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피라미드 회사 다이아몬드급의 인맥을 갖고 있었다. 은옥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가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으로 허덕일 때, 삼촌이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초야의 고수로 소문난 은옥을 찾아온 그는 레드코드에게 도검 연수를 해주는 조건으로 생계를 지원했다. 정작 그녀에게 연수를 받은 레드코드는 민혜 한 명뿐이었다. - P93
"살아남아라, 정지안." 삼촌의 목소리가 비장했다. - P95
"정지안, 그런 일로 이사를 가자니 말이 돼? 때로는 말야, 위치가 무기일 때도 있는 거야." - P96
알렉스 일당은 나를 살해할 기회가 충분했다. 명중률 높은 스나이퍼를 고용했다면 큰 소란 없이 나를 제거했을 터였다. 지금은 계속 겁은 주되 목숨은 붙여놓은 채 나를 편의점으로 끌어당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15
지금껏 삼촌이 민혜를 짝사랑한 줄만 알았는데 예상이 완전히 어긋났다. 먼저 고백을 한 것도 민혜, 거절당하고 은둔한 것도 민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삼촌의 마음을 얻고 싶은 것도 민혜였다. - P121
삼촌은 좀비 영화를 질색했다. 좀비가 무서운 게 아니라, 배고픈 인간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아우성치는 모습이 보기 괴롭다는 이유였다. 그 얘길 들었을 땐 웃어넘겼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삼촌은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 P141
죄를 짓는 한 죄책감을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삼촌이 찾아낸 자구책이라고 해봐야 애써 인간을 사물로 착각하게끔 만드는 습관이 전부였다. 인간 모양의 과녁에 총알을 명중시켰다고 자기 최면을 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세계였다. - P146
"넌 나 못 죽여. 너 때문에 자식 잃은 어미를 감히 쏠 수 있어? 그러고도 인간 행세하면 안 되지." 알렉스가 총구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 P152
"너네 삼촌 쫌 멋진데?" "어디가?" "선은 지키잖아. 어두운 일 하면서 조카도 부양하고, 끝내주게 복수하면서 마약이나 매춘 사업은 안 하는 게 어디야." - P157
하필 다나는 내가 유기한 선인장 앞에서 알렉스와 통화했다. 삼촌은 화분물받이에 숨겨놓은 소형 카메라로 다나의 실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나와 브라더가 바빌론의 수스앱 걱정을 하며 매출 압박을 했을 때, 삼촌은 이미 알렉스가 누구이며 어디에 은신해 있는지 알아냈다. - P159
다나는 서점에서 책을 고르듯, 행거에서 옷을 꺼내듯 죽음을 툭 건드렸다. - P169
배신이라는 결과는 조금만 고민하면 쉽게 추론할 수 있는 삼촌, 아니 우리 가족의 음험한 특성이었다.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마치 한 가족 안에게만 통하는 농담처럼, 우리는 서로의 배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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