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세기 초반에 북부 왕국 이스라엘은 승승장구했다. 아시리아는 점점 강성해져, 곧 이 지역 전체를 지배했다. 아시리아의 충성스러운 봉신인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기원전 786~746년 재위) 치세에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 P156

헤브라이 예언자들은 신비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시작한 규율 잡힌 오랜 탐구 끝에 내부로부터 깨달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아모스의 경험은 앞으로 볼 인도나 중국의 축의 시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깨달음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힘에 사로잡힌 느낌을 받았다. - P158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현대의 정치평론가 같았다. - P159

예언자 호세아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행실이 좋지 않은 여인 고멜과 결혼을 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고멜이 일반적인 매춘부가 아니라 당시 바알 신전에서 일종의 제의를 행한 ‘신성한 매춘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 P161

"이름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불타는 덤불로부터 자신을 부른 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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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에예 아셰르 에예 (ehyeh asher ehyeh)‘, 즉 ‘나는 나(Iam what I am)‘다. 이 수수께끼 같은 구절은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자아내는 헤브라이의 관용어로서 그 뜻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관심 갖지 마라!" 또는 심지어 "네 일에나 신경써라!"가 된다. 고대 세계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를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된다는 뜻이었다. 하느님은 이런 식으로 통제하고 조작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 P168

난민들은 자신들의 북부 전승을 유다로 가져왔다. 아마 기원전 722년의 재앙을 예견한 아모스와 호세아의 예언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시기의 기억이었으며, 이 무렵에는 북부의 전승을 보전하려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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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함을 가리키는 아카드어는 ‘엘루‘인데, 이것은 ‘청결, 찬란, 광채‘라는 뜻이다. 이 말은 헤브라이어의 ‘엘로힘‘과 연결되는데, 이 말은종종 간단하게 ‘신‘으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신이 인간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약한 말이다. - P89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성한 전사의 지원이 필요했고 야훼를 자랑스러워 했지만, 다수는 다른 형태의 신성함도 원했다. 이는 결국 야훼만을 섬기고 싶어하는 소수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 P92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인은 눈부시게 찬란한 문명에 이르렀지만, 결코 비극의 감각을 잃지 않았으며, 이것이 그들이 축의 시대에 종교적으로 가장 크게 기여한 점으로 꼽히게 된다. - P101

그리스인은 아무리 강해져도 절대 자신이 자기 운명을 책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스 문명이 절정에 이른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이 운명의 여신들에게, 심지어 올림포스의신들에게 강요당해 어떤 행동을 하며, 범죄가 발생하면 그것이 그 오염된 환경에 살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를 미친다고 믿었다. - P107

축의 시대에 네 지역에서 창조된 종교 전통은 모두 공포와 고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들 모두 이런 고난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고난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었다. - P110

기원전 9세기에 아합의 결혼은 정치적 대성공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은 이 지역과 통합을 이룩하고 다마스쿠스, 페니키아, 모아브 등과 대립하면서 버티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아합이 한 일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솔로몬 또한 외국의 공주들과 외교적인 결혼을 하고, 왕실 신앙에 그들의 신들을 포함시켰으며, 예루살렘 바깥 언덕에 그 신들을 위한 신전을 지었다. - P115

야훼는 전사신이었다. 그는 농업이나 다산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년을 보장받으려고 당연하게 바알과 아나트의 고대 제의를 거행했다. 바알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 P117

예언자는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다. 영어의 prophet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의prophetes, 즉 신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에서 왔다. (저자 주) - P117

고대 중동신학에서 엘은 각 민족마다 신을 하나씩 임명했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신성한 자였다. 케모시(그모스)는 모아브의 신성한 자였다. 밀콤(밀곰)은 암몬의 신성한 자였다. - P118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유일신을 섬길 것을 제안하여 전통 종교에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바알을 무시한다는 것은 중요하고 귀중한 신적 자원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 P119

엘리야와 바알의 예언자들의 싸움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경쟁하는 신들과 벌이는 살벌한 경합이 예언자들이 지닌 영성의 특징이 되었다. - P121

중국인은 자연 질서를 초월하는 신에게는 결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엘리야가 경험한 신, 즉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신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황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은 상호 보완적이었다. 신성하고 동등한 동반자 관계였다. - P127

왕은 더할 수 없이 높은 권력을 지녔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평생 매 순간 천상의 모범과 일치해야 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왕의 역할은 자신의 힘으로 대외 또는 국내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길을 따르는 것이었다. - P131

제의는 여전히 아름답게 거행되고, 여전히 참여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지만, 소수의 현실적인 비평가는 제의의 마법적인 효능에 대한 믿음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점증하는 위기에 맞서 중국인은 제의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한다. - P138

인도에서 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현대 세계에서 제의는 종종 노예적인 순응을 장려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브라만들은 그들의 학문을 이용하여 외적인 제의와 신들로부터 해방되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라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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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이 마을들에 거주한 사람들이 파라오 ’메르넵타의 승전 기념판‘에 언급되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데 동의한다. 성경 이외에 이스라엘이 언급되는 것은 이 기념판이 최초다. - P76

