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고전을 대신 읽고 핵심 개념을 쏙쏙 설명해준 뒤 한국 사회의 현재성에 비춰 진단과 처방까지 내려주시겠다니 이런 보석 같은 분..


1장까지 읽었고 나머지 부분을 읽기 전에 혼란스런 머리를 정돈하기 위해 밑줄 그은 부분들을 가져온다.


(36)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분노를 투사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이다. 여기서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이 감정 전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 약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격차가 줄고 있으며, 특히 그들에 대한 공격이 사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여성혐오라는 문화적 코드와 특정 시기 민주적 변화에 대한 반발이 겹친 가운데, 사회문화적으로 공격이 용인되는 취약한 집단으로서 여성, 그리고 이 취약성의 문제를 지적하는 페미니즘과 그것을 해체하려는 여성운동이 공격의 목표물로 떠올랐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은,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대한 공격을 사회적으로 허용하거나 인정하는 정치적 맥락의 중요성이다. 이런 공격을 용인하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안티페미니스트 백래시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그러한 정치적 조건이 존재하지 않을 때, 즉 어떤 정치세력도 이런 공격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정치적 주장으로 승인하지 않을 때, 안티페미니스트 세력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울 것이다.


백래시의 정동에는 '르상띠망'이 있고 이러한 정동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 강화된다.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의 비대한 자아감과 그것이 실현되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현실 간의 부조화는 개인에게 불안과 좌절을 야기한다. "개인은 홀로 세계의 불확실성에 맞서고 절대적인 책임을 지지만, 명목적인 개인일 뿐 실질적 의미에서 자신을 실현해갈 수 있는 힘(능력)은 갖지 못한다(36)." "심리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해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현실을 왜곡시켜 불안에서 벗어나고 체면을 유지해 자기를 보존하려는 무의식적 책략(36)"으로 "내면의 위협적 충동을 초자아가 수용 가능한 하위의 대상에게 분풀이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보다 약하거나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여겨지는 약자로 목표를 바꾸어, 관련 대상이 아닌데도 분노를 투사해 풀어버리는 행동(36)"이다. "나의 분노를 투사할 누군가로서,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 제공자로서 '그들'이 지목된다(11)." 여기서 '그들'은 (아니나 다를까 또!) 여성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왜 이토록 현 정권을 우려스러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 정권이 단순히 무능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걱정스럽진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기조로 재난을 방치하고, 복지를 축소하고, 근로시간 제도를 역행시키는 등 사회경제적 환경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어 개인의 고통을 가중하는 이 정권은 그러한 고통을 야기한 원인이면서 엉뚱한 곳으로 책임을 돌려 혐오를 부추긴다. 즉, 이 정권은 사회적으로 여성혐오를 승인하고 있다.


여성혐오와 백래시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성혐오는 일상적이고 미묘하게, 표식 없는 규율 양식으로 작동하는 구조화된 위계이며, 백래시에 선행한다(27)." "이에 비해 백래시는 정확하든 아니든 여성들이 일정한 성취를 이뤘다는 지각에 의해 촉발된다(28)." 백래시는 '교정적인 것'과 '선제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교정적 백래시가 여성운동의 성취가 일정 수준 달성된 상황에서 이를 무화하려는 시도라면, 선제적 백래시는 여성 운동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전에 미리 제압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29)." 여성혐오 - 선제적 백래시 - 교정적 백래시 순으로 발동되는 것이다.


이때 백래시는 두 가지 양상을 띤다. "여성운동의 특정 이슈, 의제, 성과를 둘러싸고 일시적이거나 비교적 짧은 기간에 격렬히 진행되며 폭발적인 힘을 갖기도(25)" 하는 1) 일시적 반격으로서의 백래시와 2) 일상적, 지속적 공격으로 나타나는 백래시이다. "특별한 계기 없이도 여성 정치인들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개인적인 괴롭힘이나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다(26)".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DADDY 2023-04-03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잠자냥님의 글에서 우끼님과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어쩌면 백래시는 젠더 파시즘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선에서 성별이 나뉘어진 투표 결과를 보며 위험하다 생각했어요. 2030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며 정책을 내놓았고 그 반사이익으로 지금의 정부가 들어섰죠. 더 큰 문제는 민주진영에서도 대선 후보의 페미니즘 단체 출연 이후로 지지율이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대선 후보의 출연에 대해 일명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여성 정치인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심지어 진보 커뮤니티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가 심했죠. 학교 수업시간에 성별 취업률을 가르치는 장면을 캡쳐해서 올리며 이런 식의 교육은 안된다고 반대하시는 분도 계셨고, 여성 우대 정책으로 자신의 임용이 되지 않았다며 실력이 없는 여성때문에 남성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책 내용중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에 분노를 투사하고 희생양으로 삼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에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정치 상황을 반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읽고 싶은 책에 넣도록 할께요. 먼저 잘 읽고 좋은 설명 부탁드려요. ^^

책먼지 2023-04-03 09:24   좋아요 1 | URL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긴즈버그님의 말씀을 가져와봅니다.. “아홉 명 정원의 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 되어야 충분할 것 같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난 언제나 ‘아홉 명‘이라고 답한다. 그럼 다들 놀란다. 하지만 이전에 남성 아홉명이 연방대법원을 이끌었을 때, 그 누구도 여기 의문을 품지 않지 않았나.” 성별 취업비 여성 100%가 되어야!!! 사실 문제는 이게 아니잖아요.. 그저 몹시도 취업이 힘든 사회경제적 구조가 되어 버렸고(직업 안정성이랄 게 없는 시대) 국가, 정부, 정치는 그런 구조를 오히려 강화하면서 너의 스펙을 쌓아라 취업이 안 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다라고 개인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떠맡기고 있고요.. 저는 그들이 이 지점에 더 문제의식을 느끼고 분노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희생양 찾아서 또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있군요.. 이 책의 저자는 권력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로 권력이 이전되는 걸 막으려는 의도에서 반사적으로 현상유지를 요구하는 게 여성혐오, 더 적대적으로 현상유지를 요구하는 게 백래시라고도 설명하더라고요.
저는 일단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백래시가 맞는지도 살짝 의심하고 있어서 저자가 어떻게 설명할지 기대반 경계반입니다!!
파시즘에 관해서는 읽으면서 더 생각해볼게요!! 실제 사례와 생각할거리를 던져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제 두서없는 인용에 대한 야무진 요약까지!!) 좋은 설명..은 무리고 일단 잘 읽어보겠습니다!!!

