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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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소설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았을 때 ‘이건 빨리 사야 해’를 외치며 순식간에 주문했다. <새의 선물>의 여운과 감동은 이토록 진했다.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은 산더미였지만 은희경의 신작 소설 앞에서는 뒷전이었다.


 이 소설은 화자가 대학의 기숙사 시절 경험한 추억과 친구들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게 다였다. 은희경 작가가 연배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줌마들이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옛날이야기를 한다면 딱 이 소설의 내용이 되겠다. 


그 시절의 무시무시했던 군사정권의 압제도 소설 속의 여자들에게는 그냥 사귀는 남자와 관련된 일부분에 불과하더라. 해맑은 여대생의 천진난만 하고 케케묵고 재미도 감동도 공감도 없는 추억담 모음집을 왜 내가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짜증을 혼자서 내다가 읽다 말은 이 소설을 재활용 통에 버려버렸다. 다 떠나서 아무 재미가 없더라. 이제 은희경이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책을 사는 읽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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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9-0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글고보니 저도 언젠가부터 은희경 책을 안사고 있네요. 그렇게 손절한 작가들이 여럿입니다. 알랭 드 보통, 아멜리 노통브, 베르베르 등등... 끌림도 갑자기 찾아오지만, 이별은 서서히 이루어지더군요. 아마 박선생님도 이 책 한권으로 손절하시진 않으셨을 겁니다. 이상한데?---> 이번에도 이상한데?---> 아 이제 헤어질 때가 됐구나, 뭐 이런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좋은 작가가 많고 또 박선생님도 그 중 하나이니, 너무 슬퍼마십시오

박균호 2019-09-07 17:03   좋아요 1 | URL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근황은 서재 글을 통해서 잘 보고 있었어요.^^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 김훈도 이젠 안 읽게 되더라구요. 김훈의 최근 책을 보니 ‘내가 젊었을 때는 이랬다’는 글이 많더라구요. 그냥 작가로서의 창의력과 신선함이 사라진 신호로 느껴졌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은희경의 이번 책이 그랬고요. 그나저나 선생님은 항상 새롭고 신선한 책을 내셔서 존경스러워요...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글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저를 좋은 작가로 칭찬해주신거 캡쳐해서 가보로 남기고 싶지만 과찬이시고 격려의 말씀으로 여기겠습니다. 이 또한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9-09-0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서평단에 똑 떨어지는 바람에
좀 그랬었는데...

나중에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다 읽어야
하는 싶었는데 패스해야겠군요.

항상 책 읽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
말이죠. 재미가 없다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박균호 2019-09-07 21:05   좋아요 0 | URL
네 읽는 시간이 아까운 그런 책이었습니다....ㅠ
 
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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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책을 방치한다고 해서 좋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 다른 책을 찾기 위해서 뒤적거리다가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책을 오랜만에 보면 오랜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아! 내가 이 책도 가지고 있었구나! 라는 감탄도 생기고 새삼 그 책에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마침 오랜만에 본 책이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라면 단지 반가운 정도가 아니다. 


골목길을 별다른 생각 없이 걷다가 갑자기 맞은편에서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의 이성이 걸어올 때 느낄만한 설렘이 느껴진다. ‘현암사’는 2013년 9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 <태풍>을 시작으로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을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2016년에 전 14권의 완간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말하는 <우미인초>는 이 전집 중의 한 권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만을 모아서 전집을 펴낸 것만으로도 독자로서는 고마운 일인데 수려하고 아름다운 표지디자인으로도 더욱 찬사를 하고 싶다. 많은 독자가 책을 살 때 표지 디자인을 고려하며 나 또한 그렇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동차, 전자제품만 보아도 디자인이 구매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소인데 굳이 책에만 디자인을 무시하라는 법은 없다. 


아름다운 문학전집 표지라는 주제를 생각해보면 빨리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민음사’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솔출판사’의 <버지니아 울프 전집> 그리고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다. 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표지를 가장 좋아한다.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전집> 표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조국인 일본에서 나온 ‘이와나미 쇼텐 株式会社岩波書店Iwanami Shoten Publishers)판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우선 말하고 싶다. 


