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1부> 

서른은 넘지 않았을까? 자신이 아직 살아보지 못했거나 앞으로 다가올 나이를 알아맞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p.18 

그녀는 그녀의 몸 안쪽에 들어앉아 자신의 몸을 몸 자체에, 머리가 내리는 어떤 명령에도 방해받지 않는 그 나름의 조용한 리듬에 내맡긴 채 외부 세계를 잊어버린 듯이 보였다. 바로 이와 같은 외부 세계에 대한 망각이 스타킹을 신을 때의 모든 태도와 몸놀림에도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스타킹을 신을 때의 그녀는 굼뜨지 않고 오히려 유려하게 우아하고 고혹적이었다. 그것은 젖가슴과 엉덩이, 다리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몸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바깥세상을 잊어버리라는 요구였다. p.19 

그들은 애정이 듬뿍 담긴 걱정스런 말투로 나를 타이를 것 같았다. 그건 꾸짖는 것보다 더 나쁘다. p.21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지 않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경우도 많았고 또 하기로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행동한다. p.23 

나는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다. 어떤 결정에 대해 약간의 스릴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 때문에 불안해하다가 막상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겼는데 우려했던 결과를 맛보지 않게 된 사람이 느끼는 미미한 안도감이랄까. p. 24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 p.43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의 진급은 특히 하나의 시기를 칼로 자른 듯한 변화를 몰고 왔다. p.72 

비행기의 엔진이 고장났다고 해서 그것이 비행의 끝은 아니다. 비행기는 날아가던 돌멩이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미끄러지듯이 날아간다. 초대형 다발 여객기는 착륙 시도 시에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반 시간에서 45분 정도까지는 날아간다. 승객들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엔진이 고장난 상태에서의 비행은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와 별로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의 비행은 조금 더 조용하다. 아주 조금 더 조용하다. 엔진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것이 몸체와 날개에 와서 부서지는 바람 소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창문 밖을 내다보면 땅이나 바다가 위협적으로 가까이 와 있다. p.77 

그건 평소의 그녀 태도가 아니었다. 평소에는 동의나 거부 의사를 아주 분명하게 표현했다. 나는 그녀의 놀란 눈길을 마주하고서 필요하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말을 취소하고 자책하며 용서를 빌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곧 그녀를 말과 화해시키려고 시도했다. p.79 

그 후 나는 그녀를 배반하기 시작했다.  

한나와 나 사이의 비밀을 세상에 알렸거나 그녀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내가 침묵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것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내가 털어놓았어야 하는 것들도 일체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부인이 배반의 보이지 않는 한 변형임을 알고 있었다. 외부에서 보면 부인을 하는 건지, 비밀을 지키고 있는 건지, 심사숙고하는 건지, 난처함과 불쾌함을 피하려는 건지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본인은 잘 알고 있다. p.82 

<2부> 

그녀는 기차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면 뒤쪽에 처지는 도시처럼 뒤에 남았다. 그 도시는 그대로 있다. 우리의 등 뒤 어디엔가.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도시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p.94 

그 책에서 한나는 실명으로 거론되지 않았으며 그 밖의 다른 어떤 형태로도 알아보거나 확인할 수 없었다. 가끔 나는 젊고 아름답고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달성함에 있어서 무자비한 성실성을 보인 것으로 묘사된 한 여자 감시원이 그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p. 128  

회피하고 방어하고, 숨기고, 위장하고 또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수치심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p. 142 

그녀는 계산하지도 않았으며 전략을 쓰지도 않았다. 그녀는 해명에 대한 재판부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단지 그 밖의 정체가 더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과 자신의 정의를 위하여 싸운 것이다. 자신을 늘 약간은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었다. p. 143-144  

<3부>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을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반면 한나의 손은 그 어디로도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가도록 몰아대야 했다. 글자들을 형성하고 있는 선들은 획을 올려 그을 때나, 내려 그을 때나, 곡선을 그리거나 고리 모양을 그리고 전에나 모두 그때마다 늘 새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글자는 새로이 창출해냈다고 할 정도로 그 기울기나 경사의 방향이 새로웠으며 높이와 너비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p. 199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 거야.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었어.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내게 그것을 요구할 수 있어. 그들은 나를 이해하거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법정에 있을 수는 없었지.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들은 나를 특히 잘 이해했을 거야. 이곳 교도소에서 그들은 나하고 자주 같이 있었어. 그들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매일 밤 나를 찾아왔어. 재판을 받기 전에는 나는 그들이 나한테 오려고 하면 쫓아버릴 수 있었어." p. 210 

내가 한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 그리고 그녀가 내게 한 행동-그것은 이제는 바로 나의 인생이 되었다. p.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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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저렇게까지. 연기를 잘 할까. 를 계속 생각하게 했던 케이트 윈슬렛.
연기를 너무 잘해서 영화에 몰입하는 걸 방해할 정도였다면 이건 그녀의 연기력을 탓해야 하나. 그것을 능가하지 못한 감독을 탓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감탄은 더했다. 어쩜 그렇게까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만들어낸 한나와 한 치의 오차없이 같은 모습일 수 있는지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내 눈과 다른 모든 감각을 의심해야 했다. 