책먼지 2023-04-03 09:28   좋아요 1 | URL
아 대디님 말씀하신 2030 여성 남성 갈라치기해서 당선된 거 트럼프 당선이랑도 병치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건 인종탄압이긴 하지만 ‘증오 투표’라는 점에서요.. 당선 이후에도 계속 갈라치기로 혐오를 조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계속 되는 것 같아 정말 너무 걱정입니다ㅠㅠ

DYDADDY 2023-04-03 09:37   좋아요 1 | URL
적대적 현상 유지라는 부분에서 일전에 읽었던 <성 정치학>에서 나온 성혁명 반동기가 떠오릅니다.
안그래도 월요일은 힘들기에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하는데 사회의 단면을 보고 있자면 기분 좋은 요일은 없겠죠.
작고하신 긴즈버그 대법관에 대해 언급하셔서 곡 하나를 추천드려요. ^^
Salem Ilese의 mad at disney (mad at SCOTUS version)
https://youtu.be/XAT0y7C3ZPw

책먼지 2023-04-03 10:44   좋아요 1 | URL
멘탈 케어 위해 브금까지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책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군요!!! 제 리스트에도 올라갑니다(하반기에 사야지!!!) 노래 노동요로 들어볼게요💕

DYDADDY 2023-04-03 10:53   좋아요 1 | URL
그 심상치 않은 책을 다락방님이 읽으시길래 저도 냉큼 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은 알라딘 페미니즘 유니버스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4-04 11:37   좋아요 1 | URL
대디님 위의 노래 긴즈버그 대법관님이랑 깔맞춤해주신 거였군요ㅋㅋㅋ 발랄한 멜로디와 그렇지 못한 가사 너무 좋네요!! 알라딘 페미니즘 유니버스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4-03 1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옷, 저는 책먼지 님의 이 페이퍼를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오늘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저자가 한국 사람이군요. 한국책이었어.. 뭐 다른 세상이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한국이라면 백래시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겠죠! 책먼지 님의 이 책 관련 글들을 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책먼지 2023-04-04 11: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자님 너무 똑똑하셔서 이력을 봤더니 사회학 박사님이시더라고요!! 사회학을 전공했어야 하는 것인가!!! 지금 읽고 있는 파트에서는 미국 사례, 유럽 사례 촤라락 정리해주고 있어요 한국 파트 기대중!!! 따라가기 바빠서.. 쓸말이 생기길 바라며 읽어나가보겠습니다🔥
 

지난주에 전기가오리에서 들은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고여 있다. 공부모임의 주요 내용은 아니고 곁가지로 살짝 언급되고 넘어간 것으로 다음 문장이 정확한 인용은 아닐 수 있다.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할 때 그게 개별 남성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이라는 사회종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 중심적 제도나 문화에 대한 비판인지 그 층위를 구분하고, 유연하게 그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주위 사람도 미워하지 않고 논의를 앞으로 진전시킬 수 있다고.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곧장 납득이 되었다. 탈코르셋 논의에도 불구하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나, 가부장제하에서의 효과적인 착취를 위한 학습의 결과라는 이성애 관계에 대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이성애 관계에서 삶의 기쁨과 안정감을 느끼는 나,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삶을 살며 그렇게 살지 않는 나를 바꾸려고 드는 주위 사람들을 그와는 별개로 아끼고 사랑하는 나. 그러니까 층위를 넘나드는 건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이미 자연스레 하고 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장을 곱씹을수록 의문이 든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바람직한 일인가, 여기에 함정은 없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내 손에 쥔 게 너무 없다. 그래서 일단 이 문장을 이곳에 매달아두고 판단을 유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집 안에도 밖에도 꽃이 가득한 봄이다.




댓글(4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잠자냥 2023-03-28 1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꽃이 참 예쁩니다. 고양이가 없는 집은 저렇게 아름다운 꽃 장식도 가능하군요. ㅋㅋㅋㅋ
그런데 저는 개별 남성이 싫을 때도 있고, 남성이라는 종이 싫을 때도 있고, 남성 중심 제도나 문화가 싫을 때도 있어요. 3번째가 제일 싫긴 하지만.... 아무튼 인간이란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 ㅎㅎㅎ

책먼지 2023-03-28 12:44   좋아요 3 | URL
고양이 키우는 집은 혹시 고양이가 먹었을 때 해로울 수 있어서 식물 키우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어요!! 저 꽃은 우리 농가 살리기로 톡딜 떴길래 저도 사고 부모님댁에도 보내고 혼자 사는 삼촌 댁에도 보내고ㅋㅋㅋ 저는 진짜 책이고 뭐고 손이 너무 커가지고..ㅠㅠ
저도요.. 셋 다 싫다.. 사실 층위를 나눈다는 거 자체도 좀 자의적인 게 세 개가 상호연결되어 있고 막 중첩돼서 나타나고 그러는 것 같아서요..ㅠㅠ 잘 끌어안아보려고 공부하는 건데.. 쉽지가 않습니다!!!

