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of the Matter (Paperback)
Emily Giffin / Griffin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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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의사인 Nick Russo는 두아이를 둔 가장으로 아내Tessa가 교수직을 버리고 육아에 전념하는걸 전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Nick은 온몸에 화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온 6살짜리 어린 환자Charlie를 정성껏 치료를 하며 보살핀다. 그러던중 아이의 엄마Valerie랑 알듯 모를듯한 애정이 싹트면서 Nick은 그녀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다.

Valerie는 싱글맘으로 변호사로 활동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아내 Tessa와는 어딘가 다른 매력을 풍기는 여성이다. nick은 결혼 7주년 파티날 valerie와 함께 지낸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한 Tessa는 두사람의 관계를 알고 충격에 빠지고 우등생으로 부모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웠던 딸.대학에서는 명망있던 교수였던 자신 그리고 유능하고 멋진 남편 사이에 잘 크고 있는 두아이들 그리고 그아이들을 돌보는데 전념했던 자신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였던것 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야기는 Tessa와 Valerie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결혼생활, 홀로 아이를 키우며 일에 몰두하는 싱글맘의 괴로움 그리고 한남자 Nick을 두고 벌이는 미묘하고 복잡한 신경전이 이리저리 오고 간다.

보스턴 외곽에 살고 있는 중상층 여성들의 삶(한명은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가정주부로 살고. 다른 한명은 남편없이 아이를 키우며 변호사로 살고 있는)을 보여 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건 신기루, 환상,환영 그리고 절실하게 원하고 바라는 하나의 소망일 뿐이라는걸 보여준다. 살면서 그 누군가와 친분을 맺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의 시선과 마음에 신경쓰고 뺏기는 그 일련의 복잡한 마음의 그물망 틈 속에서 맺어지는 사람과의'관계'가 얼마나 끊어지기 쉽고 다시 이어 붙이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 세사람의 모습(사랑과 배반 ,질투가 도사리고 있는)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valerie에게 마음을 뺏긴 유부남 nick은 나쁜남자, 불륜을 저지른, 가정을 저버린, 아내와 자식을 져버렸다고 비난받는게 마땅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논쟁과 지극히 상투적인 관점을 여지 없이 무너뜨리며 개인의 행복과 희생이 얼마나 우스운 거짓말인지 세사람의 행동과 실수가 누구든 저지를 수 있다는걸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현재 자신의 삶의 균열과 파장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을 뿐이다. 일탈을 꿈꾸지만 그건 물거품 그리고 망상일뿐이였다. 다른이들이 보는 자신의 인생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일지 몰라도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건 얇은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불안한 심정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겹겹이 두루고 또 둘러서 점점 두꺼워지는 장막 같이 답답한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누군가가 끌어당긴다고 해서 끌려 다니는게 아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끌리지 않는다. 이 책속에는 이혼의 위기 까지 치닫는 불안정한 결혼 생활, 다양한 관계속에서 빚어지는 아슬아슬한 애정 전선 그리고 일과 가정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한여자로써 제대로 살아가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진솔된 고민과 방황을 이야기 한다.

p.s저자Emily Giffin 은 로펌에서 변호사(가정문제 전문)로 활동하면서 아주 다양한 사례들과 인간 관계를 겪으며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자신과 주변인들) 이책은 그녀가 발표한 전작들 보다도 가장 먼저 썼는데 오랫동안 교정을 본 끝에 이제서야 발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작품속에는 전작품들속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간간히 보여줘서 또다른 연작 소설을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스토리들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겪고 일어 났던 일들을 썼기 때문에 허황되고 있을수 없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 일어 나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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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의 환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31
클레망 셰루 지음, 정승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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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송의 찰나의 순간에 포착된 세상, 이토록 가깝고도 아련하게 느껴질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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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The Holy War for Constantinople and the Clash of Islam and the West (Paperback)
Roger Crowley / Hyperion Books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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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오스만제국의 마호메드 2세는 유럽연안의 가장 좁은 해협에 성을 쌓고 보스포루 해협을 차단했다. 그리고 맞은편 연안에는 오래전 축조 해둔 아나톨리 성채에다가 대형 대포를 설치하고 나서 선박의 통행을 예의 주시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호메드 2세는 직접 정예부대를 이끌고 콘스탄틴 노플의 요새를 꼼꼼히 탐색하고 나서 1453년 4월2일 드디어 폭풍우를 몰고 진격하는것처럼 공격을 시작했다. 단단하게 무장한 요새들에 둘러싸였던 콘스탄틴 노플은 긴급히 방위부대를 소집해서 오스만 의 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 한다.다국적군(유럽인,아시안인)으로 구성된 오스만 군대는 대포,다양한 공격무기들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키면서 유동적이게 대응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을 아주 빠르게 고립시키자 굶주림에 지친 콘스탄티노플은 항복하고 만다.(5월29일) 마호메드 2세는 다국적 군인들의 무자비한 약탈행위를 멈추게 하고 전쟁으로 폐허된 도시를 신속하게 재건시키며 이곳을 새로운 수도 '이스탄불'이라고 공표하며 새로운 주민들을 오스만 제국에 통합,흡수 시켜 나간다.마호메드 2세는 제국의 기본 원칙과 제도를 유지 시키면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되 정복국가의 법과 관습은 그대로 유지 할수 있게 했다.과거에 지켜온 규율속에 제국전체에 적용되는 제도를 자연스럽게 편입시켜서 모든이들이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수 있게 했다.

