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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J.M.G.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광대한 하늘, 땅은 회색과 황토색으로 지평선까지 뻗어있다. 가벼운 바람의 떨림도 들리고 메마른 계곡을, 붉은 바위 위를 맨발로 거침없이 달리는 아이. 대기는 향기로 가득 차 있고 그 향기는 움직이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교차하고 서로 섞이며 흩어진다. 두려움의 냄새를 피우는 작은 동물들, 뜨거운 모래 위에 반사되는 햇빛,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언덕. 발이 찢어지는 듯한 상처에 닿는 고통도 고통이 아니다. 랄라와 하르타니는 그런 사막이 집이고 고향이고 삶이다.
그런 고요한 사막의 모래 위를 오래 전에 사람들이 걸어갔다. 광야에 하늘은 끝간데를 모르고 뻗어있고 모래가 날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걷기만 했다. 사막을 온 몸으로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사막의 투사들이었다. 물눈동자인 마 엘 아이닌 그리고 청색인간들 그들이 무적의 투사들이었다. 물도 귀하고 먹을 것도 귀했지만 믿음만은 강했던 부족, 말벌과도 파리와도 함께 더불어 사는 삶, 금도 뱀이나 마찬가지인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 사막의 땅에서 쫓겨나 그들은 북으로 북으로 걸어야했다.
<그곳이 바로 그들의 진정한 세계였다. 금속과 시멘트의 도시가 아닌, 이 모래, 이 돌, 이 하늘, 이 태양, 이 침묵, 이 고통은 샘이 흐르는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들의 소리였다. 자연의 질서만이 군림하는 이곳 사막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의 주변을 한 점 그늘도 없이 걸어갔다.>
문장마다 시가 넘쳤다. 사막의 모래가 날리고 그 모래와 함께 자연의 향기가 퍼졌다. 이와 함께 두 가지 스토리가 병행적으로 우리를 대사막으로 이끌어갔다. 누르가 보는 옛날 옛적의 사막의 투사들의 이야기와 랄라가 끌고 가는 이야기, 바로 이 두 가지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적인 문장이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건조하게 눈을 아리게 하고 가슴을 후벼 파기도 했다. 이들의 침묵의 고통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럽고, 불안과 동정심을 가장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은 이들의 침묵이었다. 말을 하는 자도 노래 부르는 자도 없었다. 우는 자도 신음하는 자도 없었다. 남자들, 여자들, 발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아이들, 모두 패배자처럼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전진하고 있었다. 단지 모래를 밟는 그들의 발소리와 헐떡거리는 짧은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허리에 맨 짐 보따리를 추켜올리고, 마치 폭풍우에 스러지는 이상한 날벌레들과도 같이 천천히 간격이 벌어져갔다.>
이런 사막에서 살던 랄라에게 마르세이유라는 거대한 도시는 이상한 곳이기만 하다. 도시는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문명이 있고 자동차와 전기가 있지만 랄라에겐 공허와 비탄과 배고픔의 두려움이 있는 곳이다.
<랄라는 이런 거지들을 볼 때나 아니면, 가슴팍에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못생긴 젊은 여인이 큰길 모퉁이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조여든다. 그녀는 두려움이 무언지 예전에는 잘 몰랐다. 왜냐하면 그곳, 하르타니와 함께 있던 곳에서는 뱀이나 전갈, 때때로 밤에 그림자 속에서 손짓하는 나쁜 귀신들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공허와 비탄과 배고픔의 두려움이 있다.>
랄라는 결국 노래를 부르며 대사막으로 돌아간다. 그 옛날의 노래, 아암마가 불러주던 노래, 그녀의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이다. 그 노래는 건조한 모래사막을 자연의 향기로 깨우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노래이다. 그래서 그 노래는 생명의 노래이고 사막의 노래이다.
<어느 날엔가는, 까마귀가 흰 새가 되고, 바다가 마르리, 선인장 꽃속에서 꿀을 찾으리라. 아카시아 가지들로 잠자리를 만들리라. 어느 날, 오, 어느 날엔가는, 뱀 입 속에도 독이 사라지고,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으리. 그러나, 그날 나는 내 사랑을 떠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