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명(海鳴)이 싫다. 
아득히 멀리, 정신까지 아득해질 정도로 멀리에서 차례차례 밀어닥치는 한적하고 위협적인 굉음.
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걸까. 무슨 소리일까. 무엇이 울고 있는 걸까. 울고 있는 것은 물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그도 아니면 또 다른 것일까. 끝없는 넓이나 무의미한 깊이만 느끼게 하고, 전혀 안심할 수가 없다. 

애초에 바다가 싫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자란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을 때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바다일까,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다의 주체는 물일까? 아니면 그 밑의 해저일까?
우선 그게 확실하지 않다. 물에 잠겨 있는 땅은 이미 바다인걸까?
그렇다면 저 불길한 파도라는 것은 뭘까.
파도도, 생각하기도 싫어질 만큼 아득히 먼 곳에서 너울너울 밀려왔다가는 떠나간다. 그것이 지금도 끊임없이 온 세상 해안에 똑같이 밀려왔다가는 돌아가는 걸까 생각하면 미칠 것만 같다. 그렇다면 바다는 흐느적거리며 그 영토를 쉼없이 넓혔다 좁혔다 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방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서는 계속해서 '해명이 싫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하자면, [광골의 꿈]의 첫문장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전날 퍼마신 술이 덜 깨어 어지러운 귓청에 파도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자, 이 '해명은 싫다.' 라는 문장이 눈 앞에 전광판이 그러하듯 계속해서 번쩍이고 있었다. 싫어, 정말 싫다..   

바다 옆에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창문을 닫는다고, 귀를 닫는다고 끊이지 않는 해명을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 괴로운 일이다. 이 책을 읽기 전 파도소리는 내게 언제나 낭만적인 것이었고, 꿈같은 소리었다. 하지만 교고쿠 나츠히코는 언제나 그렇듯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침투해서 무언가를 건드려서는 해명을 두려워하게끔 만들어버렸다. 마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바다를 두려워 했던 것만 같다. 그 깊이. 그 아득함. 사람을 미치게 하는 끝없는 해명.

앞으로 나는 바닷가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이 강렬한 첫문장에 의해 바다는 불길하고도 두려운 폭력이 되어버렸다. 

나 역시, 해명(海鳴)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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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4-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어디를 가셔서 쓰신 글일까요..ㅎㅎ
광골의 꿈을 읽으려고 대기시켜 놓았는데... 빨리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ㅎㅎ

Forgettable. 2010-04-20 15:30   좋아요 0 | URL
어째 한 번, 푸른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푸른 동해였던 적이 없.었.던 동해죠.
제가 갈 때마다 흐리고 쓸쓸해요.

전 이제 막 상권 읽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좋습니다. 어렵고, 무섭고, 알쏭달쏭해요. ㅎㅎ

다락방 2010-04-20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남자친구였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은 그렇게도 겨울바다를 좋아했어요. 저를 사귀면서는 저랑 같이 가긴 했지만, 대부분은 겨울마다 혼자 그 바다를 찾는데요. 그러다가 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한번 구한적도 있대요. 훨씬 훨씬 젊었을적에 말입니다. 그러면서 겨울바다를 밤에 보면 시꺼매서 자꾸만 뛰어들고 싶게 만든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오늘 뽀님의 사진이 쓸쓸하고, 인용하신 문구와 잘 어울려서 어쩐지 좀 무서워요. 무섭고 쓸쓸하고. 자꾸 저 안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어질라고 해요.


Forgettable. 2010-04-20 15:35   좋아요 0 | URL
전 겨울바다 너무 추워요.
겨울에 물에 뛰어드는 사람을 구했다니, 대단한 남자친구에요. 그 추운 날에 그 찬물에 뛰어들 생각을 하더니. 진짜 멋지다. 수영 잘한다고 떠벌거리는 전 아마 할 수 없을 거에요. 신발도 젖고, 옷도 젖을테니까요. 게다가 젖은 의복들은 얼테구요.. 이런 걱정들이 앞서서 아마 뛰어들지 못했을 거에요. 그 분 진짜 대단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을 사귀셨었군요, 락방님!!

저 검은 바다 실제로 보면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을걸요! 저 바다 속은 무섭고 쓸쓸한 곳이에요 정말로!