 

해군출신의 역사학자 'roger crowley'는 1341-1371년도 사이에 일어났던 지진과 흑사병에 주목하면서 인구 변화, 자연파괴,기후변화등에 공포를 떨던 사람들이 오스만 제국에 콘스탄티 노플이 함락되면서 그들의 지배를 받은후의 삶을 집중조명했다.이슬람과 비이슬람의 대결 구도를 중앙부에 신앙조직을 만들어서 종교세를 내기만 하면 어떤 종교를 믿던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정책을 펼쳤다. 마호메드 2세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손에 넣고 나서 유럽 대륙의 다문화,다종교,다인종들을 흡수하면서 진정한 제국의 문화를 꽃피울수 있는 기반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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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mada (Paperback)
Mattingly, Garrett / Mariner Books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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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년 영국은 스페인과 해상 패권을 놓고 서로의 함대를 공격하는데 전력을 소비 하고 있었다. 1587년 봄 영국 출신의 해적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스페인 카디즈항을 기습 공격해서 배 30척을 불살라 질렀다. 그는 이로써 국가에서 인정받는 명실공히 해적이 되었는데 스페인은 함대를 보내서 보복을 꿈꿨지만 또다시 해적 드레이크가 이끄는 함대에 무참하게 패배했다.(1588년) 그리하여 최고의 무적함대 였던 아르마다, 공포의 대상이자 전세계로 뻗어있는 식민지들을 무섭게 관리 하던 그함대,1571년 오스만 투르크를 레판토 해전에서 무참하게 부숴버렸던 그 함대, 에스파냐 왕조는 남미 전대륙을 지배 하며 세계최고로 부강 국가의 위상을 떨치고 있었다. 그에비해 영국은왕위계승문제로 내분을 겪고 있었고 메리여왕이 펠리페 2세와 결혼하면서 에스파냐 왕조가 영국 왕실,카톨릭 신봉 문제로 직간접적으로 간섭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집권을 하면서 영국 국교를 신봉한다는 엄청난 카드로 반기를 들자 에스파냐 왕조는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해서 영국 왕실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나라 안밖으로 어수선하고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영국은, 다양한 이익 집단으로 뭉쳐져서 약탈과 악행을 일삼는 해적들이 활기를 치고 바다위를 떠다니면서 스페인 항구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각종 귀중품들, 식민지에서 들여온 진귀한 향료,보물들을 마구마구 훔쳐서 영국왕실에 세금처럼 헌납했다.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2세는 급기야 영국왕실에 이 해적들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엘리자베스여왕은 해적의 우두머리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주며 'sir'라는 호칭으로 불리울수 있도록 명한다. 에스파냐에 지배를 받고 있던 네덜란드가 반기를 들며 독립운동을 펼치자 영국왕조는 몰래 몰래 지원을 해주며 두나라의 관계는 악화의 길로 치닫게 된다.

