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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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80년대였던가. 그리 오래 되었던가. 분명 어릴 적에 겪었던, 티비에서 무수히 봤던 장면이었건만, 이젠 과거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 적이 있었지... 그렇게 추억하는 과거였다.
우리에게 군부 정권이 있었다. 독재자가 있었지. 민주화를 외치던 많은 학생들이 잡혀가고 고문당하고 둑음까지 당했다. 전쟁 가능성이라는 함정으로 위협을 가하며 국민을 복종하게 만든 정부였다. 공산당에 저항한다며 반공이라는 이념을 만들어냈고 북한 주민을 모두 빨간 얼굴에 도깨비 뿔을 달게 만들었다.
이 만화는 만화가 아니었다. 우리의 지나간 과거이며 현실이었고 우리의 삶이었다. 우리에겐 이제 과거의 영상으로만 남은 6월 항쟁이지만 이 만화는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형제, 자매, 어머니... 가족의 이야기였다.
그게 20년도 더 된 일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살았다. 책을 다 읽고 책장에 그냥 꽂았었는데 이번 쌍용사태를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그들은 전쟁을 하고 있었으니까. 질 게 뻔한 전쟁이었지만 그들은 100도씨로 끓고 있었다.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들의 가족을 위해.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아직도 이 사회에선 불균형, 불법, 반사회적인 행태들이 자행되고 있다. 정부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체제 보존을 위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희생을 치렀고 또 아직도 100도씨로 끓을 사람들이 있지만 말이다. 이건 결코 잊어선 안 될 우리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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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저리 스티븐 킹 걸작선 10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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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깜짝 놀래키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긴장시키는 것도 그렇고 나중에 다 보고 나서 여파가 남는 것도 싫다. 그런데 공포물을 읽는 것은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공포스러운 소리나 급작스럽게 바뀌는 화면 같은 게 순식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아마 더 겁이 나는 것 같다. 책엔 설명이 되어 있고 그 설명을 읽는 내 눈이 그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긴장감은 떨어지는 것 같다. 이에 공포물을 대하는 건 어쩌면 책이 나을 수도 있겠다.

공포물에 사실 드라큘라나 귀신이 나오는 것보다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황당한 짓을 저지르는 장면이 더 무섭다. <추격자>에서 그 남자의 조카가 나타났을 때, 나, 기절하는 줄 알았다.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도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다 본 건 아니고, 그 무섭게 생긴 여자가 작가에게 집착하고 심지어 다리를 자르는 것 정도가 기억에 남아있다. 그것 만으로도 공포에 질릴 만하다. 다쳐서 꼼짝 못하고 고통이 너무 심한데 약을 미끼 삼아 작가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애니,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그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아, 맙소사...

“폴, 당신은 나에게 목숨을 빚졌어요.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그것을 마음속 깊이 새겨 두면 좋겠어요.”

심한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애니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애니가 분명 미친 걸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 미치광이 애니는 멍청한 여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아, 세상에...

멀쩡해 보이다가도 언제, 어떻게, 무슨 말 한 마디로 애니의 정신세계에 변화가 급박하게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침대에 꼼짝 없이 붙잡힌 작가는 자신의 작가 세계, 몸 심지어 목숨까지도 담보 잡혀있는 것이다.

사실 대충, 스토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말이 가물가물했었다. 작가가 어떻게 되는지, 애니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나니 책을 산 게 아깝지는 않았다. 웃긴 건, 나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의 주인공 여자 애니가 미저리인 줄 안다는 것이다. 미저리는 작품 속 작가가 쓰는 시리즈 물의 주인공 여자이다. ^^;; 그 공포의 여주인공은 애니였다.

