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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시대 1~3 세트 - 전3권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남영 지음 / 궁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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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라딘 서재에 아예 접속하지 않았다. 처음엔 의도한 일이 아니었으나, 이게 얼마나 놀랍도록 마음이 편한 지 발견한 뒤로는 적극적 결정이 되어 북플과 알라딘 앱까지 지웠다. 일전에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대차게 까며 서재에 입주신고를 한 바 있다. 그 두 플랫폼에 죄가 없단 건 아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SNS의 성질을 띠는 모든 것에 몹시도 지쳐있었다는 점이다. 플랫폼을 바꾸는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 비슷한 그 무엇도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거였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글을 쓰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버렸고, 염치 없이 슬금 돌아왔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느슨한 형태의 운용이 되지 않을까.


짝꿍은 내가 본 어떤 인간보다 공부에 특화된 사람이다. 흥미 여부와 관계없이 본인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아가는 데 게으름이 없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로서는 얼레벌레 눙치고, 잊고 넘어갔을 것들을 그는 성실히 알아보고 설명해준다. 그로써 내 생각을 넓혀준다. 부작용은 간혹 아주 엉뚱한 문제로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관련해 짝꿍은 지상군을 동원한 본토전으로 갔으면 인명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이다, 일본은 항복을 안 했을 것이다, 나는 일본이 패전할 것이 이미 명백한 단계였다, 반인륜적이고 불필요한 실험이었다로 논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휘어진 시대 3권 p. 289~292) 그가 이야기한 근거는 대의명분, 내가 이야기한 근거는 대의명분 외의 세 가지 이유 중 세 번째 이유로 제시되어 있었다. (다른 두 맥락은 1) '거대과학의 운명' 즉, 그렇게 많은 예산과 자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에서 아무런 가시적 성과도 없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원폭은 개발되기로 결정된 순간부터 사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과 2) '진주만'에 대한 미국의 복수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린 사안에 복합적으로 작용한 여러 요소를 두고 네 건 틀렸고 내 말이 맞다로 쓸데없이 다툰 거였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특정 근거에 더 꽂혀서 그 이유만이 옳게 사안을 꿰뚫고 있고, 사실관계를 더 잘 설명하고 있다고 믿을까.


어떤 결정의 뒤에는 단 하나의 동기가 있을 수도 있고, 수십수백가지 동기가 있을 수도 있고, 아무 이유조차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중 어떤 설명이 다른 것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까? 왜 그 설명만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질까? 실제로는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거나 아무 것도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 제시된 근거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이러한 설득력의 차이가 때로는 파괴적으로 치닫는 많은 논쟁의 진짜 원인일 것이다.


'제시된 근거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설득력의 차이'를 근본적 입장 차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바로 여기에서 진정으로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한다.


이때 각각의 근거가 가진 내재적, 외재적 차이, 즉, 해당 사실이 얼마나 진실한지, 해당 요소가 결정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각 요소가 사안과 얼마만큼 관련되어 있는지, 사안과 별개로 해당 요소가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각 요소는 각기 어떤 층위에서 작용하는지, 해당 요소나 맥락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단순한지, 복잡한지, 잘 알려져 있는지, 숨겨져 있는지 등은 부차적 문제일 것이다.


이번에도 문제는 각자가 지닌 위치성과 당파성이 아닐까. 당신은 무엇에 설득되도록 살아온 사람인가. 당신은 숨겨진 맥락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인가 널리 공인된 사실일수록 더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통계와 자료에 설득되는 사람인가 사유와 직관에 더 의존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어디에 이입하고 무엇을 배척하는가.


어떤 논쟁에서든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어느 하나의 근거 뒤로 몰려들어 다른 하나의 근거 뒤편에 모여든 다른 무리의 비슷한 사람들과 진부한 싸움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맥락, 근거, 요소, 사실, 설명.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을 정교하게 다듬고, 확인하고, 점검하는 건 꼭 필요한 일이겠으나, 궁극적으로는 무용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239) 트루먼은 포츠담 회담의 준비기간에 베를린의 폐허들을 둘러보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이런 글을 썼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이보다 슬픈 광경은 본 적이 없다...... 이제는 평화가 자리 잡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은 도덕이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수백 년은 더 발전한 것 같다. 아마 도덕이 기술을 따라잡을 때가 되면 더 이상 도덕이 지킬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글을 쓴 바로 그가 도덕이 전혀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무기 사용을 최종 명령하며 도덕과 기술의 격차를 극적으로 높여버렸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방대하고 아득한 과학적 발견, 과학자들의 개인사, 시대사회적 배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문외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엮어낸 훌륭한 과학사 교양서를 읽었다.


