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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3권 세트 - 신탁의 밤,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 줄 알았다,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기계들과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그리고 만일 누르게 되어 있는 잘못된 버튼이 있다면 결국 그것을 누르고 말게 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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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중 일부는 캔자스시티 같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우송된 것들이었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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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켜세운 폴 오스터를 치켜세우고 싶다.
굉장히 떠받드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타자기가 치켜세워져 있다.

짧은 몇 문장들과,
정말 파닥거리며 튀어나올 것 같은 타자기 그림이
정말 자연스럽게, 그리고 멋있게 타자기를 치켜세우고 있다.

책상 밑에 놓여 그저 발을 얹는 물건쯤으로 전락해버린,
내 타자기를 생각해보면,
나'는 얼마나 쉬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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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시 평론이 더 그렇다. 시를 쪼개고 나누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피 흘리며 그 자리에 스러진다. 그렇게 된 이상 우리는 그 시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을 포기해야한다. 그런데 아마도 기형도와 초면인 사람들은 대개,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이라는 유고시집 끝 부분에 있는 김현 씨의 해설이라든지, 시를 쪼갠 다음에 어느 한 구절을 예로 들며 그는 죽음에 살며 절망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든지 하는 비평들을 통해 그를 만날 채비를 할 것이다. 이미 '기형도론'이 생겨났을 정도로 그가 남긴 작품 수에 비해 그 작품들에 대한 평론이 무척 많으니까. 그렇지만, 마지막 1초까지도 철저하게 시인이었던 기형도에 대해 내가 쓰는 이 글은 다분히 감상적인 글이 될 거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사랑에 빠졌던 고등학교 시절, 내가 읽은 모든 시는 사랑의 시로 해석되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내가 평론을 좋아한다 한들 시 평론을 쓰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까 고백하건데, 이 글은 연애편지에 가까운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를 열렬히 사모하는 내 마음에 비해 너무 짧았던 그의 생애는(그는 서른이 되던 89년, 어느 극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나에게 살아있는 그의 육신을 만날 기회는 주지 않았다. 다행히 그의 젊음이 길고 치열했던 덕분으로 나는 기형도를 산채로 만날 수는 있었지만. 그러나 그를 만난 후로 나는, 기형도를 곁에 두고 추억하는 무수한 사람들에 대한 훨훨 타오르는 질투에 휩싸여야 했다. '시 평론 같은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말하면서도 기형도론이 가득한 곳을 내가 기웃거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내 것만으로는 그와의 추억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내가 기형도 시와 공유하는 그에 대한 맨 처음 추억은, "위험한 가계. 1969"이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데는 "그래, 맞아. 나도!"하는 노골적인 맞장구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단숨에 기형도에게 사로잡힌 이유였을 거다. 1969년 어느 봄 위험했던 그 가계는 1995년의 어느 여중생의 가계에, 그 누군가의 위험한 마음에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가 증명해주지 않는가! 말하지만,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다. 그 후에도 나는 기형도를 통해 그러한 경험들을 수백 번은 더 하게 되었다. 수백, 수천 번을 그의 추억들과 재회한 것이다.