다락방 2010-04-20 16:41   좋아요 0 | URL
그사람이 그렇게 말한거지 제 눈으로 본게 아니니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죠. 잘 보이기 위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Forgettable. 2010-04-21 12:02   좋아요 0 | URL
뭘. 대단했구만요 ㅎㅎ 부러워, 그.런. 사람과의 연애 +_+

Alicia 2010-04-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명이 있군요.. 그게 해명이군요.. 바다가있는 지방소도시로 내려가 살고싶다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휴.

Forgettable. 2010-04-21 12:03   좋아요 0 | URL
와, 알리샤님이당! ㅎㅎ

해명에 대한 두려움과는 별개로 해명이란 말 좋죠.
바다가 있는 지방소도시에 내려가서 사셔도 되요. 바다 바로옆만 아니라면 파도소리 때문에 괴로울 정도는 아닐거에요, 그리고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른거니까.. 어쩌면 시시 때때로 변하는 소리 때문에 심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Forgettable. 2010-04-21 13:10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번역가가 번역을 참 잘해주는 것 같아요. ㅎㅎ
원작자가 해명이란 단어를 사용했는진 모르겠지만요.

다락방님이랑 데이트 하기만 하면 만취데이트인데.. 알리샤님이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헤헤^^;;;
한 번 같이 만나면 재밌겠다.

다락방 2010-04-2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다. 만취데이트 ㅋㅋ (알리샤님, 현재의 위 상태로는 우리 감당 안되실거에요 ㅠㅠ)

뽀님아.

내 이메일 주소 써줄게요. (어쩐지 곧 헤어질기세 ;;)

fallen77@hanmail.net

Forgettable. 2010-04-21 15:36   좋아요 0 | URL
뭐야 ㅋㅋ 저 알라딘 계속 할거거든요? ㅋㅋㅋㅋ
그래도 저장해둘게요!
 

지금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어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러셨다.   

구비문학의 세계였던가, 이해였던가.

무당이 작두 위를 탈 수 있는 힘은 모인 사람들이 두 손모아 간절히 비는 염원이 모이는 데서 나오는 거라고. 이건 신령한 힘일 수도 있고, 초능력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비는 마음과 마음이 모여야 가능한 일이라 하셨다. 

한국 문화의 이해는 예서 출발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마음이라는거. 내가 말뿐인 한국 현대 소설 일부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 마음이 담기지 않아서이다. 옛날의 마음과의 단절이 고스란히 드러난 문학은 결코 현대의 마음도 울릴 수 없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 계기는 며칠 전 본 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네에 아주 용한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보았다. 한참 미래에 대한 불확신으로 나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점을 보는 동안 별다르게 잘 맞춘다며 호들갑을 떨 일도 없었다. 그저 예상했던 대로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툭툭 내뱉아지는 점쟁이 할머니의 반말에 왜인지 점점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이 점을 보는 행위는 어느새 대화가 되어있었다. 순간 눈물이 날 뻔하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보다 더 친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기꺼이 비용을 지급하고, 기분이 좋아져서는 집으로 돌아와서, 할머니의 말대로 엄마와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대화했다. 

배우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옛날 사람의 마음이 되어 설화와 민요, 판소리를 느끼려는 시도들이 모두 헛짓거리였단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은 어제였다. 무구한 역사로 이어져온 무속신앙의 기본은 신령이 아니라 신령을 믿는 무속인과 서민들의 마음이란 걸 나의 체험에서 이제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신성성과 주술성은 방편이자 정의하려는 현대인들의 핑계였을 뿐. 그 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안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민속 신앙은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돈 몇푼 내고 속물처럼, 그래 너 얼마나 잘 맞추나 보자. 가 아니라, 내 살아온 이야기와 내가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무속인과의 대화가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다잘 될 것이라는 무속인의 말에 위안을 받고, 마음의 응어리진 덩어리를 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잡으며, 일하며 노래할 수 있는 낙관으로 우린 살아왔던 것이다. 

단명한 이는 장수허고
무자한 이는 생남허고, 가난한 이는 부자되고,  
선팔십 후팔십 다산 로인
극락길도 밝은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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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4-16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그리고 그제.
제가 읽은 두 권의 책에는 모두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마음이 없는 사람,
살아도 이미 죽어있는 사람의 이야기.