잠자냥 2023-03-28 12:48   좋아요 2 | URL
네 저희도 꽃을 좋아해서 몇 번 꽃병에 꽃을 꽂아두었더니..........!
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다 뜯어먹어서 넘나 놀라서 그 이후 꽃은....ㅠㅠ
꽃다발 받아도 빨리 당근으로 되팔고....ㅋㅋㅋㅋ
즤집에 식물이 있는 유일한 곳은 냥이들이 못 들어가는 욕실입니다. -_-;;

책먼지 2023-03-28 13:14   좋아요 1 | URL
으아 애들 입에 잘 맞았나봐요..??? 그나저나 당근으로 꽃다발도 팔 수 있군요ㅋㅋㅋ 잠자냥님 선물 목록에서 꽃 삭제, 식물 삭제(욕실용은 가능) 메모해둡니다ㅋㅋㅋ

잠자냥 2023-03-28 13:19   좋아요 3 | URL
잡사2가 꽃다발을 왕창받은 적이 있는데 고양이때문에 집에 두지는 못하고 고민하다 당근에 올렸는데!!! 그날 바로 다 나갔어요.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저렴한 가격에 호사한다고 생각하고 다들 행복하게 사 가셨다고 합니다.

공쟝쟝 2023-03-28 14:47   좋아요 2 | URL
홉스는 꽃 안건드려서 저는 한달에 한두번식 꽃 진짜 쪼끔 사서 꽂아둬요. 근데 안 좋은 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니 알아보고 사야지~

잠자냥 2023-03-28 14:55   좋아요 4 | URL
튤립하고 백합은 위험한 것으로 알고 있삼...
장미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진짜 그런가 봄 1호가 장미 다 뜯어먹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면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28 15:04   좋아요 3 | URL
그렇구나. 튤립은 안살래요.ㅋㅋㅋㅋ 저번에 샀는데 예쁘긴 한데 머리가 통째로 떨어져서 무서웠엉. 1호는 장미를 먹는구나. 예쁜 건 먹어야죠. 음음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03-28 12: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연하게 오고가지 못해서 좋아했던 남사친과 멀어지기도 했는데요, 분노에 가득차있을 때 그걸 구분하고 유연해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계속 책을 읽고 사람도 만나고 글도 쓰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지금은 많이 유연해진 것 같아요. 내가 몇해전에도 유연했다면 좋았을텐데, 라고는 생각하지만 그건 또 그 때의 어떤 일어나야 했던 일들인가보다 합니다.

함정은 없는지 과연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가능한거냐고 물으면 일단 가능하다고 답하겠지만 그러나 모두에게 가능한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가능해지는 쪽이 삶을 살아가는데 더 안정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지금의 제 생각은 훗날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분노만 가진채로 살아가다보면 분노에 잠식되어 자기 자신만 아는 인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서요. 일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분노에 매달리는 건 독을 삼키는 것‘이라는 구절을 보았었는데 고개를 끄덕였더랬어요. ‘좋은게 좋은거지, 사이좋게 지내자‘ 가 아니라, 제가 싫어하는 한남문화, 남성문화, 한남민국은 비판하고 분노할지언정, 개인으로서의 저의 남사친들은 제가 애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현재 제가 찾아낸 방법이고 또 제 인생의 흐름인데, 책먼지 님이 앞으로 이것의 어떤 한계나 함정을 발견해 글을 적어 주신다면 귀기울여 듣도록 하겠습니다.

책먼지 2023-03-28 12:59   좋아요 2 | URL
저도 몇 년 전에 니가 읽은 그 페미니즘 책들 나도 학부 때 다 읽었어 하는 남성과 진짜 대차게 싸우고 절연한 적 있어요..ㅠㅠ

저는 제 자신의 분노도 검열하고 논리적으로 정당하면 표출하는 타입이라서.. 제도에 찌든 소리하는 남성이 있더라도 도를 넘지 않는 한에서는 그래, 너도 제도와 문화의 희생자다, 불쌍한 작자, 쯧쯧, 하고 넘어가는데요.. 경험적으로 유연한 오고가기를 하게 되었다보니 오히려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도 자기 검열이 발동해서.. 너 충분히 숙고하고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아? 이게 옳아? 하며 여기 함정이 있지 않을까, 이게 정말 맞는 건가, 두려워하는 거죠ㅠㅠ

다락방님 함께 고민해주시고 또 현재의 다락방님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공유해주셔서 진짜 감사드립니다!!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 요상한 찝찝함없이 모순을 잘 끌어안을 수 있도록 저도 치열하게 고민해볼게요!!!

우끼 2023-03-28 1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앜 이 문장은 저한테도 아직 계속 화두에요…. ㅜㅜ 이전부터 고민하던걸 전기가오리서 들어서 또 반가웠네요. 개인보다 제도가 먼저 바뀔 수 있는지, 제도가 바뀌려면 그만큼 사람이 모여야 하는데, 그 개인들은 어디서 영향받은 것일지… 저는 아직 분노와 애정이 뒤섞여서 거리조절을 어찌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관계를 맺는게 아직 스트레스지만 ㅠㅠ 언젠가는 제게 소중한 관계들을 지키면서 같이 고민할 여유가 생기기를 바라요

책먼지 2023-03-28 13:10   좋아요 3 | URL
우끼님도 그 문장에 턱 걸리셨군요ㅠㅠ 저는 가오리님이 딱 정리해주신 문장으로 듣기 전까지는 이 고민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말에 전구가 탁 켜지면서 맞아.. 나 이런 거에 발이 걸리며 살아왔어, 하고 알게 된 거였어요!! 우끼님 말씀처럼 제도가 진공에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어차피 사람이 만든 거고 사람이 공고히한 거잖아요? 근데 또 이걸 바꿔야하는 것도 사람이고ㅠㅠ 그래서 우리가 계속 고민하고 화두를 던지고 하면서 작은 파문을 일으켜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ㅜㅜ 거리조절 정말 너무 어렵죠?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관계를 아예 포기하기엔 좋은 관계에서 얻는 아름답고 빛나는 것들이 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우끼님 응원합니다!!!!