으레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빠르고 강렬하듯이, 나는 미친 듯이 그가 쓴 시를 읽었고, 그의 여행의 기록을 뒤졌으며, 그의 습작의 흔적까지 놓치지 않고 싶어했다. 그러한 점에서 그가 요절한 시인이며, 다작하는 작가가 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열정이 지나치면 그의 심장까지 통째로 가지고 말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니까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베스트셀러는 아니었다. 그런데 미디어의 힘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나는 또 한 번 경험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수집하려고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갈 때는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않더니, 이제는 베스트셀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돈 되는 시집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을 말한다. 어느 정도는 은밀한 무언가를 강탈당한 기분이다. 대신, 기형도와 자주 함께 가던 찻집 이름이 무엇인지, 그가 어느 자리에 자주 앉았으며, 그 찻집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까지도 소상하게 일러주는 그의 후배를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 정도로 유명해지고 보니, 이제 기형도 만의 특별한 세계가 더 이상 낯선 것만은 아니게 된 것이다. 어렵지 않게 그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얘기할 때에는 "죽음", "절망", "부재", 주로 이런 느낌들의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그를 읽을수록 무엇인가 석연치 않게 느껴졌다. 그러한 느낌은 단지,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말없이 앉아있는 때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았고, 이런 저런 모임에서 재치와 유머로 사회를 보곤 했었다는 단면에 속아넘어간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절망과 희망의 분명한 경계 속에서 어느 한 곳에만 머무는 삶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안이 엄습하고,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생명의 부재를 경험한다. 심리학자인 융은 모든 사람은 무의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무의식의 세계에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된 이면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의식하건 하지 못하건 우리는 살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어떤 부분을 드러내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 일부분은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시에서 극도의 불안감과 깊은 절망을 노래했다한들, 감히 누구도 그를 절망의 시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의 시가 결코 죽음의 이미지만으로 가득 채워질 수도 없다. 적어도 나는 기형도가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절망을 가르쳐주기 위해 시를 쓴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기형도는 자신이 경험한 지독한 고독과 절망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평온한 가운데의 희망보다는 끝이 없는 두려움 속에서 찾은 한줄기 빛이 더 절절함을 아는 까닭이다. 만약 그가 1969년의 그 위험했던 가계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저 동지의 불빛 불빛 불빛"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95년의 그 여중생은 그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민이 없는 사람도 없거니와, 만약 고민이 없다해도 고민이 없다는 것으로 고민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람이다. 무상무념은 사실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형도는 무상무념의 경지를 연습하기보다는, 기꺼이 혼란과 갈등, 죽음에 대한 두려움, 절망 그 모든 것을 경험하였다. 오히려 그러한 작업을 통해 구원받은 것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일지 모를 일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의 눈을 들여다볼 수는 없을지언정, 그를 뼈 속까지 느끼며 그가 살다간 시대를 또 다시 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기형도를 사랑하는 것은, 깊고 깊은 죽음과 절망과 고독과 심지어는 이 모든 것이 부재하는 그 막연한 곳에 찾아 들어가, 한 줄기의 희망을 건져내 오는 그의 용기 때문이다. 그 막막한 곳에 있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진짜배기 희망을 노래하겠는가. 나는 오늘도 그의 무용담을 전해줄 또 다른 그의 지인들을 만나려 그가 자주 갔던 정거장을 괜시리 한 번 서성대볼까 싶다.

2002. 늦은가을
from www.chamz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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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진 2005-08-28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보바리 부인에 관한 글두요. ^^

karma 2005-08-2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저도 언제 한 번 갈게요.
 
폴 오스터 3권 세트 - 신탁의 밤,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 줄 알았다,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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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우리가 왜 어느 한 사람에게는 빠져들고 다른 사람에게는 빠져들지 않는지를 설명해주는 어떤 객관적인 이유도 있을 수 없다. p.26 각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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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 편견을 가졌었고 어리석었다는 새로운 예들을 찾아내는 데서,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절반밖에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 자극을 받으니까.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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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를테면 그 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방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 몹시 유감스러웠고, 그 다음에는 나에게서 코피가 터져 나와 내 셔츠와 바지에 튀는 것을 알았다......................................코피가 터질 때마다 나는 꼭 바지에 오줌을 싼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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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떤 남자와 약속이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했지만 (매력적인 여자들은 금요일 밤이면 늘 남자와 함께 있기 마련이니까) 그 둘이 얼마나 깊은 관계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첫 데이트일 수도 있었고, 약혼자나 동거하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조용한 저녁 식사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미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베티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레이스가 자기 사무실로 돌아간 뒤 그 정도까지는 알려주었다) 결혼 이외의 다른 관계도 셀 수 없이 많았다. p. 79 각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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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우리 두 사람 모두 감정이 더 격해지기 전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이제 서로의 화를 돋우어 나중에 후회하게 될ㅡ그리고 화가 가라앉은 뒤 아무리 많은 사과를 하더라도 기억에서 절대로 지워질 수 없을ㅡ말을 하려는 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p.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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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인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  p.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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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밑에서 둘째줄 오타.

내가 하는 한에서는 => 내가 아는 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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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모호한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신탁의 밤>이라는 소설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 손에 넣은,

어느 소설가가 쓴 미발표 소설의 제목이다.

