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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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나오는 책마다 재밌게 읽으면서도 내가 늘 태클을 거는 작가다. 그토록 입담이 좋다는 작가다. 가질 거 다 가진 작가라 세간의 질투 아닌 질투를 받는 작가다. 내가 태클을 잘 거는 건 그만큼 좋다는 표시이면서 또 작가 같지 않은 편안함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말빨, 글빨 둑이는 그가 어쩌면 조금은 친구처럼 생각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앞에서 까불어도 되는 작가가 바로 김영하였다. 그래서 그의 좀 무거운 작품들보다는 난 가볍고 상쾌한 작품들이 더 좋다. <오빠가 돌아왔다>의 콩가루 집안 이야기, 드라마 같이 술술 풀리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최근에 젊은이들의 현대 인터넷 세상을 그린 <퀴즈쇼>까지 늘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부산 강연회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막 <퀴즈쇼>가 나왔을 때인가 보다. 비도 오는 날, 차가 너무 막혀서 늦는 바람에 도착하니 이미 강연은 끝나있었다. 그리고 강연에 너무나 어울리는 목소리까지 가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친구 줄 책 선물까지 미리 사갖고 가서 사인을 받는데, 젊은 오빠 작가답게 산 책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가계에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더랬다. 그 날, 늦은 게 미안해서 제일 나중에 사인을 받자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길고 긴 사인줄을 바라보는데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긴 생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만약 그뿐이었다면 그녀가 내 시선을 그렇게 잡아끌지 못했으리라. 난 단박에 왜 김영하가 주변의 것으로 인해 질투를 받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아내였다. 두 눈에 사랑을 가득 담고, 까무잡잡한 얼굴에서 빛이 나도록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알았다.
왜 이런 얘기를 책 리뷰에 상관도 없는데 길게 하냐고?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게 바로 그녀이기 때문이다. 그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됐기에 그랬다. 그들이 힘들게 했던 이탈리아 여행, 함께 고생을 하고, 함께 열 받아 하고, 다정한 커플처럼 산책도 하고, 예쁜 아내는 밥을 하고 작가 남편은 글을 쓰다 시간이 되면 함께 밥을 먹는 그런 시칠리아 여행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게 상상이 되어 더 좋았다는 얘기다. 그들의 현실은 우리 모두의 로망이었다.  
속된 말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김영하는 착착 잘 팔리는 책을 쓰는 작가였고, 말 빨 좋은 교수였고, 대충 분위기 맞춰주면 꼬박꼬박 넘치는 월급 들어오는 라디오 진행자였다. 그는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고 오랫동안 정착민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 안의 ‘어린 예술가’를 찾으려고 집을 팔고 짐을 모두 창고에 보관시키고 달랑 가방 몇 개 들고 이탈리아로, 캐나다로 떠난 것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 시칠리아를 여행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새로운 여행의 설렘에 재를 뿌리는 칙칙한 날씨, 철도 파업으로 기차는 언제 떠날지도 모르고, 큰 소리로 장담만 해대는 이탈리아 사람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한 시칠리아... 그곳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 축복 받은 날씨, 역사의 뒤안길까지 느껴지는 골목길, 지친 작가는 다시 글을 쓰고 다른 일상, 다른 삶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천지창조>를 두 번 보았다. 가슴 벅참과는 다르게 목이 부러질 뻔했었다. 그런데 김영하의 이야기를 읽다가 아예 바닥에 드러눕는 그런 생각을 난 왜 못했을까 후회가 됐다. 물론 그의 추측이었지만. 예전에 <사라고사의 편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시라쿠사 대목이 유난히 내 시선을 끌었다. 
아무튼 이 책은 김영하가 하는 특별한 여행기이다.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그가 들려주는 신화와 전설, 역사와 문학 이야기에 조금씩 빠져들고(간혹은 좀 지루할 때도 있다), 김영하의 시선으로 잡아낸 많은 풍광과 곳곳의 모습이 어떤 땐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어떤 땐 아름다움이 넘치고 또 어떤 땐 쓸쓸함이 느껴질 정도로 고적하다. 은밀히 기대했던 것처럼 그의 내밀한 고백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있는 그대로, 작가로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차분히 그려준 여행기였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 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그토록 한심해하던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려” 그는 떠났고 이제 어디론가 다시 흘러간다. 이탈리아의 속담을 새기면서 말이다.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그래서 결론은 곧,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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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2-03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시네요. 잘 지내시죠?
사진 제법이신데요? 히히