DYDADDY 2023-03-28 1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남성을 개체로 보느냐, 군집이나 집단으로 보느냐, 혹은 가부장제같은 제도로 보느냐에 따라 비판의 관점이 달라져야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요. 개체적인 남성의 예로는 고은 시인이 있겠죠. 물론 고은 시인을 비판할 때 남성 문단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지만 문단 전체가 그런 성폭력을 저지르지는 않으니가요. 군집이나 집단으로 보는 것은 술자리에서 남성간의 음담패설이 가장 쉬운 예라고 생각해요. 이성을 성적 비유로 가혹하게 비난하거나 대상화하는 것은 남성 집단의 문제이니 개별 남성과는 구별되어야 하겠죠. 제도를 비판할 때에는 그 제도의 성차별이 주된 관점이겠죠. 아무래도 여성분들이 비판의 관점을 다르게 해야 부차적 피해를 받는 남성이 적어지고 그만큼 전체 남성의 반발이 작아질 것이다라는 의도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건 전적으로 제 해석입니다. ㅎㅎㅎ
저는 로티 강의를 들었어요. 로티에 대한 해석보다는 삶에 있어 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설이 길긴 했지만 상당히 유용한 강의였어요. ^^

책먼지 2023-03-28 13:54   좋아요 3 | URL
대디님 해석이 가오리님이 의도하신 바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아요!! 덧붙여 사회종으로서의 남성에는 (생물학적) 여성도 포함될 수 있단 생각도 들고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2회차 들으셨군요!! 저는 이거 주말에 들으려고 킵해두었어요ㅎㅎㅎ 저는 본 강의보다 사설에 더 귀가 쫑긋한데.. 이번엔 또 무슨 썰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함께 듣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너무 든든해요!!!

DYDADDY 2023-03-28 14:06   좋아요 3 | URL
아.. 강의 하나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군요!!!! 다음달에 나오는 강의는 관심 있는 강의는 신청해야겠어요. ㅠㅠ 생각했던 것보다 강의가 좋아서 오늘도 오전에 일하면서 들었는데 시간날 때마다 노동요(?)로 들으려고 해요. ㅋㅋㅋㅋ 노동요로 정희진의 공부 매거진이나 두철수를 듣는데 하나 더 늘었어요. ^^

책먼지 2023-03-28 14:10   좋아요 3 | URL
맞아요!! 신청할 때 하나씩만 할 수 있어서 매번 폼 다시 작성해야하는 게 귀찮긴한데 원하는 거 다 들을 수 있어요!! 이것저것 들을수록 더 만족스럽더라고요!!!

우끼 2023-03-28 14:53   좋아요 2 | URL
와 대디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보니 구분하는 이유가 선명하네요!! 저는 구분해야한다고만 생각했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사례로 나누니 명확하고 좋은것같아요!!

책먼지 2023-03-28 18:58   좋아요 2 | URL
대디님 저 귀갓길에 로티 들었는데 역대급으로 좋네요ㅠㅠ 저는 어느 철학자나 이론을 딥하게 파는 것보다 내 삶을 꾸려나갈 때 어느 철학자의 무엇을 가져오면 좋을지 탐구하는 쪽이 훨씬 구미에 맞나봐요!! (루티의 가치 있는 삶도 약간 이런 맥락 같기도 하고요) 아이러니스트가 되겠어요!!!

DYDADDY 2023-03-28 19:13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 공쟝쟝님과의 필담에서 제가 생각하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전기가오리님은 그 사유를 좀더 갈고 닦으신 것 같아요. 좋으면서도 진작 구독할걸 이라는 후회가 들었어요.
나의 마지막 어휘는 무엇이며 자신의 완성을 위해 마지막 어휘를 끊임없이 회의하는 아이러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어제의 로티 강의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책먼지님은 이미 아이러니스트라고 생각해요. ^^

책먼지 2023-03-29 07:23   좋아요 2 | URL
같은 거 들으니까 요약정리까지 쌱 해주셔가지고 저 완전 날로 먹는 느낌이예요🥹 어우.. 맙소사.. 대디님 마지막 한 마디에 저 지금 너무 좋아서 리액션 고장났어요

DYDADDY 2023-03-29 08:00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 전기가오리님이 잘 정리해주신 것을 요약한 것 뿐이에요. 페미니즘이라는 어휘를 잡고 사유를 하며 사유와 행동의 간극을 좁히려 노력하는 책먼지님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아이러니스트구나 싶었어요. 기분 좋은 출근길 되시길 바라요. ^^

DYDADDY 2023-03-29 08:23   좋아요 2 | URL
우끼님 // 그 강의를 듣지 못해 사례가 정확한지까지는 자신은 없지만 남성주의 문화를 내부에서 겪으면서 종종 욕지기가 날 때가 있었어요. 우끼님의 정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요. ^^

우끼 2023-03-29 13:11   좋아요 3 | URL
대디님, 사실 강의에서는 구분해야 한다고만 하고 사례를 말씀주시지는 않았구요. 저 역시 멀리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건 무서워서 가까운 사람을 설득하려다 실패 후에 어떻게 내적으로 정리할지 고민하면서 구분하기 시작한 거라 그 구분을 자세히 해야할 필요를 덜 느꼈던것같아요. 그래서 구분하지 않았는데 구분의 필요성, 구분의 이유를 예시로 보고나니 선명해진것같아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책먼지 2023-03-29 09:19   좋아요 3 | URL
우끼님 말씀에 보태서.. 저는 대디님 말씀이 가오리님이 남성페미니스트로서 느끼는 지점을 잘 포착해주신 것 같아서 아, 이런 의미로 그런 발언을 했겠구나 하고 착 와닿았던 것 같아요!!

