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든 손으로 치는 것은 피한다. 손은 상당히 다치기 쉽다. 온갖 작은 뼈와 힘줄이 있는 곳이다. 그 레드보이 놈을 때려눕힐 만큼 센 주먹질이라면 내 손도 어지간히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함께 병원에 실려 갔으리라. 그래서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 P109

그건 나를 죽이려는 직접적인 시도였다. 들어와서 나를 택한 다음 죽이려 든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스파이비가 목욕탕 밖에 있었다. 그가 꾸민 짓이다. - P113

왜? 스파이비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무슨 이유로 나를 적대시했을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놈이다. 그놈이고 이 빌어먹을 교도소고 가까이 와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놈은 나를 죽이려고 정교한 계획을 세웠을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 P115

그 사람은 탐정이었어요. 이 모든 일을 중지시키고 싶어서 이리로 불러들였죠. 더 이상은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난 범죄자가 아니에요. 죽도록 겁이 나서 빠지고 싶었어요. 그 사람은 나를 빼내주고 사기사건을 파헤치려 했죠. - P117

한 명을 죽였고 또 한 명의 눈을 멀게 했다. 이제는 기분을 달래야 했다. 하지만 별 느낌은 없었다. 사실은 아무 느낌도 없었다. 죄의식도, 양심의 가책도 전혀 없었다. 목욕탕에서 두 마리의 바퀴벌레를 쫓아다니다가 밟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129

"가해자가 세 명이었다고 추측하는 겁니까?" 의사가 말했다.
핀레이가 내 쪽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내 의견이니 내가 설명해야 했다.
"세 개의 개별적인 인격특성이 있습니다. 유능한 총잡이, 날뛰는미치광이, 그리고 무능한 은폐자." - P149

의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지문으로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내 형입니다." - P152

내가 조를 못 본 지도 7년, 조가 나를 못본 것도 마찬가지. 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김없이 같은 작디작은 점에 이르렀다. 단 여덟 시간 차이로, 나는 형의 시체가 누워 있던 곳에서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걸어갔다. 정말이지 엄청난 우연의 일치였다. - P160

핀레이는 그 오랜 내력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당연한 징벌을 인정하지도 않으리라. 핀레이는 내가 네 살 때 배웠던 그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형에게 까불지 말라는 것. 이건 조와 나 사이의 일이었다. 이건 의무였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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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노식당에서 체포되었다. 12시경이었다. 막 달걀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참이었다. 늦은 아침일 뿐 점심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폭우 속을 걸었던 터라 몸은 흠뻑 젖었고 피곤했다. 간선도로에서 읍변두리까지 줄곧 걸었기 때문이었다. - P9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읍에서 체포되었다. 살인혐의를 받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두가지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첫째,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으리라는 점. 그리고 둘째, 나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점. 적어도 이 읍에서는, 그리고 꽤 오랫동안은 말이다. - P14

"내 이름은 잭 리처요. 미들네임은 없소. 주소도 없고." - P22

나는 그 어떤 곳 출신도 아니오. 군대 출신이랄까. 나는 서베를린에 있는 한 미군기지에서 태어났소. 우리 노인네는 해병대였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네덜란드에서 만난 프랑스 민간인이었지. 한국에서 결혼했고. - P27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복무 중이었다. 지금은 그만뒀다. 그만두니 기분은 아주 좋았다.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일생을 가벼운 두통에 시달렸던 것처럼. 두통이 사라질 때까지는 그런 줄 몰랐던 것처럼. 유일한 문제라면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 P33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가 암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휴대전화를 가진 이상야릇하고 뿌리도 없는 용병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고, 시체를 발로 차서 짓이겨버리며 다음 목표를 찾기 위해 지하조직에 가입하고 항상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런 암살자. - P43

6개월 동안 나는 외로운 방랑자였다. 이때 배운 것이 있었다. 오래전 영화에 나왔던 블랑슈라는 인물처럼 방랑자는 낯선 이의 친절에 기대는 법이다. 특별한 것이나 물질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마음을 의지하는 것이다. - P57

무엇보다도 먼저 평가를 해야 한다. 상황을 분석해야 한다. 불리한 면을 찾아내야 한다. 유리한 면을 판단해내야 한다. 그에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모든 일을 해내고 나야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 나중에 다른 일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 P87

빨리 치고 세게 쳐라. 첫방에 죽여라. 먼저 보복하라. 속여라. 훈련시키는 사람들 중 점잖게 행동하는 신사는 없었다.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 P88

내가 끼어들 때가 되었다. 허블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에 대해선 아무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해 끼어들어야 했다. 허블의 비굴한 행동 때문에 나까지 망가질 터였다. 한패로 보일 테니까. 허블이 지위싸움에서 굴복해 우리 둘 다 멍청이가 되게 생겼다. - P91

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누가 그런 식으로 나를 협박한다면 그들은 죽을 것이다. 내가 갈가리 찢어버릴 것이다. 그런 말을 한 순간, 아니면 며칠이나 몇 달, 몇 년이 지난 뒤라도 끝까지 쫓아가 갈가리 찢어버릴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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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운송기사들이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식료품 가게에는 과일과 채소가 바닥났고 통조림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동쪽에는 스모그가 낮고 험악하게 깔려 있었다. - P15