진달래 2009-02-05 10:44   좋아요 0 | URL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
제 사진... 말고 김영하 작가, 사진 좋아요. ^^*
 
사막
J.M.G.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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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한 하늘, 땅은 회색과 황토색으로 지평선까지 뻗어있다. 가벼운 바람의 떨림도 들리고 메마른 계곡을, 붉은 바위 위를 맨발로 거침없이 달리는 아이. 대기는 향기로 가득 차 있고 그 향기는 움직이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교차하고 서로 섞이며 흩어진다. 두려움의 냄새를 피우는 작은 동물들, 뜨거운 모래 위에 반사되는 햇빛,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언덕. 발이 찢어지는 듯한 상처에 닿는 고통도 고통이 아니다. 랄라와 하르타니는 그런 사막이 집이고 고향이고 삶이다.  

그런 고요한 사막의 모래 위를 오래 전에 사람들이 걸어갔다. 광야에 하늘은 끝간데를 모르고 뻗어있고 모래가 날리는 가운데 사람들은 걷기만 했다. 사막을 온 몸으로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사막의 투사들이었다. 물눈동자인 마 엘 아이닌 그리고 청색인간들 그들이 무적의 투사들이었다. 물도 귀하고 먹을 것도 귀했지만 믿음만은 강했던 부족, 말벌과도 파리와도 함께 더불어 사는 삶, 금도 뱀이나 마찬가지인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 사막의 땅에서 쫓겨나 그들은 북으로 북으로 걸어야했다.  

<그곳이 바로 그들의 진정한 세계였다. 금속과 시멘트의 도시가 아닌, 이 모래, 이 돌, 이 하늘, 이 태양, 이 침묵, 이 고통은 샘이 흐르는 소리와 인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그들의 소리였다. 자연의 질서만이 군림하는 이곳 사막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의 주변을 한 점 그늘도 없이 걸어갔다.>  

문장마다 시가 넘쳤다. 사막의 모래가 날리고 그 모래와 함께 자연의 향기가 퍼졌다. 이와 함께 두 가지 스토리가 병행적으로 우리를 대사막으로 이끌어갔다. 누르가 보는 옛날 옛적의 사막의 투사들의 이야기와 랄라가 끌고 가는 이야기, 바로 이 두 가지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적인 문장이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건조하게 눈을 아리게 하고 가슴을 후벼 파기도 했다. 이들의 침묵의 고통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읽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럽고, 불안과 동정심을 가장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은 이들의 침묵이었다. 말을 하는 자도 노래 부르는 자도 없었다. 우는 자도 신음하는 자도 없었다. 남자들, 여자들, 발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아이들, 모두 패배자처럼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전진하고 있었다. 단지 모래를 밟는 그들의 발소리와 헐떡거리는 짧은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허리에 맨 짐 보따리를 추켜올리고, 마치 폭풍우에 스러지는 이상한 날벌레들과도 같이 천천히 간격이 벌어져갔다.> 

이런 사막에서 살던 랄라에게 마르세이유라는 거대한 도시는 이상한 곳이기만 하다. 도시는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문명이 있고 자동차와 전기가 있지만 랄라에겐 공허와 비탄과 배고픔의 두려움이 있는 곳이다.  

<랄라는 이런 거지들을 볼 때나 아니면, 가슴팍에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못생긴 젊은 여인이 큰길 모퉁이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조여든다. 그녀는 두려움이 무언지 예전에는 잘 몰랐다. 왜냐하면 그곳, 하르타니와 함께 있던 곳에서는 뱀이나 전갈, 때때로 밤에 그림자 속에서 손짓하는 나쁜 귀신들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공허와 비탄과 배고픔의 두려움이 있다.>  

랄라는 결국 노래를 부르며 대사막으로 돌아간다. 그 옛날의 노래, 아암마가 불러주던 노래, 그녀의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이다. 그 노래는 건조한 모래사막을 자연의 향기로 깨우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노래이다. 그래서 그 노래는 생명의 노래이고 사막의 노래이다.  