실제로 폴 오스터가 쓴 <신탁의 밤>이라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큰 틀을 이루는 세 가지 이야기는

누구나가 이야기하듯이 어디까지가 이 이야기이고,

또 어디까지가 저 이야기이며,

어디서부터가 그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쓰여있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작가 폴 오스터의 의도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현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의 경계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존재한다면 얼마나 의미를 가지는지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러니까 보다가 이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긴지 헷갈리는 바람에

몇 페이지를 돌아가서 다시 보더라도 별로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뭐, 이미 이런 주제는 식상하다.

이미 그 옛날 장자가 내가 나비 꿈을 꾼 건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어쩌고 했던 거나,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 같은 소설을 비롯해,

내가 아직 보지도 못했을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 써먹은 거니까.


하지만, 폴 오스터의 <신탁의 밤>은 나름의 개성이 있다.

우선, 그의 문장은 특별하다.

현란한 수식 없이 길게 이어지곤 하는 문장들은,

뭔가 굉장히 선명해 보이는 장면이나 상황을 엮어놓지만,

그 문장 하나 갖고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의 커다란 틀에 맞물리게 된다.


사실은 세상 자체가

‘우연’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단순히 ‘그래, 세상은 우연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야’하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소설을 덥지 못하게 한다.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너무나 대놓고 던져놓은 주제문단,

“생각은 진짜일세.” 그가 말했다. “말도 진짜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진짜일세.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설령 우리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그것을 알게 되지.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내면에는 어느 순간에나 미래가 있네. 어쩌면 그게 글쓰기의 전부인지도 몰라. 시드,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말일세.”에서 의문을 갖기 시작해야 옳다.

지금까지 우연에 의해 인생의 대반전을 경험하는 주인공

에 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도 우연에 의해 인생의 행방을 바꾸는 주인공

에 대해 쓰고 있던 진짜 주인공

도 역시 우연히 포르투갈제 파란 공책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연에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주인공 시드니의 인생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존 트로즈는

생각은 진짜고, 말도 진짜고, 인간의 모든 것이 진짜이며,

따라서 미래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드니는 처음에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지만,

결국은 그 말에 수긍하는 것이 소설에 나와있다.

시드니의 생각이 나중에 또 어떻게 변하든 그것은 소설에 나와있지 않다.

폴 오스터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까지인 것이다.

세상은 우연에 의해 돌아가지만,

그 우연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안에 내재돼있다는 거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별로 놀랄 필요가 없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없는 그 일을 일어나게 하는 것도 결국 우리라는 결론이다.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그래 이거야말로 정말 진실 아닌가.

우리에게 내재돼 있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그것은 사실 신이 특별히 내정해놓은 일도 아니다.

따라서 신의 섭리처럼 보이는 모든 우연한 것들은,

신의 섭리를 가장한 진짜,

우리가 내부 어딘가에 가지고 있었던 진짜란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폴 오스터가 생각하는 글쓰기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나 숙명 같은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혹은 태어나고 나서부터,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지만,

그 어느 순간부터 그의 안에 내재된 미래를 꺼내놓는 일이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 것도,

결국은 남자 안에 여자가 내재됐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토할 만큼 심각한 비약이기는 하지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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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이라는 늙은 숲
- 이성복 『1959년』과 기형도 『위험한 家系ㆍ1969』


1959년

이성복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 먹거나
이차 대전 때 南洋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과 不感症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修飾했을 뿐 아무 것도 追憶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
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
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 왔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과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


위험한 家系ㆍ1969

기형도

1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 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방죽에서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추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 소리를 냈다. 추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 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4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5
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예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 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를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0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녀봤자 그 속에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어지러이 눌러 박혀 있는 내 발자국 몇 개가 갑갑한 심장을 더 꾹꾹 짓누른다. 포기한다. 그냥 나온다. 숲 안에서는 숲이 안 보인다. 심상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막 간다. 뒤에서는 그것이 서서히 제 생김을 드러내는 줄도 모르고.
어느 날 뒤돌아본다. 아, 저것이 저기에 있었구나! 하지만 숲 밖에서는 속이 안 보인다.
숲에서 빠져나온 시인들은 숲 주변을 얼쩡댄다. 숲이 보인다. 변형된 숲 테두리밖에 안 보인다. 진짜는 잘게 분해된 채 기억 속에 꽂혀있다. 꽂힌 숲 조각 진짜를 뽑아 모으고 20년 전의 숲을 위한 '제사'를 준비한다.

