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뜬금없이 한 번씩 엉뚱한 짓을 하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평소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을 귀신에 씐 거야, 귀신에. 요섭은 자신의 소행을 은근슬쩍 귀신에게 떠넘겼다. - P95

요섭은 봉사의 시혜자가 누리는 만족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봉사가 유해한 바이러스라는 소신까지 수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돌발적인 일탈이 주는 일회성 쾌감일 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금지된 사랑이나 불량식품 같은. - P105

요섭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배당된 사건을 빼앗기는 건 변호사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아무리 냄새나는 쉰밥일지언정 내 밥통에 있던 건데.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장 선배가, 국으로 입 다물고 사건을 넘기라니. 그깟 사소한 규정 위반 때문에, 그것도 호시탐탐 자신의 영역을 노리는 오소리한테 이것들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따라줬더니 날 호구로 보나. - P119

일이 커졌다. 발단은 피해자 유소연이 인터넷에 올린 호소문이었다. 부유층 유학생 자제들의 패스트푸드점 알바생 성폭행 사건. 감정의 양념을 적절히 뿌려 사실관계를 정리한 후 수면 아래 감춰진 의혹들을 신중하게 언급한 글이었다. - P137

매일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소복 여인이 읽어주는 『헨젤과 그레텔』을 들으며 깨어났고, 그녀의 남편이 휘두르는 야구방망이에 맞아 정신을 잃었다. 그 사이의 짧은 일과도 한결같았다. - P171

요섭은 흥분 상태에서 한참을 떠들었다. 절반은 정체를 밝히라는 요구였고 나머지 절반은 정체를 밝혀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이었다. 말없이 듣고 있던 남자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음절 사이사이마다 서리가 낀 것 같은 목소리였다.
"최 변・・・・・・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 이제 시작인데."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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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을 통일적으로 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바로 약속과 성취라는 도식이다. 쉽게 말해서 구약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신약은 그에 대한 성취라는 것이다. - P66

유대인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성서의 모든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를 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생각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성서의 영감과 정당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없었고 이런 의문을 말하는 자는 스스로가 자신은 이스라엘의 백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 P71

불트만에 의하면 인간을 알지 못하고는 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이것을 인간 실존의 이해를 통해서 신을 알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앎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외에 다른 앎이 아니다." - P87

19,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신화를 제거해 버리고 성서에 나타나 있는 윤리적 교훈만을 취하였다. 그러나 불트만은 이에 대해 반대하면서 신화는 제거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비신화화 되어야 할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비신화화는 바로 신화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 P89

바르트에 의하면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참된 해석은 성서가 자시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 지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P91

다른 나라의 문학 발전의 형태와 같이 구약성서도 포로기 전까지는 거의가 구전의 형태로 전승되었다. 문서로 기록된 것은 주로 포로 후기이다. - P99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든 신화적인 자료는 모조리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의 원주민에게서 빌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신화는 다신론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야웨 사상에는 신화에 필요한 마술의 조건들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며, 특히 고대에는 야웨만이 인간에게 숭상을 받는 신이었으며, 이외의 다른 신들은 저급의 신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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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00년대의 어느 시기에 이스라엘 국가는 당시의 초강대국 아시리아의 공격을 받아 그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됐다. - P41

이러한 트라우마 상황 안에서 예언자 호세아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야웨가 자신의 백성의 부모, 즉 하나님의 백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모라고 선포했다. - P43

호세아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성실, 즉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와 신적 형상 헌신이 정확하게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압제 아래서 고통받는 이유다. - P45

호세아는 더욱 깊은 무언가가 진정으로 잘못됐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은 전략적 결정을 잘못했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 야훼에게 전적으로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 P50

깊이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심판하고 있다는 생각보다 그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단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이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 P51

다른 신들과 우상들에 대한 백성들의 숭배를 간음으로 묘사함으로써, 호세아는 트라우마를 입은 청중들이 가장 취약하다고 느낀 시기에 가장 소중한 종교적 관습 중 일부를 포기하도록 충격을 주려고 했다. - P53

유일신론적 충격의 틀 안에서 이해된다면, 모든 종류의 고통은 옛 신들을 포기하려는 열성의 부족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 P6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아시리아의 황폐가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을 파괴했던 하나님은 끝나지 않았다. - P66

아시리아와 성서 자료의 조합은 예루살렘 포위로부터 아시리아의 기이한 철군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고, 이것이 기적적인 재앙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조공을 제공한 것에 의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이 더욱 가능성 있다. - P73

분명히 요시야의 율법책, 신명기는 서기관들에 의해 모세의 연설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은 언약 문서에 고대의 권위를 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 P86