<어느 날엔가는, 까마귀가 흰 새가 되고, 바다가 마르리, 선인장 꽃속에서 꿀을 찾으리라. 아카시아 가지들로 잠자리를 만들리라. 어느 날, 오, 어느 날엔가는, 뱀 입 속에도 독이 사라지고,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으리. 그러나, 그날 나는 내 사랑을 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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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의 계절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7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김영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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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인 황열병이 발병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을 피해 피난을 갔고 의회는 휴회를 하고 의원들과 심지어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도 도시를 떠났다. 여름이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아직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지도 않은 상태과 자유의 몸인 흑인들에 대한 대우도 백인과는 하늘과 땅이었고 여자들은 패티코트로 허리를 조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콜레라가 번지던 유럽의 중세 같은 무섭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열네 살의 쾌활하고 씩씩한 마틸다이기 때문이다. 남성 지배 시대가 주는 중압감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부모가 마음대로 자식들을 결혼시키는 시대였지만 우리의 마틸다는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적인 꼬맹이였다. 굳이 할아버지나 엄마를 거스르지는 않고 커피하우스 일도 열심히 돕는 마틸다는 마음속으로 자유를 꿈꾸는 아이였다. 

<할아버지 말마따나 나는 ‘자유의 딸’이며 진정한 미국의 소녀잖아. 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어. 그런 나를 누가 감히 ‘꼬맹이 매티’라고 부를 수 있겠어? 사람들은 날 ‘여사님’이라고 부르게 될 거야!>   

커피하우스의 직원이자 친구였던 폴리가 둑는 것으로 열병은 시작되고 곧 이어 온 도시가 황열병을 앓게 된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특별한 처방도 약도 없이 그저 서리가 내릴 때까지 시골로 가거나 도시를 떠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엄마가 병에 걸리자 커피하우스의 흑인요리사인 일라이저 아줌마에게 엄마를 맡기고 마틸다는 할아버지와 함께 억지로 도시를 떠나게 되지만 그때부터 별의별 모험을 다 겪게 된다. 탈진한 할아버지를 위해 물을 떠오고 딸기를 따오는 등의 장면은 <집 없는 아이>의 레미를 연상시켰다. 병은 누구나 공격하고 어떤 이는 병을 이기기도 한다. 병까지 앓고 난 마틸다는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이미 도시는 방어력을 잃은 상태였다. 엄마는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생존여부도 알 수 없고, 어느 밤, 도둑에 할아버지까지 잃은 마틸다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지구가 자전을 멈추기를 기다렸다. 해는 다시 떠오를 필요가 없다. 강물이 흐를 이유도 없다. 새들도 이제 다시는 지저귀지 않으리.>

하지만 마틸다는 그 자리에서 울고만 있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린 고아를 돌보고 일라이저 아줌마를 다시 만나 함께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원래 인간의 본성이란 극한의 상황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가. 세상의 종말을 본 사람들은 약탈과 폭행을 일삼고 심지어 살인까지도 쉽게 저지른다. 병에 걸리기만 하면 가족도 환자를 버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 실로 힘든 시기를 겪어낸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은 선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진정 자신과 가족, 친구 그리고 세상을 생각하고 한 뼘 훌쩍 커버린 성장인 것이다. 진정한 휴머니즘이 무엇인지 한번 뒤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서서히 걷히는 새벽안개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황금빛 태양이 떠올랐다. 기도와 희망과 미래로 가득 찬 거대한 열기구, 나는 일어나 치맛자락에서 게으름 탁탁 털어냈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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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내맘대로 좋은 책 연말 스페셜!

2008년에 읽은 책 가운데에서 뽑아야 하니 참 한정적이다.   겨우 124권 가운데에서 말이다.  

이래 저래 좋은 책들, 이 분야, 저 분야에서 각각의 좋은 책들이 많았지만 내가 책 안 읽는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책들만 일단 최고의 책으로 뽑아보았다. ^^;; 책 읽기 좋아하고 책 잘 읽는 친구들은 이미 다 읽었을만한 책이니까.  

