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정집
홍승진.김재현.홍승희.이민호 엮음 / 북치는소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나는 독서와 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시집 읽기를 권함’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실상은 나 자신조차 시집 읽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집 읽기를 권함’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다. 시에 대한 좁은 지평 탓으로 내가 낸 여러 권의 독서 에세이에는 시집을 이야기하는 꼭지가 드물다. 재미난 것은 그래도 유독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고 그 시를 2권의 책에서 연이어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김종삼의 시가 좋아서 2번이나 인용을 했다.


  장편(掌篇)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이 시의 제목 장편(掌篇)은 장편소설을 말할 때 사용하는 장편(長篇)이 아니고 ‘짧은 이야기’를 뜻한다. 과연 짧은 시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여운이 짧은 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김종삼의 시는 비정(hard-boiled)처럼 보인다. 도무지 시인의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다. 무심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보이는 광경을 기술하는 마치 사관처럼 ‘기록’할 뿐이다. 그런데도 한번 읽으면 도무지 잊히지 않는 것이 김종삼의 시다.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몇 줄의 시로 수십 년을 붙잡는 여운과 공감 그리고 감동을 주는 것이 김종삼의 시다. 
 
 김종삼의 시를 읽다 보면 시라는 문학 장르가 어디까지 위대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여운을 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 공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겪는 유혹 즉 내가 지금 얼마나 슬픈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김종삼의 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편(掌篇)

어지간히 추운 날이었다

눈발이 날리고 한파 몰아치는 꺼먼 날이었다

친구가 편집장인 아리랑 잡지사에 일거리 구하러 가 있었다

한 노인이 원고를 가져왔다

담당자는 맷수가 적다고 난색을 나타냈다

삼십이매 원고료를 주선하는 동안

그 노인은 연약하게 보이고 있었다

쇠잔한 분으로 보이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고료를 받아든 노인의 손이 조금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노인의 걸음거리가 시원치 않았다


이십 여년이 지난 어느 추운 날 거리에서 그 당시의 친구를 만났다 문득 생각나 물었다

그 친군 안 됐다는 듯

그분이 方仁根씨였다고. 



이 시를 읽고 나서도 김종삼과 그의 친구가 안타까워한 방인근(方仁根)이 누군지 몰라서 검색을 해봤다. 그의 생애에 관한 설명을 읽을 것도 없이 말년으로 보이는 그의 사진만 보아도 김종삼이 오랫동안 기억에 담아 둔 소설가 방인근의 궁핍함이 체감되었다.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식당을 찾은 어린 소녀를 말하는 시가 늘 낮은 곳과 서민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은 최민식의 사진을 떠올리게 하듯이 말이다. 시인 김종삼은 이 시를 통해서 방인근 개인의 궁핍함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인으로서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문인으로서 발자국을 남긴 방인근이라는 개인의 처연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비롯한 문인과 문학의 어려움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믿는다. 셀 수 없는 기록물과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문인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들어왔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저술도 김종삼의 이 시 만큼 궁핍한 문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서술하지는 못했다. 시라는 것이 이토록 힘이 센 장르인지 김종삼의 시를 통해서 새삼 통감한다. 
 
 ‘북 치는 소년’출판사에서 나온 <김종삼 정집>은 시집치고는 엄청난 분량과 가격이라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 우선 정집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전집이 아니고 정집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기존 김종삼 전집 시집에서 빠진 작품을 보완하였고 작가의 작품을 모두 모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원전 비평적 작업, 주해와 함께 낱말 풀이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1000쪽이 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종삼 시인의 원문을 찾아서 온갖 대학 도서관을 찾아 헤맨 14명으로 구성된 편찬위원들의 노고가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장정과 디자인 그리고 내지의 품격이 훌륭하다는 점은 장서가인 나에게는 큰 매력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낼 때는 ‘이원목적분류표’라고 해서 구체적인 문제출제계획서를 우선 작성해야 하는 것이 권장된다. 어떤 단원에서 어떤 능력을 알기 위해서 어떤 난이도로 출제할 것인지를 사전에 정하고 그에 따라서 문제를 내는 것이 좋은데 사실 이를 준수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우선 시험문제를 내고 그에 맞춰서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나로 말하자면 출제를 먼저하고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부류에 속한다. 반성하면서도 여간해서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다. 책을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는 기획서와는 별도로 ‘작가의 말’이 원고에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장군이 전쟁에 나서기 전에 출사표를 던지듯이 작가는 원고를 집필하기 전에 작가의 각오나 계획을 밝히고 그대로 원고를 써나가야 한다고 본다. 
 