저는 요즘 제가 그런 상태인 것 같아요.
그나저나, 좋은 학교를 나오셨군요...
저는 국문학과인데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먼 산)

Forgettable. 2010-04-16 10:59   좋아요 0 | URL
좋은 학교라기 보단, 좋은 선생님을 만났죠. 책의 공동저자이십니다. ㅎㅎㅎ (왠지 자랑스럽기)
그리고 poptrash님의 관심사는 고전보단 현대문학이나 희곡쪽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전 고전문학과 희곡, 시나리오쪽을 주로 공부했어요.

poptrash님께 용한 점쟁이 하나 소개시켜드려야겠어요 ㅎㅎ
저랑 굿이라도 한 판 하며 마음을 느껴보심이 어떻겠냐는.

gimssim 2010-04-16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말은 몸이 듣고 몸의 말은 마음이 듣는 거 아닐까요?
전 그런 생각이...

Forgettable. 2010-04-16 11:02   좋아요 0 | URL
마음과 몸은 유기적이죠. 마음과 몸 중에 어떤 것이 선행하는지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들은 연결되어 있어서 어긋나려고 하면 스트레서 받아요 ㅎㅎ

저 같잖게 선문답을 하고 있네요. 히히

Seong 2010-04-1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엘료 할아버지 말도 Forgettable님과 상통하는 것 같아요. 당신이 진심으로 바라면 온 우주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 진심.
지금 Forgettable님의 마음엔 대구의 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도 나한테 희망을 걸지 않을 때, 나를 믿고 버티는 게 진짜 빛나는 거야!"
^.^;

Forgettable. 2010-04-16 11:07   좋아요 0 | URL
네. Tomek님 서재 갈 때마다 그 글귀 하나씩 꼬박 씹으며 읽고 있습니다. ^^

아휴, 코엘료 할아버지. 문학계의 자기계발서 대가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ㅎㅎ
그러게요. 사람들의 마음의 소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인용하신 글귀를 보면 동양의 고전문학과 코에료 할아버지는 상통하는 부분이 분명 있군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역시 상응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Arch 2010-04-16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좋아서 추천했어요. 결국 점을 보는건 내 미래를 예측한다기보다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맘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내겐 뽀님이 좀 그렇던데. 나몰라라 직관녀랄까. ^^

그래서 말인데요. 전국 일주는 언제 떠나요?

Forgettable. 2010-04-18 22:00   좋아요 0 | URL
나몰라라 직관녀라. 제가 들은 평가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에요. 흐흐
고성은 다녀왔고요, 경주는 다음주말, 군산은 일정 잡아 봅시다. 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전공수업에서 사용한 적이 있는데요...... 공부하느라 때가 타긴 했지만 논문집이라 공부한 기억밖에 없는 책입니다.
얼마 전 아름다운가게에 기증을 했는데, 누가 사갔는지 모르겠네요^^

Forgettable. 2010-04-18 22:0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이 책을 전공 수업에서 사용하는 수업이 또 있나봐요. 혹시 저랑 동문이실지도?!! ^^

글쎄요, 이 책이 논문집은 아닌데 저 역시 공부한 기억밖에 없긴 해요. 전 전공책을 하도 지저분하게 봐서 (이름도 써놓고 줄도 막 그어져있고 메모도 마구 되어있어요.) 어디 기증하지도 못하네요 ㅎㅎㅎ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8 22:18   좋아요 0 | URL
개론서가 좀 더 어울리는 말이겠네요. 지금은 하는 공부가 달라져서 옛 전공책을 보면 기분이 묘해져요. 소중하단 생각도 드는 한편, 책에 적힌 흔적이 부담스레 느껴져 지우고 싶기도 하고......

요 몇 주간 심리학과 대학원생에게 심리 검사를 받고 있는데, 그 친구가 현대판 무당이 아닐까 더러 생각해 봅니다.

Forgettable. 2010-04-18 22:34   좋아요 0 | URL
딱히 대체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었는데 개론서가 맞군요. ㅎㅎ

저는 보통 독서할 땐 책에 흔적을 잘 남겨두지 않아요. 다음 독서 때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런데, 공부하는 책에는 아낌없이 흔적을;; 지금 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 땐 이게 중요하다고 여겼을까 의아한 부분이 많죠.

