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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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의 기계적인 대답에 우리는 다시금 잠시 동안이나마 침묵에 빠졌다. 나는 가까스로 머리를 짜내 부엌에 가서 차를 마련하는 것을 도와달라며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지만, 바로 그 순간 마귀 같은 핀란드 여자가 쟁반 위에 차를 받쳐 들고 왔다. p. 125 

그는 데이지한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는데,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으로부터 나오는 반응 정도에 따라 자기 집의 모든 것을 재평가하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녀가 눈앞에 나타난 이상, 다른 그 무엇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이따금 그는 자신의 소유물들을 멍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p. 132

이런 무더위에는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일상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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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집어들고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나도 모르게 내가 상상했던 방향에서 이야기는 크게 세 번 정도 방향을 바꿨다. 1920년대 미국 동부에 사는 졸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대상을 보여주는 얘기일 거라는 예상은 개츠비가 닉과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 데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에서 처음으로 무너졌다. 두 번째는 개츠비와 데이지와 데이지의 남편 톰이 툭 터 놓고,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순간이었고, 실수와 오해와 복수가 삼박자를 고루 갖춰 지금까지 진행돼온 모든 상황이 뒤범벅이 되는 순간 마지막으로 내 예상이 빗나갔다.

과거의 영광은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자 개츠비는 어느 정도 목적을 이룬다. 그 정도로 간절히 바라고 애쓰면 온 우주가 힘을 모아 그 소망을 이뤄준다고 했던가. 하지만 개츠비가 비록 허무하리만치 짧은 순간 동안이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데이지가 속물이라는 덕을 본 덕이다. 식은 마음은 수만볼트의 전기, 수천만 톤의 기름으로도 다시 데울 수 없지만 재물이 없어서 식은 마음은 재물을 모아 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개츠비는 그렇게 믿었고 얼마간은 대단히 효과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 정말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꼼꼼이 따져보기 전에 그냥 생겨버린다. 만약 그 모든 걸 따져본 후에만 찾아오는 게 사랑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지금과는 다른 뜻을 갖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세상은 그 사람을 중심에 세워놓고 순식간에 재편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미 모든 도덕적, 논리적 판단의 기본이 돼버린다.

이미 데이지를 중심에 세워놓고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을 둘러싼 세계질서를 재편해버린 개츠비의 삶은 속임수와 폭력과 사치와 과시로 점철된다. 하지만 그 엄청난 과시도 오로지 강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거대한 저택과 마주보는 건너편의 초록색 불빛을 향해 있다. 그러므로 그 초록빛이 자신의 저택이지만 오직 그녀를 위해 마련한 바로 그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개츠비가 살아온 방식은 더 이상 개츠비에게 의미가 없어진다. 그 초록빛은 '우리가 나눈 것은 푸른 전구빛'이라는 별의 '푸른전구빛'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초록빛이고, 그 '우리가 나눈 것은 푸른 전구빛'이라는 가사는 이 소설의 결말이랄까 주제랄까, 암튼 그것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성찰이기도 하다. 
 
그런데 데이지는, 데이지는 뭐지? 데이지는 개츠비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데이지 뷰캐넌으로 성을 갈아치웠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기꺼운 선택이었다. 톰 뷰캐넌이 타고난 부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톰은 데이지의 성을 자신과 같은 것으로 만든 이후, 남의 남자의 성을 얻은 여자와 번화가에서 바람을 피운다. 데이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데이지도 개츠비와의 연애에 전혀 죄책감이 없다.

하지만 '불필요한 몸짓 하나하나가 일상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지는 그런 무더운 여름날,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 그 날 일어난 교통사고가 그들의 운명을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그 사고는 참으로 친절하고 공평하게도 그 책의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소설은 그 날의 사고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끝이 나지만 남겨진 자들에게 계속되는 삶에서 그렇게 모두의 운명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바꿔놓는 그런 사건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까지 책을 읽어온 게 순간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허무한 사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게 정말 그렇다는 게 더 기막히고 허무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누군가가 죽어버리면, 그 순간까지 아등바등이든, 유유자적이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방식으로 살아냈던 그 순간까지의 그 삶이 허무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닉과 개츠비, 개츠비와 데이지, 데이지 뷰캐넌과 톰 뷰캐넌, 톰과 머틀, 머틀 윌슨과 조지 윌슨. 조지 윌슨과 개츠비.

비극이 벌어졌을 때,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그 인생의 연결고리. 와- 정말 무섭다. 소설이 정말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린다는 교과서에서 배운 그 특성이 이토록 무서운 적이 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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