‘이와나미 쇼텐’은 株式会社岩波書店이라는 한자표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와나미 시게오’라는 사람이 ‘세계 최고의 책의 거리’로 소문난 도쿄의 진보초에서 1913년 문을 연 고서점 전문 서점에서 출발했다. 한편 ‘나쓰메 소세키’는 ‘이와나미’ 서점이 문을 연 다음해인 1914년 4월 20일에서 8월 11일에 걸쳐 그의 장편 소설 <마음>을 연재했다. 


이제 막 헌책방을 개업하고 근근히 운영하던 ‘이와나미 쇼텐’의 창업자 ‘이와나미’는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던 <마음>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무작정 ‘나쓰메 소세키’를 찾아갔다. 이유는 뻔했다. <마음>을 자신이 출간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쓰메 소세키’ 입장에서는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는 제의였다.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단박에 인기 작가가 되었고 말년에 접어든 국민작가로서 펴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 분명한 그의 소설을 출간하고 싶었던 대형출판사들이 그의 간택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대형출판사에서 출간하면 훌륭한 제작과 마케팅이 보장되었고 엄청난 인세 수입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또 그 당시 대학교수 자리를 집어치우고 전업 작가로 살기로 해서 안정적인 수입이 중요했던 ‘나쓰메 소세키’입장에서는 굳이 ‘극본도 없는’ 헌책방 주인과 계약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더 어이없는 것은 대문호의 소설을 출간하겠다고 덤비는 이가 출판사 사장이 아니고 1년 전에 문을 연 동네 헌책방 주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나쓰메 소세키>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흔쾌히’ 헌책방 주인과 책을 내기로 약속했다. 대작가로 추앙받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신출내기 헌책방 주인의 ‘간곡한 부탁’에 감동을 한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출간계약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이 헌책방 주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더 끔찍한 제안을 한다. 본인은 돈이 없으니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출간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해달라고 부탁한 것. 이 부탁마저도 일본의 대문호는 허락한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마음>은 자비로 출간된 속사정이다.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서 자기 돈으로 책을 내는 그 자비출판과는 차원이 다른 경우였다. 


어쨌든 이 역사적인 출간을 계기로 ‘이와나미 쇼텐’은 서점에서 출판사로 새로 문을 열었다. 본인의 소설로 첫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미덥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문학 인생을 정리하는 대작에 대한 애착이 강했는지 ‘나쓰메 소세키’는 표지와 광고문구까지 직접 기획했다. 1914년 9월 26일 자 <시사신보>에는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가 기획한 광고문이 실렸다.


“자기의 마음을 가다듬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가다듬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물론 ‘이와나미 쇼텐’에서 출간된 <마음>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작가가 사망한 이후인 1918년 1월 일본 최초의 <소세키 전집>을 출간했다. 이 전집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와나미 쇼텐’은 진보초의 작은 헌책방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출판사로 성장하였다. 1918년에 ‘이와나미 쇼텐’이 출간한 <소세키 전집>의 표지는 1914년에 나온 <마음>의 표지 디자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이와나미 쇼텐’판 <소세키 전집>은 표지에 얽힌 사연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된다. 나에게 ‘이와나미  쇼텐’판 <소세키 전집>이 각별한 것은 표지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한 권씩 나올 때마다 사서 읽는(심지어 여자 주인공 ‘시오리코’의 피겨까지 샀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권의 첫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이 바로 ‘이와나미 쇼텐’판 <소세키 전집. 신서판>이다. 