요즘 읽는 책에 등장하는 정신분석을 공부한 사람이 안좋은 일을 당한 어떤 사람을 상담해주면서, 프로이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좀 재밌기도 하고 그랬어요.
상담한 사람의 얼굴 너머로 수염난 할아버지가 비웃고 있다는 표현이 ㅎㅎ (이얘기가 갑자기 왜 떠오르지)

여튼 현대판 무당이란 말씀 공감합니다.

뷰리풀말미잘 2010-04-1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무당들은 일종의 카운셀러였죠. ^^ 전 마음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에요.

Forgettable. 2010-04-18 22:03   좋아요 0 | URL
예. 고마워요 :)

다락방 2010-04-1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신이 필요하다는 그 마음이 뭔지 오늘은 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제게도 그게 몹시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요.

어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도 사주를 본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뭔가 불안불안한게 있었는데 사주에서 그걸 콕 찝어내서 빨리 끝내는게 좋을거라고 했다고요. 사주를 보고 운명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들은대로 살게될까봐 좀 두려웠는데, 어쩌면 들은대로 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가장 덜 다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확신을 갖고 싶어요. 그러니 나도 사주 한번 보러 갈까요?

묻고 싶어요. 이걸 관둘까요 저걸 관둘까요 아니면 이도저도 다 관둘까요? 하고 말이지요.


어제는 술을 마시고 늦은밤에 돌아오면서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렸어요. 그전날 남동생과 술마시고 들렀던 아주 쫄깃한 우동집에 다시 가기 위해서였죠. 우동은 싫어하는데(면이 너무 두꺼워요!), 그 집 우동면발은 두껍지 않았어요. 그래서 열한시쯤 그 우동집에 갔는데 거기엔 혼자 온 남자들이 수두룩했어요. 여자는 한명도 없었어요. 짜장면과 우동만 파는 기사식당이었거든요. 늦은밤에 뭔가 치열하게 살다가 우동 한그릇씩 먹기 위해 들어온 그 남자들 틈 사이로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문 앞에서 멈칫멈칫 하다가 분홍색 네일아트를 한 손이 내내 걸렸어요. 결국 우동을 먹지도 못하고 한참을 걸어 집에 돌아왔어요.

세상에 참 많은 것들이 슬프고 지긋지긋해요.

Forgettable. 2010-04-18 22:13   좋아요 0 | URL
일요일 오후 2시. 제가 설악산 산자락을 거닐고 있을 때였군요. 헤헤
(댓글을 보아하니 이렇게 약올리면 안될 것 같은데, 왜 괴롭히고 있을까요. 아휴, )

사주는.. 잘 모르겠어요. 갈팡질팡 하고 있는 것 같아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것을 점쟁이가 그대로 꼭 집어서 말해주면 안도하게 되지만, 그 반대를 말하면 내가 오히려 점쟁이를 설득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사주를 보더라도 큰 확신을 얻을 순 없을겝니다. ㅎㅎㅎ

그리고 난 왠지 락방님이랑 점쟁이는 안어울리는 것 같아요. 혼자서도 잘 하고 있는 것만 같아 보여서요.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끔씩, 혹은 자주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긴 하지만.

우동집 이야기는 왠지 쓸쓸해요. 우동은 혼자 먹으러 가지 말아요. 그것도 술을 마시고! 게다가 남정네들이 수두룩한 곳에! 락방님처럼 매력적인 여자는 잡혀간다구요~ 분홍색 네일아트까지 했다니!!

전 네일아트는 한 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기분이 정말 좋아지나요?
많은 것들이 슬프고 지긋지긋하다니 네일아트를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건 아닌가봐요..

Arch 2010-04-20 11:06   좋아요 0 | URL
댓글엔 추천 기능이 없나요? 뽀님, 알라딘에 건의하면 내가 뽀가 다락방님이랑 남긴 댓글엔 죄다 추천해줄게요.
다락방님이랑 뽀는 페이퍼만큼 댓글도 잘 써요. 미잘이랑 나만 좀 그래.(괜히 미잘 걸고 넘어짐)

뷰리풀말미잘 2010-04-25 02:23   좋아요 0 | URL
아치, 제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Forgettable. 2010-04-25 21:14   좋아요 0 | URL
저도 지켜봐 주세요!

