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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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프로이트는 유머가 사람이 좌절했을 때 생겨나는 몇 가지 반응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p.13

내가 보기에 진화는 엉터리다. 인간은 정말로 한심한 실패작이다. 우리는 은하계 전체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이 친절한 행성을 교통수단이라는 야단법석으로 한 세기 만에 완전에 망가뜨렸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은 석유 다음이다. 석유란 얼마나 파괴적인가! 당신의 차에 기름을 조금만 넣으면 시속 백 마일로 달리면서 이웃집 개를 깔아뭉갠 다음, 대기권을 찢어발길 수 있다.  p.19

일전에 공항에 갔더니 공항 검색 요원들이 요즘 일반적인 관행이라며 신발을 벗기더군요. 신발을 벗어 검색대에 올려놓는 순간 정말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남자가 운동화를 이용해 비행기를 폭파하려 했다는 이유로 내 신발을 벗겨 엑스레이 기계로 촬영을 하다니요....... (누군가 폭발하는 바지를 발명한다면 정말 큰일 아닙니까?)  p.107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실수는 시간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시계와 달력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시간을 소시지처럼 일정하게 자른 다음, 마치 그것들이 우리의 소유물이고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처럼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실제로 시간은 수은 덩어리처럼 잘게 부서지거나 순식간에 증발하는 경향이 있다.  p.117

사회주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달 위에 인간이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지구를 정신병원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p.118

"지구로서는 우리를 제거하는 편이 나을 걸세. 우린 정말로 무서운 동물이거든“   p.119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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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꾸준히 써왔던 글을 모은 책인데도 책 전체는 마치 한 순간에 쓴 책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5년이라는 시간은 거대한 한 사회가 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인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보네거트는 책에 쓴 한탄보다 더 절망적인 미래를 예언하고, 자신은 ‘나라 없는 사람’이 될 것을 선언한다. 보네거트가 보기에 그의 나라였던 미국은 희망이 없는 곳이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개인적인 소망은 이룬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 사람의 이름이 부시, 딕, 콜린이 될 때까지 살아 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라더니 결국 그들보다 먼저 ‘달에 인간이 산다면 정신병원으로 썼을 것(버나드 쇼)’이라던 지구를 떴으니 말이다. 이 책은 2007년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마지막 책이다.

<나라 없는 사람>에는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의 고통에는 눈을 감으며 진정한 유머를 모르는 ‘정신병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미국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깊이 배여 있다. 보네거트는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견뎌야했다. 그러면서도 80년 가까이 지켜왔던 국적을 죽기 바로 몇 년 전 (정신적으로) 포기해 버린 미국이라는 사회를 우리나라 역시 점점 닮아가는 게 참 두렵다. 보네거트의 우스우면서도 지독한 충고를 새겨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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