마이트너는 베를린의 폰 라우에에게 하이젠베르크와 폰 바이츠체커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두 사람을 대단히 훌륭한 인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실수였다.‘고 했다. 그랬더니 마이트너와 동갑나기인 고귀한 인품의 라우에는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통찰력 있게 답신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현실의 거대한 비합리성과 화해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공중누각을 짓곤 합니다. 자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좋은 면만을 찾아내려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답니다. 그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지요." 하이젠베르크의 행동에 대해 필자가 읽은 가장 설득력 있는 통찰이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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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9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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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견고하고 겹이 두터운 소설이다. 화자 아드리아의 현재, 소년기, 아버지 펠릭스의 젊은시절, 펠릭스가 수집한 바이올린 스토리오니에 얽힌 이야기가 수십 내지 수백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솔기없이 맞물린다. 제 속도를 못 이기고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회상을 정신없이 쫓아가다보면 책이 끝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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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6-18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드디어 이 맛에 빠진 분!

책먼지 2023-06-21 11: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덕분에 집중력 위기 극뽁이요!!!

잠자냥 2023-07-09 23:55   좋아요 1 | URL
너무 극복해서 일만 하나요?!

은오 2023-06-29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지님은 생존신고를 하시오!!

건수하 2023-07-07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먼지님은 집중해서 책 읽느라 서재에 못 오고 계신 것인가..!
<나는 고백한다>는 이미 다 읽으셨을 것 같은데..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래요.

은오 2023-07-0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지님이 너무 보고싶어.................................

잠자냥 2023-07-09 23:55   좋아요 1 | URL
쟝쟝도 나타나서 자랑질하고 다니던데 먼지는 먼지가 되어 날아갔는지?! 어딨어요?!

은오 2023-07-10 00:04   좋아요 0 | URL
어렵기로 소문난 잠자냥님이 먼지님 찾아요!! 먼지님 얼른 돌아와!!
이러다 저 먼지님이 너무 그리워서 내 책장에 있는 먼지에 대고 인사하는 또라이 되겠어요 😫

잠자냥 2023-07-10 00:16   좋아요 1 | URL
먼지 없잖아요…..

은오 2023-07-11 01:10   좋아요 0 | URL
뒤져보면 나올지도....?! 근데 귀찮으니까 그냥 책먼지님이 나타나시는 걸로 합시다!!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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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위기의 원인과 경과, 영향이 이토록 구조적이고 전방위적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성장지상주의는 인류와 생태계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혔고 인류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마저 앗아갔다. 시스템 설계자들에게 자신들이 세상에 내놓은 기술을 통제할 의지나 능력이 없단 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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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6-11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벌써 다 읽으셨군요! 😃

책먼지 2023-06-11 17:34   좋아요 2 | URL
저 이거 너무 궁금해서 교보에서 사와서 다른 책 다 제쳐놓고 이것부터 읽었습니다!!! 이 책 읽고 나니 긴 호흡의 장편소설이 읽고 싶어졌어요!!!

잠자냥 2023-06-12 23:53   좋아요 1 | URL
먼지 님 긴 호흡 장편 읽고 싶다면 자우메 카브레 <나는 고백한다> 왕추천이요.

책먼지 2023-06-13 08:40   좋아요 1 | URL
저 추천 듣고 지금 책 검색해보고 왔는데 세 권 세트 바로 장바구니 직행이요!! 급박한데 얘는 전자책이 없네요..???

잠자냥 2023-06-13 11:43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은근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므로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추천합니다...
전자책 훑기 방식으로는 무리무리....

DYDADDY 2023-06-11 16: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동서양의 고전들은 절제와 미덕, 혹은 중용을 강조하는데 지금의 자본주의는 끝없는 자본축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있죠. 통제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방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만 자본의 집적도가 상승할테니까요. 집중력도 그 희생되는 것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먼지 2023-06-11 17:49   좋아요 4 | URL
대디님 완전 맞아요!! 스키너의 비둘기처럼 사람들이 자극에 반응하도록 조종하면서 (좋아요 버튼이나 무한 스크롤 같은 기능을 통해서) 그야말로 집중력을 강탈해가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경영자나 기술자와 그 자녀들은 디지털 디톡스하고요.. 이 책에 잠든 사람은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는데요.. 점점 더 사람들을 못 자게 만들고 빠른 속도로 살게 만들어서 돈을 더 쓰게끔 아주 한계까지 쥐어짜더라고요.. 집중력 위기를 경제 성장의 ‘로드킬’이라고까지 표현하는데 진짜 맞는 말 같고, 집중력이 희생되면서 기후변화나 그외 사회 구성원들의 집중력을 크게 요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게 진짜 너무 무섭습니다ㅠㅠ

