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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식기장 - 제15회 한무숙문학상 수상작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이 작품(<신기생뎐>)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일단 스토리 자체가 기막히다. 구성은 상대적으로 단순하지만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지루할 틈이 없고 어디 한 군데 빈 구석이 없다. 큰 줄거리 안에서 작은 이야기 조각들이 차례차례 맞아떨어진다. 또한 말맛이 기막히다.’
이 문장은 처음 <신기생뎐>을 읽고 내가 적었던 리뷰의 한 대목이다. 그랬다. 21세기의 기생들에 대한 아름다운 찬가였다. 그래서 궁금했었다. 이현수라는 작가…… 사실 그렇게 기대하다가 다음 작품을 읽고 실망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 소설집은 이현수의 문학적인 힘을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한, 두 작품을 빼고는 두 번씩 읽었다. 그만큼 그 문장력이 좋았고 인생을 풀어내는 솜씨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작품집엔 과거와 현재가 그 시간을 기억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풀어지는 인생의 이야기들이 깊이 있게 다뤄져있다. 두 작품을 빼곤 수없이 밑줄을 그었다. 곱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문장들이 내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와 함께 그 삶들의 깊은 속까지 함께 들어가 그들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나온 것 같다.
<추풍령>에서는 퀴퀴하고 낡은 냄새가 걸죽하고 든든한 감자탕 속에서 함께 풍겨 나왔다. 추풍령의 기억은 감자탕과 시작된다. 흔히 말하는 남자가 아닌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남자의 부재가 어떤 삶을 살게 했는지, 그 삶이 어떤 의미였는지 보여준다.
‘남자가 없다는 건 말이지. 엄마가 없고 아빠가 없는 그런 단순한 없음, 상실이 아니야. 존재의 증명 자체가 힘든 거지. 한 세계가 이유 없이 문밖으로 밀어내고 죽을힘을 다해도 닫힌 문은 열릴까 말까 하는 것. 남자가 없는 건 그런 거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추풍령>
<장미나무 식기장>은 세월이 가고 시간이 가도 집의 근본적인 목적은 살아가는데 있다는 걸 일깨우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삶의 근본을 잊고 허상과 외면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웰빙이다 뭐다 해서 우리는 점점 우리 자신의 근원을 잊고 삶의 근원을 잊고 집의 근원을 잊고 사는 것이다. 애매해진 쓸모로 인해 어떤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상이 어머니 삶을 대변했듯 장미나무 식기장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제 나는 어머니의 눈으로 장미나무 식기장을 보고 있다. 책상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그냥 책상이 아니었듯 장미나무 식기장이 내겐 그냥 식기장이 아니었다. 식기장을 열 때마다 달콤한 장미향이 아니라 텁텁하고 쌉싸래한 감나무숲의 냄새가 난다. 이 식기장이 있는 한, 불에 타 없어진 책상과 함께 우리가 거쳐온 여러 집들과 그 집에 얽힌 역사와 소소한 일들을 나는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오피스텔과 아파텔의 등장으로 집이 필요 없는 새로운 종족이 출현했다고는 하나, 번개가 치듯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생의 한순간을 오롯이 기억하자면 그들도 대책 없는 큰 책상이나 수퉁스런 장미나무 식기장 하나쯤은 가져야 하는 것이다.’ -<장미나무 식기장>
지리멸렬한 내 삶은 <태중의 기억>과 함께 시간과 함께 흘러갈 것이며 <남은 해도 되지만 내가 하면 안 되는 것들의 목록>에서는 힘겹고 어려운 진짜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편한 가짜의 삶을 선택한다. 그게 우리인 것이다. 시간과 세월 속에 묻어나는 삶의 모습이 간혹은 아프고 또 간혹은 참을 수 없다.
* 작가에게 한마디: 책값,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작가의 말 참조) ^^;; 감사한 마음으로 두 번씩 읽었던 작품들, 이렇게 아깝지 않은 작품들, 어찌 한 번의 쉬운 독서로 끝낼 수 있었겠습니까? 행복한 마음으로 다음 작품,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