1
"몸 속에도, 몸 바깥에도 있"는 죽음을 짊어진. 이성복은 "사슴 뿔을 단 치욕"을 또 제가 달고. "세월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 아픈" 생을 산다.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음악을 몸 속에 지닌 채. 그는 "살아 있었지만 지겨웠고 지겨웠"다. 그 자신은 "살아 있었고 또 다른 그는 죽어 갔다".
기형도는 29살에 이미 "늙은 나무가 되"어 죽어버렸다.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인 영혼을 가지고. 진눈깨비 오던 날 "일생 몫의 경험을 다" 마친 후. "인생을 증오한다"고 길 위에서 중얼거리면서. "거의 기적적"으로 살아온 그는 "질투뿐이었"던 "희망을 노래하"는 것조차도 "미안"하단다.
그리고는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

2
유년에는 떠돌고 10대에는 갇히며 20대에는 착각하다 30대가 서서히 가까워오면 누구나 한 번쯤 고비의 절정을 맞는가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이 지난 일을 재빠르게 돌려보듯, 절정의 고비를 맞이한 20대 후반의 그들은 기억의 맨 앞부터 살피기 시작한다. 그러면 몸이 가장 깊이 기억하고 있는 한 영상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유년의 한 부분에 대한 기억이다. 그것을 이성복은 첫 시집, 첫 페이지에 실린「1959년」으로, 기형도는 유고 시집의「위험한 家系ㆍ1969」로 옮겨 놓았다. 1959년은 50년대가 끝나는 해이고, 1969년은 60년대가 끝나는 해이다. 1959년과 1969년은 각각 50년대 초와 60년대 초에 태어난 이성복과 기형도, 그들 유년기의 끝무렵이기도 하다. 한 연대의 끝에, 그리고 유년기에 끝에 그들에게는 어떤 "기억할만한", 혹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작용이 일어났던 것일까. 20년쯤 지난 유년이 그들의 시속에선 어떤 식으로 복원되고 있을까.
우선, 그들은 모두 그해 봄 즈음부터 기억을 뽑아낸다. 기형도에게는 아버지가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신 비극적 사건으로 점철된 봄이지만, 이성복에게는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오지 않는 봄, 존재하지도 않는 봄이다. 이러한 시적 인식에서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현은 이성복이나 황지우가 보여준 낙관적인 미래 전망의 흔적이 기형도의 도저한 부정적 세계 속에는 없으며, 그래서 기형도의 시를 아주 극단적인 비극적 세계관의 표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 시의 어떤 부분들만큼은 김현의 설명과 조금 어긋나 있는 것 같다. 이성복은 처음부터 낙관적인 미래 전망은커녕 1959년에 분명히 있었을 봄의 존재를 아예 부정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 이 시의 마지막에 가서 시인들의 장치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 김현의 설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조금 더 뒤로 미루기로 하자.

어쨌든 오지도 않은 봄과 한 가지 일로만 기억되는 봄은 각각 1959년과 1969년을 타고 흐른다. 1959년의 봄을 건너뛰고 온 여름의 복숭아나무는 봄이 없어 채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살구나무는 불임까지 겹쳐서 열매도, 꽃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시들어갔다. 봄은 오지 않았고, 여름 속에는 정작 '나'도 없이, 내 주변부에 관한 기억만이 가득하다. 어차피 지나간 것에는 알게 모르게 변형이 가해져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나 아닌 타자에 대한 기억으로 나를 구성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화자 자신이 1959년에 시들어간 불임의 살구나무였을지도, 살구나무와 함께 불임을 앓았던 것일지도… 그도 분명 까닭 없이 고름이 흐르는 성기들의 주인들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리고 그는 불임과 고름으로 앓는 자기들을 두고 의사들이 먼 아프리카까지 이민을 떠나는 것을 본다.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봄처럼 의사들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살구나무의 불임과 소년들의 고름은 고칠 수가 없는 병이 된다. 오지 않은 봄의 몫까지 그해 여름은 잔인해서 차분하다. 꼼짝도 안 한다.