Forgettable. 2010-04-2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요즘 '칭찬엔 뽀도 춤춘다.' 뭐 이런 책 읽고 있어요? ㅋㅋㅋ 덩실덩실
여기에서 '뭘요, 아치도 글 굉장히 잘써요!' 라고 해야 하나 싶고. 하지만 그건 너무 오글거리고 ㅎㅎ
미잘보다 훨 낫죠 아치는. (없다고 뒷다마 작렬ㅋㅋ)

전 베플 한번 되 본적이 없는 걸요.
뭐 베플제도 있는데서 댓글 달아본적도 없지만;;

 

바로 어제까지도 난, 2010년 4월 1일, 말하자면 4월 중반 무렵에 패딩을 입고 춥단 소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벚꽃이 벌써 지나 하면서 흐린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그것이 벚꽃잎이 아니라 눈.. 이라는 걸 깨닫고 운전학원에 가는 길에 멈춰 서게 될 줄도 몰랐다. 벚꽃 사진을 좀 찍어 보겠다고 조금 설치다가 손에 동상걸릴줄도 정말로 몰랐다. 



    

이 흑백 사진은 봄날에 추워하는 나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실제로 내겐 등이 훤히 파인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숲속에서 아침 햇살받으며 따뜻한듯이 어깨를 살짝 움추리고 이쁜 척 하면서 찍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늘의 사진 찍기는 전쟁이었다. 갑자기 추운 날 카메라를 들고 나서게 된 이유인즉, 어제 ㅋ님의 블로그에서 글을 읽다가 갑자기 내 카메라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 님이 카메라에 갖고 있는 애정에 비해 나의 그것은 참 빈약하여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곰팡이 피기 전에 호주머니에 고이 감싸서 오늘 좀 감아준 것인데, 오히려 추운데 고생시킨 것이 되어버려서 더욱 안쓰럽다. 아직도 카메라가 차다. 한가지 그녀를 위안할 길이 있다면 이미 내 손은 다 터지고 난리났다는거. 이렇게 의도치 않게 남의 불행에서 위로를 찾는 놀부 심보를 들킨다.

 

예..쁘다(!) 

면허를 따는 길은 고되고 험난하다.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을 내기가 곤란한데, 모든 시험이 오전에 있다. 꿀맛같은 쉬는 날 역시 늦잠도 자지 못하고 평소와 비슷하게 일어나서 시험장 또는 교육장을 향해야 한다. 게다가 조금만 방심해도 운전미숙으로 실격당했다는 방송이 온 교육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린다. 나는 벌써부터 당황한 나머지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밟아대는 실수를 몇번이나 저질렀고, 장내기능시험비는 비싸다. 어젠 혼자서도 계속 백점맞아서 친구에게 마구 자랑을 해댔는데 오늘은 실격 혹은 간신히 합격을 겨우겨우 반복했다; 금요일에 사랑니 발치 회복 축하 음주를 즐기기로 했는데, 토요일 시험이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누구 말마따나 백수과로사하게 생겨서 알바를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다음주부터는 친구들을 만나러 전국 방방곡곡을 돌 예정이다. 마치 백수는 과로사하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참 열심히도 산다. 예전에 한달동안 백수였던 친구가 초조해 하면서 돈도 되지 않는 일들을 이것저것 하며 피곤해하고 스트레스 받아 하는 꼴을 보면서 안쓰러워 하는 동시에 비웃어주었는데, 그 꼴이 내 꼴이다. 일단은 고성, 경주, 군산 정도를 다녀올 예정. 와- 모두 멀다! 


G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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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4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4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4-14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성, 경주, 군산-
와 뽀님은 여기저기 친구들이 많기도 하네요.

음 나도 어딘가에 가고 싶어 미칠것 같아요. 좀 꽃이 만발한 곳, 그 아래 서면 꽃잎이 마구 떨어지는 그런 곳. 가고싶다 가고싶다 이러고 있어요.

가서 좋은것 구경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와요.

2010-04-14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10-04-14 18:32   좋아요 0 | URL
전국구 인기인이라서요.

꽃에 힘이 없어서 어제 오늘 추운것 때문에 아마도 다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가려면 이번주 내로 떠나야 하는데, 이번주 목적지는 고성 -_-
벚꽃나무 아래서 돗자리 깔아놓고 막걸리 마시고 덩실덩실 춤추고 싶은데. ㅋㅋ 올해는 안될까요.....

