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야기

3월의 첫 날 아침. 창밖을 보니 비인듯 눈인듯한 무언가가 부슬부슬 내린다. 베란다에 꽂아둔 태극기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동요를 연상하게끔 바람도 많이 분다. 이런 날엔 그저 집에서 뒹글거리며 책 읽는 것이 최고! 

그런데 옆지기가 점심을 먹고는, "우리 산에 가자" 한다. 셋은 단호하게 "싫어! 이런 날엔 집에 있어야 해. 위험해!". 평소라면 "알았어, 혼자 다녀올께" 하며 쿨하게 물러서는 옆지기가 치사한 방법을 쓴다. "그럼 디카 안사준다. 내가 2미터에서 떨어뜨려도 괜찮은 디카 사줄려고 했는데 취소해야 겠다" 한다. 이런! 그렇게 해서 결국 나만 옆지기를 따라 내키지 않은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우암산은 청주시민이 자주 다니는 완만한 산으로 코스가 다양하다. 오늘은 어린이회관 맞은편으로 올라가 산성을 한바퀴 도는 3시간 코스.  초입엔 발걸음의 흔적이 많고 진흙이다. 난 계속 "지난 번 넘어져서 왼쪽 발목이 시큰거려, 그리고 어제 저녁부터 소식해서 지금 기운도 없고, 배도 고픈데.....난 산이 싫어! 바다가 좋단 말이얏. 차라리 바다를 데려가!"
나의 투덜거림에 옆지기가 비상 식량으로 준 스네이크 초콜렛, 꿀맛 이더라. 하나 더 줘!

그렇게 궁시렁 거리며 한참을 올라가는데 와우~
청주 시내에선 비에 가까운 진눈개비가 산자락으로 올라갈수록 눈이 되어 내린다. 그리고 산은 온통 눈꽃 세상이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로 들어가는 느낌, 급 행복 모드다.
나무에 가득 쌓인 눈을 지팡이로 두드려 서로 맞추는 장난도 치면서 "오우 아름다워!, 오우 환상이야!"
쉴새 없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렇게 즐거운 산행을 했다.   
3월 첫날의 기분 좋은 출발이다! 

핸드폰으로 찍어서 얼굴이 영 낯설다. 
옆지기의 단아한(?) 뒷모습.  이봐요, 날 봐요!
  
   

책 이야기

오전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뒤적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책도 읽고 싶고, 저책도 읽고 싶고.....
그런 이유로 거실에서, 침대에서, 화장실에서 다른 책을 읽는다. 이러다 한달 내내 똑같은 책을 붙들고 있는건 아닌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덜

생각보다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며, 정의에 대한 적절한 실례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다.  
정의라고 믿는 보편적인 생각이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름 호기심을 자아낸다.
최대 행복의 원칙인 공리주의에 대한 실례가 인상적이다.
네 명의 선원이 구명보트에 올라탄 채 표류했고, 음식이 바닥나 모두 죽게 되었을때 병든 파커를 죽여 살과 피로 연명했고 나머지 셋이 구조되었을때 판사는 어떤 판결을 내릴것인가?


 인문고전강의 / 강유원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
글샘님의 추천으로 적어도 20분내 잠들지 말아야지 하고 읽는 책인데 재미있다.
잠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빼어난 미모를 가진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하여 달아난 사건에서 시작한 전쟁. 
굵고 짧은 삶 보다는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하던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싸우기로 마음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제 저는 나가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제 죽음의 운명은 제우스와 다른 불사신들께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때에 언제든 받아들이겠어요."   
 그외에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단테의 <신곡>,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등이 나온다.


 심리학, 열일곱살을 부탁해 / 이정현

청소년기에 관심 많은 정신과 의사의 책이라 신뢰가 간다.
청소년기의 심리를 재미있게 정리해 놓았다.

" 비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비교의 대상을 바꾸는데 있다. 비교의 대상을 '남'이 아닌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로 바꿔 보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비교할 때 오늘의 나는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내가 꿈꾸는 미래에 오늘의 나는 얼마나 근접해 가고 있는지.... 그렇게 되면 어제보다 나아진 나를 자랑스러워하게 되고, 그 힘으로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게 된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 / 공지영 외

자전적 소설로 전개해 가지만 마치 사람 공지영을 만나는 느낌이다. 하나에서 열가지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의 전부를 드러낸 그녀의 솔직함이 참 좋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는 것이 하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가슴을 좀 웅크리고 편한 자세를 취해 보았는데, 그때 문장들이, 장대비처럼 내게 내렸다."
    