반면에 10년 뒤의 1969년은, 기형도의 아버지가 내내 죽만 먹은 여름과, 어머니가 예년보다 조금 적게 김장을 한 가을을 지나, 순식간에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난 잠바 입을 걱정을 해야 하는 가을의 출구로 이동한다. 그 곳에는 봄이 오면 나으실 아버지와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가만히 고쳐 쓰시는 어머니,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어두운 방죽을 걸어 공장에서 돌아오는 큰누이와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있다. 아버지는 화.자.에.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 우선 남의 닭부터 모이를 먹이며 정성껏 돌본다. 남의 닭에게 모이를 주지 않고선 내 자식을 먹일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병든 아버지. 이렇게 기형도에게 유년의 끄트머리는 '병든 아버지'와 '가난'으로 채워져 있다. 병들고 무능력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화자의 가족들까지도 더욱더 병들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가난, 그 지독한 냄새. 그런데 원래 코라는 것은 매우 빨리 피곤해해서 똑같은 냄새가 계속해서 지속되면 어느 새 그 냄새에 적응해버리고 만다. 화자의 코도 벌써 가난의 냄새에 약간은 무디어져 있는 것 같다.

무디어진 코로 맡는 비극적인 가족사는 반장인 화자의 집에 가정방문 오려는 선생님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나 희미하게나마 지각된다. 공기처럼 주변에 산재하지만 뚜렷한 형체가 없는 가난은 그 흔적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기형도는 실제로 그 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형체가 없었던 1969년을 기억하려고 하기보다는 몸소 그 곳에 간다. 가서 내년이면 열 살이 되는 화자가 되어 아버지, 어머니, 큰누이와 대화를 나누고 다시 한 번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다.
반면 이성복은 그다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이미지를 엮어 유년 시절을 "조립"한다. 그의 기억력은 "담배를 사고 그냥 두고 나"오거나 "아니면... 방금 만난 친구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설프다. 그래서 직접 가 볼 수 없고, 가 볼 수 없으니까 구구절절 읊을 수도 없다. 이미지들과 이미지가 담긴 그림, 그것들을 걸어 놓은 공간만 있을 뿐이다. 1969년은 몸 자체에 가깝고 1959년은 몸이 느끼는 감각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화자의 1959년과의 거리, 화자의 1969년과의 거리는 다르다. 각자 다른 위치에서 그 때를 아는 것이다. 그 때를 아는 방식도 다르다. 1959년의 화자가 그 당시의 촉감을 지우고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력으로 그 때를 새롭게 구성했다면, 1969년의 화자는 아예 그 곳으로 뛰어든다. 상황은, 세월이 미화시켜주기 마련인 지나간 시간에는, 아직도 고름이 흐르고 있고, 아버지의 혀는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신 채 굳어 있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현실의 자리에서 되돌아보는 「1959년」의 화자도, 그 속으로 들어간 「위험한 가계ㆍ1969」의 화자도, 결코 징징대지 않는다는 것.

1959년의 비극적 상황을 화자가 비교적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이미 그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위치에서 바라봄을 당하는 그 위치만큼 시간이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1959년의 화자가 "나는 아직 다쳐본 적이 없다 이목구비가 썩어가도 모든 게 거짓말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결국은 그 유년기의 상처가 완전한 내 것이 아닌, '내 것 같은 것'으로 과장되었던 것임을 깨달았다는 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더 큰 비극이 있다면, 어쩌면 일부는 '나 자신'으로 인해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각은 살아 있는 어머니와 발랄한 여동생의 기쁨이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지거나 아니면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음을 새삼 기억해내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상처를 받으면서 동시에 주는 사람이며, 비극의 결과이면서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징징댈 수가 없다.