아마. 좋은 것 구경보다는 전국 각지로 유통된, 똑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소주를 마실 것 같습니다만 ㅋㅋ

2010-04-14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4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4-1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뽀님 사진 중독자에요.. 넘 좋아 ^^
여행은 즐겁게...먼 길이 좋은 추억들로 채색되시길...

Forgettable. 2010-04-14 18:37   좋아요 0 | URL
전 제 사진 좋아해주시는 머큐리님이 넘 좋아요 ㅋㅋㅋ
소수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사진사라 그 소수의 사람들이 완소라능 ㅋㅋ

여행 떨려요. 술 왕창 마실거에요. ^^

무해한모리군 2010-04-1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다 짬나면(아니 짬을 내서!) 서울에 우리도 한번 찾아주세요 ㅎㅎ

Forgettable. 2010-04-15 21:41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철야하고 막 바쁜거 언제 좀 잠잠해지는거에요!
저 이번에야말로 휘모리님 찾아가서 놀아야겠는데 ㅎㅎ
어느덧 주말은 세번밖에 남지 않았고,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0-04-16 08:37   좋아요 0 | URL
당신이 온다면 시간을 빼야죠 ㅎ

Seong 2010-04-1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수과로사!! 제가 요즘!! 흑 ㅠㅠ

Forgettable. 2010-04-16 11:08   좋아요 0 | URL
아무것도 안하니 왠지 초조하지 않습니까 ㅎㅎ
전 오늘 면허 필기시험 합격하고 왔어요!ㅋ
 
프로포즈 데이 - Leap Yea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왜였을까, 내가 지금껏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 허세였던 걸까.

실제로 연애하지 못하는 약간 비뚤어진 사람이 로코를 즐겨본다 생각했었고 보면 볼수록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실제로 연애하기가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빤하디 빤한 수많은 로코를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꼭 로맨스 영화가 필요할 때는 [The Break-Up]같은 영화를 보며, 그래 연애란 이렇게 지독하고 현실적이고 일상적인것이다. 라며 자조하곤 했다.  

내겐 지금껏. 어쩌면 그렇게도 매번 연애가 힘들었다. 로코에 등장하는 백마탄 왕자 따위는 없었고, 줄리아 로버츠가 짓는 함박웃음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로코의 주인공들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서 무수한 시련과 싸움을 이겨내고 결국은 해피하게 엔드하는 할리우드식 영화 속 주인공들이 미웠었나보다. 그래, 비뚤어진 인간은 나였다.   

그냥 뭐, 날도 좀 풀려서 두근두근한 것도 없지 않아 있고, 술을 마시지 못하니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언젠가 한 번 영화를 함께 보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취향이 너무 달라서 무엇을 함께 봐야 함께 만족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사람과의 데이트였다. 그 때 [프로포즈 데이]가 마치 선자리에 나온 잘생기고 유머러스하고 집안까지 좋은 심장전문의마냥 눈을 깜박거렸고, 우린 그 영화를 선택했다. 우리는 함께 한숨을 내쉬고, 깔깔거리고, 만족했지만 욕구불만이 되어 극장을 나서야 했다.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키가 아주 크고, 조금 웃기고, 여주인공을 놀린다. (나는 나를 골려먹는 남자에게 매료당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요리도 잘하고, 상처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쉽게 말해주지 않으며, 여주인공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언제나 뒤에 서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명 나를 사랑하는게 아닌데, 대담하게 키스하고, 그것도 아주 잘하고, 한 침대에 누워서 자면서는 단지 오른손을 잠결에 내 팔위로 감싼다. 

라며 점점 나는 여주인공이 되어버렸다 -_-; 젠장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는 여전히 뻔하다. 심지어 사랑을 확인하고 키스할 때는 두 사람의 입술 뒤로 석양이 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대견하다. 내가 변한 것인지, 로코 자체의 트렌드가 변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은 에밀 쿠스트리차나 프랑소와 오종, 김기덕의 영화들, 세계 각지의 온갖 실험적인 영화들보다 상업영화를 즐겨보게 된 것은 사실이고 이제는 상업영화 역시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상업영화가 괜찮다는 것은 분명 아닌데 [프로포즈 데이]는 빤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지독한 현실감각, 동화같은 로맨스의 상극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고, 빡빡한 여주인공과 느긋한 남주인공의 아슬아슬한 균형도 긴장감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가 차마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쳐가는 수많은 우연들과 기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텐 이런 일이 없는거야!" 라고 질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 나도 그 땐 그랬는데, 내가 그 때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며  저마다의 공상속에 빠지게끔 살짝 밀어넣어 준다는 말이다.