독서괭 2023-06-12 1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백자평을 보니 저도 급박한 마음이 듭니다 ㅠㅠ 내일 살 듯요 ㅠ

잠자냥 2023-06-12 14:12   좋아요 2 | URL
알라딘 새 유행어 탄생
급박하게 산 책 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6-13 08:3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이 유행 격하게 환영합니다!! 급박한 책 사기 회의론자 잠자냥님 누구보다 빨리 유행 캐치ㅋㅋㅋㅋ

괭님 혹시나 아직 책 입수 못하셨다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먼저 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책에 언급되어 있길래 궁금해서 보았는데 책과 핵심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더라고요!!

독서괭 2023-06-13 14:24   좋아요 3 | URL
영상은 볼 자신이 없어서.. 급박주문을 마쳤습니다 ㅋㅋ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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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야 하는 독자에게 주인공 로런 올라미나의 일기는 현재로 기능한다. 즉, 거기에 붙은 딸 라킨의 주석은 모두 사후적인 것이 된다. 갓난아이일 때 납치당해 입양아로 자란 라킨은 그를 납치한 극우 기독교 분파의 가치관을 주입받으며 억압 속에 자란다. 해당 기독교 분파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익숙한 슬로건 아닌가. 이 책이 현실을 예언했기에 새삼 차트를 역주행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한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재럿 대통령을 등에 업고 광신과 맹목 속에 그들만의 십자군 전쟁을 치른다. 로런이 일군 공동체에도 침입해서 납치, 폭력, 강간, 살인, 약탈을 자행한다. 공동체의 삶의 터전인 에이콘을 '재교육소'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목줄을 채워 노예로 부리며 '교화'시킨다. 라킨은 이런 자들이 가르치는 정통 기독교 교리를 배우며 자랐고 따라서 라킨에게 로런의 '지구종'은 사이비 종교이고 로런은 '사이비 교주'에 불과하다. 이처럼 이 책의 두 주요 화자 사이에는 커다란 시점과 관점의 격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잃어버린 딸'과 '딸을 찾지 못한 엄마'라는 데서 오는 권력차도 있다. 로런을 부당하게 비난해도 괜찮은 존재가 있다면 그건 라킨뿐일 것이다. 두 화자의 엇갈리는 관점 사이에서 독자는 어느 화자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으며 양쪽 모두를 어느 정도 의심하게 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감이 책 전반을 지배한다.


이 책은 묻는다.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면서 정작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등돌리게 만드는 종교가 과연 옳은가. 그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올라미나의 '지구종'에도 전혀 설득되진 않았으나 굳이 골라야 한다면 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잘해주는 쪽을 고를 것이다. 광기와 굴종, 배반을 경계하고 이성과 상식, 배려에 가치를 두는 쪽이 당연히 더 낫다.


한편 이 책은 최악의 인간성은 어떤 기전과 형태로 발현하는지 보여주는 생태 보고서 같다. 보고 있기 괴로울 정도로 극악한 온갖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와중에도 최악의 빌런을 꼽자면 로런의 남동생인 마크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마크는 얼핏 보기에 무해하고 심지어 선한 사람으로까지 보인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인정 욕구가 강하고 자신의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그 어떤 비겁한 선택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마크가 엇나간 데 로런의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로런은 자신이 일군 공동체에서 마크가 필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지구종'을 망칠까봐 그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도록 내버려뒀다. 하지만 로런은 마크를 성노예 포주에게서 구출해왔고 그의 생명을 구했다. 반면 마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파가 로런에게 잔학행위를 저질렀음을 알면서도 그를 외면했고 로런을 설교의 재료로 써먹었으며 진즉 라킨의 행방을 찾고도 로런에게 알리지 않았다. 로런이 라킨을 애타게 찾는 걸 알면서도 진심으로 찾는 것 같지 않다며 로런을 비난했다. 아마 그런 식으로 상대를 비난하면서 본인이 저지른 짓을 정당화했을 것이다. 세 살에 아이를 찾고도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입양 가정에 방치함으로써 로런이 딸을 찾을 기회뿐만 아니라 라킨이 사랑받으며 자랄 기회 역시 박탈했다. 


우화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이후 후속편이자 완결판인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가 번역되어 나오기까지 1년 넘게 기다렸다. 1권의 주요 문제가 '일단 살아남기'였다면 2권의 주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더 가깝다. 1권이 로런이라는 개인과 그 개인을 구성하는 특질(초공감능력 등)에 더 집중했다면 2권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2권은 더 나은 삶과 안정을 바라면서 되려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버린 이들에게 충분히 '우화'로 기능할 것이다.


