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9
제임스 조이스 지음, 여석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고 보니 문학책을 안 읽은지 너무나 오래된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역사 아니면 철학, 과학에 머물러 있었다. 언어를 빌려 생각 위에 껴입는 것 말고, 언어 자체에 경의를 표하는 것은 문학이다. 문학은 언어의 심장이다.

나의 언어가 무미건조해졌다면 순전히 그것은 문학을 멀리한 까닭이다. 다행히 교양 과학과 교양 철학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문학적 수준이 빼어나므로, 최악의 '결핍'은 피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문학 리뷰'를 하나 써보려고, 예전에 읽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하루 종일 뒤적였다.

의식의 흐름, 늘어지는 장문의 문장, 비타협적인 인생, 과작, 마음에 안 맞으면 원고를 통째로 태워버리는 화끈함 같은 키워드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태생은 우리와 흡사한 점이 있다. 영국이라는 나라 주위에는 스코틀랜드도 있고 아일랜드도 있는데, 그것은 일본이라는 나라 주위에 조선이 있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단한 문제 의식을 담은 그의 문장은 역설적이게도 정치적인 것을 배척한다. 자신의 문학이 독립운동의 일환인 문화운동의 수호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역시 자신의 완성된 문학을 위해 절대 고독의 오지 속으로 들어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크랜리는 다시 정색으로 돌아와 걸음걸이를 늦추면서 말했다.

“고독, 진정한 고독, 자네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정말 무슨 의민지 아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친구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야.”

“그래도 난 해."

스티븐은 말했다.

“그리고 단 한 사람도 친구 이상이 될, 아니 일찍이 어느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가장 고귀하고 진실한 친구 이상이 될 그런 사람마저 갖지 않겠다는 말인가.”

크랜리는 말했다.

이 말은 그의 본성 깊이 숨어 있던 어떤 마음의 금선(琴線)을 건드린 듯이 느껴졌다. 이 친구는 자기 자신에 대해, 현재의 자기나 장차 되었으면 하는 자기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닐까? 스티븐은 잠자코 얼마 동안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싸늘한 슬픔이 거기 고여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못내 두려워하는 자신의 고독을 말한 것이었다.

“자넨 누구 얘기를 하고 있나?”

스티븐은 이윽고 물었다.

크랜리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여기서 크랜리는 극중 주인공인 스티븐 디달로스의 동료이자 젊은 시인이다.

주인공 스티븐 디달로스는 장인 다이달로스의 정신적 아들이자, 아일랜드의 민족적 아들이며, 가톨릭의 종교적 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을 껴안는다. 그의 아버지들은 각각이 너무나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자신의 정의에 맞게 아들을 몹시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스티븐이 아일랜드의 독립투사였더라면, 오직 가톨릭을 숭앙하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다면 이 이야기의 갈등은 1/10로 확 줄었을 것이다.

크랜리는 별안간 솔직하고 분별 있는 어조로 물었다.
“솔직히 얘기해줘. 내가 말한 것에 조금이라도 놀랐나 말이야.”
“약간은.”
스티븐은 말했다.
“그럼 왜 놀랐나? 우리네 종교가 가짜고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면 말이야.”
크랜리는 같은 어조로 따지고 들었다.
“그런 확신은 전혀 없어.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라기보담이야 하느님의 아들 같지.”
스티븐은 말했다.
“그게 성찬을 받지 않는 이유란 말이지. 즉 거기 대해서도 확신을 못 가지니까, 면병은 단순한 빵 조각이 아니라 성자의 살이며 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혹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으니까, 그렇단 말이지.”
크랜리는 물었다.
“그래. 그런 느낌도 들고 또 거기 대한 두려움도 있어.”
스티븐은 찬찬히 말했다.
“알겠네.”
스티븐은 크랜리가 그만 따지려 하는 기색을 느끼고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했다.
“난 두려운 게 많아. 개, 말, 총포, 바다, 뇌우, 기계, 밤의 시골길.”
“그렇다면 빵 한 조각이 뭐가 무서워?”
“그건 아마 내가 무서워한다는 그런 것 뒤에 무슨 악의에 찬 진실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그럴 거야.”
스티븐은 말했다.
“그럼 공경하지 않는 영성체를 받으면 로마 가톨릭의 신이 자네에게 벼락을 내리고 지옥에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란 말이지?”
크랜리는 물었다.
“로마 가톨릭의 신은 지금이라도 그쯤은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배후에 2천 년의 권위와 숭배를 쌓아올린 상징에 대한 거짓 예배를 함으로써 내 영혼 가운데 일어날 화학 반응이야.”
스티븐은 말했다.
……
“나는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지만 자존심까지 버렸다는 말은 안 했어. 논리적이고 전후 일관한 부조리를 버리고 비논리적이고 전후가 일관하지 않은 부조리를 받아들인다면 그게 해방이 될 수 있어?”
- 본문 중에서

어린 시절, 학창 시절,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오면서 문체는 그에 걸맞게 변모한다. 환상과 호기심, 경건함으로 이루어진 유년 시절에 보았던 그림들과 들었던 이야기는 미래를 향한 지표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스티븐은 그 지표와 다시 맞닥뜨린다.

욕정과 종교적 금기 사이에 짓눌려 압사의 위기에 처했던 학생 시절의 처참한 몸부림은 아직도 독자인 나를 피로하게 한다. 젊은 시절의 우정과 사랑, 자유와 예술, 사상과 자조의 단계들은 누가 설정하는 것인가. 스티븐은 자신에 맞게 하는데 얼마나 커다란 희생을 치렀던가.

이 책은 여러 개의 문장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한 압축을 시도하였다. 때문에 이 작품의 '주석서'가 또 이 분량으로 있을 정도이다.

나는 이 책으로 인해 문학적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는 기회로 삼고, 얼른 '율리시스'로 치닫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문학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성과 같으며, 거기에 사는 언어들은 뭐가 생김새나 행동거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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