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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트가 가는 곳>
2개월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답게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런데 눈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개의 볼링공 모양의 '무엇'이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엇'은 땅에 끝도 없는 구멍을 뚫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무엇'은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졌다. 가까스로 구멍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쏟아지는 '무엇'과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구멍을 피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엇'은 마치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동하기를 닷새쯤 지났을 때, '나'는 어떤 여자가 구멍에 빠지려는 걸 구해주고 추워하는 그녀를 위해 파커를 벗어 줬다. 그녀는 27세의 윤정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코즈믹 호러의 순간에도 사랑은 싹이 튼다. 그녀와 나는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과거 상처도 얘기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냈다. 하지만.. 바닷가에 도착해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난 와중에 구멍으로 떨어진 한 남자가 그녀의 팔을 잡아챘고, 그녀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가 보고 싶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김중혁 소설가의 단편집
두 번째 읽은 김중혁의 책이다. 굉장히 유명한 작가이고 국내 유수한 문학상도 여러차례 받았다고 알고 있다. 이전에 읽은 책은 장편이었는데 만족스럽게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읽은 책이 단편집인 건.. 별 의미는 없다. 그저 책장에 꽂혀 있는 순서대로 뽑아 읽는 중이니까.. 그래도 호흡이 긴 장편소설과 달리 짧게 결판을 내야 하는 단편소설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상실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천 단편부터 소재가 '포르노'다. 포르노 가획자와 여배우에 관한 얘기.. 그러더니 두 번째 소설은 AV를 보는 두 고등학생이 없어진 아이돌 가수를 찾아나서는 얘기다. 왠지 성인스러운 것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헤어진 여자와 남자가 만나 이전과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고, <뱀들이 있어>는 예전에 좋아하던 여자의 남편이 태풍으로 사라진 걸 전해들은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소설이 '사람이 없어진' 이야기다. 배우가 사라지고, 아이돌이 사라지는가 하면, 연인은 헤어지고 남편은 실종된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사라진 사람이 없는 작품은 <힘과 가속도의 법칙>밖에 없다. 이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중혁이 갖가지 이별 그리고 상실감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얘기가 중간에 끝이 나는 것 같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제 겨우 두 권밖에 읽어 보지 않았고, 그의 대표작이 어떤 소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편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점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걸린다. 각 단편이 얘기가 시작되어서 끌고 나가다 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클라이막스가 되는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와 승이 있는데 전과 결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인생의 한 부분을 들어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이 항상 짧은 순간에 소설처럼 펼쳐질 수는 없을테니까. 또는 (평범한 독자인 나는 알아챌 수 없는) 문학적인 장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건 전문적인 문학심사위원이 따질 일이고 내가 보는 점에서는 대체로 소설이 허전하다. 재미가 좀 덜하다는 뜻이다. 단편소설은 짧은 분량 속에 군더더기없이 하나의 플롯이 완결되는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완결이 안된 작품 모음집인 것 같다. 유명한 소설가이니 실력이 모자른 건 아닐 거다. 의도한 것일텐데 난 그 의도를 모르겠다. 여백의 미? 미완의 아름다움? 난 그냥 재미있는 소설이 좋다.
★★★☆
굉장히 재미있지는 않다. 주욱 얘기했지만 소설이 완결되는 맛이 없고 밋밋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트가 가는 곳>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코즈믹 호러 속에서 싹트는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까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 실린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요요>도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굉장히 잘 표현되어 있어서 좋다. 이전에 읽은 책에서도 느꼈지만 문장이 굉장히 깔끔해서 읽기 쉽고 책장이 잘 넘어간다. 상황묘사도 명확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김중혁의 소설을 더 읽을텐데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 별 4개에 가까운 3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