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이 있었다. 

책을 읽지도 않고 영화를 보지도 않고 공부도 하지 않은 몇 주가 후르륵 지나가버렸다. 회사다닐 때 생각이 자주 난다. 그 땐 책을 읽어야, 영화를 봐야 살 수 있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이런 것 하지 않아도 시간이 잘도 간다. 하루 하루 멍청해지는 것 같다는 죄책감 말고는 별스럽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행복한 순간은 그 때보다 더 자주 찾아오고, 그에 비례해 우울한 순간도 잦아졌다. 플랫한 삶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는 그 때의 불안감이 자주 기억나는 요즘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이 이것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만 고민했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땐 그 때의 내 선택이 당연히 옳을 것이라는 믿음만 갖고 있으면 됐었는데, 요즘의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취업할까, 스페인에 갈까, 콜롬비아에 갈까, 에드먼튼에 좀 더 머물러볼까, 한 1년 정도 여행을 더 다녀볼까, 미국에 사진을 공부하러 가볼까, 대학원에 가볼까.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나의 이번 선택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많아져서 선택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할 수 있는 것은 과거. 하고 싶은 것은 현재. 해야 하는 것은 미래. 

이 세가지가 동시에 충족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직도 그 사이사이에서 방황중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0-10-1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일요일 한낮인데요~~~~~ 거긴 시간이 느리게 가는군요.^^

음~~ 사이사이에서 방황하는 것도 부러워요!

Forgettable. 2010-10-11 16:01   좋아요 0 | URL
네. 순오기님. 미래에서 댓글을 남겨주셨군요. ㅋㅋㅋ
요즘 부쩍 슬럼프라 이러는가봐요. 나아지겠죠. 이젠 공부 열심히 하려구요!!

Joule 2010-10-11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 님은 지금 딱 맞게 시간을 보내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그런 수만 갈래의 생각이 종잡을 수 없이 당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당신이, 당신의 마음이, 끈 없이 자유롭다는 증거. 우리 없는 사람들은 항상 결정을 촉박하게 내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게 있을 수 밖에 없는 듯해요. 가진 게 많지 않기도 하고, 가진 게 많지 않다고 스스로 지레 느끼기도 하고. 이런 건 어때요. 마음이 술렁술렁 대충 잘 넘어가게 하고 이 모든 것이 어느 순간에 딱 지겨워질 때 바로 그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는 거예요. 마음을 좀 내버려 둬보세요. 한국 와서 집 없이 밥 굶으면 제가 잠도 재워주고 밥도 먹여 줄게요. :)

Forgettable. 2010-10-11 16:07   좋아요 0 | URL
아. 쥴님. 댓글 추천하고 싶은데요. ㅎㅎ 제가 늘 하는 말이 그거에요. 지금은 그냥 열심히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 많이 해 놓고 그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잘 하면 된다구요. 근데 말이 그렇지 불안하고 그런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하지만 집 없이 밥 굶으면 재워주시고 밥도 주신다니 마음이 갑자기 완전이 확 놓이는 거 알죠. 하하 진짜 고맙습니다. ^^

가끔 생각해요. 자유는 나같은 애한테는 너무 버거운게 아닌가 하고.. 그래도 이런 시간이 있으니까 나중엔 좀 더 괜찮은 애가 되길 바라며 지내고 있어요. 쥴님은 어쩜 글을 이렇게 잘 쓰실까요. 쥴님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라로 2010-10-1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들은 말인데요,,선택은 어떤것을 결정하는게 아니라 하지 않을 것을 버리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그 말이 오래 남아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생각하게 되어요.
버려도 아쉽지 않은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되어요. 그러니까 버리지 못할 것 하나만 생각하세요.
아직 젊잖아요!!가장 하고 싶은걸 해요!! 님이 나열한걸 보면 저는 여행을 더 다니는것이 좋아요!!>.<
지금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에요. 그러니 넘 초조해 하지 마시고 잘 선택하시길요~.

Forgettable. 2010-10-11 16:11   좋아요 0 | URL
저 아직 젊은거 맞죠? 가끔 엄마랑 통화할 때 얼른 한국와서 선봐서 결혼하라고 하시는데.. ㅋㅋ 그럴 때마다 요즘 수명 길어져서 나 아직 젊으니까 결혼 좀만 늦게하겠다고 설득하는데.. 요즘은 하도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나다보니까 젊은게 아닌 것 같아요. ^^

매일매일 하고 싶은게 바뀌어서 더 고민이에요. 이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말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위안을 바라고 글을 쓴 건 아닌데 그래도 댓글들을 보니 힘이 막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