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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평점 :
한 남자가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있다.
그 남자 앞에 관광객들이 괴성을 지르고 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휴대폰을 들고 찍고 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그 남자는 공원 한 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스토베리 필즈
그는 지금 <스토리베리 필즈>라는 이름이 새겨진 벤치에 앉아 있다.
스토베리 필즈
바로 이곳 벤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존 레넌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곳으로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가 작곡한 노래의 이름을 벤치에 붙여 헌정했다.
점점 모여드는 관광객 틈 속에 끼여 버린 그 남자는 관광객들이 서로 앞다퉈 사진을 찍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IMAGINE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며 만든 곡 IMAGINE의 노래소리가 공원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 음악을 <스토베리 필즈>라고 새겨진 벤치에 앉은 단정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맨 이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
그는 이 공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월드 파이낸셜 센터에서 나와 지난 시절 아이들과 함께 다녔던 산책길을 서성이고 있다.
아홉 살의 페이지, 여섯 살의 샘, 애니아는 세살
그는 지난 시절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센트럴파크 웨스트 사이의 67번가에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 이곳 스트로베리 필즈를 지나 연못가의 엘리스 동상까지 3미터가 넘는 거리를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다녔다.
공원 벤치 마다 누군가를 기리기 위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영특하고 활발한 큰 아이 페이지는 공원 벤치를 돌아 다니며 새겨진 문구를 낭독하는 재미에 빠졌던 아이였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이 도시에서 인생을 시작한 C와 B를 위하여
나의 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시겠어요?
1942년 4월 12일, 이곳에서 우리의 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열 아홉살의 아름다운 메릴
더 멋진 삶이 어울렸건만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구나.
그때로 돌아가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거야.
딸 페이지는 벤치에 새겨진 문구를 노트에 적으며 이를 주제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야기를 짓곤 했다.
공원 여기저기서 기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구걸하는 이들, 향을 피우며 존 레넌에게 절을 하는 이들, 조깅 하는 사람들, 개를 산책 하는 이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 틈 바구니에서 사이먼은 우두커니 서 있다.
잠시 후 자신에게 구걸 하러 온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 시키는 사이먼
푸석하게 엉켜버린 머리카락을 한 그 여인은 양 볼이 움푹 패인 몰골에 깡마른 체격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냄새나고 더럽고 망가진 채 구걸 하고 있는 여인
그 여인은 사이먼의 딸 페이지였다.
뉴욕 월가에서 최고의 몸값을 올리고 있는 주식 중개인 사이먼, 그의 아내는 몇 달씩 예약 환자가 늘어선 유명한 소아 청소년과 의사다.
세 아이들 모두 명문대 입학을 앞 둘 정도로 수재로 이름을 날렸다.
뉴욕 맨해튼의 콜롬버스 라인에 늘어선 극장가,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과 백화점을 드나들며 주말마다 센트럴 파크 공원에서 뛰놀았던 가족, 세상에서 가장 완벽해 보였던 이 가족의 삶은 완벽했다.
첫째 딸 페이지가 집을 나가기 전까지는...
마약 중독자로 거리를 떠돌고 있는 딸 페이지를 찾기 위해 아버지 사이먼은 날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공원을 배회 하며 불법으로 약을 판매하는 공급망 책들과 이들 중개인들을 찾고 있다.
이들은 SNS로 구매자들과 메신저를 교환하며 공원등지에서 약을 주고 받기 때문에 사이먼은 이들을 찾아 내기만 하면 딸의 행방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이먼은 거리 악사들에게 틈틈이 50달러 지폐를 쥐어주며 말을 붙이며 주변 소식을 듣고 있다.
'문자로 고정 다섯 명이 있고, 놈들이 황금 시간대를 잡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그 사이사이에 끼어 들어가.'
'그럼, 스케줄은 당신이 담당하나요?'
악단 구성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사이먼이 100달러 지폐를 슬쩍 주머니에 넣어 주자 다음날 문자가 도착했다.
-오늘 오전 11시 나한테 들었다고 하지 마쇼. 난 그런 떠버리는 아니니까.
-내 돈은 10시까지 가져오시길. 11시에 요가를 가야 해서.
지금 사이먼은 그 약속 장소인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혹시라도 딸 페이지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맞은편 벤치에 앉아 있다.
오전 11시 58분
사이먼은 이미 뉴욕 주 북부에 있는 솔매니 클리닉 병실을 예약해 두었다.
드디어 누더기를 걸친 한 여자가 쓰레기 봉투에서 기타를 꺼낸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던지고 간 1달러 지폐를 정신없이 손으로 쓸어 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이먼. 지폐를 줏어 담는 그 여인이 쥐고 있는 기타는 사이먼이 사준 기타로 딸 페이지는 그 기타를 선물 받던 그날 '아빠 사랑해요'를 백번 외쳤었다.