신서 판이란 ‘이와나미 쇼텐’이 좋은 교양도서를 저렴한 가격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기획하에 103x182mm 크기로 제작된 문고판 크기의 시리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의 남자 주인공 ‘다이스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문제의 <소세키 전집. 신서판>을 발견했다. 이 책에 ‘나쓰메 소세키’의 서명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 가치를 알기 위해서 고서점의 주인이자 고서에 관한 모르는 것이 없는 여주인공인 ‘시오리코’를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오리코’의 입을 통해서 <소세키 전집>에 대한 사연을 좀 더 알 수 있는데 과연 ‘이와나미'는  ‘소세키’와 인연이 깊어서 작가의 제자와도 교류를 이어나갔으며 1918년에 나온 첫 전집은 ‘이와나미’와 ‘소세키’의 제자가 서로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2016년에 완간된 ‘현암사’ 판 <나쓰메 소세키 전집>은 ‘이와나미  쇼텐’처럼 ‘소세키’가 기획한 표지디자인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이와나미  쇼텐’에서 나온 <소세키 전집>이 작가가 직접 만든 표지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현암사’의 표지는 디자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소재와 질감을 통해서 고풍스러운 멋을 발산한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발전된 작품이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처럼 몇 년에 걸친 야심 찬 대작을 펴낸다면 가격을 좀 비싸게 책정하더라도 구부러지지 않고 안정감이 있는 튼튼한 하드커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암사’의 생각은 좀 달랐다.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는데 코팅을 비롯한 후 가공을 하지 않았다. 마분지를 선택한 다음 코팅을 하지 않음으로써 까칠한 섬유 재질과 같은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코팅이 되어 있지 않으니 쉽게 때가 묻고 표지 인쇄가 변색할수도 있는데 이 점이 오히려 표지의 주인이 오래된 고전이라는 점을 잘 말해주는 매력이 될 수도 있겠다. 세월이 흐르고 독자의 손때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빈티지 효과가 생기도록 의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암사’ 판 표지는 각 권마다 내용을 함축하는 그림이 수려하게 새겨져 있는데 얼핏 보면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버리는 독자라도 이 책만은 그러면 안 된다. 띠지에 인쇄된 문구는 표지에 적힌 한시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세키’가 한 번 더 표지 디자인을 할 기회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현암사’의 디자인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번역의 질 또한 훌륭해서 외관의 아름다움을 보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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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대전에 있는 계족산 그러니까 닭 다리산에놀러 갔다. 14.5 km가 황톳길로 조성된 특이한 곳이다. 어쨌든 남들이 하는 대로 맨발로 황톳길을 따라서 한 3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출판사에서 문자가 왔는데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 2쇄를 찍어야 하는데 초판에 오탈자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소식이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별생각 없이 ‘내가 낸 책(제목을 알려줘 봐야 아내는 모른다. 내가 숱한 책을 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이 2쇄를 찍는다는군’이라고 대답을 했다. 아내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뭐, 당신이 낸 책이 2쇄를 찍는다고?”


그러니까 내가 낸 허접한 책이 2쇄를 찍는다는 것이 어이없다는 것이다. 이어진 말이 더 가관이었다.


“아니, 대체 초판을 몇 부 찍었길래 2쇄를 찍어?” 

“한 오십 권찍은 거야?”


나의 출간에 관해서 아내가 무시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 나 자신도 내가 ‘작가’라고 불릴만한 사람인지 회의적이며 이 일에 대해서 아내가 무관심 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쓴 책이 초판을 50부라고 말하는 것은 임계점을 넘는 발언이다.


 물론 점잖은 아내의 입장에서는 기특한 일이긴 한데 멋쩍어서 농담을 한 것은 알지만 말이다.아내의 한 마디에 분기탱천한 나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이봐, 오십 권이 아니고 이천권이라고. 이천권”


이 말이 발화된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50권이 아니고 2천 권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의 은밀한 판도라의 상자는 막 열릴 참이다. 그동안 아내의 무관심에 힘입어 저술 활동으로 번 돈으로 아내에게 눈에 띈 배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쁜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경사도가 높은 코스라 숨을 헐떡일 만도 한데 아내는 차분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그 책 가격이 얼마야?” 


머뭇거리면서 1만4천 원이라고 대답을 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권당 당신한테 지급되는 인세가 얼마지?”


 이 대목에서 체포를 암시하며 자수하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수사관 ‘포르피리온’를 대하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더 올라갈 곳이 없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는데 표범에게 이미 뒷다리를 물린 나무늘보가 바로 나였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사실대로 책값의 10%라고 말했다. 아내는 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혼잣말이 이어졌다.