 역시 불행히도 작가로서의 나도 ‘작가의 말’을 사후에 작성한다. 여러모로 ‘야매’ 인생이다. 오늘 연말에 나올 신간에 대한 최후 일정으로 ‘작가의 말’을 썼다.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최악의 ‘창작의 고통’을 겪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제목과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말’만 따로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새 책에 대한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 이렇다. 



보물찾기 놀이를 좋아했다. 기민하지 못해서 보물을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지만 보물찾기 놀이는 언제나 즐겁고 작은 스릴이 넘쳤다. 평소에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한적한 모퉁이가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되면 그곳은 보물섬이 되었다. 보물을 숨겨둔 사람도,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놀이다.
 
 나는 고전 읽기를 보물찾기 놀이로 생각한다. 고전이란 주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읽는 책이다.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야산의 한 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듯이, 우리는 고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하였는지를 찾게 된다. 시작은 수동적이었지만 고전을 읽으면서 부모 세대가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발견한 독자도 있을 터이고,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던 나처럼 남들이 좋다는 고전에서 감동이나 공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이 다 찾은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고전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고전이 태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기에게 맞는 고전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한 번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다시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보물섬이 언제 어디라도 우리에게 나타나니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고전에 대한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리의 재료가 요리사에 따라서 다른 요리로 태어나듯이 고전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감동과 공감이 발견된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고전이 이토록 다양한 형태와 시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책 읽기에 정답과 정도가 있다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가능한 각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흔한 요리 재료로 남다른 요리를 선사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이 책을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신선한 자극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토론이나 논의의 주제가 될 만한 주제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독서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잘 알려진 고전과 낯설게 생각될 고전의 목록을 안배했다. 누구나 알 법한 고전에서 흔치 않은 주제를 끌어내고 싶었고, 아는 사람이 드물 것 같은 고전에서 누구나 알 법한 주제로 친근함을 주고 싶었다. 이 책으로 한 권의 고전이라도 더 읽고, 한 가지 생각이라도 더 해진다면 저자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8-10-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장정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서문>인가 하는...
작년인가 읽어 봤는데 생각 보다 별로더라구요.

그나저나 책이 또 나오는가 봅니다.
참 부지런하십니다.
이번엔 고전에 관한 책인가 보죠?
부럽습니다.^^

박균호 2018-10-02 11:21   좋아요 0 | URL
아...스텔라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 책에 관한 지식이 아주 풍부하세요.
고전에 관한 책이긴 한데 재미난지는 모르겠습니당..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 - 우리가 몰랐던 동양철학의 모든 것
신창호.남정미 지음 / 나무발전소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 개론서를 추천할 때는 본능적으로 ‘월 듀랜트’가 쓴 <철학 이야기>를 떠올렸다. 철학 사상을 철학자의 삶과 연관 지어서 쉽게 설명하는 <철학 이야기>는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적인 깊이를 겸비했다. 재미와 깊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은 좋은 책이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을 읽고 나서는 사정이 좀 바뀔 것 같다. 철학 특히 동양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이 책을 추천하게 될 것 같다. 
 
 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 본 비전공자의 경험으로는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이 책 만 한 것을 못 만났다. 사실관계나 깊이를 떠나서 단순히 어떤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차원에서 본다면 <철학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비견될 만한 책이다. 로마라는 거대한 산맥을 일일이 언급하면서도 로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책이다. 
 
 한편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은 ‘에드워드 기번’의 역작 <로마제국쇠망사>와 닮았다. 로마의 역사를 모두 다룬 <로마인 이야기>에 비해서 <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의 쇠퇴기만을 다뤘음에도 로마사에 관한 불후의 명작이라는 위치를 점유한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은 ‘우리가 몰랐던 동양철학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동양철학’을 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을 <로마제국쇠망사>에 비교한 것은 동양철학에 집중하면서도 내용이 하도 쉽고 간결하며 우리가 모르고 오해를 했던 동양철학에 대한 사실을 잘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고 머릿속에 박제처럼 새겨 두고 싶었던 구절을 살펴보자. 
 

