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주 대학로에 있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책날개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우리교육청에서는 책날개 운동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11곳에 작가를 직접 보내주는데, 그 작가들과 책날개 상임위원(여희숙샘, 김은하샘 등등과 그리고 나)과의 만남이었다. 친구와의 약속으로 뒷풀이에 참석하지 못하고 서둘러 나오는데 회의내내 강한 포스가 느껴졌던 노경실 작가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이 책을 건넨다. 비혼인 작가가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이리도 세심히 쓸 수 있다니 작가의 상상력 혹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큰 아이가 만으로 열네살이라 더욱 와닿았던 이 책은 아침에 눈을 뜨면 1퍼센트씩만 예뻐지길 바라는 가수가 꿈인 중학교 1학년 연주와, 두 달전에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엄마와 셋이 사는 민주가 주인공이다.

세상은 연극 무대인가?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등장하다니!
세상은 패션쇼 무대인가? 
등장하는 삶마다 모두 나보란 듯 잘난 존재들이니!
세상은 신생아 병동인가?
TV를 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잘나고 멋진 인물들이 탄생하니!
아니면 다윈의 진화론대로 사람들이 진화해서 일까?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하는 대신, 이제는 사람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진화하지 않는거지?" 연주는 거울 속 자신을 쳐다보며 작게 말했다.
"김연주, 제발, 지발, 지이발..... 너도 진화 좀 해봐라! 제발! 응?"


연주의 간절한 바램에 웃음이 난다. 그 나이땐 심각한 고민이었겠지만.......

부모의 이혼에도 늘 쾌활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는 학원버스 안에서 "그래! 우리 부모 이혼했다! 사람을 죽여야만 살인자야? 이 세상에 이혼하는 부모들은 다 살인자야! 그래서 난 죽었어! 난 벌써 죽었다고! 난 유령이야! 난 귀신이야! 너희 눈에 내가 사람으로 보여?" 하는 절규에 먹먹해진다. 이혼은 당사자보다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는듯 하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고 일어나고,
땀 흘리고 목욕하고,
침 삼키고 기침하고,
TV 보고 끄고,
전화하고 전화받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고,
걸어가고 주저앉고,
인사하고 모른 체하고,
학교 가고 집에 가고,
학원가고 몰래 빠지고,
시험 보고 성적표 받고,
숙제하고 숙제 잊어버리고, 
빵 사먹고 콜라 마시고,
노래 부르고 듣고,
연예안 바라보고 흉보고,
싸우고 화애하고,
웃고 신경질 부리고,
부러워하고 손가락질 하고,
게임하고 게임에 지고,
낡은 운동화 버리고 새 청바지 사고,
심부름하기 싫다고 버티고,
일기 쓰고 일기장 불태워 버리고,
저금하고 돈 빌리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런 삶의 조각들이 모여 한층 성숙해 지고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리라. 연주가 사랑인지 단순한 좋아함인지 알쏭달쏭한 지섭의 떠남에 슬퍼하며 그가 남긴 시계를 보고 위안을 삼는 것도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클라이막스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야기지만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처음엔 웃으며 대화하다가 엄마의 잔소리, 딸의 화냄 결국에는 화해로 마무리 되는 어른 엄마와 사춘기 딸의 대화, 친구 민주의 아픔을 생각해 보게 하는 여운이 좋았다.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인생은 셀 수 없이 너희를 째려볼 것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못 사느냐? 넌 겨우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냐? 등등의 조롱으로 말이다. 또 삶은 너희를 기분 나쁘게 째려볼 것이다. 네가 뭘 하겠어? 네가 뭐 대단하다고? 네가 하는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말이다.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너희가 울든 웃든, 노력하든 포기하든, 주저앉든 다시 일어나든...... 시간은 단 한번도 멈추거나 쉬거나 요령 피우지 않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p.166 

여우꼬리

담주 금요일에 중간고사 보는 규환이 공부 시키려고 방콕하고 있는데 정작 규환이는 1시간만 놀다올께 하고 나가서는 함흥차사다. 네가 진정 함흥차사의 뜻을 아는게냐?  곧 수학학원에 가야 하는데.....
평일엔 학원에서 밤 9시 넘어야 오고, 저녁잠이 많아 공부할 시간 없는데....어쩌자는 게냐.
그러면서 1등하면 건담 3개 사달라고 하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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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10-3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주의 버스 안에서의 절규가 서늘하게 하네요.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이혼 하는 부부의 수가 예전보다 증가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아이들의 문제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 같아요.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자기 비하까지 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돼잖아요.
노경실 작가가 미혼이었군요. 저도 관심이 가던 책이었어요.
(규환이...^^ 딱 1시간만 놀기가 어렵지요. 1시간 후딱 가잖아요~ )

세실 2010-10-31 20:33   좋아요 0 | URL
외형적으로 보이는 아픔이 전부가 아닌데 어른들은 보이는것만 신경쓰게 되지요. 저를 포함해서요. 아이들과 좀더 따뜻한 관계가 되어야 겠습니다. 때로는 친구같은 부모로 기억되도록....
전 40대 중반 정도로 생각했는데 58년생이라고 해서 놀랬습니다. 포스가 대단하세요.
다행히 10분 지각했네요. 이유가 잠바를 놓고와서 되돌아 오느라 그랬다고 하니 패스. ㅎㅎ

글샘 2010-10-3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동화에도 이혼한 가정의 비혼여성 이야기가 많구요.
우리 학급에도 부모가 온전하게 같이 살지 않는 집도 많은 거 같애요.
솔직히 다 파악은 안 됩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구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야 할텐데... 상처가 되겠지요.