내가 만약 그런 여자한테 그 작가처럼 붙잡혔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요즘처럼 스토킹도 많은 시절에 유명 작가들은 모두 불안에 떨어야 하지 않을까. 미쳤지만 멍청하지는 않은 이런 독자한테 어느 날 붙잡히면 어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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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8-0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런가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저도 영화로 봤거든요. 그런데 애니가 미저리라는 생각이 잘 안 고쳐져요.
영화 나름 수작이란 생각은 하는데 저도 공포물은 그다지...
지금 다시 보면 별 감흥은 없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저도 그런 생각해요.
소설가들이 없는 얘기 못하고 있는 얘기하잖아요.
나중에 어떤 사람이 왜 내 얘기 썼냐고 시비걸 것 같아 걱정되드라구요.ㅜ

진달래 2009-08-0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성석제 얘기 생각나시죠?
쓰기만 하면 딱 소설감인데.. 주변인 얘기라서 못 쓴다구요. ㅋㅋ

ㅋㅋ 미리 양해를 구하시면 어떨까요?
소재는 따왔지만 사실 나머지는 내 상상력이다.. 뭐, 그렇게요. ^^;;
또 어차피 똑같이 쓰진 않을 거잖아요.
따지면... "어머, 이거 너야?" 그럼서 모른 척.. ㅋㅋ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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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특히 공포소설로 유명한 스티븐 킹에 대한 얘기는 예전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난 그가 그냥 베스트셀러만 양산해내는(!) 그저 그런 작가인 줄 알았다. 흔히 말하기 좋아하듯, 대중적인 인기나 얻은 소설 작가로 치부해 버리고 전혀 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던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했는지. 왜 그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물론 그의 책들이 어떤 책이나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불완전함까지도 받아들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암튼 난 반대로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의 다른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 책이 다른 책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언뜻 제목만 보면 글쓰기에 대한 재미없는 이론서 같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어떤 소설보다 더 재밌게 읽었다. 그의 문장이나 성격, 재치, 유머에 맞게 그만큼 번역도 좋아서 더 즐겁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엔 글쓰기에 대한 이론과 실제가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이력서라고 이름 붙인 첫 장에서 킹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과정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작가로서의 자질 얘기를 한다. 만들어지는 자질이 아닌 타고난 자질에 대해서. 하지만 실망할 건 없다. 우리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씩은 모두 그러한 재능을 갖고 있으며 그 재능은 얼마든지 갈고 닦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얘길 하고 있으니까. 아이디어는 누구에게나 떠오를 수 있다. 다만 그걸 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아이디어를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글을 쓰고 도전하고 실패했다. 그는 갖가지 일을 하며 동시에 글을 썼다. 재능 탓, 시간 탓, 일 탓, 즉 환경 탓 하지 말란 소리다. 이왕 쓴 글이 자기만을 위한 글에서 남에게 읽힐 글이 되기 위해선 가차 없이 수정을 가하라는 얘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문을 닫을 것, 글을 고칠 때는 문을 열어둘 것.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곧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마약에까지 빠졌다. 그런 모든 일들을 극복하고 글을 썼다. 그래도 그가 해주는 하나의 충고가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쓰고 싶어도 글보다는 당신 인생이 먼저라는 얘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또한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하기 전에 그는 글쓰기에 대한 본질을 얘기한다. 글쓰기의 본질을 모르고 글을 쓸 바에는 차라리 다른 일을 하라고 얘기해준다.
‘경박한 마음으로 백지를 대해서는 안 된다.’ 즉, ‘글쓰기는 인기투표도 아니고 도덕의 올림픽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다. 그러나 글쓰기란 세차를 하거나 눈화장을 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일이다. 여러분이 글쓰기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진지해질 수 없거나 진지해지기 싫다면 당장 이 책을 덮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를테면 차를 닦는 것도 좋겠다.’
차를 닦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 책의 나머지 부분도 살펴보시길 바란다. 나, 쉴 새 없이 밑줄을 그으며 이 책을 다 읽었다. 연장통에서 말하는 부분은 사실 영어를 염두에 두고 쓴 내용이라 우리가 볼 때 약간의 괴리감도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도움 되는 부분이 많다.
창작론에서 킹이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나중에 다시 한번 하는 얘기는 ‘많이 읽고 많이 쓰라’는 것이다.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또한 성공의 비결, 글을 어떻게 쓰는지, 글쓰기에 뭐가 필요한지,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 좋은 플롯은 무엇인지, 등장인물은 어떻게 만들어내야 하는지, 스토리가 무엇인지, 묘사와 내레이션은 무엇인지, 좋은 대화문은 어떤 것인지, 상상력은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들은 무엇인지, 쓰는 동안은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 메모는 어떻게 쓰이는지, 배경스토리는 어떻게 배치하는지, 자료 조사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하지만 겁내지 마시라. 이런 이야기들이 무턱대고 나오는 게 아니다. 실례를 들어가며 정말 적절하게 소설적으로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교훈들은 스스로 찾아 익혀야 한다.’
글쓰기를 잘 하는 데엔 특별한 비법도, 지름길도 없다. 우리 모두 안다. 문제는 실제로 글을 쓸 때 깨닫지 못하거나 이 말이 진심으로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좋을 글을 쓰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시 한번 되새기는 것이다. 그가 인생의 중대한 고비를 넘기고, 정말 그의 삶만큼이나 글이 끝날 수 있었던 시기를 지나고 나서 말하는 글쓰기의 목적에서 글쓰기의 본질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이 책의 일부분은-어쩌면 너무 많은 부분이-내가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다. 나머지는-이 부분이 가장 쓸모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허가증이랄까.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여러분도 해야 한다는, 그리고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도 해내게 될 것이라는 나의 장담이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 창조적인 예술이 모두 그렇듯이, 생명수와도 같다. 이 물은 공짜다. 그러니 마음껏 마셔도 좋다. 부디 실컷 마시고 허전한 속을 채우시기를.’

