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지난 화요일, 바람을 맞는 바람에(하루 전 날 연락을 해줬으니 엄밀히 말하면 바람은 아니지 말입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굉장히 멋진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못 만난 바로 그 친구와 다시 약속을 한 오늘, 역시 하루 전 날 연락이 와 만날 수 없겠다고 해서 집에나 가야지 했던 오늘, 지난 주 그 사람의 제안으로 또 다시 귀여움 쩌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님의 분석처럼, 화요일은 확실히 표가 팔리는 날인 듯 합니다).
없는 의미를 어거지로라도 두기를 취미로 삼고 있는 저는 이 이상한 반복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히 탐구해볼 작정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은 처음 봤습니다. 그럼에도 한 눈에 그의 색깔이 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인(으응?) 이 영화는 십대(그것도 아주 초반) 문제아들의 사랑의 도피행각을 다루고 있습니다.
카메라 기법이 아주 고전적이고 직설적입니다. 마구 들이대고, 대놓고 훑고, 거침 없이 당깁니다. 1965년이 배경인 이 영화에 딱 그 시대가 느껴지는(직접 살아보진 못했습니다만) 클래식한 느낌을 주기에 이 카메라 워킹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돕니다.
줄거리는 이렇게 단순하지만 줄거리를 제외한 영화 속 모든 것들은 아주 치밀하게 배치돼있고, 예쁩니다. 지난 주 봤던 더 헌트에서의 남주는 멋있지만 현실에서 내가 갖고 싶지는 않았다면, 여기 나오는 모든 소품들은 다 너무나 갖고 싶은 것들 뿐입니다.

쌤이 캠핑장에서 꼼꼼하게 챙겨 바리바리 싸짊어온 캠핑도구(텐트 넘 귀여워요)하며, 가출하는 그 순간에도 굳이굳이 들고온 수지 동생 소유의 턴테이블, 고전적인 표지의 책들은 정말 탐이 납니다. 사실 수지가 버리고 온 수지의 방? 혹은 수지와 동생들의 2층 놀이터? 역시 정말 근사합니다. 수지가 올라가 긴 다리를 쭉 뻗고 책을 보던 그런 공간이 제게도 있다면 하루에도 백 권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쌤이 버리고 온 캠핑장의 텐트들과 마치 실제 방처럼 꾸며놓은 에드워드 노튼의 본부(?) 텐트 안의 공간도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겨우 열 두 살인 주제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돋은 데다 장난기 대신 진지함과 책임감으로 무장한 멋진 마초남 쌤과 실제 그 시대풍의 미인 느낌 물씬 나는 다소 다크한 느낌의 섹시녀 수지는 굉장히 어른스럽습니다. 그들의 사랑 또한 오히려 어른들의 그것보다 성숙하죠.
그래서 영화 속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오히려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두 아이를 보며 웃었지만 보다보니 그들의 도피에 어떤 절실함과 진정성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부분은 풉, 훗, ㅎㅎ 정도의 웃음이 지속적으로 유발되는, 블랙 코메디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너무 쌔까맣지만은 않아서 그레이 코메디(?;) 정도로 이름 붙여주고 싶은 그런 유우머들이 주로 구사됩니다(물론 쇼생크탈출의 오마주 장면이나 트랜폴린이 등장하는 장면처럼 빵터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도 굉장히 중요하게 쓰이는데, 여기에 관해서는 반드시 끝까지, 극장에서 불을 켜줄 때까지 끝까지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일 듯 한데, 예쁜 거 좋아하는 분들은 자신의 심미안과 욕망을 기분 좋게 테스트할 수 있는, 분명히 귀엽고 기분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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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오는 참입니다. 그러고보니 올들어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입니다. 이런 거에 뭐 의미를 두나 싶지만 저는 원래 의미를 어거지로 만들어서라도 두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어쨌든 새해 첫 극장영화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 기쁩니다(라고만 하기에는 한없이 찜찜하기도 합니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치밀어오르는 짜증과 답답함과 억울함을 참느라 온 몸 근육을 고루고루 다 썼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운동을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무서운 것은 티비광고에도 나오는 것처럼 가장 무서운 것은 나라는 점입니다.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지막 한 명이 내가 아니라는 말을 못합니다.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에게 누가 될까 디테일한 것들 하나하나를 다 언급하지 못해 아쉽지만, 또 언급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루카스가 택시를 타고 돌아오던 숲길과 교회에서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친구인 테오를 응시하던 루카스의 뜨겁고도 따가웠던 시선은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군요.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그의 필모를 찾아보고는 올레티비로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를 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남주의 연기와 그 캐릭터에 반했지만 현실에서만큼은 결코 그와 같은 성격의 남자와 연애나 결혼을 하지는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은 저희 엄마가 기뻐하실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덴마크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건 크게 달갑진 않습니다.
레미제라블과 라이프오브파이를 즐겁게 보신 분들, 이제는 이 영화를 보시면 참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강추 한 번 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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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는데 선생님의 연락이 와 있었습니다. 집으로 이성복,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었는데 누나가 없어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확인을 해보니 핸드폰에 음성메시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나 이성복이다, 학교로 한 번 찾아오너라. 내 연구실 전화번호는. 이라는 비교적 짧고 간결한 메시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 심장의 쿵쾅거림은 길었습니다.