호세아가 유다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스라엘인 예언자였다면, 요시야는 북쪽에서 기원한 한 문서를 사용함으로써 호세아와 같은 생각들을 제정했던 유다의 왕이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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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감옥에서 나왔죠?"
여자애는 숟가락으로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쿡쿡 찔렀다. 의자 다리 사이에서 조그만 맨발 두 개가 앞뒤로 엇갈리며 흔들렸다. 푸석한 단발머리에 가무잡잡한 얼굴 열 살이나 되었을까? 대리석 식탁 위로 늘어진 갓등 불빛에 댕그란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 P9

"아… 전 그냥 좋아서 물어본 거예요."
"좋다니, 뭐가?"
"아까 아저씨가 나를 선택해서 좋았다고요. 전 원래 친구도 없고,
.
.
"근데 아저씨 실수한 거예요. 인질은 중요한 사람을 잡아야 인질이지." - P11

틱.
배트가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멈추며 공은 투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공을 잡아 2루로 던지는 투수도 다시 1루로 던지는 유격수도, 애들답지 않게 침착했다. 병살타. 유현이가 경기를 끝냈다. - P35

그가 곁에 두는 사람을 선별하는 기준은 혈연이나 학연, 지연 같은 우연적인 요소가 아니라 팔이 안으로 굽는 각도였다. 위급할 때 그의 죄과를 어느 선까지 덮어줄수 있는가 하는 장 선배는 요섭에게 ‘피 묻은 칼을 맡길 수 있음’ 등급을 매겼다. - P47

"예에, 아까 밑에서 그 곡이 흘러나오는 걸 듣다가 저도 모르게 올라왔어요."
"어디서요? 여기서요?"
"저 방에 있던 남자애가 치던데요."
요섭이 손가락으로 슈베르트 룸을 가리키자 여선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저긴 계속 비어 있었는데."
"예? 들어올 때 분명히 봤는데. 호리호리한 남자애가…"
"잘못 보셨을 거예요. 지금 시간엔 레슨 받는 남자애가 없거든요." - P58

요섭은 자신과 가족의 순수한 욕구가 천박한 숫자에 의해 저지되는 굴욕적인 상황을 원치 않았다. 돈이 사람을 돈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법. 느닷없이 현대 문명에 염증을 느껴 호숫가에 통나무집를 지으려 해도, 일단 호숫가 토지는 매입해야 할 게 아닌가. - P62

인간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꾸준히 부정하는 유별난 종족이었다. 이 분열증적 치매의 원인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이었다. 우린 이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자격이 있어! 요섭이 보기에, 인간은 언제나 딱 제 수준에 맞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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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모든 것은 한 마리의 송충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소설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어요. 송충이.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랑스런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굽실굽실 역동적인 느낌을 주지 않나요? - P287

시간이 흐르면서 슬며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밝혀낸 그 책의 비밀이 사실일까? 아니, 그날 도서관에서 내가 실제로그 책을 보기는 했던 걸까? - P290

비자발적인 구도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폐쇄된 몸뚱이에 갇힌 영혼은 홀로 순례의 길을 떠나더군요. 잊고 있던 나의 원시림을 찾아서, 삼십여 년 영욕의 세월을 성큼성큼 거슬러 올라 금세 유아기에 도착했습니다. - P315

그 달빛 속에서 저는 하나의 계시를 받았어요. 그래, 앞부분만 읽었던「폭우」를 내가 상상극장에서 이어 써보자. 혼자 동굴을 헤매느니 이야기의 미로를 산책하며 남은 구도의 시간을 때우기로 한 거죠. 나중에 책의 실제 내용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더라고요. - P317

뒤에서 남자가 머뭇거리며 불렀다. 미미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유미미 씨 집 전화번호가 아닌데." - P323

"미친놈,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난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거야! 난 너 같은 미치광이하곤 달라!"
어둠 속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건너왔다. 남자의 누런 송곳니가 보이는 것 같았다.
"미친다는 것도 하나의 의지인 거라, 유미미 씨." - P329

"모르겠어요. 저도 제정신이 아닌데, 그딴 헛소리가 귀에 들어오겠어요. 그 한마디만은 기억나네요. 저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그게 무슨 뜻이죠?"
"뜻은 무슨 사이코라니까요. 그냥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는 거겠죠, 저를 연극 속 살로메와 혼동하고 있었어요." - P333

난 객석에 앉아 전부 지켜봤어.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당신 몸에새겨진 문신처럼, 흉터처럼. - P336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말이죠 내용이 끊임없이 변하는 책이에요. 누군가가 책 속에 자신을 유폐시켜놓고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 거죠. 마치 유령이 연주하는 변주곡처럼. - P361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래요, 당신도 이미 그 문장을 알고 있을 겁니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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