“그럼 한 권에 1,400원이군.”


“아까 초판을 2천 부 찍는다고 했지? ”


“그럼 초판이 다 팔리면 인세가 24만 원? 아니 28만 원인가?”


영어 선생인 나나 국어 선생인 아내나 1400X2000이일초 만에 암산이 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이없는 계산을 하는 아내를 보고 안도감보다는 수리계측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내가 안타깝기까지 했다. 어쨌든 잠시 뒤에 아내는 정답을 찾았다.


“아, 280만 원이구나”조용히 아내의 처분을 기다렸다. 어쩌겠는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음. 작가가 책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 참 어렵군. 몇만 권은 팔아야 돈을 좀 벌겠는데”


갑자기 산 공기가 시원해졌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황톳길을 걷기 사직한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산 아래에서 4.5km 정도를 걸었다. 마침 시원한 음료수를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놀랍게도 그 할아버지는 산 입구에서 지게로 물건을 이고 와서 팔고 있었다. 아내는 생수를 나는 생수를 샀다


. 땀으로 축축해진 만 원짜리 지폐를 조심스럽게 건넸는데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잔돈을 챙기신다. 팔천 원을 내주신다.아무 물건도 없이 맨몸으로 걷기에도 쉽지 않은 거리인데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지게로 이고 온 물건인데 가격이 너무 평범해서 멍하니 한참을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건네주신8천 원을 송구해서 냉큼 주머니에 다시 넣지도 못한 채였다.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8천 원 내 드리면 맞지요?”


황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이제 막 평지로 들어셨는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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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8-10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마음 가지신 작가님. 2쇄 축하드립니다. 아내분 바람대로 몇 만권 기원합니다. ^^

박균호 2019-08-10 15:29   좋아요 0 | URL
음...그냥 걸어가기도 힘든 산길을 그 무거운 걸 지게로 옮겨서 파는 건데 편의점 가격이랑 별 반 다르지 않아서 마음이 좀 아프더라구요.. 제가 특별히 마음이 따뜻하지는 않은데 연로하신 할아버지라서 좀 그랬애요...축하 감사합니다..

chagall 2020-09-23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선생님이셨네요, 작가님.
집콕 독서를 읽다가 직접 쓰신 글이 있어서 혼자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

박균호 2020-09-23 05:48   좋아요 0 | URL
일찍 일어나셨군요....제 부족한 책도 읽어주시고 ㅎ 정말 감사해요.
 
언어사춘기 - 주인의 삶 vs. 노예의 삶, 언어사춘기가 결정한다 푸른들녘 교육폴더 8
김경집 지음 / 들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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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는 편이다. 독서가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부류도 있고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는 독서가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구 접고, 속지에 메모를 휘갈기며 필요하면 찢어서 메모지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책과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다. 나처럼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오늘 읽고 있는 책을 내일 재활용 통에 버릴지라도 내지를 접지 않고, 메모하지 않으며 심지어 띄지도 고스란히 제자리에 둔다.

김경집 선생의 신간 <언어 사춘기>도 당연히 조신하게 읽기 시작했다. 인문학자가 쓴 책이니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깨우침을 주는 책으로 생각했다. 나의 플라토닉 사랑은 금방 격렬한 육체적인 사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참신하고 신선한 통찰력이 넘치는 구절이 많아서 차분하게 수첩에 메모할 여유가 없었다. 