다음은, 영화를 보고 쓴 글이지만 책을 읽은 후에도 크게 고치고 싶은 것은 없다. 



마이클은 성홍열에 걸려 길거리에서 두 번씩이나 구토를 하고 나서 엉엉 울어버리는 15살짜리 소년이었다. 한나는 그런 마이클의 얼굴과 구토의 흔적을 물로 씻어주고, 집까지 바래다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나는 무척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첫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책)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따뜻하고 친절한 면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마이클이 다 나은 후 꽃을 사들고 한나를 찾아갔을 때, 과연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래서 처음엔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위한 장치라고만 생각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개연성이 없고 억지스러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가 나치수용소의 SS, 그러니까 친위대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던 전력 때문에 전범재판에 서게 됐을 때, 생존자가 한나의 악마성을 지적하는 대목에서 비로소 첫 장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나가 특히 어린 아이들만 골라 책을 읽게 한 후 '죽음의 행군'에 보내버렸다며 한나의 잔혹성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는, 문맹이기 때문에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이 한 일의 1차원적인 의미밖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당당했던 한나를 더욱 악마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나가 어린 아이들만 고른 것은 그 아이들을 힘든 노역에서 빼주기 위한 것이었고, 책을 읽게 한 것은 문학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픈 사람은 돕고, 슬프면 울고, 사랑하면 섹스하고, 시키는 일은 성실히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어떻게보면 순진하기까지 한 것이 바로 한나였다. 한나의 단순함은, 마이클이 트램 뒷칸에 탔다고 화내는 장면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마이클은 같은 칸에 타면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을 것 같아서 뒷칸에 탔다고 해명하지만 한나는 '트램에서 어떻게 그러니?'라고 하면서도, 자신을 좋아했다면 같은 칸에 탔어야 되는 거라고 화를 낸다.

그런 장면들이 모두 한나가 친위대에서 한 일들을 설명한다. 절대 한나를 변명해주거나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전범으로서의 한나 슈미츠의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어쩐지 '한나 아렌트'라는 독일 정치철학자의 이름이 계속 떠올랐는데, 작가도 어느 정도 의도한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1961년 이스라엘 법정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나치 전범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아이히만은 아주 성실한 가장이었고, 홀로코스트에서도 역시 '성실하게' 명령을 받든 것이었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의 분석이었다. 이것 역시 아이히만의 죄를 합리화하거나 변명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평범한 인간이 주어진 상황과 여타 다른 이유들 때문에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 <예수살렘의 아이히만> 가운데 
 

 

그러니, 단순하고 무식한 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한나 슈미츠의 문제 역시 비난하고 단죄하는 것이 전부일까에 대해 영화는 질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나쁜 것은, 물론 이 영화에서 거기까지 얘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일이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는 한나 같은 사람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을 자신도 모르는 새, 희대의 범죄자로 만들어버린 자들이다. 그것 하나는 분명하다.



여기까지가 한나의 문제라면, 마이클(독일식 이름이면 책에 나온 대로 '미하엘'이라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의 문제는 또 조금 다르다.

마이클은 중년이 되어서도 예전 한나에게 읽어주던 오딧세이를 다시 들춰보며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로, 자신의 인생에서 '한나'로 인해 촉발된 모든 사건과 감정을 여전히 끌어안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살고 있다. 인생 최초의 사랑과 섹스와 분노와 절망,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안겨준 그녀가 말 없이 떠나버린 것에 대한 배신감도 배신감이지만, 아마도 '그녀가 죄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함께 한 시간마저 죄악인가'에 갈등이 그를 저런 표정 속에 가두어 뒀을 것이다.

아내와의 이혼을 결정한 직후, 수감생활 중인 한나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기 시작한 것도 스스로는, 무기징역형에서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면서도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더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과 종류가 달라졌을지언정,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게 그녀와 재회한 후 마주앉아서, 그녀에게 '친위대 시절의 일을 생각하느냐'고 냉정하게 물어본 것이나 그녀의 입을 통해 '통한과 뼈저린 후회, 반성'을 확인하고 싶어한 것 역시 그녀보다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던 마이클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소 후의 그녀와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수감생활 동안 깨우친 것은 '글'일 뿐이라고. 다른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봤다면, 사랑했던 마이클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이 영화에서 그 말은 분명 한나의 진심이다. 그렇다면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에게 전달해달라며 수감생활 동안 깡통 속에 돈을 모아둔 것은 뭔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나'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진심이다. 한나는 각각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은, 어떻게든, 죄값을 치렀다. 


