보다는 그중에 벌어지는 인문학적인 주제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이주자가 현재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나’ 같은 사람을 ‘가교’라고 하는데, 이 가교들이 수백 년 전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 많은 인식의 차이를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인종에 관한 문제, 성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현재에 부각되고 있는 흐름인지, 아니면 작가의 정체성에 의해 생겨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시간관리국’의 저자는 캄보디아계이고 여성이다. 앞서 말한 ‘킨’의 저자 역시 여성이고 흑인이다.


장르소설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가교들은 이주자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이주자 한 명에 가교 한 명씩,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하며 일상생활을 돕는다. 그들에게 언어도 가르쳐야 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도 알려 주려면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전반부의 내용은 이주자들과 가교들이 함께 살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이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들이 너무 길고 너무 자세하다. 분명히 주요 사건이 벌어져야 하는데 책의 반을 읽는 동안 소설을 관통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씩 뭔가를 던져 주긴 하지만 본격적이지는 않다. 첫 절반은 무척 지루하다는 거다.


한참 지나서, 책의 절반도 지나고 또 남은 절반도 지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음모도 나타나고 계략도 보인다. 그런데 이게 너무 늦다. 장르소설의 매력이라 하면 처음부터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처음 절반을 너무 세세한 이주자들의 생활과 ‘나’와 1874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뭔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는 이미 지쳐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그 계략이라는 것도 치밀하지도 못하고 어설프다.


집중해서 읽기엔 너무 번잡하다

이 소설은 결국 시간의 문을 둘러싼 과거, 현재, 미래 사람들의 갈등, 그리고 과거를 바꿔 미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이게 메인 스토리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인종 문제, 동성애 문제 등 잔가지가 너무 많다. 게다가 그걸 잘 녹여 내지도 못했다.


또 하나는 도대체 왜 그레이엄의 과거 행적을 교차로 각 장 마지막에 붙여 놓았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그레이엄에게 대단한 계략이나 음모가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데,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맥거핀일 뿐이다. 주요 내용과 아무런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SF적인 설계나 반전의 치밀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죽고 아델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흡입력이 강해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나’와 1874의 로맨스도 그저 그렇다.


★★

그냥 재미없는 SF 소설이 한 권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 최근 몇 권의 SF 소설을 읽으면서 실망이 많이 커져서, 출판되기만 하면 구매하던 버릇을 좀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천하지 않는다. 재미없다.

시간관리국, 캘리앤브래들리, SF소설, 타임머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