 고종석의 여자들 / 고종석

첫 여인으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나온다. 혁명가 체 게바라보다 더 혁명적인 삶을 살다간 로자.
계급의 적에게 돌덩이처럼 단단했다는 로자는 연인 레오 앞에서는 수줍은 아가씨가 되었다니.....
이상주의자로 남고 싶었다는 로자에 반해 저자 고종석은 현실주의자로 남고 싶단다.
가끔 저자의 건방진듯한, 불성실한 말투가 신경쓰인다.

그외 최진실, 마리 앙투아네트, 오프라 윈프리, 강금실, 윤심덕, 사포, 요네하라 마리등을 거론한다. 읽고 싶은 곳만 읽어야지.


 리딩으로 리드하라 / 이지성

의무감에 읽어야 할 것 같은 책. 직업병이다.  

  

  

 


 단한번도 비행기를 타지 않은 150일간의 세계일주 / 세스 스티븐슨

패셔니스트 나비님과 단 둘이 만나
맛있는 점심 그리고 산사춘,
중독성 진한 코람데오에서 커피를 마시며,   
평일 휴가의 달콤함을 만끽했다.

우린 닮아 있고,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3월엔 서울에서 만나 거사를 치르고(?) 삼청동 길을 걷기로 약속했다. 

이 책은 나비님이 선물해 주신 책.
어쩜 지금까지 접해본 책중 가장 예쁘게 제본된 책으로 임명함^*^  
가방에 넣어두고 틈날때 읽으려고 아껴두고 있다.
센스쟁이 나비님, 감사해요~~~ 그리고 님을 만나 행복했어요!

여우꼬리)
그렇게 달콤한 짧은 휴일은 끝나가고 있다. 내일이 수요일이니 2일만 나가면 또 3일 논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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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1-03-0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얼굴이군요. ^^

저도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직업병적 의무감에 읽었는데요... 마지막 챕터만 참고하세요. ^^

세실 2011-03-02 14:27   좋아요 0 | URL
호호호 이쁘게 나오진 않았지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ㅋㅋ
마지막 챕터 기억하겠습니다.
님 덕분에 로자 룩셈부르크도 알고, 일리아스도 읽고...이러다 넘 똑똑해 지는건 아닌지.

잘잘라 2011-03-02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 세실님 프로필 그림보다 훨씬 훨씬 우아하십니다.
ㅎㅎ <고종석의 여자들> , 읽고 싶은 곳만 읽어야지!하신 부분은 완전 귀여우시구요!^^
세실님 서재에서 저의 휴일도 달콤하게 마감합니당~ 굿나이트^^

세실 2011-03-02 14:56   좋아요 0 | URL
호호호 감사합니다. 이런. 저 우아 컨셉 아니고 귀여운 컨셉인데요. 나름 집에서는 핀도 꽂고 댕긴답니다. 모자에 꽂은 보랏빛핀. ㅋㅋ

안 읽으려다 반가운 사람들이 나와서 읽고 있습니다. ㅎ
님도 멋진 휴일 보내셨을것 같은데요. 알려주세용^*^

sslmo 2011-03-0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니아연대기로 들어가는 느낌이란 표현 너무 재밌어요.
근데,근데 책6권을 동시에 읽으신단 말이죠~
저 6권 가지고 저 혼자 막 상상해봤어요.
거실,침대 다 궁금하지만...화장실이 젤 궁금해요.
침대에선 강유원일 것 같고 말이죠~^^

세실 2011-03-02 22:26   좋아요 0 | URL
정말...그 느낌이었어요. 마치 누군가 나올듯한 느낌^*^ 윗도리 벗은 총각?
넵. 마음은 급하고, 진도는 나가지 않고 ㅎㅎ
화장실에선? 고종석의 여자들요~~ 한 챕터씩 읽기 좋더라구요. ㅋ
침대에선 강유원 못 읽어용. 바로 잠드니까요~~