하지만 1969년으로 뛰어들어간 화자는 일방적으로 그 상황 속에 투입되어 있다. 그는 그 상황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해 볼 수도 없음을 안다. 단지 그 속에 그냥 존재한다. 작은 누이가 아무것도 해논 일 없이 듣지도 않는 약만 먹고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신 아버지를 원망할 때에도, 어머니가 바로 그 낚시질로 너희들을 건진 거라고 말하며 누이의 뺨을 때릴 때에도, 아버지가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는 건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라고 말 해 줄 때에도, 그는 평소처럼 방죽에서 누이를 기다리고, 고춧가루를 많이 친 어머니의 칼국수를 먹고, 아버지와 함께 금방 죽을 꽃들의 꽃모종을 한다. 그는 노인네처럼 반항도, 움직임도 없이 그저 바라본다. 그가 원하는 것은 기껏해야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은 오징어를 먹는 것이다.

3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은 너무 쉽게 흙 속에서 뽑혀져 나오는 아버지와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이룬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는다. 화자는 아버지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뽑혀져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너는 아버지가 끊어뜨린 한 가닥 실정맥이"라고 말해주지만, 그는 오히려 아버지를 "항상 물그림만 그리셨"던 "가난한 내 아버지", "내가 그린, 물그림 아버지", "불쌍한 내 장난감"이라고 말함으로써 입장을 바꾼다.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 의해서 아버지가 그려지고 보호되는 존재가 된다.
비록 지금 주로 얘기하고 있는「1959년」에서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이미지가 이성복의 다른 시편들에도 있다. 1969년의 화자처럼 이성복의 유년으로 보이는 화자 역시 아버지에게 "어떤 꽃을 보여 주시겠어요, 아버지"하고 묻게 된다.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어떤 꽃이든 보여달라는 일종의 요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심을 꽃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뽑혀져 나온 1969년의 아버지와는 달리 1959년의 "아버지는 꽃 모종"을 하고 싶어도 "꽃밭이 없었다". 화자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내가 떨어뜨린 가랑잎이"라고. 꽃밭조차 없었던 아버지가 가랑잎을 달고 있을 순 있었을까. 화자는 그런 아버지를 때로는 "선량한 아버지"로, 때로는 "새벽에 나가 꿈속에 돌아오던 아버지"로 연민의 정을 느끼고 그리워하면서도, 또 때로는 "입이 열 개라도 말 못"하는 "씹새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그의 직장에서, 그리고 그에게서 "아버지는 예고 없이 해고된다". 자연스럽게 「1959년」에는 아버지가 없다. 봄이 없듯이 아버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의 어머니는 어떠한가. 아버지처럼 어머니도 역시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건들과 다른 이미지들을 연결해놓은「1959년」에서보다는 다른 시편들 속에서 더 자주 등장한다. 꽃밭이 없어서 꽃도, 스스로도 제대로 심지 못한 아버지를 "어디에" "옮겨 심어야 할"지를 묻는 화자에게 엄마는 그저, "견디어라 얘야, 네 꼬리가 생길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마라 아픈 것들의 아픔으로 네가 갈 때까지 네 혓바닥은 괴로움의 혓바닥이요 네 손바닥은 병든 나무의 나뭇잎이"라는 말을 해 줄뿐이다. 그래서 무서워하는 화자에게 이번에는 "ㅡ얘야, 나는 아프단다"라고 말해준다.
화자의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그가 아픈 것들의 아픔으로 가야한다는 사실과 자신도 역시 아들이 가야할 아픔임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화자는 "때로는 울고 싶"지만 "어떻게 우는지 잊"어서 울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 화자는 "엄마, 내 가려운 몸을 구워 줘, 두려워", "내 발자국을 지워줘" 하고 애원하지만 "낙오된 엄마"는 춘화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 오는, "제가 너무 크게 부르면" 부를수록 "안 나타나는 짐승"이 되어 화자를 외면한다.
그러나 1969년의 어머니는 위험한 가계를 꾸려 내년 봄엔 큰누이를 야간 고등학교라도 보내야 했고, 콩나물에 물도 줘야 했다. 그녀의 아들, 1969년의 위험한 가계의 또 다른 화자는, 아버지의 꽃 모종을 통해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워, 뽑혀져 나온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에게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고 묻는다. 하지만 이미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며 살고 계신 어머니는 오히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하는 화자에게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는 더 무서운 얘기를 들려준다.

