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읽은 탈무드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예화가 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귀한 것을 자랑했다. 랍비는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귀하지만 당장은 보여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와중 해적이 배를 습격한다. 재물을 가졌던 사람들은 가진 걸 모두 잃었으나 랍비는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랍비의 재산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라서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재물은 강탈할 수 있고, 지위와 권세는 박탈할 수 있으나, 머릿속의 지식은 건드릴 수 없다는 이 이야기를 읽고 어린 책먼지는 지식을 쌓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영화 <스틸 앨리스>는 지식도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생을 노력해 이뤄낸 학문적 성취와 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침탈당하고 소거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을 여전히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앨리스가 교수로 재직했던 컬럼비아 대학교를 가리키며 남편이 앨리스에게 '저기가 어딘지 아냐'고 묻자 앨리스는 모른다고 답한다. 저기에서 당신이 학생을 가르쳤다고 알려주자 앨리스는 '내가 좋은 선생이었다고 들었다'고 한다. 내가 아주 똑똑했었다고. 남편은 '당신이 내가 평생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현재형으로 말한다. 이윽고 묻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기에 있고 싶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데도 여전히 뉴욕에 있고 싶냐는 뜻으로. 먹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으며 앨리스는 '나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지금 가야하냐'고 답한다. 이 소통의 불가능성에 나는 마음이 미어졌다.
남편은 앨리스를 두고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뉴욕을 떠난다. 마지막까지 앨리스를 보살피는 게 남편도, 의사 아들도, 변호사 딸도 아닌, 끝까지 앨리스를 가장 걱정시켰던 배우지망생 딸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원작은 2011년에 원서로 읽었는데 영화를 이제 보았다. 영화에서 <Angels in America>를 인용한 부분이 너무 좋아서 급하게 가져온다. 리사 제노바는 신경과학자인데 어쩜 소설도 이렇게 잘 썼지.
약속 나가기 일보직전이라 마음이 급하다(사진 삐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 비로 분한 <스펜서>를 보고 완전 다시 보게 됐는데, 이때 이미 연기를 잘했구나(트와일라잇이 너무 강렬했어).. 이하 관련 인용구와 클립
Night flight to San Francisco; chase the moon across America. God, it’s been years since I was on a plane. When we hit 35,000 feet we’ll have reached the tropopause, the great belt of calm air, as close as I’ll ever get to the ozone. I dreamed we were there. The plane leapt the tropopause, the safe air, and attained the outer rim, the ozone, which was ragged and torn, patches of it threadbare as old cheesecloth, and that was frightening. But I saw something that only I could see because of my astonishing ability to see such things: Souls were rising, from the earth far below, souls of the dead, of people who had perished, from famine, from war, from the plague, and they floated up, like skydivers in reverse, limbs all akimbo, wheeling and spinning. And the souls of these departed joined hands, clasped ankles, and formed a web, a great net of souls, and the souls were three-atom oxygen molecules of the stuff of ozone, and the outer rim absorbed them and was repaired. Nothing’s lost forever. In this world, there’s a kind of painful progress. Longing for what we’ve left behind, and dreaming ahead. At least I think that’s so.
Tony Kushner, ‘Angels in America, Part Two: Perestroika’
+ TED Courses 'How to boost your brain + memory with Lisa Genova'
비밀댓글 요정 스콧님 추천으로 리사 제노바의 테드 강연을 찾아보다가 급기야 이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듣고 싶다.. 격하게 듣고 싶다..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뇌에서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 기억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알려준다는데.. 이 아름다운 문이과 통합형 인재(하버드대 신경과학 박사 겸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4주 짜리 강의가 49달러면... 이건 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