 

여름방학, 비교적 한산한 캠퍼스를 지나 선생님의 연구실로 갔습니다. 응 그래 와서 앉거라. 저는 긴장된 마음으로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던 걸로 기억합니다(10년 전의 일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문장 뒤에는 '...으로 기억합니다'라는 문장이 들어가야겠지만, 거추장스러우니 이제부터는 생략하겠습니다) 맨날 머리모양이나 바꾸고 농땡인 줄 알았더니 너 과제를 꽤나 잘 했더라?라고 운을 떼십니다. 뛸듯이 기뻤지만 저는 수줍어 얌전을 빼고 앉아있었습니다. 그 때도 지금과 비슷한 말습관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정말요?'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당시 선생님이 내어주신 과제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기형도 시인의 <위험한 가계 1969>와 이성복 선생님의 <1959년>이라는 두 시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조금만 손보면 당장 발표할 수도 있겠다는 엄청난 칭찬을 해주셨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직접 가르친 제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점심시간 직전 선생님의 수업이 있는 날이면 채식을 시작하신 선생님이 즐겨가시던 학교 후문 근처 비빔밥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곤 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워낙 이성복 선생님 이전의 이성복 시인을 좋아했던 터라 그네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가끔 약속이 있거나 해 저를 부르지 않으시면 그것이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많이 물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하게 됐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한 살 위셨던 선생님은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는 고마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물론 워낙 대시인이고 존경하는 스승이라 아버지만큼 편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아버지처럼 의지가 됐습니다. 졸업식 날 찾아가서 받은 꽃다발을 드렸더니 그 때 준비해두셨던 봉투를 꺼내 제게 주셨습니다. 졸업 축하한다며 정말 아버지처럼 용돈을 넣어주셨던 겁니다.

 

선생님은 늘, 모든 꽃이 장미일 수는 없지만 장미가 아니라도 세상에 예쁜꽃은 얼마든지 많다며 늘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글을 쓰기를 바라셨습니다. 스웨덴에 공부하러 가서 예정된 6개월만에 돌아오게 됐을 때도 너무 빨리 오는 것 아니냐며 좀 더 남아서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고, 졸업 전에는 졸업하면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 만나며 자극받아 글을 쓰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일하고 있을 때도 공부는 계속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시고 몇 번이나 선생님 지인과 제자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일년에 한 두 번 연락을 드리고 찾아뵈면서 어쩌다보니 서울에 와서 일을 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서른이 넘어버렸습니다. 공부하지 못하고 돈벌이만 하며 사는 모습이 부끄러워 마음과는 달리 연락도 자주 드리지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동안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습니다.

 

작년에는 만나뵙기로 한 날 선생님께 다른 일이 생겨 만나지 못하게 됐습니다. 곧 다시 찾아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1년 가까이 또 시간은 갔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선생님의 10년 만의 시집 출간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두 번 해도 받지 않으셔서 문자를 남겼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전화를 금방 받으시고, 문자 답도 금세 해주시던 선생님이었는데 어디 멀리를 가셨나, 시집을 내시고 인터뷰로 바쁘신가 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줄도 모르고 선생님이 화가 나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 두어 번의 메일을 주고 받았고 저는 다시 선생님께 연락드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를 귀이, 예삐 여겨주시고 신경써주시던 선생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저는 조금이라도 빨리 선생님을 다시 뵙고픈 마음 대신에 선생님의 [래여애반다라]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지금도 천천히 82편의 시 한 수 한 수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어떤 시를 읽을 때는 선생님이 그대로 떠올라 웃음이 터지고 또 어떤 시를 읽을 때는 선생님이 그대로 떠올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하고 섬세하신 분이 이렇게 한 순간 한 순간, 하나하나를 다 보고 느끼며 기억하며 사시는구나 생각하니 그것 또한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인의 숙명이라고 해도 선생님은 제게 아버지같은 선생님이니까요.

 

저는 그 전에도 그랬듯이 이렇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늘 선생님이 제 곁에 계시다고 생각해왔듯이 그렇게 조금은 여유있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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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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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처럼, 이 시집은 시인에게 총결산과 같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젊은 시인의 모습과 예순이 넘은 현재, 그리고 마치 왼쪽 콧구멍과 오른쪽 콧구멍의 사이와도 같은 그 사이 굴곡까지 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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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샬리마르
살만 루슈디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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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책이다. 이상한 책을 읽으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상한 책이 왜 이상한 책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상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이겠고, 그래서 지금 쓰는 이 이야기는 서평이라기보다는 그냥 경험담 정도가 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10 8 13일이고 다 읽은 것은 2012 10 16. 무려 2 2개월에 걸쳐 책을 읽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서두와 인물들과 궁금한 내막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신나게 책을 읽어 내려가지는 못했다. 조금은 낯선 배경들과 이름들이 주는 무게의 영향이었나.