공쟝쟝 2023-03-28 14: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장을 매달아두고 판단을 유보한다니... 저 마음의 여유를 보라!! ㅋㅋㅋ
저는 좀 더 저렴한 제 표현을 하자면, 저는 묻고 또 묻다가 내가 남자라면? 어떤 종류의 남자였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건 알 수 없음.이었지만. 암튼 이미 여자라서 아무리 저렇게 괴물이 되고 싶어도 못된다.가 결론이었지만. 요는 권력을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희진샘 말대로 영향력과 책임감) 그래서 푸코를 보고 싶어진 거고... ㅋㅋ
주요 민주화 인사들의 미투 사건을 보면서 인간이 권력에 도취되기는 너무 쉽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 개인 뿐만 아니라 개인을 덮어주고라도 뭔가를 이뤄내야한다는 생각도 무척 위험하게 느껴졌고. 권력이라고 말했지만 뭐랄까 어떤 무엇이죠.
저는 제가 고민하기 시작한 게 일종의 철학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찬찬히 뜯어봐가면서 공부..하는 것이. 문장을 매달아두고 그 문장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라고 느끼게 되었고 방법은 책읽고 독후감쓰기 입니다 ㅋㅋㅋㅋ 뭐가 문제인지 그 기준은 제 몸이예여.ㅎㅎㅎ 암튼 저는 할 수 있다(가부장제 혹은 인간의 저열함을 넘어설 수 있는 어떤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있을거라고. 놓고 고민하는 게 좋은 거 같아요.

DYDADDY 2023-03-28 15:06   좋아요 4 | URL
현대의 철학은 진리라는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쫓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심리, 몸)와 외부(타자, 사회, 제도, 국가)에 대해 사유하면서 때로는 나를 위로하고 변화시키면서 때로는 우리를 위해 세상을 바꾸는(눈꼽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적 활동이겠죠. ^^

공쟝쟝 2023-03-28 15:12   좋아요 2 | URL
제가 철학에 대해 가진 불만은 그거예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사유를 할 수 있는 건 나 같은 이상한 사람(-_-;;;)들 밖에 없... 는 상황에서 다들 본질주의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쉽게 생각하는 데... 생계에 매인 사람은 생각하기 어렵잖아요.... 바빠죽겠는 데.. 누구보다 철학이 필요한 사람들은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이고 .... ㅜ,,ㅜ 이렇게까지 읽어야만 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가 없다....는게 저의 결론...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사람은 정희진과 마리루티 뿐.... 암튼 다들 방법이 있겠죠ㅋㅋㅋ 아몰랑~ 아직 모르는게 많아서 불만을 탐구열로 바꾸겠습니다 ㅋㅋㅋㅋ

책먼지 2023-03-28 15:2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 쟝님 말씀이 맞아요 시급한 문제였다면 절대, 답이 오겠지 하고 내버려두고 기다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저에게 정리가 끝난 문제고 저의 태도를 정당화할 논리가 필요한 것뿐인지도 모르겠어요.. 비겁했죠???

저도 내가 남자라면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데 쟝님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가정이란 결론에 도달했고.. 지금 내 상황과 위치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나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정말 여기에 비춰볼 수밖에 없겠네요

권력에 관한 태도는.. 민주인사나 보수인사나 결국 그걸 특권이라 생각하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그에 따르는 영향력과 책임감의 무게를 진실로 아는 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권력이 자격 없는 이들에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민주인사들이 미투를 두고 그런 작은 일에 발목잡힐 때가 아니고 어쩌고 할때.. 그건 부차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서 서로 감싸주기할 때 너무 절망했었어요

쟝님의 철학함과 낙관에 저도 기대볼래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던지면 분명 훌륭한 분들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실 것을 알았으나 제 예상보다 더 좋네요 진짜..

DYDADDY 2023-03-28 16:27   좋아요 4 | URL
이상한 사람.. ㅋㅋㅋㅋㅋ 8년 정도 전에 ‘철학 vs 철학‘이라는 책을 읽겠다고 회사에 가지고 다닌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매일 묵직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이유를 물어서 책을 보여주었을 때 그 눈길을 기억해요. ㅋㅋㅋㅋㅋ (참고로 그 책은 950페이지 정도였어요.) 사내에 책 읽는 사람이 없어서 저만 별종이 되었지만 이제는 그려려니 합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보통 플라톤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보니 뜬구름 잡는 것이라는 편견이 심한 것 같아요. 아직 읽고 있지만 ‘가치 있는 삶‘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난 책이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28 16:45   좋아요 2 | URL
대디님 왕따래요

DYDADDY 2023-03-28 16:52   좋아요 2 | URL
집과 회사 그리고 가끔 도서관만 오가고 술도 안마시는 사람에게 무슨 친분이 있을까요. 그리고.. 남자들과 술자리에 있는거 싫어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차라리 왕따로 열심히 책 읽는 것이 더 편해요. ㅎㅎㅎ

공쟝쟝 2023-03-28 16:54   좋아요 2 | URL
역시 내가 남자였다면…. 난 쓰레기가 되엇을거 같다….. 댇님 최초 인정! 굿! 역시 남자는 사회생활 안해야함!