"우린 온갖 방식으로 학대당했어요.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죠. 온 힘을 다해 낫는 중이고요. 그러니까, 아니에요. 우린 정상이 아니에요. 정상인 사람들은 우리가 이겨낸 걸 이겨낼 필요가 없었어요. 만약 정상이었다면, 우린 이미 죽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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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6-05 0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나온 한권이 끝이 아니었군요 그 책 읽지는 않았지만... 이건 2032년부터 나오다니, 지금하고 차이가 많이 나지 않네요 예전 소설에서 앞날을 상상하고 쓴 게 맞을 때 많죠 다 똑같지는 않더라도... 미국은 신앙이 지배하는 나라 같은 느낌도 듭니다 어느 나라든 신앙이 없지는 않지만... 신앙이라는 게 나쁜 건 아닌데, 그걸 이용해서 안 좋은 걸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네요


희선

책먼지 2023-06-08 10:48   좋아요 0 | URL
희선님 말씀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현실에 비춰볼만한 지점이 많았어요!! 기후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사회체제가 무너지는 모습이라던가 혼란한 사회를 틈타 자격없는 자가 득세했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등이요!! 신앙을 도구로 이용했을 때 무서운 점은 개인이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악행을 저지르고도 그게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 같아요ㅠㅠ
 
워드슬럿 - 젠더의 언어학 Philos Feminism 3
어맨다 몬텔 지음, 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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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인간적 매력이 글을 뚫고 나온다. 솔직하고 유쾌하고 똑똑하고 포용적이되 자기 주관과 취향이 확실한 사람. 곁에 있다면 딱 친구 삼고 싶은 유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내가 영어를 배우면서 규준으로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전문적이고 자신감이 없어보이니 하지 말라고 배웠던 많은 말습관들이 실은 매우 효과적인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말습관이 공격당하고 기피당하는 까닭은 주도적인 사용자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154) 사람들은 남성이 그렇게 말하는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저 여성이 말할 때 신경을 긁는 일이 된다. 우리 문화가 보컬 프라이, 업토크, '라이크'에 대해서 드러내는 억하심정은 사실 그 발화 특질과 그리 관련이 없다. 현대에 여성들이 그 특질들을 먼저 사용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보컬 프라이, 업토크, '라이크like' 같은 필러를 통한 헤지hedge는 불안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권위와 관련이 있다. 말이 지나치게 단정적이거나 명령조로 들릴까봐 청자를 배려해 타협한 결과에 더 가깝다.


보컬 프라이는 주로 발화의 끝에 목의 힘을 빼고 낮은 저음으로 말을 하는 걸 가리킨다. 나는 이걸 '먹는 소리'로 느낀다. 발화를 시각화할 수 있다면 글자가 바깥으로 나가서 퍼지는 것이 아니라 목으로 다시 빨려들어가는 모습일 것이다. 보컬 프라이에는 목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살짝 섞이곤 한다. 이 소리 때문인지 나는 누군가가 보컬 프라이를 할 때 그걸 섹시하다고 느낀다. 목에 힘을 풀고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발화가 불분명해지므로 이걸 기피해야 한다고 배웠다. 내 경우 의도적으로는 하지 않지만 말을 아주 많이 했을 때 목이 피로해지면 저절로 말끝에 보컬 프라이가 일어나곤 했다. 그럴 때의 나는 뭔가 좀더 원어민(?)스러워 진 것 같아서 남몰래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걸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이유가 메시지의 분명한 전달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보컬 프라이가 '권위'와 '지루함'의 표현이므로 감히 여성이 이걸 하는 게 거슬렸던 거다.