 

읽기 시작한 책이 잘 안 읽히는데도 끝까지 읽고 난 후 다른 책을 보려고 하면 책 읽기가 조금은 숙제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일단 내려놓고 다른 책도 열어보곤 했다.

 

그 해 10,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최종면접이 있었다. 현재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면접관이 물어봤다. <광대 샬리마르>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운의 땅 카슈미르에 대한 이야기와 그 땅에서 시작된 비장한 복수극에 대한 이야기. 그 면접에서 떨어졌고, 사상검증에 대한 실제의 피해경험과 그로 인한 피해의식으로, 어쩐지 <광대 샬리마르>라는 이 책과 살만 루시디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논리적으로 연결할 수 없어서 분명하게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 거의 2년 가까이 이 책을 이어보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그런 감정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년 후 다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때 그 이상한 경험을 한 것이다. 일반적인 사건의 형태로 겪은 일이라기보다는 감정적 경험에 가깝긴 하지만, 마치 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책의 세월을 함께 겪은 것 같은 강렬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광대 샬리마르>는 광활한 공간과 짧지 않은 시간을 다룬다. 인도 카슈미르 지방 일대와 1990년대의 로스앤젤레스가 주 배경이다. 광대 샬리마르가 막 연애를 시작했던 풋풋했던 시절부터 전 주인도 미국대사 막스 오퓔스의 운전기사가 되어 나타나고, 이후 인디아 오퓔스가 다시 카슈미르에 당도할 때까지의 이야기다.

 

인도 중에서도 카슈미르, 미국 중에서도 로스앤젤레스라는 구체적인 공간이 드러나있음에도, 몇 대에 걸친 가문의 역사를 다룬 우리나라 대하소설들에 비하면 어쩌면 짧은 시간임에도, 흔히들 이 작품을 평할 때 쓰는 마술적 리얼리즘때문에 어쩐지 더 넓고 긴 시공간을 관통해온 기분이 든다.

 

바로 그 기분이 내가 실제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해 읽기를 끝마치기까지 걸린 2 2개월이라는 시간과 겹쳐져 마치 내가 이 책 속에서 그 인물들과 그 시간을 살아낸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했다.

 

광대 샬리마르와 그의 영원한 사랑 부니, 막스 오퓔스와 인디아 오퓔스 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개인사들은, 그 당시 역사와 오묘하게 맞물린다. 미국의 대 테러리즘 정책 하에 특히 제3세계에서 행해진 수많은 작전(?),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종교적 갈등과 일시적인 화합, 이후 인도군과 반군 간의 잦은 충돌은 작은 파치감 마을의 평온을 완전히 뒤흔들어놓고 모든 것이 불행과 파국을 향해 교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결국 이 커다란 역사적, 세계사적 프레임은 그저 젊고 발랄한 한 개인인 인디아 오퓔스에게 어느 날 갑자가 충격적이고 불행한 사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의 엄마는 왜 저렇게까지 망가졌을까, 나의 아버지는 왜 이렇게 죽어야 했을까 하는 고민과 번뇌는 일시에 폭발하는 형태를 취하긴 하지만, 그저 자연인으로서의 인디아에게는 결과로 드러난 이 비극 이면에 얼마나 많은 개인들의 희생과 역사의 소용돌이가 존재하는지를 우리 독자들은 안다. 결국은 인디아도 알게 된다.

 

언젠가 올가 시메오노브나는 사랑이란 본래 슬금슬금 기어 들어오는 거라고 경고했다. "고놈은 네가 보고 있는 곳에서 다가오지 않는단다. 네 왼쪽 귀 뒤에서 슬그머니 기어 올라와 돌멩이처럼 냅다 머리를 후려칠 게야."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인디아가 고통 속에 그 많은 진실들과 마주하는 그 순간에도 또 사랑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노만(광대 샬리마르)과 부니의 사랑에서 출발했는데(또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복잡한 역사적 맥락에서 출발했을 텐데), 인디아는 그 비극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는 와중에도 사랑이라 생각되는 감정을 맞닥뜨린다.

 

올가 시메오노브나(책 읽기가 힘들었던 요인 중 하나가 소리 내어 몇 번을 읽어보지 않으면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들이기도 했다)가 말한 것처럼, “왼쪽 귀 뒤에서 슬그머니 기어 올라와 돌멩이처럼 냅다 머리를 후려치는 데에는 도리가 없으니까.

 

"저이는 사는 데 지쳤어. 죽음이 참 잔인도 한 것이, 우리 어린애들이나 한창때인 남정네, 여자들은 잘도 데려가면서 정작 매일같이 자기한테 오라고 비는 사람 소원은 무시한다니까."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한 몸이라고 했던가, 불멸의 사랑이었어야 했을 사랑에서 비롯된 비극은 이렇게 수많은 죽음과 죽음충동과 죽음에 대한 욕망을 낳고, 결국 광대 샬리마르와 인디아는 또다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만이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그야말로 폭력적인 현대사와 비극적인 개인사가 복잡하게 얽힌 대서사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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