펠리페 2세의 지원을 등에 업고 왕좌를 꿈꾸던 메리 스튜어트를 처형시키자 에스파냐 왕조는 단하나의 방법 전쟁으로 영국을 함락 시키려고 함대를 보낸다. 1588년 아르마다라는 대함대를 프랑스와 영국의 좁은 해협으로 가서 먼저 영국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130여척을 보내며 에스파냐는 당연히 승리 할것이라는 승전포를 터트린다. 해적단들과 애국심이라는 의지로 똘똘 뭉친 영국함대는 배의 규모 보다 스피드에 중점을 두고 일단 해협으로 들어온 100여체의 에스파냐배들을 몰아 넣고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직접적으로 맞붙지 않고 사정포의 길이가 긴 화포로 목표를 조준했다. 해적들이 타고 있던 작은 함선의 민첩함은 대형 함대가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였다. 10일간의 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는 100여선의 함선들이 화염에 휩싸이면서 바다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이로써 에스파냐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영국, 변방 섬나라 영국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들을 하나하나 접수 하며 훈장을 달은 해적들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서 태평양,인도양에 걸친 세계 대제국을 건설한 해가 지지않는 '대영제국'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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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ires of the Sea: The Siege of Malta, the Battle of Lepanto, and the Contest for the Center of the World (Paperback)
Roger Crowley / Random House Inc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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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년 슐레이만은 헝가리를 공략해야만 유럽을 차지할수 있을거라고 판단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원정을 떠난다. 베오그라드의 주요 요새들을 단번에 점령하고 그다음 군사 세력을 로도스섬으로 집결시킨다.로도스섬은 이미1309년에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이 이섬에 주둔하고나서 요새로 둔갑시켜서 막강한 해군들로 무장한 군사 요충지였다. 슐레이만은 이섬을 정복해야지만 안전하게 아프리카 대륙을 오갈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중해 동부 해안을 완전히 장악할 필요성을 느낀다. 에에 로도스섬 기사단장인 리슐아담은 이정보를 재빨리 입수하고 프랑수와1세에게 함대를 보내달라고 요청을 한다. 함대를 보냈지만 에스파냐와 전쟁 중이기 때문에 이 함대가 꼭 필요해서 잠시 주둔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슐레이만은 이모든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장작 5개월간 로도스섬을 집중공격 하기 시작한다. 기사단(700천명)들은 함대가 떠나버린 절박한 상황에 지중해안을 떠도는 해적단들에게 까지 도움을 요청하며 오스만 군대(700대의 함대)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속수 무책으로 처참하게 밀리다가 섬주민들이 목숨을 내놓고 저항하는걸 목격한 슐레이만은 이에 경탄하며 전쟁의 공을 적들인 섬주민에게 돌리고 기사단장 리슬아담과 그 부하들은 섬밖으로 내쫒고 주민들을 포로 잡거나 추방하지 않고 예전처럼 살게 하고 로도스섬을 오스만제국의 섬으로 만든다.이로서 지중해는 오스만 제국안의 둥둥떠있는 호수가 되면서 유럽전역이 오스만 투르크에 벌벌 떨게 된다.

 1536년 오스만 제국은 폴란드 국경 부터 드네프르강 하구 까지 영토를 확장시키며 그루지아와 흑해 동쪽 해안을 완전히 정복하고 아라비아 페르시안 항만 까지 접근해나가기 시작했다. 무역 상인들과 군사 첩자들을 아덴과 예멘에 대량으로 보내서 현지에서 눌러 살수 있게 도와 주면서 아프리카 북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 했다. 슐레이만의 통큰 지략과 전략으로 유럽 대륙의 주요 요충지를 봉쇄하면서 조금씩 오스트리아 제국의 왕 페르디난드의 목줄을 조여 가고 있었다. 폴란드가 오스만 제국에 착실한 정보제공과 어마어마한 조공품들을 알아서 갖다바치며 슐레이만의 비유를 마치자 그는 폴란드를 단순히 조공을 받치는 속국이 아닌 동맹관계를 맺어주면서 폴란드에 힘을 실어준다.폴란드는 오스만제국의 물류수송 담당을 하며 제국의 부에 상당한 밑받침이 되주면서 국가의 안정을 유지 시킨다.

1565년 슐레이만은 몰타섬을 놓고 또한번 기사단과 맞붙는데 30000군사들과 600명의 기사단들이 그야말로 피튀기는 혈전을 벌이며 4시간이면 끝장낼수 있을것 같은 전쟁이 장작 4개월을 끌면서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후퇴하고 만다.(기사단들은 대포와 창 칼이 없으면 부서진 나무 막대기라도 들고 완강하게 저항했다고 한다)

1570년,1571년 오스만 군대는 사이프러스와 파마거스타를 침공하는데 결과는 대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1571년 다시한번 레판토로 함대를 몰고 가서 10월5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시도 한다.이에 돈후안은 208척의 오스만 선박들을 정렬시키는동안 대포를 실은 6척의 베네치아 선박들(노를젓던이들은 모두 죄수들,대승리후 자유의 몸이 된다)이 포위해서 집중 폭격을 가한다. 오스만 선박은 30척만  도주하고 나머지 선박들은 침몰하거나 생포되어서 포로로 잡혀간다. 이 해전은 20세기 세계1차대전 해전과 비교될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전쟁으로 소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전략적으로 공격을 가해서 대 승리를 이끈 전례없는 전투 였다. 폭격을 가한지 4시간만에 오스만 투르크의 선박들이 초토화 될 정도로 그들의 엄청난 규모의 함대와 선박들이 불에 탄 종이 처럼 가루가 되어버렸다.레판토 해전을 기점으로 오스만 제국은 술탄의 죽음과 함께 한발자국 후퇴하게 되고 유럽은 전 요새 무장(성지 탈환)이라는 구호아래 똘똘 뭉치게 된다.

16세기 지중해에서 일어난 문명의 격돌(기독교와 이슬람)이 얼마나 지정학적,종교적으로 중요하고 절실했는지 실감할수 있는 전쟁이였다.  레판토가 오스만 제국에 넘어갔다면  유럽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졌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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