지금 그 딸은 모여든 구경꾼들 앞에서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사이먼은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는지 곰곰이 떠올려 보지만 좀비처럼 변해버린 딸이 강제로 병원에 끌려 갈 것 같지 않다.
쓰레기처럼 살며 약물 중독에 빠진 남자친구 에런의 뒤에 숨어버린 딸 페이지
아버지 사이먼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에런에게 주먹을 날리고 도망치는 딸을 뒤쫓아가다 누군가가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 모든 모습을 누군가가 촬영해서 유트브 영상에 올렸다.
조회수 289,000회를 기록하며 베스트 영상에 올라간다.
부자가 빈민에게 주먹질
월가가 부랑자를 가격하다
가난한 여자 노숙자를 망쳐놓은 대디 워벅스
노숙자를 때리는 증권 맨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공격하다.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38층 사무실에서 사이먼은 수 년 동안 고객들의 자산관리 사업 확장과 급여 계좌 관리, 아이들 학비 자금 충당부터 은퇴를 대비한 투자와 포트폴리오 잔고, 회사 급여 지급, 가족 여행 경비와 자잘한 취미 활동과 해외 여행 계획, 그리고 집안 리모델링 공사를 비롯해 부동산 투자 설계까지 완벽하게 기획하고 추진하며 고객의 인생을 설계해주었다.
그에게 돈은 스트레스를 덜어주었고 더 나은 삶을 제공해 주었고 더 나은 미래를 보여 주었다.
그에게 돈은 평안과 자유, 경험과 편의는 물론 시간까지 벌어 주었다.
하지만 그가 돈으로 얻지 못한 두 가지 '가족'과 '건강'으로 열심히 돈으로 투자 하고 계획하더라도 계획 했던 것 만큼 성과가 드러나지 않은 유일한 것이였다.
딸에게 달라 붙은 쓰레기 같은 남자 친구 에런을 돈으로 떼어버리지도 못했고 마약 중독에서도 벗어나게 하지 못했다.
결국 딸의 쓰레기 같은 남자 친구 에런은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른 사이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신고를 받고 동영상을 확인한 형사들이 그의 사무실에 들이닥친다.
사이먼은 당당히 자신의 딸을 위한 정당 방위라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내세운다.
하지만 형사들이 그를 찾아 온 건 에런의 목을 칼로 찌르고 도망간 용의자를 추적 중으로 그의 딸 페이지가 종적을 감추었기에 사이먼의 집과 아내의 병원까지 경찰들이 찾아와 샅샅이 뒤지고 있다.
[그건 악령과도 같아. 잡고 놔주질 않지. 상대방의 약점을 찾을 때까지 들쑤시다가 바로 그 약점을 파고들어 혈관으로 들어간다오. 술, 도박, 암이나 다른 바이러스일 수도 있고. 헤로인이나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같은 것일 수도 있소. 악령은 어떤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지.]
딸 페이지는 도주 중에 몰래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 금고에서 현금과 보석을 가져갔다.
사이먼과 그의 아내 잉그리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몰래 딸의 주변 인물을 만나며 딸이 그동안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살다 약물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내막을 알게 된다.
온갖 약물을 중간에서 공급했던 에런이 살해 되자 에런에게 약물을 공급했던 공급자들 끼리 서로 에런의 몫을 가져 가기 위해 총을 겨눈다.
이들의 세력 다툼 속에서 사이먼의 아내 잉그리드가 총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져버리고 마약 공급책들은 거리의 가장 어두운 지하 영업소로 숨어 버렸다.
뉴욕의 타투 거리마다 자리 잡은 그들은 서로가 누구를 만나 무엇을 주고 받는지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있다.
브롱크스, 브루클린 지역의 재개발 공사가 들어가는 허름한 아파트 마다 마약 공급원들이 활보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신분 노출을 하지 않은 채 주문자와 공급자, 매개자로 끈끈하게 얽혀 있다.
-찾아봐 아저씨. 찾아보는 거야.
하지만 당신 딸은 마약쟁이야 찾는다 한들. 해피엔딩은 아닐 거야.
사이먼은 수시로 연락처가 바뀌는 이들을 추적하며 딸의 행방을 찾아다닌다.
그는 딸을 찾는 동안 그동안 딸에게 자신은 어떤 아빠 \였는지 지난 시절의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며 어디서 부터 어긋나게 되었는지, 파멸의 불씨가 시작되었는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떠올려 보며 딸의 남자 친구 에런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한다.
