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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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언니 이름은 선화다. 김이설 작가의 신간 '선화'를 보는 순간 언니가 떠올랐다. 어릴때부터 순했던 언니는 욕심 많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했던 나에 비해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다. 엄마가 회초리를 들면 나는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반면에 언니는 그대로 앉아 매를 맞았다. 엄마는 가끔 '미련 곰퉁이' 라는 표현을 썼다. 언니는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는 전문대학을 가거나 재수를 하지 않고 취업을 했다. 백화점에서 전화 교환수를 하며 내가 대학에 다닐때 용돈을 주고 옷을 사주었다. 그땐 집을 떠나 언니와 자취 했는데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는건 언니 몫이었다. 아무도 내게 밥을 하거나 청소를 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니는 결혼초에 잠시 고생을 했지만, 지금까지 전업주부로 세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만약 언니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다면 미안했을 것이다. 

 

소설 '선화'는 작가의 전작에 비해 많이 부드러웠고 많이 따뜻했다. 여전히 소외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다루었지만 극한 상황으로 치닫기 보다는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며 해피앤딩의 결말을 맺었다. 화염상모반을 앓고 있는 선화는 오른쪽 얼굴이 검붉은 반점으로 뒤덮여있어 어릴때부터 숨어 지내는 아이였다. 선화가 겪었을 상처에 마음 아팠다. 내 오른쪽 다리에도 제법 큰 선홍빛 반점이 있다. 한때는 수영장 가는 것을 꺼려했고 미니 스커트를 입을때면 파운데이션과 파우더를 듬뿍 바르고 다녔다. 가끔 얼굴에 붉은 반점이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나마 나는 잘 보이지 않는 다리에 점이 있음을 감사했다. 혹시 유전일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태어났을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몸에 붉은 반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선화는 학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할머니에게도 구박받는 천덕꾸러기였다. 가족 앞에서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착하게 굴던 언니는 선화만 있는 자리에서는 이중인격자가 되어 선화를 구박하고 모질게 대한다. 선화의 가방에 책을 빼내고 화침으로 채운 날, 선화는 그 화침으로 언니 얼굴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나마 선화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던 엄마는 자살을 한다. 선화는 엄마가 하던 꽃집을 운영하며 독학으로 꽃꽂이를 배우고 제법 예쁜 꽃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기쁨을 준다. 영흠에게 풋사랑을 느끼기도 하지만 선화 곁을 지키고 있는 왜소증의 병준이와 한줄기 햇살이 비친다. 불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뜻한 사랑이 서로에게 필요하다. 언니와의 관계도 조금씩 회복되며, 꽃을 통해서도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책이 얇아 몇시간만에 다 읽었지만 오랜 여운이 남는다. 언니, 가족, 상처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아이, 신랑 등 내 가족만 챙기기보다는 주변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더 따뜻하게 안아 줘야겠다는 긍정의 에너지도 생긴다. 얼마전 중앙도서관 강연회에서 들은 "남의 장점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내 장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박웅현 CD(Creative director)의 말도 떠오른다. 선화가 성형수술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것이라는 믿음이, 희망이 생긴다. 

 

작가는 꽃집을 운영하는 선화를 통해 여자의 로망인 '꽃집아가씨'의 꿈을 이룬듯하다. 하늘거리는 연분홍빛 리시안셔스, 보랏빛 수국, 노오란 프리지아, 장미를 닮은 크림색 라넌큘러스를 조합한 다발은 생각만으로도 사랑스럽다. 책을 덮고나니 꽃을 선물 받고 싶어진다. 아니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 

 

문득 언니가 보고 싶다. 지금도 내게 한없이 베풀어주는 희생적인 언니. 내가 하나를 주면 둘, 셋을 해주는 착한 언니. 나는 지금도 언니에게 옷이나 가방을 사달라고 투정 부린다. 나보다 해외를 더 자주 나가는 언니 모습이 보기 좋다. 얼마전 터키 여행을 다녀오면서 내 선물도 챙겨왔다는데 핑계겸 이 책이랑 꽃다발 사들고 찾아 가야겠다. 언니야 사랑해! 늘 내 편으로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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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10-0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 님은 좋겠다.ㅋㅋ 저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땐 여동생이 있는 친구가 부럽더니 이제 나이 먹고 보니 늘 내 편이 되어 줄 것 같은
언니가 있는 친구가 부러워요. 세실 님은 그런 언니도 있고 무슨 복이래요...

저는 다리가 마르고 못 생겨서 미니스커트를 못 입으니 세실 님처럼 파우더 바르고라도 입을 수 있는 게 부럽네요.
정말이에요.