사실 이 책, 남들에게 알려주기 싫었다. 추천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가 글을 조금이라도 잘 쓸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잘 쓰게 될 것이고 글을 원래도 잘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 책을 읽고 더 잘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도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니까. ^^;; 글쓰기에 관심 있는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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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8-0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 그런데 어쩌죠? 저도 이 책을 알아버리고 말았으니...ㅎ
진달래님이나 저나 다 같이 잘 쓸 수 밖에요.^^

진달래 2009-08-05 09:38   좋아요 0 | URL
네, 재밌게 읽었어요. ^^
ㅋㅋ 아실 줄 알았어요. 글, 잘 쓰시잖아요. ^^*

전 일단 재밌게 읽어서 좋았어요.
보통 글쓰기에 관한 책들, 어렵고 지루해서 전 잘 못 읽거든요.
소설처럼 재밌게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얘길 들으니 좋더라구요.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글이 나아진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없네요. ^^;;

잘 지내시죠? ^^

stella.K 2009-08-05 10:4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요즘엔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예전엔 이론가들이 어렵고 딱딱하게 썼는데
요즘엔 현장 작가들이 자기 경험과 스타일을 가지고
잘 쓰더라구요. 최근 김탁환도 그렇고 이승우도 그렇고
읽어보면 나름 재밌어요.
전 요즘 한승원의 책을 읽고 있는데 굉장하더군요.
이런 책 기회있을 때마다 읽어두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아, 제가 너무 아는 채를 했나?흐흐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진달래 2009-08-0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니에요. 저야 조언해주시면 늘 감사하죠.

김탁환은 아직 못 읽어봤고, 이승우 작품은 몇 개 읽었는데 좋았어요.
한승원 책도 집에 있는데 아직이네요. 근데 그 정도로 괜찮아요?
흠흠.. 이번 주말엔 한승원을 읽어야겠네요. ^^

휴가.., 네, 미리 다녀오고.. 쉬기도 하구요. ^^*
 
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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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언제나 빛과 어둠이 있다. 누군가에게 이 세상은 어떤 땐 빛으로 가득하고 또 어떤 땐 어둠으로 가득할 터이다. 공평하게 반반씩 또는 차례로 그런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죄를 지은 사람이 벌 받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이 복을 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 세상은 우리가 알듯이 공평하지 않다. 때린 사람은 발을 뻗고 자고 맞은 사람은 또 맞을까봐 겁에 질려있기 일쑤다.  