2시간 신나게 웃고 부러워하고서는 끝나버리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영화 자체의 여운이 남아서 벅차오르는 그런 영화도 물론 아니다.   

어떤 영화냐면,

예전에 아이일 때 가시가 손에 박혔을 때 그것을 빼지 않으면 혈관을 타고 흘러서 심장에 박혀버린다는 무서운 어른들의 말씀에 강박적으로 손에 박힌 가시를 뺐었는데( 그땐 왜 그리도 가시가 많이 박혔는지) 미처 빼지못한 그 때 그 가시가 내 온 몸을 훑고 다니며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는 것만 같다. 아,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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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1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는 이거 보고 감상쓸때 제목을 [4월의 밤은 좀 지독하다]라고 썼는데, 어쩐지 좀 통하는 감상이에요. 그쵸?

나는 한 침대에 둘이 누워서 잔뜩 긴장한 장면이 무척 좋았고 인상깊었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장면은 여자가 떠나버린 줄 알고 남자가 허탈해하던 바로 그 모습이에요. 정말 그 장면이 무척 좋았어요, 무척.

아 또 생각하니까 미치겠다 ㅠㅠ

Forgettable. 2010-04-1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장면!! 남자가 손가락을 하나씩 떼고 나가니, 여자가 한 숨도 자지않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번쩍 뜨는거요. ㅋㅋㅋ 남자가 돈을 받지 않은 것도 좋았어요. 돈을 받았더라면 아마 여자는 자기가 밥이었다고 체념해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계속 미치겠어요. 외로워요. 으흐흑

다락방 2010-04-12 09:00   좋아요 0 | URL
아 나 이 댓글 읽는데 심장이 벌렁벌렁 거려요. 자기 팔 위에 남자의 손이 놓여져 있던 그 촉감은 정말 생생할거야. 잊을 수 없을거에요, 그쵸? 아 미치겠네요. ㅎㅎ

다음부터는 걍 다 때려부셔, 하는 영화를 봐야겠어요. ㅎㅎ

Forgettable. 2010-04-12 18:10   좋아요 0 | URL
전 그래서 [아이언맨2]와 [킥애스]를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냥 뭐, 턱을 갈아버려(?이거맞나요?ㅋㅋㅋㅋㅋ) 이런 영화나 봐야징

다다음주쯤에 시간이 나서 봄꽃여행을 가보려고 했더니만 이미 동네에 벚꽃이 다 폈더라구요. 나뭇잎구경가게 생겼음 -_- 꽃이 피면 기쁘다기 보단 이 봄도 끝이구나 싶어서 슬퍼져요.

아포지 2010-04-1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얘기해준다고 하다가 계속 잊고 있었는데, 사랑니 뽑고 술마셔도 되요... 대신 자기 전에 가글을 확실히 해주길...

Forgettable. 2010-04-12 18:12   좋아요 0 | URL
그건 술 마시고 운전해도 되요... 란 말이랑 똑같다고 하던데;;; ㅠㅠ

많이 아물었으니 오늘은 막걸리나 한잔 할까, 라고 또 불이 당기네요. apouge님 밉습니다.

Seong 2010-04-1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맨틱 코미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근데 좀 변한 게 워킹 타이틀 작품을 보면서 그 마음이 좀 달라졌죠. <노팅 힐>,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 <어바웃 어 보이>... 소급하다 보니 영국산이군요. 영국의 영화나 음악을 살펴보면 일상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부분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카이사르도 포기했다던 변덕스런 날씨 때문인가... ㅋㅋ

Forgettable. 2010-04-16 11:11   좋아요 0 | URL
최근에 500 days of Summer 도 좋았어요!
영국문화 좋죠. 저도 무지 좋아해요. 영국산 소설도 좋아하고.. 브리티시 락도 진짜 좋아해요!!
날씨가 우울하고 변덕스러우니 사람들 감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건가..

아, 아침먹어야지. 새벽같이 면허필기셤 보고왔더니 배고프네요. 배고파서 뭔가 할 말이 더 있을 법한데도 생각이 안나요 ㅋㅋㅋㅋㅋ
 

어제. 