세실 2010-11-01 23:36   좋아요 0 | URL
그쵸. 갈수록 더 심해질꺼 같아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님 생각에 동감합니다. 아무래도 측은지심이 더해지면 아이들은 금방 눈치챌꺼 같아요.
건강하게 자라는 것, 자긍심을 높이는 길 같아요. 잘 살아야죠...

sslmo 2010-11-0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넷,열다섯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을 간혹 읽는데요~
(한달에 두권 정도)
그때 그때 느낌이 제각각이지만,
공통된 느낌 하나는 우리 아들은 아직 이런 느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직 어린이 수준)

이런 섬세한 감정을 볼때 마다,
아들이어서 좀 늦는 건가?
또는 어른이 써서 좀 앞서가는 건가?
좀 혼란스러워요.

저희 아들은 애시당초 나가서 '1시간만'놀다오겠다는 약속 같은 걸 안해요.
1시간만이 불가능한 걸 아니까...^^
그래도 규환인 멋진걸요~

세실 2010-11-01 23:38   좋아요 0 | URL
어머 초딩 5학년 규환이도 가끔 어른스러울때가 있던데요. ㅎㅎ
지난번 옆지기랑 다투었을때 규환이가
"아이 앞에서 챙피하지도 않아요?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지" 하더라구요. ㅠㅠ
그 다음부턴 절대 소리지르고 싸우지 않아요. ㅋ

아마도 님 아드님은 조숙한듯 해요.
아직은 엄마가 무서운 거겠죠?

꿈꾸는섬 2010-11-0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전 성장소설 참 좋아해요.^^

세실 2010-11-01 23:3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구나. 저도 좋아하는데 이 책은 좀 단조로워요~~~~

순오기 2010-11-0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네 살의 세상도 만만한게 아니라는 걸 아는 아이들이 가슴 아프네요.
노경실 작가, 대단한 포스라니 궁금해요~
규환이는 시간관리 잘 하는 범생이~ 짝짝짝

세실 2010-11-01 23:40   좋아요 0 | URL
그쵸. 그러고보면 부모들 혹은 어른들은 열네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생각해봅니다. 겨우 14년 살았을 뿐인 아이들에게요....
ㅎㅎ. 터프하시고, 책날개 작가 회장으로서 회의를 리드하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규환이 아직 어른거죠. ㅋ

마녀고양이 2010-11-01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연주의 외침이 꼭 제 외침 같다눈,,
"진화 좀 해라~" 하는... 아하하, 찔끔하는데요.

중간에 쓰인 일상시도 마음에 콕 와닿아요.
아아, 이 책은 왜... 제 얘기 같은거죠. 아무래도 덜 컸나봐요. ^^
방금 코알라랑 다퉜어요, 다독이러 갑니다~

세실 2010-11-01 23:43   좋아요 0 | URL
에이 님 지금도 충분히 진화했거든요. 좀 더 진화하면 미래형인간?

일상이 왠지 서글퍼져요. 아이들이 안되었기도 하고. 뭐 어른인 저도 비슷한 일상이지만요. 무의미한 하루 하루.
전 그래서 상상을 하고, 주문을 합니다. 매일 매일 오늘이 제일 행복한 하루라는^*^

2010-11-0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11-0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안녕하셨지요? 오랜만에 인사해요~~
부모의 이혼에 대한 토론을 한적이 있는데, 제 생각은 아이들도 한번쯤은 생각해 줘야 한다는거지요. 그 크나큰 상처를 어찌 감당하게 할런지... 하지만 폭력이 있는 가정의 꼭 치유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요. 그 방법이 이혼일지라도...

세실 2010-11-02 08:49   좋아요 0 | URL
넵 많이 바쁘셨네요.
아이들에게 농담처럼 엄마, 아빠 이혼할까? 했더니 두 아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죽는다네요. 원....
이혼이 그렇게 큰 충격인가봐요. 아마도 주위에 이혼한 아이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작용한거겠죠. 점점 많아질텐데요..

하늘바람 2010-11-2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네살이 어때서 참 궁금한 책이었어요

세실 2010-11-21 22:31   좋아요 0 | URL
2% 부족한 느낌.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주지는 못했어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