DYDADDY 2023-03-28 17:03   좋아요 4 | URL
중독을 본인의 의지로 끊으신 분이시니 남자였어도 같은 삶을 사셨을 것 같아요. 그런 분께 칭찬을 들으니 조금은 뿌듯합니다. 담배는 아직 피우고 있어요. 커피도 많이 마시구요. 술을 안마시는 이유는 술을 마시면 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에요. 책중독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03-28 22:22   좋아요 5 | URL
저도 동의해요 인간이 권력에 도취되기란 너무 쉬운 것 같아요. 잘못한 개인을 덮어주고서라도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건 위험한데, 한편으로는 그 개인이 그가 한 행동의 잘못때문에 고립되는 것도 경계해야하는 부분처럼 보입니다 ㅠㅠ 용서하지 않을 부분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가지고가던 의제를 놓지 않으면 좋을텐데 싶고요… ㅠ 저는 권력에 도취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권력없이 개인적으로 잘 사는 삶을 살고 싶어서 공뷰하는 중인데 참 어렵네요

DYDADDY 2023-03-29 00:06   좋아요 5 | URL
우끼님 //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지켜야할 것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윤리적인 눈을 흐리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있을 때에는 집단적으로 반발을 하겠죠.
권력이란 누가 주었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어떻게 써야하고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건수하 2023-03-28 22: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먼지님이 질문을 매달아주셔서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네요. 저는 개개인에게 가끔 분노하지만 구분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공쟝쟝님처럼 내가 남자라면? 이라고 바꿔 생각할 때 약간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나도 남자라면 그러고 싶겠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을 지언정), 부끄럽지만 나도 아내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생각도 해 봤기 때문에… 그래서 현실적으로 ‘He for she’ 같은 캠페인, 남성들로 하여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남성은 잘 구분하고 있는가? 그것도 생각해볼 문제라 생각해요. 언제나 불만이 많은 건 약자이니까…

<제2의 성>에 ‘여성은 자신이 이 세계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때로는 그래서 내가 권력에의 의지가 없고 쉽게 자기만족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만 개인의 삶보다 세계에 있어서는 쉽게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공쟝쟝 2023-03-28 22:51   좋아요 4 | URL
길다 … 🥰

건수하 2023-03-29 06:49   좋아요 3 | URL
네 저한테 이 정도면 진짜 긴거 ㅋㅋㅋㅋ 쟝님을 만족시키려면 이 정도 써야 되는군요? 자기 얘기도 써야 하고.

건수하 2023-03-29 06:52   좋아요 3 | URL
어제 이 댓글을 달고 금방 잠들어서 그런가 꿈에 책먼지님이 나왔어요 ^^;;; 왜인지 모르지만 제 본업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미술품 관련 일이었구요 -.- 일에는 냉철하지만 사람에겐 상냥한 멋진 분이셨… 책먼지님, 저 혼자 반가웠어요 ㅎㅎ

책먼지 2023-03-29 07:20   좋아요 3 | URL
수하님 저 지금 너무 좋아가지고 졸음이 싹 달아났구요..💕 출근하고 제대로 댓글 달게요!!!

책먼지 2023-03-29 09:49   좋아요 4 | URL
어제 쟝님 말씀에 비춰 생각해본 결과 나는 내가 가졌지만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의식하는가? 생각하는가? 그러니까.. 내가 어떤 권력을 가졌음을 자각하고 늘 주의하는가?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제 답은 아니오거든요.. 숨쉬듯이 당연한 건데 왜??? 아마 대다수의 남성이 이렇지 않을까 싶어요. 본인에게 특권이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가 아닐까.. 책이나 문학작품의 순기능 중 하나는 우리의 권력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상상력이 빈곤해서 알지 못했던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헤아려보게 된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재테크와 자기계발에 몰빵하는 그들은 조금의 동일성만 위협받아도 스스로를 약자로 포지셔닝하고 막 왁왁 공격성을 드러내잖아요??? 실제로는 약자의 입장에 처해본 적도 없고 헤아려보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어서 그게 개별 남성에 대한 비판인지, 남성이라는 사회종에 대한 비판인지, 제도나 문화에 대한 비판인지 구분하지 않고 일단 뭔가 하나라도 건드리면 발작 버튼 눌리는 느낌.. 수하님 말씀대로 이런 걸 다 섬세하게 구분하고, 공부하고, 더 잘 받아들여질 방법을 모색하고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게 약자인 까닭은 약자에겐 이게 실존의 문제라 늘 생각하고 자각할 수밖에 없는데 강자에겐 그냥 당연한 특권이라 의식조차 안하다가.. 그 특권이 조금이라도 침해받을 것 같으면 막 난리나는 것 같아요😭

개인적 삶에서는 쉽게 만족을 얻되 세계에 관해서는 더 많은 걸 기대하시는 수하님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저를 떠올려주신 것도 또 너무 좋고요😘💕 일에는 냉철하지만 사람에는 상냥한 저는 냉철하게 일하러 갑니다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9 10:26   좋아요 5 | URL
맞아요. 저도 항상 여성이라 약자라고 생각했지, 더한 약자가 있다는 것, 제가 여성 중에는 다수 (이성애자, 기혼 유자녀 여성) 라는 생각을 잘 못했었거든요. 페미니즘을 여성에 관한 것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며 오히려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전기가오리님의 강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다른 어떤 기회에 남성들도 페미니즘이나 여성의 발언을 생각할 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발화인지 잘 구분해야 한다- 라고 말씀해주셨으면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ㅎㅎ (후원자도 아니면서)

어쨌거나 전기가오리, 점점 궁금해지네요..

냉철하게 일하는 책먼지님, 남은 하루 화이팅입니다~
 


세상에는 말할 수 있는 영역(언어화할 수 있는 영역)과 말할 수 없는 영역(언어화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말할 수 없는 영역이 말할 수 있는 영역보다 방대하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고 한 데에는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논하지 말라는 소극적 의미도 있으나, 논리적/경험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것을 더욱 명확히 체현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라는 적극적 의미도 있다. 윤리나 종교, 삶의 의미를 비롯한 가치 있는 것들은 말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해 있다. 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그냥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일종의 '비유'로서 특정한 게임의 규칙과 맥락(예를 들어, 종교) 속에서 유효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전기가오리를 통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고, 아래부터는 본격적인 확대 해석과 오독이다.


나는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경계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지식의 발견, 시대의 변천, 개인의 가치관과 역량에 따라서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은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타인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나 자신에게 만큼은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유의미한 명제가 된다.