술에 찌들린 채 허름한 농장 밖을 어슬렁 거리는 에런의 부모는 죽은 에런의 친 엄마에게 가보라고 사이먼에게 연락처를 던져 준다.
타투 전문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에런의 생모에게 어떤 정보를 얻지 못한 사이먼은 어떤 학교에도 다닌 적이 없었던 에런이 어떻게 자신의 딸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 그 내막을 듣기 위해 딸이 다녔던 학교를 찾아간다.
딸의 기숙사 친구들은 에런을 만나기 전부터 약물에 손을 대었다는 걸 눈치 챘지만 어느 누구도 약물 복용을 말리지 않았다.
사이먼은 아내가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사이 그동안 아이들이 발급 받은 카드 사용처를 뽑아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한다.
행방 불명인 채 도주 중인 딸 페이지가 'DNA검사로 가계도 완성하기' 라는 계보학 사이트에 79달러를 결제한 내역을 발견했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사용한 칫솔을 모조리 지퍼 백에 담은 사이먼은 마지막 큰 딸의 방 욕실에 먼지가 쌓여 있는 칫솔을 찾아 낸다.
-그 사람을 죽이지 마세요. 제발
-이 종이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마세요. 그 아이에게도요.
당신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두 시간 후면 유전자 검식 결과가 나올 것이다.
사이먼은 지난 시절 자신의 아버지, 국제전기공조합 102번 지부 소속 전기기술자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들 사이먼의 졸업 2주전 심근 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아들 사이먼이 아버지를 사랑했던 것 만큼 그의 아이들도 그를 사랑할까?
사이먼은 자신의 아버지가 만약 자신이 마약쟁이였다면 내버려 두었을지 생각해보던 중 딸의 대학의 교수 루이스 밴더비크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딸이 대학에서 당한 성폭력 사건을 교내 법령 학칙에 따라 처리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이먼은 분노조차 못한 채 큰 충격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던 중 지하철 좌석에서 정신을 잃어 버린다.
-돈 준비했어. 사인해야 할 거야. 토드 레이시를 찾아가
패스트푸드 체인점과 고급 제과점 사이에 그들이 지나가고 있다.
100달러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연락처를 받아낸 사이먼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문자로 확인한다.
혼수 상태에 빠진 아내를 찾아 온 어느 종교 단체 사이비 교주
젊은 시절 아내 잉그리드가 해외에서 모델 활동을 했을 때 사이비 종교에 빠져 교주의 아이를 임신했고 사람들에게 아이가 사산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학 음주 파티에서 더그 멀저라는 남학생에 성폭행 당한 딸 페이지는 멀저 부모의 재력에 고개를 숙인 학교 측으로 부터 아무일 없었던 걸로 하자는 합의를 강요 당한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페이지 앞에 친 오빠라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에게 홀려 버린 페이지는 무시 무시한 약물중독자가 된다.
완전히 회복하고 난 후 집으로 돌아 온 아내 잉그리드,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듯 가족에게 '저녁식사 준비 다 됐다'고 외친다.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해.'
'나도 마찬가지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순수하게 행복한 순간을 맛볼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감정을 억제 하며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을 감추며 살아간다.
수면 위로 불쑥 올라 온 행복은 그리 길지 않다. 태양의 길이보다 훨씬 짧고 오래도록 유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두 모여 있다.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사이먼은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가족마다 각기 다른 행복의 길이와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그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내의 웃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계속 듣기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댓가라도 치뤄야 한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돈을 위해서라도
“나는 누군가 죽는 이야기보다 사라지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편이다.
살인은 사건 해결에 초점을 두지만 실종은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자, 우리를 산산이 깨부술 만한 거대한 것이다.”
_ 할런 코벤, 출간 인터뷰 중에서
대부분의 스릴러의 시작은 '살인'에 촛점을 맞추지만 스릴러의 거장 할런 코벤은 ‘실종’에 중심을 두고 인간이 가장 집착하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추락을 감수하는 희생적인 인물과 나만 추락 할 수 없다는 악랄한 이기심으로 무장한 빌런들을 등장 시켜 인간에 내재된 선과악을 정교한 시선으로 거침없이 질주 하다 마지막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툭 던진다.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빠 사이먼의 추격전과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자신들의 먹잇감을 ‘ 사냥하는 수상한 2인조와 실종자사건을 추적하는 FBI 출신 사설 수사관이 맨 마지막 하나의 연결 고리로 이어진다.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스릴러의 거장 할런 코벤이 보여주는 이야기가 뉴욕의 부유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마약 중독,교내 성폭력, 부와 권력을 쥔 부모 뒤에 숨은 청소년 범죄자들, SNS 바이럴 영상, 광신도, 연쇄 범죄까지 스릴러라는 장르를 넘어 현시대의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