에세이를 읽느라고 소설을 못 읽었는데 저도 소설을 읽어야겠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세실 2014-10-08 16:54   좋아요 0 | URL
언니가 있는것도 참 복이죠?
울언니는 부모님께도 저에게도 참 잘해요. 정도 많고, 배려심도 깊고.....
제가 복이 참 많죠?
딸내미가 `엄마는 좋겠다. 언니 있어서....`하는데 찡하네요.

이런....파우더가 지워져서 옷에 얼룩이 묻어나고, 오후 되면 파우더도 다 지워진답니다. 사람들이 ˝어머 그거 뭐야? 멍이야?˝ 하면서 유심히 볼때 ˝아냐 점이야....˝ 하면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길도 싫었어요.

이제는 뭐 핫팬츠에 당당히 맨 다리도 드러내고 다닌답니다^^

다락방 2014-10-08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글은 평소의 페이퍼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참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쉽게 읽히는 터라 아, 역시 도서관장님은 글쓰기부터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 책을 읽고 기본적으로 `따뜻해졌다`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바깥으로 표현해내는 바는 저와 이토록 다르네요. 잘 읽었습니다, 세실님.

세실 2014-10-08 16:57   좋아요 0 | URL
어머 감사합니다^^
요즘 서평쓰기에 한계를 느꼈거든요. 매일 똑같은 스타일도 식상했구요.
나름 쉽게 쓰려고는 노력했답니다. 난해한 단어를 싫어해요.
전 님의 글을 읽으면서 참 맛깔스럽게, 감정도 풍부하게 잘 쓰시는구나 부러웠답니다. 가끔 욕이 튀어나올땐 웃기도 하면서....그만큼 솔직하신거죠.
우리 서로 윈윈하는 사이? 아 힘나라~~~~

수퍼남매맘 2014-10-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이름이 책 제목이라니... 꼭 봐야겠는 걸요.
세실 님 언니 이름과도 같다니 반갑네요.
이름 때문에 제 별명이 선화공주잖아요. ㅎㅎㅎ

세실 2014-10-10 09:51   좋아요 0 | URL
동명이면 더 와 닿으실듯요^^
언니 이름도 선화, 제게 붉은 반점이 있어서인지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어요.
울 언니 별명도 선화공주^^ 지금은 아닌듯요 ㅋㅋ

2014-10-08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10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4-10-0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끝이 찡해져요. 저도 연년생의 여동생이 있는데 저는 관계가 역전되서 여동생이 저한테 양보도 많이 하고 베풀기도 많이 하고... 그런 언니가 있는 세실님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고 저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갑니다.

세실 2014-10-10 09:56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몸에 점이 있어서인지 얼굴에 상처 있는 사람 보면 유독 마음이 쓰여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울 언니는 정말 천사예요. ㅜㅜ
그래서 더 복을 받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전 좀 이기적이거든요.
블랑카님은 말씀만 그렇지 동생한테 잘하실듯요. 따뜻하시잖아요~~~

hnine 2014-10-09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소설이 나왔네요 ^^ 사러가야지~
가족. 모든 문제와 상처의 근원이자 치유의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 수위가 좀 부드러워졌다는 말씀에 휴, 안도의 숨도 내쉬면서, 또 한편 그녀만의 개성이 어떤모습으로 달라져있을까 궁금증도 생겨요.

세실 2014-10-10 09:5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전작보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서 좋아요.
나이가 들어가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여유도 생기죠. 나이 먹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외계층의 아픔을 포장하지 않고 민낯으로 드러내요^^

순오기 2014-10-10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과 작가님 만나기 전에 이 책을 읽고 가야겠네요.
작년에 사인본 받은 <환영>도 몇 달이 지난 후 읽었는데...

세실 2014-10-10 09:58   좋아요 0 | URL
제가 그 날 사드릴까 했는데 미리 읽고 오시면 더 좋을듯요.
그날 이 책으로 토론해도 좋겠어요^^
이 책은 얇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어요.
아 바람직한 5공주 모임. ㅎㅎ

프레이야 2014-10-1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바람직한 선 자매
저도 읽고 갈게요. 언니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해요. 난 맏이라..
그나저나 언니분 터키 잘 다녀오셨네요. 터키 요즘 급감이래요, 위험해서.
12월초 예정하고 있는데, 어째야될지... 그땐 나아지려나..

세실 2014-10-13 09:58   좋아요 0 | URL
그쵸? 여동생도 좋지만 언니가 있으면...막 투정도 부리고, 의지가 되요^^
받아도 덜 미안하고. ㅎㅎ
그렇구나. 울 언니는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랍니다. 그런거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ㅎ
고 2 딸내미 두고 형부랑 같이 9박 10일로 다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