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대전에 있는 계족산 그러니까 닭 다리산에놀러 갔다. 14.5 km가 황톳길로 조성된 특이한 곳이다. 어쨌든 남들이 하는 대로 맨발로 황톳길을 따라서 한 30분 정도 걸었을 때였다. 출판사에서 문자가 왔는데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 2쇄를 찍어야 하는데 초판에 오탈자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소식이다. 


반가운 마음에 냉큼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별생각 없이 ‘내가 낸 책(제목을 알려줘 봐야 아내는 모른다. 내가 숱한 책을 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이 2쇄를 찍는다는군’이라고 대답을 했다. 아내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뭐, 당신이 낸 책이 2쇄를 찍는다고?”


그러니까 내가 낸 허접한 책이 2쇄를 찍는다는 것이 어이없다는 것이다. 이어진 말이 더 가관이었다.


“아니, 대체 초판을 몇 부 찍었길래 2쇄를 찍어?” 

“한 오십 권찍은 거야?”


나의 출간에 관해서 아내가 무시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 나 자신도 내가 ‘작가’라고 불릴만한 사람인지 회의적이며 이 일에 대해서 아내가 무관심 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쓴 책이 초판을 50부라고 말하는 것은 임계점을 넘는 발언이다.


 물론 점잖은 아내의 입장에서는 기특한 일이긴 한데 멋쩍어서 농담을 한 것은 알지만 말이다.아내의 한 마디에 분기탱천한 나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이봐, 오십 권이 아니고 이천권이라고. 이천권”


이 말이 발화된 순간 후회가 밀려왔다. 50권이 아니고 2천 권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의 은밀한 판도라의 상자는 막 열릴 참이다. 그동안 아내의 무관심에 힘입어 저술 활동으로 번 돈으로 아내에게 눈에 띈 배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쁜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경사도가 높은 코스라 숨을 헐떡일 만도 한데 아내는 차분하고 명확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그 책 가격이 얼마야?” 


머뭇거리면서 1만4천 원이라고 대답을 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권당 당신한테 지급되는 인세가 얼마지?”


 이 대목에서 체포를 암시하며 자수하라고 은근히 압박하는 수사관 ‘포르피리온’를 대하는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더 올라갈 곳이 없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는데 표범에게 이미 뒷다리를 물린 나무늘보가 바로 나였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사실대로 책값의 10%라고 말했다. 아내는 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혼잣말이 이어졌다.


“그럼 한 권에 1,400원이군.”


“아까 초판을 2천 부 찍는다고 했지? ”


“그럼 초판이 다 팔리면 인세가 24만 원? 아니 28만 원인가?”


영어 선생인 나나 국어 선생인 아내나 1400X2000이일초 만에 암산이 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이없는 계산을 하는 아내를 보고 안도감보다는 수리계측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내가 안타깝기까지 했다. 어쨌든 잠시 뒤에 아내는 정답을 찾았다.


“아, 280만 원이구나”조용히 아내의 처분을 기다렸다. 어쩌겠는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내의 말이 이어졌다.


“음. 작가가 책을 써서 돈을 버는 것이 참 어렵군. 몇만 권은 팔아야 돈을 좀 벌겠는데”


갑자기 산 공기가 시원해졌고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황톳길을 걷기 사직한 지 한 시간이 훌쩍 지났고, 산 아래에서 4.5km 정도를 걸었다. 마침 시원한 음료수를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놀랍게도 그 할아버지는 산 입구에서 지게로 물건을 이고 와서 팔고 있었다. 아내는 생수를 나는 생수를 샀다


. 땀으로 축축해진 만 원짜리 지폐를 조심스럽게 건넸는데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잔돈을 챙기신다. 팔천 원을 내주신다.아무 물건도 없이 맨몸으로 걷기에도 쉽지 않은 거리인데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지게로 이고 온 물건인데 가격이 너무 평범해서 멍하니 한참을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건네주신8천 원을 송구해서 냉큼 주머니에 다시 넣지도 못한 채였다.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8천 원 내 드리면 맞지요?”


황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아무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이제 막 평지로 들어셨는데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9-08-10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마음 가지신 작가님. 2쇄 축하드립니다. 아내분 바람대로 몇 만권 기원합니다. ^^

박균호 2019-08-10 15:29   좋아요 0 | URL
음...그냥 걸어가기도 힘든 산길을 그 무거운 걸 지게로 옮겨서 파는 건데 편의점 가격이랑 별 반 다르지 않아서 마음이 좀 아프더라구요.. 제가 특별히 마음이 따뜻하지는 않은데 연로하신 할아버지라서 좀 그랬애요...축하 감사합니다..

chagall 2020-09-23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선생님이셨네요, 작가님.
집콕 독서를 읽다가 직접 쓰신 글이 있어서 혼자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

박균호 2020-09-23 05:48   좋아요 0 | URL
일찍 일어나셨군요....제 부족한 책도 읽어주시고 ㅎ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