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릅모든 것은 한 마리의 송충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소설을 이렇게 시작할 생각이었어요. 송충이.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랑스런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굽실굽실 역동적인 느낌을 주지 않나요? - P287
시간이 흐르면서 슬며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밝혀낸 그 책의 비밀이 사실일까? 아니, 그날 도서관에서 내가 실제로그 책을 보기는 했던 걸까? - P290
비자발적인 구도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폐쇄된 몸뚱이에 갇힌 영혼은 홀로 순례의 길을 떠나더군요. 잊고 있던 나의 원시림을 찾아서, 삼십여 년 영욕의 세월을 성큼성큼 거슬러 올라 금세 유아기에 도착했습니다. - P315
그 달빛 속에서 저는 하나의 계시를 받았어요. 그래, 앞부분만 읽었던「폭우」를 내가 상상극장에서 이어 써보자. 혼자 동굴을 헤매느니 이야기의 미로를 산책하며 남은 구도의 시간을 때우기로 한 거죠. 나중에 책의 실제 내용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더라고요. - P317
뒤에서 남자가 머뭇거리며 불렀다. 미미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유미미 씨 집 전화번호가 아닌데." - P323
"미친놈,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난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거야! 난 너 같은 미치광이하곤 달라!" 어둠 속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건너왔다. 남자의 누런 송곳니가 보이는 것 같았다. "미친다는 것도 하나의 의지인 거라, 유미미 씨." - P329
"모르겠어요. 저도 제정신이 아닌데, 그딴 헛소리가 귀에 들어오겠어요. 그 한마디만은 기억나네요. 저에게 어울리는 죽음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그게 무슨 뜻이죠?" "뜻은 무슨 사이코라니까요. 그냥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는 거겠죠, 저를 연극 속 살로메와 혼동하고 있었어요." - P333
난 객석에 앉아 전부 지켜봤어. 조용히 숨을 죽이고, 당신 몸에새겨진 문신처럼, 흉터처럼. - P336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말이죠 내용이 끊임없이 변하는 책이에요. 누군가가 책 속에 자신을 유폐시켜놓고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고 있는 거죠. 마치 유령이 연주하는 변주곡처럼. - P361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래요, 당신도 이미 그 문장을 알고 있을 겁니다.
자, 이야기를 계속해봐. 잠이 들지 않도록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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