업토크나 '라이크'는 소위 말하는 밸리걸 억양을 떠올리면 된다. 업토크는 끝을 올려서 말을 맺는 걸 가리킨다. 영어를 쓸 때 말끝을 올려서 맺지 말고 '라이크'를 지나치게 섞어서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들도 많이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이 밸리걸 억양이야말로 내가 캘리포니아 사람들을 친근하게 느꼈던 계기였다. 높낮이가 거의 없는 모노톤으로 쏘는 듯이 빠르게 말을 뱉던 뉴욕 사람들과 비교해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노래하는 듯한 억양으로 느긋하게 말을 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상을 요약하면 "서부 사람들 너무 친절해!" 쯤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정하다는 인상은 많은 부분 그렇게 쓰지 말라던 밸리걸 억양과 '라이크'에서 오는 거였다. '라이크'가 다 같은 '라이크'가 아님을 이 책은 조목조목 설명한다. 평서문도 의문문처럼 끝을 올려서 말하는 것 역시 말하는 내용에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한다. 말의 내용이 강할 때 끝을 내려서 말하면 가르치거나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므로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을 일으키기 위해 끝을 올리는 거였다. 듣는 사람에게는 이게 대화로 초대하는 것으로 느껴질 테고 '내가 말을 해도 안전하구나'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 위와 같은 발화 방식들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화자의 인격까지 모독하는 이유는 화자를 깎아내림으로써 우위를 점하고 그의 목소리를 빼앗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하지 말라는 걸 안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내가 영어로 말할 때 실제로 늘 자신감이 없고 불안하기 때문에 특정 말습관이 불안하고 전문가답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나라는 과녘의 정가운데를 관통한 것이다. 딱 거기에서 생각을 멈추고 나는 그걸 그냥 받아들여버렸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지적을 받기 전까지 내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던 말투를 이후로는 거슬려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럼으로써 나에게 그런 생각을 주입한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 그에 동조한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데서 폭력과 악이 시작되는 건데.


맞춤법이 말의 내용이나 화자를 무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 역시 비슷한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보다 전방위적으로 일어나며 대상이 반드시 여성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맞춤법은 어떤 사람의 인격이나 지적 능력을 판단할 근거가 못된다. 맞춤법을 잘 지킨다는 건 그저 그 사람에게 맞춤법을 배울 기회와 자원이 있었다는 뜻일 뿐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194) 문법과 도덕은 사실상 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적들의 형편없는 문법을 지적하는 일은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걸 입증해 주지 못한다. 이 말은 당신이 교육받을 기회를 더 가졌음을 의미하고, 더 많은 시간을 표준 영어를 배우는 데 들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누군가가 하는 말의 도덕적 중요성은 내용에 있지 문법에 있지는 않다.


(195) 교육을 많이 받은 이들이 문법 경찰로 나설 때, 그들은 여성들이 업토크나 보컬 프라이를 할 때 여성 혐오자들이 하는 일과 같은 걸 하는 셈이다. 누군가가 어떻게 말하는가에 비추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식견 있는 청자라면 오히려 누군가의 문법에 대해 언급하는 행위가 그저 메시지를 피하려는 것임을 안다. "언어를 가지고 현학적인 척하는 건 속물 행위이고 속물 행위는 편견에 근거하죠." 캐머런은 말했다. "그리고 그건, 장담하건대, 자랑스러울 일이 못 돼요."


페미니즘을 접한 이래 내가 억압자의 언어와 사고를 빌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구나, 피억압자인 내가 그들의 억압을 돕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있었구나, 깨달을 때마다 소름끼치게 부끄럽곤 하다. 이 책을 읽고도 어마어마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평생 모르고 살 뻔했다는 두려움에 비하면 이 부끄러움은 하찮기 그지없다. 앞으로도 나는 더 부끄러워야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책을 더 만나고 싶다. 책이 나의 인식과 관점을 바꿔놓았다는 걸 나의 부끄러움이 증언한다. 좋은 것(언어)과 좋은 것(페미니즘)이 만나 반드시 더 좋은 게 되지는 않는데 이 책은 그 일을 해냈다.




아래는 이번 달 <정희진의 공부>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연상되어 인용한다.


1. 낙태금지법을 두고 싸우는 대신 성관계에 피임은 필수라는 걸 남성들에게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 관련


(222) 그런 세상을 얻을 수 있으려면 여성들에게 위해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가르칠 게 아니라 남성을, 이상적으로는 굉장히 이른 시기부터 가르치는 데 달렸다. 세상이 전부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남자들이 어린아이일 때, 양육자이자 선생님으로서 우리는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상상을 깨부술 필요가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공감해도 괜찮다. 다른 남성이 언어로나 다른 방법으로 여성을 쓰러뜨리려 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공감하고 동조하고 지지해도 괜찮고, 정말 권장돼야 한다.


여기에 더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할 확률은 아주 낮다는 것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한다면 그건 기적이고 그저 그에 무한히 감사하라는 것도. 너를 싫어한대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거기에 대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꼭 가르쳐야 한다.


2. '자매애는 불가능하다' 관련


(330) "저는 늘 '여성의 인식을 표현한다'는 언어에 담긴 생각에 회의적입니다. 그게 어떤 인식이고, 어떤 여성에게 속하게 되는 걸까요?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인식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집단적 자매애를 느끼는 건 좋지만, 여성의 경험은 복잡한 스펙트럼을 구성하고, '자매애'는 하나만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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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5-14 0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가 너무 좋음을 나의 흥분이 증언한다.......... 먼지님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워드슬럿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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