이 책에 엮인 소설 중 가장 먼저 쓰인 소설에서부터 앞으로 계속될 주제 하나가 이미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개인이 지닌 힘과 재능의 의미‘다. - P8

식료품 가게 문은 닫혀 있었고, 창문에는 이런 안내가 붙어 있었다.
‘재고 아무것도 없음‘. - P19

"도시는 날 해치지 않아요." 그녀는 말을 끊었다. "난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거든요." - P22

"과거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는 없어요. 내가 변화를 일으킬 수 없어요." 그녀는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애당초 시간여행을 할 수 없어요." - P24

핀은 봄이 시작되는 첫날, 토마토와 그녀를 온실에 심었다. 포장의 설명서는 여느 씨앗 봉투에 인쇄된 내용과 유사했다.

채소 마누라: 모래땅과 햇빛을 좋아한다. 싹이 얼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뒤 5센티미터 깊이로 심는다. 묘목이 60센티미터로 자라면 옮겨 심는다. 물을 자주 준다. - P37

어느 여름날 일요일 아침, 레이철이라는 이름의 작은 갈색 침팬지는 페인티드 사막 변두리의 외딴 목장 저택 거실 바닥에 앉아 있다. - P49

연구를 계속한 그는 개별 두뇌가 생성하는 전기장이 지문처럼 독특한 자기만의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전기적의식‘의 형태는 생각과 감정의 습관적인 패턴에 의해 결정된다. 아버지는 ‘전기적 의식‘을 기록하면 개인의 성격을 포착할 수 있다고 추론했다. - P52

박사는 노르에피네프린 기반 신경 전달 물질 혼합물로 침팬지 뇌의 신경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뒤, 딸의 의식 전기장 패턴을 이 어린 침팬지의 뇌에 덮어씌워 자신의 방식대로 두 패턴을 결합했다. 나름의 방식으로 딸을 살린 것이다. 침팬지의 뇌에는 레이철 제이컵스가 남긴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 P53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는 계획은 세워두었지만, 제이크와 사랑에 빠졌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서 레이철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로맨스 잡지에 실린 이야기의 영향이다. - P79

하지만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심층취재였다. 기자는 애런 제이컵스의 변호사를 수소문해서 제이컵스가 유언장을 남겼다는 것을 알아냈다. 유언장에서 제이컵스는 집과 토지를 포함한 전 재산을 "내가 딸로 인정하는 침팬지 레이철"에게 남겼다. - P93

날이 거의 저물었지만, 모리스는 검은 안경을 낀 채 닉을 맞이하러 베이 군도의 유일한 비행장으로 사용되는 짧은 비포장 활주로에 나와 있었다. - P99

"아빠가 항구에 왔는데, 같이 헤엄쳤어요. 곧 나도 같이 갈 거예요. 보세요." 모리스는 한 손을 들었다. 손가락 밑동부터 거의 끝까지 모든 손가락에 물갈퀴가 뻗어 있었다. 머리 위 전구의 불빛이 얇은 피부에 비쳐 보였다. "난 변하고 있어요. 닉. 이제 거의 다 됐어요." - P102

암곰의 모습을 한 영혼이 지난 사흘 밤 동안 내 오두막 주위를 킁킁거렸다. 곰의 영혼은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내가 가죽끈에 달아 목에 두르고 있는 곰의 발톱들이 강력한 호신부이기 때문이다. - P123

"내 딸이야. 커스틴이라고 해." 마셜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한다. "커스틴, 이쪽은 샘이야.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지." - P124

"자네 딸 옆의 회색 그림자 보이나?" 나는 마셜에게 묻는다. 그는 눈을 찡그리며 딸 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젓는다. "자네가 죽인 암곰의 영혼이 커스틴을 데려가겠다고 하고 있어." 나는 말을 이었다. "지금 영혼이 자네 딸을 따라다니고 있어."
"샘..." 그는 뭐라 말하려 하지만, 내가 가로막는다.
"자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말아."
나는 말한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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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콘을 남몰래 애지중지했고, 모종의 이유에서 엄청난 액수에 팔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헨가르트너는 작지만 결코 모르고 지나칠 수가 없는 결점이 포함된 사진 파일을 뒤에 남겼고, 장래의 구매 희망자들이 틀림없이 그것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 P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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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와 있는 곳이 천국인지 이 세상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상에서 이토록 장려하거나 아름다운 장소가 존재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 P461

루치아노 마시니는 고뇌하는 빛이 역력했고, 얼굴은 불면증 탓인지 푸석푸석하게 부어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새벽 2시경에 벌떡 일어나, 20살에 불과한 아내가 그보다 나이를 세 배나 먹은 기업가 남편을 정말로 꿈에서나 보던 이상형이라고 느끼고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한 사내였다. - P461

레이프는 미소 짓고 나를 연옥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어떤 가격에 팔리더라도, 놀라지 말 것." - P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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