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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김중미 지음, 송진헌 그림 / 창비 / 2001년 11월
평점 :
이 책을 빌렸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 유명세에 질려서 계속 미뤘던 책이다. 그런데 맨 앞 장에 그렇게 씌여 있었다.
“아들들아, 즐거운 방학, 건강한 방학을 위해 파이팅! 지금도 우리 시대에 춥고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 많단다.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고 절제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살기 바란다. 2002, 1. 엄마가”
이 책이 나온 게 2001년이라니 놀랐다. 처음에 괭이부리말(인천의 가난한 달동네)을 묘사하는 대목을 보고는 1970년대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IMF가 나오고... 세상에... 그렇다. ‘엄마가’ 얘기했듯이 요즘 이 시대에도 춥고 어두운 곳에서 이렇게 힘들고 고단하게 사는 이웃들이 많았던 거다. 요즘이 IMF 때보다 더 힘든 때라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싼 레스토랑에는 예약을 안 하면 자리가 없고 백화점엔 사람들로 넘쳐난다. 힘든 건, 정말 힘든 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지병을 달고 살고 가족이 헤어지지 않으면 달동네를 벗어날 수조차 없다. 경제 성장, 개발이라는 정책 뒤에 여전히 힘없고 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 이웃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편 너무 속상했다. 그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있어서 말이다. 동화라기보다 정말 험난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이들을 정말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 정말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 따뜻해졌다. 그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험난해도 작은 꽃씨 하나가 봄을 알리듯이 희망의 햇살을 간직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명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자신에게 물었다. 아직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듬직한 형이 되는 것이 작고 보잘것 없는 꿈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명희는 또 숙제가 밀린 아이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명희의 마음은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진정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점차 가벼워진다.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다 떠나고 난 집에 형제만 사는 동수와 동준이 가족, 그 형마저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며 본드를 한다. 숙자와 숙희네는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사는데 늘 술에 쩔은 아버지를 보는 게 싫어 좁은 골목을 헤매고 다닌다. 엄마가 마음을 잡고 돌아오자 이번엔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암을 앓으면서도 아들에게 짐이 되기 싫고 한 푼이라도 더 남겨주기 위해 영호아저씨 어머니는 앓다 돌아가신다. 어눌해서 아버지한테 폭력을 당하는 명환이는 그나마 챙겨주는 동수를 만나 본드를 함께 한다. 호영이는 일본으로 일하러 가는 아버지가 영호네 집 앞에 버리고 간 아이인데 늘 먹을 것에 집착한다. 혼자 남은 영호아저씨는 동준이를 보살펴주고 숙희, 숙자와 함께하는 동안 가족 같은 느낌을 받으며 어떻게든, 뭐든 함께하려고 애쓴다. 괭이부리말 출신 선생님인 명희는 어떻게든 그곳을 잊으려던 선생님이었지만 영호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머리로만 선생님이었던 자신을 점차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진정 괭이부리말로 돌아오는 마음 따스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있기에, 서로 부대끼며 서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기에, 그 안에서 비록 생물학적인 가족은 아니더라도, 진짜 가족처럼 외로움을 나누고 문제 해결을 하고 기쁨을 나누는 가족의 따스함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춥고 어두운 곳에 사는 이웃들에게도 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 느낄 수 있는 정과 행복은 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스테이크에서도, 백화점의 명품 가운데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귀한 세상인 것이다. 올해부터는 누구도 외로움 타는 일 없이, 밥 굶을 일 없이 온전히 가족이 함께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