내 생각에 지금 여성들이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일은 바로 그 경계를 움직이는 일인 것 같다. 우리는 기존에 잘못 말해진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전에는 말할 수 없는 영역으로 분류되었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위치와 맥락을 부여하여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쩌면 불가능하고 그만큼 공격에 취약한 이런 노력을 경주하는 까닭은 언어로 남지 못한 것은 휘발되기 쉽기 때문이다. 매 세대가 허덕이며 ground zero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역사의 부침과 전방위적 공격으로 비록 이전 세대는 실패했으나 우리 세대는 기필코 여성들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유산을 전수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내 삶이 가질 의미 중 하나는 읽고, 배우고, 공부한 것을 기록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나를 바꿔 세계에 나를 일치시킬 것이다.


댓글(35)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청아 2023-03-01 16: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아무리 비트겐슈타인이라도
절반의 진실에 다가갔을 뿐이겠죠
요즘 부쩍 그렇게 느낍니다.

책먼지 2023-03-01 18:0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미미님, 저 비트겐슈타인 잘 몰라서 비판할 깜냥도 되지 않지만(이해는 진즉에 포기했고 그냥 하나의 현상으로 보려고요) 미미님 말씀 너무 통쾌해요ㅋㅋㅋ

DYDADDY 2023-03-01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트겐슈타인도 말년에는 극단적인 이분법이 아닌 각각의 층위를 구별하기 위해 색채에 집중했으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과 주황색의 경계는 어디인가 라는거죠. 페미니즘도 여러 층위가 있고 각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층위도 있겠지만 그런 층위가 모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 것이라고 믿습니다. 공부한 내용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책먼지 2023-03-01 18:12   좋아요 2 | URL
말년의 비트겐슈타인이 그나마 마음에 드네요ㅋㅋㅋ 그 아름답고 찬란한 무지개에 대디님도 색을 보태주시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건수하 2023-03-01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기가오리가 뭔지 몰라 찾아봤어요. 책먼지님의 확대해석 좋아요 :)

자목련 2023-03-02 09:13   좋아요 1 | URL
저도 찾아봤어요.

책먼지 2023-03-02 10:16   좋아요 1 | URL
제가 설명이 부족했죠?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혼자 파긴 어려워서 전기가오리 철학 공부 모임 도움받고 있숨니다!!!

책먼지 2023-03-02 10:16   좋아요 1 | URL
제 확대해석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마도 그것은 수하님도 경계 옮기기를 하고 계시기 때문..💕

2023-03-02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2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2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2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DYDADDY 2023-03-02 19:54   좋아요 1 | URL
다시 확인해보니 링크가 모두 끊어졌어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앱에서 철학채널P를 검색하시면 순한맛(?) 버전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ㅠㅠ

책먼지 2023-03-02 20:13   좋아요 0 | URL
이렇게까지 품을 들여서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순한맛 먼저 들어보고 감당 가능하겠다 싶으면 매운맛도 도전해보겠습니다!!

2023-03-02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3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3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3-03 1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먼지님 반가워요.
경계옮기기란 제목이 좋아요.
비트겐슈타인을 설명한 부분도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구요.
전기가오리가 뭔지 궁금하네요^^;;
저도 항상 경계에 대해 생각합니다.
경계 허물기보다 경계 옮기기가 더 실현 가능한 듯요.

책먼지 2023-03-03 16:48   좋아요 2 | URL
저 어젯밤에 자다깨서 잠깐 핸드폰 보다 그레이스님 글 읽고 반해가지고 이분 팔로우해야지 이러고 출근했어요!! 반가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기가오리 웹사이트로 후원을 신청하면 매달 소정의 금액을 후원하고 네이버 밴드를 통해서 철학 공부 모임에도 참여하고, 또 실물 굿즈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서비스(?)입니다!!!
경계를 옮기다보면 간혹 허물어지기도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공쟝쟝 2023-03-05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철학자 테스트 했는데 후기비트겐슈타인 85% 나왔어요!! 그때는 비트겐슈타인이 누군지 몰랐는 데, 지금은 제가 읽는 책들에 계속 등장해서 대충 이런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습니다.ㅋㅋㅋㅋ
철학이라....... 사실 저는 어쩌다 보니, 푸코 책사기 처돌이가 되어버렸는데..... ......... 제가 푸코 땜시......... 암튼 철학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은 마음만 마음은 마음만 먹고 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가워요. 책먼지님. .... ... 전기 가오리 잘 모르지만 전기가오리에서 푸코 공부 팁 알려주면 종종 공유주시기를 바랍니다...ㅜ_ㅜ

책먼지 2023-03-05 19:48   좋아요 1 | URL
쟝님 저도 마음만 앞서고 공부는 현생에 밀려..(또륵) 우리 다 그렇잖아요? 당장의 밥벌이가 급한 거..???
푸코 한 차례 지나가고 후원하게 되어서 다시 차례 돌아오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쟝님께도 꼭 공유드리겠습니다!! 푸코.. 진짜 똑똑한 거 알겠는데 왜 이상하게 찌질해보이고 만만한지 모르겠어요ㅋㅋㅋ 좋아한다고 말하기 싫지만 자꾸 정이 가는 철학자 중 한명..

공쟝쟝 2023-03-05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ttp://www.gotoquiz.com/which_philosopher_are_you <--당신의 나랑 닮은 철학자는?!