 <완득이>, 읽은 책들 가운데 최고로 좋은 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책 잘 안 읽는 친구들에겐 정말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선사해줄 책이다. 일단 책에 재미를 들일 수 있다는 면에서 아주 좋다고 보겠다. 유쾌, 통쾌, 상쾌한 책읽기라면 이 책을 따라올만한 책이 없을 터이다. 또한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하겠다. ^^;;   

 

 

 

 

 <엄마를 부탁해>, 궁상맞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했던 작가의 날내가 모두 사라지고 마치 문학의 최고봉에 선 것처럼 정말 누구에게나 좋은 작품이 나왔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라 잘 풀어내기가 정말 어려웠을 터인데 구성이나 짜임새, 재미와 감동까지 모두 어우르는 좋은 작품이라 책 안 읽는 사람들을 독서의 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작품이라 추천이다. 남녀노소를 어우르는 작품이 정말 쉽지 않은 터인데, 이 작품은 여러모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품이다.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중국, 정말 이해하기 싫은 중국, 이 세상에서 제일 나중에 관광할 나라를 꼽는다면 난 서슴치 않고 중국을 꼽았다. 그런데 이 책 한 권으로 중국이, 중국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고 애정이 갔다. 진정 중국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랑하는 중국 전문가가 들려주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을 싫어할만한 단점까지도 폭 넓게 어우르는 이 책의 다정함과 친절함에, 문화와 사회, 지역 모두 함께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책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제주걷기여행>, 이 책은 단순한 여행책이 아니다. 산티아고를 걸은 재밌는 여행기, 제주올레를 만들며 겪었던 에피소드, 멋진 사진들 그리고 진행형인 제주올레 만들기 책이다. 여행이라면 무조건 외국엘 나가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이 되고 시간이 안 되어, 경비가 모자라 떠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우리의 아름다운 제주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것도 대충 2박 3일이면 제주를 다 보는 전근대적인 여행이 아니다. 제주의 풍경, 제주의 사람들 모두를, 곳곳을 발로 직접 걸으며 느끼고 보고 맛보는 여행이다. 산티아고 가기 전에 제주올레를 놀멍쉬멍걸으멍 해볼 일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무조건 추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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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9-01-1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참여하려고 쓴 건데,
에이... 트랙백을 걸라는데 그게 뭔지 알게 뭔고.
어케 하는 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 ㅋㅋ
암튼 혼자 놀기 도사가 되겠다. ^^;;

계란말이 2009-01-1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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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9-01-14 10:59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 한번 해볼게요.
그리고... 혹시나 이벤트 당첨되면 야마다님께도 선물 나눠드릴게요. ㅋㅋ 시키신대로 했는데 제대로 했나 모르겠네요. ^^;;
 
지붕 위의 신발
뱅쌍 들르크루아 지음, 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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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고독하게 살아간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잘나 보이고, 이 사람은 더 똑똑해 보이고, 또 이 사람은 더 예쁘고 저 사람은 더 부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속에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모두 외로움과 고독을 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모두 똑같이. 알랭 드 보통을 처음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사, 인간사를 철학을 통해 내게 이렇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이번엔 뱅쌍 들르크루아라는 철학자이자 작가가 이 소설로 비슷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우리의 고독을 더 잘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따스함을 더 잘 알게 해준 고맙고 쓸쓸하고 따스한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없이 빠져들 정도로 재밌고 흥미로웠다. 사실 작가가 휘두르는 문학적 펜으로 조금 휘둘리기도 했다. 왜 이렇게 지붕 위에 버려지는 신발이 많은 거야?,라는 정말 어이없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멍청한지. 각각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나레이터가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이 인물과 저 인물이 서로 엇갈리는 그런 구성이었는데, 모종의 반전처럼 중반까지도 몰랐던 것이다. 
 