연필로 마구 밑줄을 긋고 내지를 접어가며 꼭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떤 구절에서는 내 자식이 청소년기였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느냐는 한탄을 했다. 하다 못해 내 자식이 10대 전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느냐는 한탄을 했다. <언어사춘기>는 사변적인 책이 아니다. 다분히 통찰력이 번득이고 실천을 하게 하는 책이다. 대학 시절 ‘나의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다’라는 말을 좋아했었다. 언어와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막연히 좋아한 말인데 <언어사춘기>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왜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인지 알게 되었다. 아울러 언어의 한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언어 사춘기’라는 말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하겠다. 신체의 발달단계뿐만 아니라 사람의 언어의 발달 단계에도 아동과 성인 사이에 사춘기가 존재하는데 이를 ‘언어사춘기’라고 한다. 아동의 말은 길이가 짧고,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이 빈도가 낮으며 욕설도 많이 섞여 있다. 어른의 언어는 그 반대다.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짧은 언어가 아니고 관념과 개념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보다는 어른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성공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논리적이고 현명을 판단을 할 확률도 높다. 대략 10세 전후에 형성되는 언어 사춘기는 당연히 어른의 언어를 습득하는 최적의 시기인데 이시기를 놓치면 어른의 언어를 습득할 확률이 낮아지고, 어른의 언어가 지닌 의미 있는 생활과 인생을 누릴 수 없는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사춘기>는 당신의 자녀가 어른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제시한다. ‘언어 사춘기’라는 용어가 참신하듯이 이 책의 저자 김경집 선생이 제시하는 방법은 독특하고 신선하며 창의적이다. 김경집 선생이 말하는 어른의 언어를 습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그러나 부모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인데 아무리 독서의 중요성을 노래 불러봐야 자녀가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책 말고도 재미있는 매체가 너무 많다. 영상이나 시각 매체에 대한 과도한 몰입 때문에 어른의 언어로 도약하기 힘든 요즘 아이들을 위한 김경집 선생이 알려주는 꿀 팁 하나를 소개한다. 자식들이 사용할 교과서를 2권 구매한 다음 진도에 맞춰서 미리 읽는다. 학창 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그 당시 중요했던 개념이나 어휘를 생각해내고 노트에 옮겨 적은 다음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의식적으로 그 개념이나 어휘를 사용한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생소한 개념이나 어휘를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노출하는 것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부모가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준 어휘나 개념을 떠올리고 수업 내용을 친근하게 느낄 것이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은 각 교과에 사용되는 어휘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일수록 사전적인 의미 자체를 모른 경우가 많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과서에는 어른의 언어가 주로 사용된다. 독서를 통해서 어른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면 학업에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자명하다. 아이들에게 낱말을 만져보게 하면 이해력과 공감 능력 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크게 향상된다는 김경집 선생의 주장도 소중하다. 

나만 해도 그렇다. 어린 시절 재미나게 읽었던 서양동화에 등장하는 많은 서양 물건이나 지명을 만져 보지 못해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1970년대 산골에 사는 소년이 읽는 동화 속 명사 중에서 실제로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실물을 보고 구경하지 못하더라도 도감이나 지도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 단어를 만지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도감이나 지도가 중요하다. 나는 아이들의 교과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회과 부도’라고 생각한다. 

내킨 김에 ‘도감’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서점에 ‘도감’을 검색했다. 실제로 다양한 분야의 도감이 검색되었다. 정신없이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서글픈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탐나고 진귀한 도감은 대부분 일본에서 출간되었더라. 생물이나 지리 역사 같은 보편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아저씨 도감>, <남편 도감>, <일자리 도감>, <세계의 샌드위치 도감>, <소련 전차 군단 도감>, <맥주 도감>도 모두 일본 작가의 책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나온 좋은 도감도 많았지만 주로 소재가 우리나라의 것으로 국한된 것이 대부분 이었다. 김경집 선생의 독서론은 뻔하지 않아서 좋다. 휴가 때 책을 한 권 들고 가서 반만 읽고 그다음 내용을 궁금해 하면서 복귀하고 나머지를 읽기를 권한다거나, 자신만의 공간이 아닌 남들이 보라는 식으로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읽으라는 등. 

지난주에 이제 막 한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둔 학부모에게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추천한 책이 당사자에게는 재미가 없는 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이 바꿨다. <언어 사춘기>를 권하기로 했다. 이 책으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나처럼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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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선을 넘어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외국에 여행만 했지 본격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외국의 사정은 정확히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일,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선을 넘는 대표적인 행위가 되겠다.