개인주의 2011-03-02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발랄 .. 운치..
^^

세실 2011-03-02 22:26   좋아요 0 | URL
호호호 발랄....감사해요 스누피님. 앙~~~

다락방 2011-03-0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의란 무엇인가]가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놀랐었어요. 게다가 퍽 재미있죠? 재미있다, 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요. 읽기전에는 어려울까봐 막 겁먹었었어요.
최진실, 마리 앙투아네트, 오프라 윈프리, 강금실, 윤심덕, 사포, 요네하라 마리, 라고 하시니 저는 고종석의 [여자들]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세실 2011-03-02 22:2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쉽게 읽히고 재미있더라구요. 정의를 논하기 어려운 예시가 흥미진진하죠.
제목만 보고는 읽으려고도 안했어요. ㅎㅎ
고종석의 여자들. 그쵸? 저자가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거론된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있어요.

쎈연필 2011-03-0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꽃 와중에 아리따우신 세실님이 활짝 피어나셨네요~^^
책 정말 많이 읽으십니다!!

세실 2011-03-02 22:30   좋아요 0 | URL
호호호 이리도 예쁜 표현을. 감사합니다^*^
아마도 3월 한달내내 잡고 있을듯 해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1-03-0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 다양한 책을 병행으로 읽고 계신 중? 으아............

산행 좋았겠는데요, 나뭇가지에 쌓인 눈 사진이 기가 막혀요. 진짜 나니아 연대기 첫 장면이네요.
거기다 너무 다정하셔서, 샘나라~
저두 운동 좀 해야할건데 말이죠.

세실 2011-03-02 22:38   좋아요 0 | URL
호호호 열권도 아닌걸요^*^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아직 펴보지 못했어요.

처음엔 진흙이라 투덜거렸는데 올라갈수록 눈꽃 세상이 펼쳐지는 거예요.
그쵸 그쵸~~~ 윗옷 벗은 총각이 나올것만 같았다니깐요~~~

옆지기 생일이 이번 달인데 글쎄 선물로......
속리산 문장대를 전 가족이 올라가자고 하네요.
선물을 안해줄수도 없고. 참내원.

소나무집 2011-03-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운데 사진이 정말 나니아가 연상되네요.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눈 속에 빨간색 세실님도 뛰어 보이구요.
빨간 마녀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세실 2011-03-03 06:27   좋아요 0 | URL
그쵸~~ 안개 자욱산 눈길, 신비롭기까지 했답니다.
눈꽃이 참 예쁘더라구요.
빨간 마녀라~~~ 호호호 괜찮은데요.

순오기 2011-03-03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눈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세실님!^^
진짜 2미터에서 떨어뜨려도 괜찮은 디카가 있어요?
디카로 꼬셔서 산행에 데려간 옆지기님 귀여우셔라~ㅋㅋㅋ

세실 2011-03-03 20:36   좋아요 0 | URL
호호호 핸드폰으로 찍은거라 좀 부실하죠.
넵 올림푸스 제품인데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잃어버리지 않는한 반영구라고 하더라구요.
한번 떨어뜨려 볼까요? 호호호
생일선물로 속리산 문장대를 가야한다는것도 까마득합니다.

2011-03-04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4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3-0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날씨랑 겹쳐져서.. 왠지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느낌의 사진같은 느낌이 듭니다. ^^
이렇게 또 다른 느낌의 세실님 사진을 감상하고 가네요~

하루가 또 어떻게 간 것인지.. 제법 일찍 들어왔는데 뭘 좀 하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올리신 책 가운데 마지막.. 저도 좀 관심이 갔었는데, 조만간 옆에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자리에 하게 되면 세실님을 떠올리겠습니다. ^^

세실 2011-03-04 08:39   좋아요 0 | URL
그쵸 금요일인 오늘도 역시 추워요. 봄은 아직 멀리 있네요. 주말엔 풀린다고 하니 기대해 봅니다.

요즘은 월요일 다음에 금요일로 이어지는 느낌이예요. 바빠서 그런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시간을 쫓아가는 느낌입니다. 쫓기듯 사는 여유없는 삶 참 싫은데 말입니다.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그저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책이예요. 저야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