한 지붕 위에 버려진 신발 한 짝을 두고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엮어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또는 동물을 암시하기도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연결된다. 이는 모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의 인생 일상 고독 허세 사랑 우정 들의 테마가 펼쳐진다. 복사기를 파는 남자는 딸이 한밤중에 깨어나 우는 바람에 다음 날 피곤을 걱정하며 아이를 재우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는 맞은 편 지붕에서 날개 없는 슬픈 천사를 봤다고 한다. 한 남자는 자신의 옛 애인 집에 찾아가 그녀의 새 애인 신발을 던져버리는 복수를 하고 추방된 불법체류자 애인을 눈물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성도 있고 유명한 문학 방송의 앵커였던 나는 어느 날 깨달음의 소리를 듣고 칩거해 그 깨달음의 근거를 찾는다. 비극적 요소에서는 배신한 친구들 때문에 지붕 위에서 둑어가는 한 남자와 그 남자와의 새로운 우정을 열어가는 젊은이가 있고 자신 곁에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기보다 첫눈에 반한 여자의 황금샌들 한 짝을 들고 그녀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의 동화 증후군이 있고 자신의 고독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는 남자를 바라보는 개도 있고 응급구조(어떤!)를 요청하느라 가짜로 심장마비까지 갖다대는 못 말리는 여든 할머니가 구조하는 멋진(그보다 더 슬프고 외로운) 소방대원 오빠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예술을 보여주는 미학적 요소의 화가도 있다.

<난 언제나, 마치 나의 운명인 듯, 이 세상의 비참함과 만났다. 내 마음과 관계없이 늘 세상의 비참함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고, 결국 그것을 내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친구들은 언제나 내가 슬프다고 했다. (...) 저녁에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바라볼 때조차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바로 하루 중 마지막으로 만나는 불행한 얼굴이었었으니까 말이다. 제일 끔찍한 얼굴은 아니지만 분명 가장 지치게 만드는, 가장 음침한 절망을 불어넣는 얼굴이었다.> -<복수심>

그렇게 다양한 세상살이에 대한 의견과 논쟁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결국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의 주제로 귀결된다. 피곤하고 힘든 현실, 그럭저럭 끌려가기만 하는 인생인데 어느 날 아이가 본 천사의 모습이 그 무기력에서 나를 깨운다. 물론 그 천사도 아이나 내가 생각한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다. 인생의 아이러니다. 마지막 챕터의 그 자살하려던 사람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결국엔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그만두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결말을 가져온다. (마지막 작가의 질문이 어이가 없다!)     

마지막 장의 그 사람이 왜 자살하려고 했는가.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이 드러난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 아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독하고 외롭다. 같은 건물 안에서 함께 살면서도 결국은 다 따로 혼자 외로워하면서 산다. 그게 이 세대의 얼굴이다. 그는 그걸 끝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여기 고집 세고 황당한, 인생을 다 살고 이젠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는 할머니가 있고 잘 생기고 착한 젊은 오빠,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있다. 할머니는 둑을 날만 기다리는 그 여분의 삶에서 의외의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한다. 그리고 젊은 오빠는 남들이 생각하는 인기 많은 멋진 삶을 살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호모이고 남자친구도 없고 어느 날 밤 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 둘이 데이트를 한다. 결국 이 세상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전혀 반대일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눈다. 구급대원이 오히려 할머니에게 구원을 받는 그런 결말... 어쩌면 그건 작가가 의미하려고 하는 바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이 세상을 향해 조금만 마음을 열어보면 나와 똑같이 고독한 누군가가 보일지도 모른다. 할머니와 소방대원이 데이트를 하듯이. 그러려면 우리 모두 자신의 고독을 바라보고 그 고독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좋아한 대목은 바로 <응급구조>였다. 쓸쓸한 가운데 퍼지는 그 따스함은 정말 감동이었다. 앞으로 외로워지면, 더 고독해지면 난 이 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뱅쌍한테서 전화가 왔단다. 밑도 끝도 없이 묻더구나. 너무도 간단하게 말이야. 오늘 비번이에요. 같이 산책하실래요? 자끄마르 앙드레 미술관에 가요. 그림도 보고 점심도 먹어요. 나갈 채비를 할 시간도 빠듯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매일같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면서 사는 사람이 정작 자기를 구해줄 사람은 없다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니.>
<왜 왔는지, 왜 우는지 묻지도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이유를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난 알 수 있단다. 그런 고독을 나도 겪어봤으니까.>
<재미있지? 왠지, 마음이 슬프면서도 행복하더구나. (...) 그래, 계속 여기 있다. 나도 이젠 혼자 아침을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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