남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자리에 취직을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딸 하나만 두는 여지를 주는 바람에 적잖은 오지라퍼에게 시달리긴 했지만 유독 내가 참지 못하겠는 것은 카페나 식당에서 소란스럽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내 사생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듯이 굳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강제로 듣고 싶지 않다. 


주말에 모처럼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 식당가에서 밥을 먹으려니 마침 식사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참을 기다리다 마침내 빈자리를 발견하고 간신히 세 식구가 앉아서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 대여섯 명의 어린아이들이 창가에 기대서 노래를 부르고 논다. 유치원생쯤 나이로 보였다. 


상당히 고층에 위치한 식당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창가로만 가도 아랫배가 찔끔하는 공포가 느껴지는데 어린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이들은 씩씩하고 노래를 합창단처럼 부르고 젊은 엄마들은 박수를 치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어차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식당을 간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니까 좀 소란스러워도 그러려니 했다. 


갈수록 아이들의 공연은 격렬해졌다. 엄마들의 열띤 호응이 아이들을 춤추게 했나 보다. 이젠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려는지 의자 위를 뜀박질을 하면서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소란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다만 아이들이 의자 위를 뛰어다니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아이들의 엄마들은 제 자식들의 운동신경을 무척이나 신뢰하는 모양이다. 연신 박수를 치고 즐거워한다.


아이들의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봉투 꾸러미를 두어 개 들고 왔다. 별 생각 없이 보았는데 먹거리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식당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 직원의 말은 외부 음식을 반입해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까 도합 4명의 젊은 엄마들은 복잡한 식사시간에 식탁 3개를 임의로 합쳐서 10명에 가까운 엄마와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 다음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으려고 한 것. 직원의 제지를 받고 엄마들은 모여서 긴급회의를 하더니 다른 장소를 정하고 그 식당을 떠났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신들이 맘대로 붙여 놓은 식탁 3개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지 않고 그냥 가 버린 것.


어제 모 여성 작가의 북 콘서트에 다녀왔다. 귀담아 들을 말이 많았는데 유독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이야기 거리 소재를 어떻게 발굴하느냐는 질문에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대화를 일삼아 듣는 다는 것. 특히 이별을 하는 연인이 있으면 일부러 자리를 뜨지 않고 귀를 기울여 다 듣고 온다는 것이다. 청중들은 다들 기발하고 재미나게 생각한 모양이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물론 나도 참 귀엽고 재미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호탕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부랴부랴 그 자리를 뜨곤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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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9-07-2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공질서나 어떤 도덕 같은 면에서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죠 미국에서도 솔직히 백인아이들은 이런 교육이 잘 돼있고 나머지는 각양각색으로 엉망입니다 많이 배우고 말고 혹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근대시민의식 같은 면에서는 아직 많이 모자란 걸 느껴요 저도 공공장소에서 시끄러운 건 질색입니다

박균호 2019-07-29 12:28   좋아요 0 | URL
아..정말 끔찍한 사람들이었어요. 장사하는 분들은 보살이 되어야 할 듯 해요. 참 재미난 것은 요새 우리나라도 개인정보에 대해서 엄청 민감하잖아요. 근데 식당이나 카페에 있으면 더이상 개인적일 수가 없는 개인 정보를 내놓고 스스로 방출한다는 거에요..ㅎㅎ 몇 단계만 거치면 모두 알만한 사람이 되는 시골 동네 카페에서도 그렇더라구요.

moonnight 2019-07-29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굉장한 분들을 만나셨네요ㅠㅠ; 저 역시 식당이나 카페에서 떠드는 사람들 질색이에요-_-

박균호 2019-07-29 13:40   좋아요 0 | URL
네, 어떤 의미에서 굉장한 분들이더라구요 ^^

가지않은길 2020-05-0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카페나 지하철에서 외국인이 더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한국 사람들도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있으면 용기가 생기는 건지 아주 시끄러워서 질색이네요. 코로나도 있고 했으니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선 넘지 않기가 생활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박균호 2020-05-03 10:23   좋아요 0 | URL
네, 공공장소에서 남의 사생활을 강제로 듣는 것은 정말 곤역인데 말이죠. 편안하고 조용한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