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에서는 용어와 개념을 익히느라 머리가 아팠고, 2장은 해외 사례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는데(전세계적으로 난리구나 큰일이네..) 3장부터는 독서 경험이 매우 다이내믹해졌다.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 겪었고, 겪고 있는 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가 체계화되기 시작한 시점을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국민의힘 20대 대선 후보 경선부터라고 보고 있다. 이전에는 일부 남초 커뮤니티와 소수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을 공격했다면 이 두 사건을 계기로 그런 행동이 "공적 담론의 영역으로 들어와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141)"는 것이다. 거대 보수정당이 민주당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키고 20대 남성을 지지 세력으로 끌어오기 위해 선거 때 백래시의 주요 이슈를 공론화하여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154)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안티페미니즘과 여성혐오 정서는 1999년 군복무가산점제도의 위헌판결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왔으나, 사회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들의 오세훈 후보 지지가 '이대남 프레임'으로 규정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대 남성들은 국민의힘과 이준석 대표, 윤석열 후보로 이어지는 대선 행렬의 강력한 지지 세력으로서 정치적 효능감을 과시했다.
(156) 20대 남성들이 불안, 분노하게 된 사회적 맥락을 따져보면 그 원인은 여성운동이나 여성정책, 여가부의 존재에 있지 않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확대되어온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에서 청년 세대는 성별에 관계없이 고용과 삶의 총체적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 이런 세대적 상황 때문에 이들을 '생존 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와 개인적 삶의 중요 조건들을 포기해가는 'n포 세대'로 부르며, 이런 불행은 이들이 직면한 조건이다. 따라서 청년 세대의 불안과 분노, 우울과 좌절은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여성을 포함한 청년들의 세대적 특징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남성들은 자신의 분노를 투사할 집단으로서, 아버지 세대에는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던 여성들을 지목해왔다.
이에 대해 저자는 "청년 남성들은 과거 세대와 비교해 특권의 상실이라는 박탈감을 느끼는 데 비해, 여성은 잃어버릴 특권 자체가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뿐(246)"이라고 진단한다. 이 문장을 읽고 너무 웃었다. 그래, 우린 다 문동은이라고. "내 몸은 이미 다 망가뜨렸고 내 영혼도 이미 부서뜨렸고 니가 뭘 더 할 수 있는데. 넌 지금부터 그냥 당하는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feat. 더 글로리)"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저자는 구조적 성차별이 있음을 부문별로 조목조목 입증하고, '남성 역차별' 주장과 관련해 소위 '여성우대' 정책이란 것이 차별 시정 조치임을 조곤조곤 설명한다(내내 누군가가 차별받는 동안 너희에겐 부당하게 유리했던 것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은 표를 얻기 위해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런 근거 없는 전략을 밀고나간다. 이 과정에서 탈민주화가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정치 양극화와 경제 불안이 심각한 사회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더욱 강력한 힘을 갖는다(214)."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39) 탈민주화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은 그 자체로 고립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제도를 무너뜨리고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사회세력이, 국가권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반여성적 공격을 해나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 역시 페미니즘이나 여성운동만의 시각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여성주의 시각을 중심에 두되, 전 세계적 추이와 지역적 특징, 담론과 물질적, 상징적 차원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더욱이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가 전개되는 탈민주화 사회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하층계급과 빈곤층, 이주민, 장애인 등 '그들'로 분리되는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 차별, 폭력이 공존하기 쉽다. 그러므로 백래시에 대응할 때도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사회적 맥락을 읽고, 그 안에서 다각적 연대를 통해 조직해야 한다.
교차성과 맥락을 고려해 현실을 파악하고 더 깊고 넓게 연대하면서 민주주의도 수호하라는 소리인 것 같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1. 여성주의 실천의 가치와 지향, 역사와 전략이 무엇인지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라.
(247) 극단적인 생물학주의나 성소수자 혐오와 같은 페미니즘의 일부 경향이 전체 페미니즘으로 확대 해석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 늘어났다 (...) 페미니즘은 그 시각과 입장의 복수성을 핵심적 가치로 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주변인의 위치에 선다는 원칙을 공유한다. 또 '젠더'라는 문제의식, 즉 성차별과 성폭력은 생물학적 요인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규범과 정치경제적 권력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이론적 사고를 토대로 한다. 이러한 젠더와 페미니즘, 여성운동 등 여성주의 실천의 문제의식과 관점, 사회적 지향을 정확히 전달해가려는 노력이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며, 이를 위해서는 페미니즘 교육을 늘리고 질적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담론과 국가 제도, 관행의 개선 역시 의식의 변화를 꾀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 여성들 간의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248) 여성주의 연대는 연령과 성별, 지역과 계층을 넘어서는 개방적이고 다각적인 연대를 구축해가야 한다.
3. 지역사회의 풀뿌리 여성운동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라.
(249) 지역사회 차원에서 풀뿌리 여성운동의 영향력을 유지해 나갈 경우, 정치권력의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여성운동이 유지될 수 있다.
4. 담론 지형의 전투에서 반혐오, 반차별, 반폭력 세력의 연대가 중요하다.
5.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프레임이 달라져야 한다.
(250) 이제 성평등 정책은 안티페미니즘 세력의 반발에 항상적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운동의 프레임을 여성운동-국가의 양자관계가 아니라, 여성운동-반여성운동-국가(지방정부)의 삼자 관계로 수정하고 운동의 전략을 수립해가야 한다 (...) 여기서 안티페미니즘 세력은 일부 정당이나 정파, 종교집단으로 특정화될 수 없으며, 단일한 것도 아니다. 각각의 세력들, 정당이나 종교집단, 사회운동 세력은 내부적으로 온도차가 있긴 하지만 분명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세력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런 지형은 정치사회적 변동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가와 시민사회의 각 영역 속에 자리 잡은 안티페미니즘의 세력화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대응해야 한다.
저자가 이런 목소리를 내준 게 기껍고도 고맙다. 누군가는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실천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걸 바탕으로 더 나은 걸 만들어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성평등 운동과 정치에 필요한 또 다른 요소는 젠더 렌즈를 장착한 감응적 질문들이다. 감응적 질문이란 어떤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민감하게 던지는 질문을 말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뿐만 아니라, 무엇이 문제로 제기되지 않았는지를 동시에 고려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 방식은 정치와 정책 담론에서 중요하지만 이슈화되지 않는, 부재하는 것들을 찾아 확인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그리고 왜 그것이 문제로 설정되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사회적 담론의 형성에서 배제의 과정을 드러내고 가시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미투운동이 그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성폭력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는데도 그 피해를 말하고 드러내지 못했던 이유를 찾고, 피해 경험에 대해 말하며 듣는 데 집중하려는 실천이다. 위계적인 젠더관계 속에서 피해를 드러내지 못했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말하고 범죄 행위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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