결국 학자들은 이집트 대탈출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대체로 합의를 보았다. 성경의 이야기는 기원전 13세기가 아니라, 이 텍스트들 대부분이 기록된 기원전 7세기나 기원전 6세기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 P78

해안의 도시 국가들에서 이집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던 이스라엘인은 자신들이 실제로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기 땅에 있다가 해방된 것이다. - P78

종종 ‘사랑‘이라고 번역되는 ‘헤세드‘라는 말은 원래 부족의 용어로서, 자신의 가족 집단에 대한 관대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친족 관계의 의리를 의미했다. - P79

이스라엘 민족은 스스로 이웃과 매우 다르다고 느꼈지만, 성경 기록을 보면 기원전 6세기까지 이스라엘의 종교가 사실상 이 지역의 다른민족들이 섬기는 종교와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엘‘, 즉 가나안의 최고신을 섬겼으며, 뒷세대들은 엘 신앙을 야훼 신앙과 합쳤다. - P81

야훼는 특별한 신이었지만, 그들은 다른 신들의 존재도 인정하고 그들을 섬겼다. 야훼가 유일한 신이 되는 것은 기원전 6세기 말이다. 초기에 야훼는 신들의 모임에 속한 ‘신성한 자들‘ 또는 ‘엘의 아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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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의 찬가들은 우주 전체가 무시무시한 갈등과 뜨거운 경쟁으로 진동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데바와 아수라는 하늘에서 서로 싸웠고, 아리아인은 지상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했다. 결핍의 시대였다. - P42

후기 베다 시대로 오면서 아리아인은 브라만, 즉 최고의 실재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브라만은 데바가 아니라, 신들보다 더 높고, 더 깊고,
더 기본적인 힘, 우주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모든 요소들을 한데 묶어그것들이 파편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힘이었다. - P55

그는 창조주인 신이 원시의 혼돈으로부터 떠오르는 모습을 본다. 브라만이 인격화된 존재다. 그의 이름은 ‘프라자파티‘다. ‘만유(萬有)‘라는 뜻이다. 프라자파티는 우주와 동일하다. 프라자파티는 우주를 지탱하는 생명력이며, 의식의 씨앗이며, 무의식적 물질로 이루어진 물에서 떠오르는 빛이다. - P56

상나라는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다. 위계와 서열을 몹시 따졌으며, 이것은 이후 중국 문명의 특징이 된다. 왕은 제(帝)의 아들로서 봉건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었으며, 혼자 하나의 계급을 이루었다. - P62

제는 도시의 수호자였다. 비와 바람을 다스렸으며, 왕이 관리나 병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제는 예측 불가능했다. 가뭄, 홍수, 재앙을 내리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 조상도 믿을 수가 없었다. - P65

천명(天命)은 중국의 축의 시대에 중요한 이상이 된다. 통치자가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억압적이면 하늘은그를 지지하지 않고, 그러면 통치자는 몰락한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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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대나 자기 시대가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믿겠지만, 우리 시대의 문제들은 특히 다루기가 어렵고 미래는 점점 불확실해지고 있다. - P5

이런 곤경에서 빠져나오려할 때, 나는 우리가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가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시기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 P6

우리는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위기의 시기에 사람들은 늘 축의 시대를 돌아보며 길을 찾았다. 물론 이 시기의 발견들을 다르게 해석했을 수는 있겠지만, 한 번도 그것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 P7

아리아인은 입으로 한 말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다른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말도 신, 즉 데바였다. - P26

아리아인은 제의를 거행하고 인도적으로 도살한 고기만 먹었다. 제의에서 신에게 짐승을 바치면, 짐승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고 가축의 원형인 ‘게우슈 우르반( ‘황소의 영혼‘)에게로 돌아갔다. - P26

처음에 아리아인은 내세의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대 말부터 어떤 사람들은 희생제를 많이 의뢰한 부유한 사람들이 죽은 뒤에 낙원에서 신들과 만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 P29

지상의 사건들은 늘 하늘에서 일어나는 우주적 사건들을 반영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 무시무시한 습격의 근거가 되는 신성한 원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인드라의 깃발 아래 싸우는 가축 약탈자들은 인드라의 지상 대응물이었다. - P30

조로아스터는 이론적인 사유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초원 지대의 평화로운 세계를 파괴한 폭력에 완전히 사로잡혀 그것을 끝장낼 방법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 P32

조로아스터는 자비롭고 선한 모든 것의 원천이 되는 하나뿐인 신적 존재가 있다면, 습격자들의 잔혹 행위를 부추기는 악한 신도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적대적인 영혼‘ (앙그라 마이뉴)도 아후라 마즈다와 힘은 같았지만, 그와 정반대 되는 존재였다. - P33

세상은 격변을 향해 쏜살같이 나아가고 있었다. 조로아스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우주의 갈등이 폭발하는 ‘경계의 시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곧 선의 최후 승리와 어둠의 세력의 절멸을 목격하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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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묵시록적 전망에 익숙하다. 그러나 조로아스터 이전의 고대 세계에는 이런 전망이 전혀 없었다. 이 전망은 자신의 민족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본 조로아스터의 분노와 정의를 향한 갈망에서 나온 것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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