한마디로 그들의 시에서 보여지는 어머니들은 그들을 위로해주기보다는, 서로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굉장히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 반동을 통해 그들을 세상 속으로 내보내 버린다.

4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희망에도 아직은 아버지의 굳은 혀가 녹아 흐르지 못했고,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고, 이불 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아주 추운 밤들이 왔지만, 1969년은 흐르고 흘러, 모두가 낫는 봄을 목전에 둔 동지에 이른다.
반면 1959년은 1969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 친구들은 유학 가고, 이차 대전 때 남양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도록 봄이 아닌 윤리와 사이비 학설과 싸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팠고, 춘화를 보는 그로 인해 더욱더 부패한 채로 떠올랐다.
1969년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그들의 환한 가계가 찾아오는 동안에도, 1959년은 어떤 것도 그들을 무기력과 불감증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한 채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야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그들의 습관을 수식했을 뿐, 아무것도 추억되지 않았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그들은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자진해 가고 그 바람에 1969년 위험한 가계의 어머니와 화자가 바라보는 동지의 불빛 세 개를 보지 못한다. 1959년과 1969년은 각각 그렇게 막을 내린다.

5
이성복은 1959년을 조립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그 봄을 오지 못하게 한 것은 그 자신이었고 어머니와 여동생의 기쁨을 짓밟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면 기형도는 직접 뛰어들어가는 바람에 봄은 한 것을 묻는 무덤임을 잠시 잊고 언제인지도 모르는 봄을 다시 한 번 기다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되려 그러한 기다림을 통해 그의 유년의 상처는 아버지의 병이나 가난이 아닌, 오지 않는 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후에 그들은 "친구들이 유행가를 부르며 사라져"가는 동안 "지은 죄에서 지을 죄로" "끌려가고" "달아날수록 사막은 가까"워 오는 것을 경험하는가 하면, 친구들이 "감옥과 군대로 흩어"지는 목련철이 오면 혼자 남겨져서는 "일찍이 어느 곳에" 스스로를 "묻어두고" "어지로운 이파리로만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모두가 낫는 날이라고 믿었던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끝없는 동굴 같은 것이 마음 속에 깊어"가도록 "붙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인생을, "가엾은" "사랑"을, "촘촘한 내 괴로움에", "빈 집"에 가두어버린다. 이처럼 유년기에 대한 기억 방식과는 달리 그들은 이후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하다가도 다른 인식들을 낳는다.

이쯤 되면, 앞에서 언급한 김현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대체 낙관적인 미래 전망과 도저한 부정적 세계는 누구, 누구에게 나누어 붙여줄 수 있는 이름이란 말인가. 물론, 이 시인들의 시 한 편씩만 가지고서 그 이야기를 뒤집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의 시에는 있는 것이 누구의 시에는 없다기보다, 그 '누구의 시'를 구성하고 있는 기억이 언제적 것인가, 혹은 그 기억을 언제, 어디에서 불러들이고 돌아가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그 시인들의 말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는 시인들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의 기억력 혹은 그 당시에로의 복귀 능력, 그리고 조립 방식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제기한 맞고 틀리고, 믿고 안 믿고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또 생기는데, 그것은 읽는 이가 맞장구를 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김현은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영원히 닫힌 빈 방의 체험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라는 해설에서 "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ㆍ내적 상처를 반성ㆍ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개인적ㆍ내적 상처를 반성ㆍ분석한다는 것은 위에서 본 것처럼 무척 고통스럽고 차갑다. 그 고통스러운 작업 위에 부여된 보편적 의미가 1959년이나 1969년이 아닌 시절을 사는 사람에게도 뼈가 저릴 만큼의 무게로 실려온다는 것, 그것이 지독한 시인 이성복과 기형도의 같은 점이라면 같은 점일까. 좋은 시인일수록 잔인하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새삼스럽다.

+) 「1959년」과 「위험한 家系ㆍ1969」를 주요 텍스트로 삼았기 때문에 인용부호는 이 두 시를 제외한 나머지 인용시 구절에만 붙였습니다.

나를 칭칭 감아 내 몸을 조여오는 상처.
이제 졸업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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