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면서 불편한 것 중의 하나가 ‘선을 넘어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외국에 여행만 했지 본격적으로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외국의 사정은 정확히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일,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선을 넘는 대표적인 행위가 되겠다.
남들이 생각하는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자리에 취직을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딸 하나만 두는 여지를 주는 바람에 적잖은 오지라퍼에게 시달리긴 했지만 유독 내가 참지 못하겠는 것은 카페나 식당에서 소란스럽게 대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내 사생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듯이 굳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강제로 듣고 싶지 않다.
주말에 모처럼 가족들과 외식을 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백화점 식당가에서 밥을 먹으려니 마침 식사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참을 기다리다 마침내 빈자리를 발견하고 간신히 세 식구가 앉아서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 대여섯 명의 어린아이들이 창가에 기대서 노래를 부르고 논다. 유치원생쯤 나이로 보였다.
상당히 고층에 위치한 식당이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창가로만 가도 아랫배가 찔끔하는 공포가 느껴지는데 어린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이들은 씩씩하고 노래를 합창단처럼 부르고 젊은 엄마들은 박수를 치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어차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식당을 간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니까 좀 소란스러워도 그러려니 했다.
갈수록 아이들의 공연은 격렬해졌다. 엄마들의 열띤 호응이 아이들을 춤추게 했나 보다. 이젠 관중들에게 팬 서비스를 하려는지 의자 위를 뜀박질을 하면서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소란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다만 아이들이 의자 위를 뛰어다니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아이들의 엄마들은 제 자식들의 운동신경을 무척이나 신뢰하는 모양이다. 연신 박수를 치고 즐거워한다.
아이들의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봉투 꾸러미를 두어 개 들고 왔다. 별 생각 없이 보았는데 먹거리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식당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 직원의 말은 외부 음식을 반입해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니까 도합 4명의 젊은 엄마들은 복잡한 식사시간에 식탁 3개를 임의로 합쳐서 10명에 가까운 엄마와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 다음 외부에서 가져온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으려고 한 것. 직원의 제지를 받고 엄마들은 모여서 긴급회의를 하더니 다른 장소를 정하고 그 식당을 떠났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자신들이 맘대로 붙여 놓은 식탁 3개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지 않고 그냥 가 버린 것.
어제 모 여성 작가의 북 콘서트에 다녀왔다. 귀담아 들을 말이 많았는데 유독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이야기 거리 소재를 어떻게 발굴하느냐는 질문에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대화를 일삼아 듣는 다는 것. 특히 이별을 하는 연인이 있으면 일부러 자리를 뜨지 않고 귀를 기울여 다 듣고 온다는 것이다. 청중들은 다들 기발하고 재미나게 생각한 모양이다.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물론 나도 참 귀엽고 재미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호탕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부랴부랴 그 자리를 뜨곤 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