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고 있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은근한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쉽사리 읽히지 않아서 띄엄띄엄 읽고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는 두 번만에 다 읽어버린 후라고 후르륵 읽히기를 바랬던 건 아니지만, 교고쿠 나츠히코랑 친하다고 해서 그 만큼의 매력을 바랬던 것도 아니지만, 내게 미미여사는 멀고 먼 그녀로 남는 줄만 알았다.
신용카드, 개인파산, 자본주의 어쩌고 하는 책 리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작가가 말하는 게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현대 사회의 자본의 병폐. 뭐 이런거. 근데 꾸역꾸역 읽다 보니 그게 아니다. 모르겠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 따위. 내게 이 책은 외로움이다. 그대로 사라져 버려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여자, 그리고 또 한 여자, 의무도 호기심도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찾기 위해 그녀를 찾던 남자, 자기가 선택한 약혼녀가 그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슬픔도 배신감도 없이 그저 분노와 계산만 남은 남자, 애완동물의 죽음에 얼굴이 터지도록 싸움을 하고도 분이 안풀려 야구 방망이를 들던 아이. 모두가 그저 견딜 수 없이 고독하다.
연애를 하고 말고에 상관없이 마음의 공간을 채울 수 없는 나,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에서 풍성했던 나무가 하루하루 여위어가는 걸 지켜보며 담배를 피우는 나, 술을 마실 수록 배가 고파지는 나, 맛있는 반찬에 밥을 먹으면서도 쓸쓸하다고 혼잣말을 하는 나, 애인이랑 헤어지고 이 노래 들으면 슬프겠다 하면서 들었던 노래를 우연히 들으며 패닉 상태에 빠지는 나, 잠에서 깨서 춥다고 전기장판을 켜고 다시 자는 나, 옛 편지를 읽으며 울다 자는 나, 웃는 모습이 예쁘단 말을 부쩍 많이 듣는 나는 [화차]가 너무 외롭다. 읽으면 읽을 수록 마음이 아파져서 초반에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이유로 쉽사리 읽히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