DYDADDY 2023-03-05 17:01   좋아요 1 | URL
오호.. 저는 콰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85%, 니체가 80%이군요. ㅋㅋㅋ 그나마 후기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ㅠㅠ

2023-03-05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5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5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05 17:31   좋아요 2 | URL
아!! 너무 감사하다는 말이었어요. 북플 시스템상 이런 비댓은 안보이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가 남을 때 가사노동할 때 틈틈히 다 듣겠습니다. 왠지 다 들으면 천재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DYDADDY 2023-03-05 17:34   좋아요 1 | URL
많이 공부하시고 저도 가르쳐주세요. 저는 이제 뇌가 굳어서.. ㅋ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3-05 19:56   좋아요 1 | URL
저는 두분 비댓 다 보이는데 대디님만 안 보이는 구조군요??? (저 열정적인 감사인사를 저만 볼 수 있다니 아깝..) 대디님 진짜 아낌없이 주는 나무..ㅠㅠ

DYDADDY 2023-03-05 19:37   좋아요 1 | URL
책먼지님 // 뭐든지 고이면 썩으니 흘러흘러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죠. 그리고 공부는 같이 할수록 즐거워지니까요. ^^

책먼지 2023-03-05 19:41   좋아요 2 | URL
헥헥 테스트하고 돌아왔습니다.. 사르트르/카뮈 93% 콰인/후기 비트겐슈타인 90% 나오네요???ㅋㅋㅋㅋㅋㅋ 저.. 실존주의자인가봅니다.. 삶은 부조리하다!!!!

책먼지 2023-03-05 19:43   좋아요 1 | URL
대디님 넉넉히 나눔해주신 덕에 더 부담없이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리히프롬 살짝 들어보았는데 좋았고 앞으로도 애용할 것 같습니다!!!

DYDADDY 2023-03-05 19:56   좋아요 1 | URL
혹시 아이폰을 쓰신다면 BookPlayer라는 앱을 추천드립니다. 광고가 없고 배속플레이가 가능하며 앱을 닫아도 전에 듣던 중간 부분부터 재생이 가능합니다. ^^

책먼지 2023-03-05 20:12   좋아요 1 | URL
대디님 저 바로 설치했고 듣고 있던 파일 불러오기했어요!! 앞으로도 드라이브에서 듣고 싶은 거 골라서 요기 쏙 넣어서 들으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북플 북플레이어 비슷ㅋㅋㅋ 감사합니다!!!
 

어릴 때 읽은 탈무드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예화가 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여행하고 있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귀한 것을 자랑했다. 랍비는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귀하지만 당장은 보여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와중 해적이 배를 습격한다. 재물을 가졌던 사람들은 가진 걸 모두 잃었으나 랍비는 아무 것도 잃지 않는다. 랍비의 재산은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라서 어디든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다. 재물은 강탈할 수 있고, 지위와 권세는 박탈할 수 있으나, 머릿속의 지식은 건드릴 수 없다는 이 이야기를 읽고 어린 책먼지는 지식을 쌓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영화 <스틸 앨리스>는 지식도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생을 노력해 이뤄낸 학문적 성취와 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침탈당하고 소거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모든 기억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을 여전히 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앨리스가 교수로 재직했던 컬럼비아 대학교를 가리키며 남편이 앨리스에게 '저기가 어딘지 아냐'고 묻자 앨리스는 모른다고 답한다. 저기에서 당신이 학생을 가르쳤다고 알려주자 앨리스는 '내가 좋은 선생이었다고 들었다'고 한다. 내가 아주 똑똑했었다고. 남편은 '당신이 내가 평생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현재형으로 말한다. 이윽고 묻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기에 있고 싶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데도 여전히 뉴욕에 있고 싶냐는 뜻으로. 먹던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으며 앨리스는 '나 아직 다 못 먹었는데 지금 가야하냐'고 답한다. 이 소통의 불가능성에 나는 마음이 미어졌다.


남편은 앨리스를 두고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뉴욕을 떠난다. 마지막까지 앨리스를 보살피는 게 남편도, 의사 아들도, 변호사 딸도 아닌, 끝까지 앨리스를 가장 걱정시켰던 배우지망생 딸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원작은 2011년에 원서로 읽었는데 영화를 이제 보았다. 영화에서 <Angels in America>를 인용한 부분이 너무 좋아서 급하게 가져온다. 리사 제노바는 신경과학자인데 어쩜 소설도 이렇게 잘 썼지.



약속 나가기 일보직전이라 마음이 급하다(사진 삐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 비로 분한 <스펜서>를 보고 완전 다시 보게 됐는데, 이때 이미 연기를 잘했구나(트와일라잇이 너무 강렬했어).. 이하 관련 인용구와 클립



Night flight to San Francisco; chase the moon across America. God, it’s been years since I was on a plane. When we hit 35,000 feet we’ll have reached the tropopause, the great belt of calm air, as close as I’ll ever get to the ozone. I dreamed we were there. The plane leapt the tropopause, the safe air, and attained the outer rim, the ozone, which was ragged and torn, patches of it threadbare as old cheesecloth, and that was frightening. But I saw something that only I could see because of my astonishing ability to see such things: Souls were rising, from the earth far below, souls of the dead, of people who had perished, from famine, from war, from the plague, and they floated up, like skydivers in reverse, limbs all akimbo, wheeling and spinning. And the souls of these departed joined hands, clasped ankles, and formed a web, a great net of souls, and the souls were three-atom oxygen molecules of the stuff of ozone, and the outer rim absorbed them and was repaired. Nothing’s lost forever. In this world, there’s a kind of painful progress. Longing for what we’ve left behind, and dreaming ahead. At least I think that’s so.

Tony Kushner, ‘Angels in America, Part Two: Perestroika’






























+ TED Courses 'How to boost your brain + memory with Lisa Genova'


비밀댓글 요정 스콧님 추천으로 리사 제노바의 테드 강연을 찾아보다가 급기야 이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듣고 싶다.. 격하게 듣고 싶다..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뇌에서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 기억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알려준다는데.. 이 아름다운 문이과 통합형 인재(하버드대 신경과학 박사 겸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4주 짜리 강의가 49달러면... 이건 들어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2-18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8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2-18 1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본문까지 정말 다급함이 느껴지는 페이퍼 ㅋㅋㅋㅋㅋ 약속 잘 다녀오셔요

책먼지 2023-02-18 19:49   좋아요 1 | URL
은오님 배웅받고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