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이 있었다.
책을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은 몇 주가 후르륵 지나가버렸다. 회사다닐 때 생각이 자주 난다. 그 땐 책을 읽어야, 영화를 봐야 살 수 있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이런 것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도 간다. 하루 하루 멍청해지는 것 같다는 죄책감 말고는 별스럽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행복한 순간은 그 때보다 더 자주 찾아오고, 그에 비례해 우울한 순간도 잦아졌다. 플랫한 삶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는 그 때의 불안감이 자주 기억나는 요즘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이 이것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만 고민했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땐 그 때의 내 선택이 당연히 옳을 것이라는 믿음만 갖고 있으면 됐었는데, 요즘의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취업할까, 스페인에 갈까, 콜롬비아에 갈까, 에드먼튼에 좀 더 머물러볼까, 한 1년 정도 여행을 더 다녀볼까, 미국에 사진을 공부하러 가볼까, 대학원에 가볼까.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나의 이번 선택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많아져서 선택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할 수 있는 것은 과거. 하고 싶은 것은 현재. 해야 하는 것은 미래.
이 세가지가 동시에 충족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직도 그 사이사이에서 방황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