처음에 이 작품의 제목을 봤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청소년들의 열광의 도가니... 같은 걸 말하는 걸까, 막연히 생각했다. 무슨 일에든 미치고 열병을 앓듯이 사랑을 하고 또 조금은 삐뚤어지는 시기도 거치는 게 청소년들의 권리 아니던가. 그랬는데...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도가니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아픔의 도가니였고 폭력의 도가니였고 거짓의 도가니였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청소년들은 미성년이라는 것 말고도 청력을 잃은 아이들이다. 신체적인 장애 뿐만 아니라 가정도 빈곤하거나 부모를 잃은 아이, 또는 지적 장애까지 가진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거짓투성이인 어른들한테 상처 입고 그 어른들의 거짓에 더욱더 깊숙한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사랑과 보살핌이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돌아나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이는 건 어른들이고 이 사회고 이 나라다. 목숨까지도 끊게 만드는 그 상처를 누가, 어디서 보듬어 줄 것인가. 그에 맞서 싸우는 어른들이 있지만 하나 같이 이 사회의 약자이다. 권력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서로를 보호하고 힘을 더 키운다. 그들에겐 자기들의 안위와 평안만 중요하다. 그래서 그들에겐 그 도가니가 점점 더 커져간다. 그만큼 아이들의 아픔은 커져만 가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약자는 그 편을 찾기 힘들다.  

간혹은 소설이 아닌 수기 같은 느낌도 받았다. 신문에 나오는 기사 같기도 했고 또 사회면에 가끔 나는, 너무나 불공평한 이 사회에 대한 고발 같기도 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누군가는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슬픔보다는 분노가 가슴에 차오르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쪽팔리는... 한 어른으로서 정말 창피함을 느낀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 속의 진실은 안개 속에 묻혀있고 거짓은 햇살 아래 그 더러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언젠가 그 안개를 뚫고 진실이 햇살 아래 드러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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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네버랜드 클래식 24
L. 프랭크 바움 지음, 윌리엄 월리스 덴슬로우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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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보고 싶던 만화를 못 보면 둑을 것 같았다. 생일 선물로 친구들한테 만화책을 사 달라고 애걸을 했었다. 만화 월간지가 나오는 매 월 첫 날이 되면 아침부터 서점을 몇 번씩이나 들락거렸다. 그리곤 가슴 벅차게 그 월간지를 끌어안고 집까지 뛰어오곤 했었다. 그런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만화가 별로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고 판타지도 별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이 작품, 어릴 때 읽었어야 할 작품인데 놓쳤다. 그래서 이런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숙제 삼아 읽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1900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현실적인’ 판타지였다. 이런 어른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고전이었다.  

주인공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를 비롯 마법사 오즈와 날개 달린 원숭이들, 들쥐들 모두 모험과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또한 우리도 함께 길을 가고 함께 모험을 겪고 함께 고생을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멋진 환상의 세계에서 펼쳐진다.  

어느 날 낯선 곳에 떨어지게 된 도로시, 우연히 못 된 마녀를 해치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난다. 길을 가다 만나게 된 허수아비는 머릿속이 밀짚이라서 뇌를 갖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좋은 생각을 해내는 건 바로 그다. 양철로 된 나무꾼은 마음을 갖고 싶어한다. 하지만 벌레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슬픔에 눈물짓는 건 바로 그다. 겁쟁이 사자는 겁이 많아 용기를 얻고 싶어하지만 위험한 순간에 앞장을 서는 건 그다. 도로시와 일행은 마법을 가진 오즈 마법사에게 마법을 부탁하러 가지만 그의 마법보다 오히려 힘을 합쳐 못 된 마녀를 물리치고 원하는 걸 얻는 건 그들 자신들의 힘에 의해서다.  

그런 면에서 상징적인 이 작품의 힘이 발휘된다. 우린 이미 많은 것을, 많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뭔가를 더 원한다는 건,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에게 중요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도로시는 온갖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앞으로 향하고, 허수아비는 똑똑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더 생각을 하게 되고, 마음이 없다는 생각에 더 착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양철 나무꾼은 남들을 끊임없이 배려하고, 겁쟁이 사자는 점점 더 용기를 내게 된다.  

그 시대에 드러내놓지 않고 이렇게 아이들에게 환상의 나라를 통해 모험을 꿈꾸게 하고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아이들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나왔다니 놀랄 일이다. 재밌기도 하면서 교훈도 얻을 수 있는 환상 동화, 오즈의 나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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