 동아시아기후는 어때요? 봄, 여름, 가을, 겨울, 확확 바뀌잖아요. 확확 바뀌면 뭘 해야 합니까? 대비를 해야지. 유비무환! 따뜻했다가 추워져. 그럼 김장도 해야 하고, 옷도 장만해야 되고, 뭐 이것저것 대비를 해야 하는 철학이 동양철학입니다. 그러면 서양철학은? 대비를 할 필요가 없죠.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헛생각을 하는 거예요. ‘별은 왜 떠 있을까?’ 그걸 유식한 말로 ‘관념철학’이라고 해요. 근데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헛소리하고 앉아 있는 거지. 

 
 철학이라는 고매하다고 생각했던 학문이 날씨를 비롯한 풍토를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신선했다. 천상의 신선들이 논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철학이 기껏 반찬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재미났다. 중국을 종주국으로 해서 동양철학이 성행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벼농사를 주로 짓는 지역이라는 것이 우연이 아니며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구분하는 주요 잣대가 반찬 문화가 있느냐 없느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뇌리에 남았다. 
 

 한여름은 짜증나고 덥잖아요. 그때는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을 공부합니다. 부드럽고 즐기려면 여유가 있어야 되죠. 그러니까 산에 가서 시 한 수 짓고, 시조도 읊고. 그게 여름에 하는 공부입니다. 그런데 <논어>라든가 <맹자>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정치 어떻게 하나?’는 엄청나게 딱딱하고 신경을 써야 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논어, 맹자는 겨울에 공부하는 겁니다. 옛날에 교육과정을 편성할 때 그런 것까지도 생각을 하고 짰습니다. 아까 분위기라고 했잖아요. 그런 것까지 고려를 했다는 거죠.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을 누구나 많이 듣고 자란다. 보통 어른이 되어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하니 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을 읽자니 이 말을 한 참 오해를 했다는 것을 알겠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공부하는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그 상황에 맞는 공부를 해야 효율적이라는 의도였다. 
 
 논어와 맹자를 논하는 어른들은 고집불통이라는 인식이 많다. 알고 보니 동양철학은 고지식한 학문이 아니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배우는 과목을 달리하는 융통성과 효율성을 먼저 생각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이 책으로 알았다. 
 
 남존여비 사상이 유교적 이념에서 나왔고 서양보다 동양이 여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도 오해였음을 이 책으로 확인했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 것이 서양의 사고라면 동양은 남자와 여자가 우열이 없이 각각 따로 존재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고 하니 남자의 특성이 하늘을 닮았고 여자는 땅과 닮았다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 남녀는 독립되어 서로 마주 볼 뿐 한쪽이 귀하고 천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는 형식보다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이 공자였다. 형편이 되지 않으면 냉수 한 그릇만 올리고 제사를 모셔도 된다고 가르쳤다. <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을 읽자니 동양철학은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사구시를 외쳤던 실학도 동양철학의 일부였다는 것만으로도 동양철학에 대한 오해를 거둘 이유가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책읽기 2012-2018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쟈 이현우는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평가다.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가 국문학자 조동일이라면, ‘읽고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는 마땅히 이현우라고 봐야 한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읽을 만한’ 책을 보는 눈을 가지고, 한 주의 도서 트렌드를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종이신문을 구독해야 한다고 믿는다. 책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가능하긴하다. 이 작업은 일일이 검색을 하고 클릭을 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지만 종이 신문의 서평 코너는 한 주간의 독서 트렌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종이신문이 내키지 않고 인터넷이 편하다면 마땅히 로쟈의 블로그가 그 대안이 되겠다. 로쟈의 블로그(http://blog.aladin.co.kr/mramor)야말로 종이신문의 서평 코너에 대적할 만한 인터넷의 보물창고다. 적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굳이 글 내용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가 이 거대한 책의 바다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읽고 쓰다’는 주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꾸준함과 방대함으로 모자라 글의 유려함이 더해진 그의 블로그는 세상의 모든 책을 포획하려는 거대한 저인망 거물이고 로쟈는 저인망 어선의 선장이자 노꾼이다. 
 