부러워서 "어이쿠" 하며 감탄사를 몇 번이나 내뱉어야 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감상하고는, 애써 현실로 돌아오려 눈을 부릅뜨고 있자니 괴로움이 절로 밀려온다.  

게다가 오른쪽 아래 잇몸은 검은 실로 깊은 상처가 겨우 꿰메어져 있고, 진통제를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없이 자기엔 약간 불쾌한 정도의 고통이 은근히 배어있다. 어차피 진통제도 다 떨어졌다. 

불가피한 금주령 때문에 술도 못마시고, 제대로 씹지못해서 소화도 안된다. 

마음을 좀 많이 빼앗겨버린 이에게 연락해봤자, 나는 아웃 오브 안중.  

책을 펴 들어도 어째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매력적인 인간들 투성이어서 그만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봄맞이 욕구불만인가. 

 

마취가 풀리는동안 울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르케스였다. 

   
 

아래쪽 사랑니였다. 치과 의사는 입을 벌리고 뜨거운 집게로 어금니를 짓눌렀다. 읍장은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주 깊숙한 곳에서 얼어붙는 듯한 공허를 느꼈으나 고통을 토해 내진 않았다. 치과 의사는 단지 손목만을 움직였다. 아무런 증오 없이, 오히려 씁쓸한 부드러움으로. 그리고 말했다.

     “이것으로 스무 명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오, 중위.” ("Now you'll pay for our twenty dead men.")


     읍장은 턱에서 뼈마디가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고, 두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어금니가 뽑혀져 나오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숨도 쉬지 않았다. 그때 눈물 속에서 어금니를 보았다. 그의 고통에 비해 너무 어처구니없게 보였다. 그래서 지난 닷새간의 밤의 고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헐떡거리며 타구로 몸을 기울이고 군복 상의 단추를 풀었으며,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더듬더듬 찾았다. 치과 의사가 읍장에게 깨끗한 수건을 건네주었다.

     “눈물을 닦으시오.”

     읍장은 눈물을 닦았다. 떨고 있었다. 치과 의사가 손을 씻는 동안 읍장은 밑이 빠진 천장을 올려보고 거미알과 죽은 곤충이 널려 있는 먼지 낀 거미줄을 바라보았다. 치과 의사가 손을 닦으며 돌아왔다. ‘누우세요. 소금물로 입을 헹구시고.’ 그러나 읍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대식 인사로 작별을 고하고 다리를 끌며 문께로 나아갔다. 군복 상의 단추는 채우지 않고 있었다.

     “계산서를 보내시오.”

     “당신에게, 아니면 읍사무소로?”

     읍장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문을 닫고 철망 너머로 말했다.

     “마찬가지요.” ("It's the same damn thing."  나같았으면 "상관없어."로 했을텐데. 뭐, 마찬가지지만.)

<출처 : http://www.latin21.com/board3/view.php?table=translate_nh&bd_idx=15

 
   

이 단편을 다시 읽고 싶어서 이 단편이 실려있는 책을 찾기 위해 온 책장을 헤매고 다녔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잃어..버린 건가. 안그래도 욕구불만으로 열받아 있던 머리가 헤까닥 돌 무렵   

마르케스 치과 의사 

으로 구글링을 해보니 이 단편 번역이 나온다. 신비로운 구글의 세계.

 

이 단편은 1장 반쪽 분량으로, 꼬부랑꼬부랑 영어로 된 것을 몇번이나 읽으며 잘 이해도 못하고서는 좋아했었다.  

계산서를 어디로 보내든 상관없다는 읍장의 말을,  

마취가 풀리는 동안 몇 번씩이나 곱씹으며 그제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사랑니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ㅠㅠ 무려 스무명의 목숨값! 

 

그나저나 나는 이 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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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1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내야지요. 무슨일이 있어도!

Forgettable. 2010-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금주 며칠했다고 우울증걸린듯!!!

무스탕 2010-04-1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를 빼셨군요. 더 빼셔야 하나요, 이걸로 끝인가요?

Forgettable. 2010-04-1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고민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치과에서는 다 아물면 빼라고는 하는데, 썪지 않았다면 빼고 싶지 않아요. 한편으로는 이왕 시작한거 몽창 빼버릴까 싶기도 하구요.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