 

영화는 끝났고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렀으며 상황도 종료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는 뒤늦게 나치친위대였음을 고백했다. 좌파 평화주의자로서 나치 범죄 고발에 앞장 서며, 독일 최고의 작가이자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을 받아왔던 터라 3년 전, 유럽은 그의 고백으로 들끓었다. 그리고 노벨상을 반납해야 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귄터 그라스가 왜 60년 간 그 사실을 숨겼는지, 어쩌다 친위대가 됐는지, 그리고 최근의 활동이나 저술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 복잡한 문제가 많지만 마이클식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다. 그가 나치친위대였다고 해서 이미 작품의 문학성을 인정하고 수여했던 '노벨 문학상'까지 빼앗아와야 하는가 하는 것. 내가 사랑한 여자가 나치친위대였다고 해서 우리의 사랑과 아름다웠던 시절이 물거품이 되는가 하는 것. 

마지막에 마이클은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하는 데 무려 30년이나 걸렸고 그 대가로 한나를 잃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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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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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의 기계적인 대답에 우리는 다시금 잠시 동안이나마 침묵에 빠졌다.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짜내 부엌에 가서 차를 마련하는 것을 도와달라며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지만, 바로 그 순간 마귀 같은 핀란드 여자가 쟁반 위에 차를 받쳐 들고 왔다. p. 125-125쪽

그는 데이지한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으로부터 나오는 반응 정도에 따라 자기 집의 모든 것을 재평가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녀가 눈앞에 나타난 이상, 다른 그 무엇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이따금 그는 자신의 소유물들을 멍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p. 132-132쪽

이런 무더위에는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일상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p. 164-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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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의 기계적인 대답에 우리는 다시금 잠시 동안이나마 침묵에 빠졌다.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짜내 부엌에 가서 차를 마련하는 것을 도와달라며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지만, 바로 그 순간 마귀 같은 핀란드 여자가 쟁반 위에 차를 받쳐 들고 왔다. p. 125 

그는 데이지한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으로부터 나오는 반응 정도에 따라 자기 집의 모든 것을 재평가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녀가 눈앞에 나타난 이상, 다른 그 무엇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이따금 그는 자신의 소유물들을 멍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p. 132

이런 무더위에는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일상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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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집어들고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상상했던 방향에서 이야기는 크게 세 번 정도 방향을 바꿨다. 1920년대 미국 동부에 사는 졸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상을 보여주는 얘기일 거라는 예상은 개츠비가 닉과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 데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서 처음으로 무너졌다. 두 번째는 개츠비와 데이지와 데이지의 남편 톰이 툭 터 놓고,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순간이었고, 실수와 오해와 복수가 삼박자를 고루 갖춰 지금까지 진행돼온 모든 상황이 뒤범벅이 되는 순간 마지막으로 내 예상이 빗나갔다.

과거의 영광은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 개츠비는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다. 그 정도로 간절히 바라고 애쓰면 온 우주가 힘을 모아 그 소망을 이뤄준다고 했던가. 하지만 개츠비가 비록 허무하리만치 짧은 순간 동안이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데이지가 속물이라는 덕을 본 덕이다. 식은 마음은 수만볼트의 전기, 수천만 톤의 기름으로도 다시 데울 수 없지만 재물이 없어서 식은 마음은 재물을 모아 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그렇게 믿었고 얼마간은 대단히 효과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정말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꼼꼼이 따져보기 전에 그냥 생겨버린다. 만약 그 모든 걸 따져본 후에만 찾아오는 게 사랑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지금과는 다른 뜻을 갖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세상은 그 사람을 중심에 세워놓고 순식간에 재편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미 모든 도덕적, 논리적 판단의 기본이 돼버린다.

이미 데이지를 중심에 세워놓고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세계질서를 재편해버린 개츠비의 삶은 속임수와 폭력과 사치와 과시로 점철된다. 하지만 그 엄청난 과시도 오로지 강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거대한 저택과 마주보는 건너편의 초록색 불빛을 향해 있다. 그러므로 그 초록빛이 자신의 저택이지만 오직 그녀를 위해 마련한 바로 그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개츠비가 살아온 방식은 더 이상 개츠비에게 의미가 없어진다. 그 초록빛은 '우리가 나눈 것은 푸른 전구빛'이라는 별의 '푸른전구빛'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초록빛이고, 그 '우리가 나눈 것은 푸른 전구빛'이라는 가사는 이 소설의 결말이랄까 주제랄까, 암튼 그것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성찰이기도 하다. 
 