 그가 쓴 세 번째 서평집 <책에 빠져 죽지 않기>는 우리 서평계에서 독특한 영토를 점유하는데 아마추어와 프로 서평 가의 경계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이현우가 말했듯이 비평은 책을 읽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서평은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한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에서 이현우가 담은 글은 서평이라고 불리지만 보통 사람이 쓴 서평과 비교하면 확연히 ‘고급스러운’ 글이고 전문가가 쓴 비평과 비교하자면 ‘그들만의 암호’가 난무하지 않는 ‘보통사람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어려운 글이 아니면서도 독서와 책에 대한 신선한 시각과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책이다. 
 
 독서가에게 ‘책에 대한 책’이란 그저 다른 사람의 ‘느낌’과 ‘감상’을 공유하고,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기 쉽다. 말하자면 정보를 얻기 위함이지 인문학책에 버금가는 담론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는 이런 내 생각이 적확히 달랐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다음 구절이 그랬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 수는 세계 최저 수준인 데 반해 독서 인구나 평균 독서량은 현저히 적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문해력이 곧 독서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독서력은 문해력만 있다고 해서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 아니다. 문해력만으로는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문해력에서 독서력만으로는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해력에서 독서력으로 건너뛰기 위해서는 그 보폭을 가능하게 할 만한 독서량이 요구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못’ 읽는 것이다. 실제로는 독서력이 부족해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인데도 충분히 읽을 수 있지만 단지 안 읽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 17쪽
 
 단지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을 뿐이라고 자위하는 사람에게는 당혹감을 주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동기 부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내 경우를 봐도 이현우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 야구광인 내가 일본의 야구 명작 만화 ‘터치’나 ‘H2’를 전집으로 사서 읽으려고 ‘노력’을 해도 도무지 읽히지 않았던 경험이 생생하다. 수십 년 동안 만화를 읽지 않은 나는 만화를 읽을 능력이 상실된 것이 아니냐는 고민을 했었다. 


내가 다시 만화를 읽으려면 일정 수준의 워밍업과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현우가 독서력을 갖추려면 150권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독서교육이나 정책은 우리 국민은 시간과 의욕이 없어서 책을 읽지 않을 뿐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진행된다. 이현우의 통찰이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독서교육의 방향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더해야 한다. 즉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책을 읽게 할 것인지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현우가 말했듯이 서평집은 드라마만큼 극적이지도, 연애소설처럼 달콤하지도 않다. ‘서평계의 계관시인’의 최신 저작쯤은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마치 문화유산답사를 좋아하는 독자가 유홍준의 신간을 일상처럼 주문하고 읽는 것처럼 말이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에는 생각지 않았던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가 오히려 아프리카 사람들을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거나 구석기 시대와 비교해서 오히려 신석기 시대가 되면서 인류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었다거나. 어떤 책을 읽고 쓴 서평인지는 앞으로 <책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을 독자의 권리로 남겨준다. 로쟈 이현우가 많은 독자에게 책을 읽을 자유를 선물한 것처럼.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뵈뵈 2018-09-05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ᆢ^^

박균호 2018-09-05 09:33   좋아요 1 | URL
저야말로 감사하지요. 뵈뵈님...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북프리쿠키 2018-09-0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즐거움을 더 많은 분들이 느껴봤으면 합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쌤

박균호 2018-09-05 10:00   좋아요 1 | URL
에공...뻘 글에 불과한데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9-05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4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4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4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 2023-10-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도 이미 글이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군요
 

어쩌다 보니 책을 6권이나 낸 작가로 불리게 되었지만 나는 애초부터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글에서 말한 적도 있지만, 초등학교 시절 문예반에 들어갔다가 그날로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이력이 있을 정도다. 
그런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도 책을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이렇다. 

첫째 , 누가 뭐래도 ‘다독, 다작, 다상량’이 중요하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차고 넘친다. 심지어 이번에 낸 내 책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도 글쓰기 방법에 관한 내용이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은 사실은 글쓰기에 관한 ‘각론’이지 보통 사람들이 글을 잘 쓰게 만드는 재주는 없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고 지름길이다.

흔히 글쓰기 방법이라는 것은 형식에 관한 문제이지 내용을 말하지는 않는다. 내용이 좋으면 형식은 조금 모자라도 독자들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보다 생각으로 글 쓰는 시간이 훨씬 많다. 머릿속으로 구상을 하고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할지 검토를 한다. 

글의 전체적인 틀도 머릿속 생각으로 한다. 좋은 글을 만드는 구상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독서에서 나온다. 좋은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독자들을 감동케 하고 좋아하게 만드는 ‘틀’이 자신의 머릿속에 갖추어진다. 그 다음 부터는 그 틀을 이용해서 글을 구상하고 그 구상으로 나온 글을 손으로 쓰면 그만이다. 다독 다작 다상량은 함께 움직이는 유기체이므로 각자를 어떤 비중으로 해야 할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둘째, 글쓰기의 시작이 반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단계는 ‘시작’이다. 여러 권의 책을 낸 나도 한 꼭지의 글을 쓰겠다고 자료를 한 달 이상 가방에 넣고 다닌 적이 있다. 한 달 동안 자료만 모았고 결심만 했을 뿐 시작을 못 한 것이다. 어떤 글이라도 책상에 앉아 첫 문장을 썼다면 당신의 글쓰기는 반이 끝났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를 책상에 앉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무르익은 생각’이다. 역시 어떻게 글을 풀어나가야 할지 생각이 무르익어야 글을 시작하기가 쉬워진다. 글쓰기는 ‘자발적인 감정의 발로’이어야 한다. 

셋째, 글쓰기와 인터넷은 한 몸이다.
감옥 안에서 ‘임꺽정’을 저술한 홍명희 같은 천재가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은 글쓰기를 할 때 인터넷을 활용해야 한다. 글쓰기에서는 사실관계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사실관계가 틀리면 독자들은 큰 실망을 한다. 사실관계를 확인할 때 인터넷만큼 편리한 도구도 드물다. 맞춤법 또한 글쓰기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관계에 속하는데 요즘에는 편리하고 정확한 맞춤법 도구가 인터넷에 많다. 퇴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맞춤법임을 잊지 말자. 

넷째, 어려운 단어를 고집하지 마라.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다고 고급스러운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능하면 누구나 아는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맛깔스러운 순수 우리말을 발굴(?)해서 사용하는 것은 권장한다.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 최명희의 <혼불>은 우리말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이런 책을 읽다가 나중에 써보고 싶은 단어를 메모해두었다가 적재적소에 사용해보라. 글쓰기의 새로운 묘미가 느껴질 것이다. 

다섯째, 쓴 글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라. 글을 혼자서만 쓰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자기만의 감옥과 틀에 빠져서 자신의 글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를 하기 쉽다. 본인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글이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졸작일 수도 있고 대수롭지 않은 잡문이라고 생각한 글이 독자들이 읽으면 좋은 글일 가능성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의 평을 피해서도 안 되고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독자들의 칭찬은 당신의 글쓰기에 날개를 달아주며 독자들의 쓴소리는 당신의 글쓰기에 채찍질이 된다. 

여섯째, 잘 쓴 글이란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이 알아차리는 글이다. 자신이 쓴 글이 잘 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독자들이 당신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는지 여부로 판단하면 된다. 예를 들어서 당신이 복잡한 시장에서 겪었던 웃기는 상황에 대해서 쓴 글을 독자가 읽고 당신이 겪었던 일을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이해했다면 당신은 글솜씨에서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당신이 웃기려고 쓴 글을 독자들이 웃거나 감동을 주려고 쓴 글을 독자들이 읽고 감동을 했다면 당신의 글은 충분히 좋은 글이다. 

일곱 번째,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메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다. 재료가 많은 수록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글쓰기 재료는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만날 수도 있고 길을 걷다가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고 책을 읽다가 생각날 수도 있다. 그때마다 한 줄이라도 메모를 해두면 글을 쓸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복잡하게 길게 메모할 필요는 없다. 간단하게 메모를 해도 나중에 그 메모를 보면 메모를 할 때의 상황이 고스란히 떠올라서 그 재료를 글쓰기에 활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8-0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0-08-12 21:3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생각해도 좋은 글쓰기 연습 방법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