그런데 데이지는, 데이지는 뭐지? 데이지는 개츠비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데이지 뷰캐넌으로 성을 갈아치웠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기꺼운 선택이었다. 톰 뷰캐넌이 타고난 부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톰은 데이지의 성을 자신과 같은 것으로 만든 이후, 남의 남자의 성을 얻은 여자와 번화가에서 바람을 피운다. 데이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데이지도 개츠비와의 연애에 전혀 죄책감이 없다.

하지만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일상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지는 그런 무더운 여름날,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그 날 일어난 교통사고가 그들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그 사고는 참으로 친절하고 공평하게도 그 책의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소설은 그 날의 사고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끝이 나지만 남겨진 자들에게 계속되는 삶에서 그렇게 모두의 운명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바꿔놓는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까지 책을 읽어온 게 순간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허무한 사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게 정말 그렇다는 게 더 기막히고 허무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누군가가 죽어버리면, 그 순간까지 아등바등이든, 유유자적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방식으로 살아냈던 그 순간까지의 그 삶이 허무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닉과 개츠비, 개츠비와 데이지, 데이지 뷰캐넌과 톰 뷰캐넌, 톰과 머틀, 머틀 윌슨과 조지 윌슨. 조지 윌슨과 개츠비.

비극이 벌어졌을 때,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그 인생의 연결고리. 와- 정말 무섭다. 소설이 정말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린다는 교과서에서 배운 그 특성이 이토록 무서운 적이 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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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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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사람이 좌절했을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반응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p.13 -13쪽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에 망가뜨렸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은 석유 다음이다. 석유란 얼마나 파괴적인가! 당신의 차에 기름을 조금만 넣으면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 이웃집 개를 깔아뭉갠 다음, 대기권을 찢어발길 수 있다. p.19 -19쪽

일전에 공항에 갔더니 공항 검색 요원들이 요즘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신발을 벗기더군요. 신발을 벗어 검색대에 올려놓는 순간 정말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운동화를 이용해 비행기를 폭파하려 했다는 이유로 내 신발을 벗겨 엑스레이 기계로 촬영을 하다니요....... (누군가 폭발하는 바지를 발명한다면 정말 큰일 아닙니까?) p.107-107쪽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시간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시계와 달력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시간을 소시지처럼 일정하게 자른 다음, 마치 그것들이 우리의 소유물이고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처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은 수은 덩어리처럼 잘게 부서지거나 순식간에 증발하는 경향이 있다. p.117
-117쪽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p.119-119쪽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p.126-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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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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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사람이 좌절했을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반응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p.13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에 망가뜨렸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은 석유 다음이다. 석유란 얼마나 파괴적인가! 당신의 차에 기름을 조금만 넣으면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 이웃집 개를 깔아뭉갠 다음, 대기권을 찢어발길 수 있다.  p.19

일전에 공항에 갔더니 공항 검색 요원들이 요즘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신발을 벗기더군요. 신발을 벗어 검색대에 올려놓는 순간 정말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운동화를 이용해 비행기를 폭파하려 했다는 이유로 내 신발을 벗겨 엑스레이 기계로 촬영을 하다니요....... (누군가 폭발하는 바지를 발명한다면 정말 큰일 아닙니까?)  p.107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시간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시계와 달력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시간을 소시지처럼 일정하게 자른 다음, 마치 그것들이 우리의 소유물이고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처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은 수은 덩어리처럼 잘게 부서지거나 순식간에 증발하는 경향이 있다.  p.117

사회주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달 위에 인간이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지구를 정신병원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p.118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p.119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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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꾸준히 써왔던 글을 모은 책인데도 책 전체는 마치 한 순간에 쓴 책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5년이라는 시간은 거대한 한 사회가 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인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보네거트는 책에 쓴 한탄보다 더 절망적인 미래를 예언하고, 자신은 ‘나라 없는 사람’이 될 것을 선언한다. 보네거트가 보기에 그의 나라였던 미국은 희망이 없는 곳이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개인적인 소망은 이룬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 사람의 이름이 부시, 딕, 콜린이 될 때까지 살아 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라더니 결국 그들보다 먼저 ‘달에 인간이 산다면 정신병원으로 썼을 것(버나드 쇼)’이라던 지구를 떴으니 말이다. 이 책은 2007년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책이다.

<나라 없는 사람>에는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의 고통에는 눈을 감으며 진정한 유머를 모르는 ‘정신병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미국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깊이 배여 있다. 보네거트는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야했다. 그러면서도 80년 가까이 지켜왔던 국적을 죽기 바로 몇 년 전 (정신적으로) 포기해 버린 미국이라는 사회를 우리나라 역시 점점 닮아가는 게 참 두렵다. 보네거트의 우스우면서도 지독한 충고를 새겨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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