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수정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글이 삭제되어 다시 올립니다. 알라딘앱에서도 이제 수정이 가능하네요? 늘 PC에서 하다가 모바일로 하려니 이런 일이.. 

다행히 뒤로 뒤로~ 누르니 글이 보여 클립보드에 복사할 수 있었네요. 이력이 남아있는 사이버세상이여~~ 정말 간담을 쓸어내렸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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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온이 올라갔다. 공기까지 좋으니(이제 대기질이 좋은 것도 날씨가 좋다는 것에 포함된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동시에 여러권을 읽는 습관을 좀 없애고 한 두권을 집중해서 빨리 읽어야겠다고 새해에 다짐했는데 다시 여러 권이 책상위에 쌓여있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니 정신이 좀 분산되는데 좋은 점은 어떤 시점에서는 읽기가 끝나가는 책들이 동시에 발생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쉽게 버리기 어려운 습관이다. ㅠㅠ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저자는 한 도시를 젊은 시절 여행했을 때와 중년이 되어 여행했을 때의 소회를 나란히 배치했다. 마지막에는 서울에 대해 서술되었는데 어딘지 서울의 모습이 베를린과 파리와 빈과 다르지 않다. 어디에 살든 삶의 모습은, 인생의 중반쯤 되었을 때 오는 깨달음 같은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나에게 두번째 도시 두번 째 여행이 되는 곳도 가보고 싶고, 아직 시작도 않은 무수히 많은 첫번째 도시들도 가보고 싶다. 바이러스여, 여행을 허락해 달라! 노명우 작가가 운영하는 니은서점을 알게 된 덕분에 독서생활이 풍성해지고 있다. 

 

 

 

 

 

 

어쩌면 여행보다 여행준비가 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정말 열심히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다녀온 사람이 좋았던 여행지에 대한 큰 감사를 전하는데, 사실은 저자가 다녀온 것이 아니라면... ㅋㅋ 정말 재밌게 읽었다. 간단한 여행회화 정도의 색다른 언어를 준비한다거나 언제고 떠날지 모를 곳을 위해 늘 여행준비를 한다면 진짜로 여행한 것만큼 설레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드가는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거대 도시의 모습, 도시 속의 사람들, 도시가 낳은 유흥과 구경거리를 그렸다. 인상주의는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향유하던 유파라고 여기기 쉽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이 모습을 갖춘 대도시가 낳은 유파이고, 대도시가 제공하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그런 점에서 인상주의는 플라뇌르의 예술이고, 드가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상주의적인 화가이다.

p.133

드가는 진정한 플라뇌르였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특히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는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드가하면 떠오르던 발레리나를 많이 그린 화가라는 모호한 이미지가 이 책을 통해 걷혔다.

 

 

 

 

여기저기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읽었다. 시인답게 문장이 섬세하다. 그런 섬세한 시각들로 일상을 바라보고 글로 그려낸다. 이것이 진정 모국어의 기쁨이 아닐런지.

 

 

 

 

 

 

 

 

 

 

 

 

 
하루키는 아버지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반추해보고 싶은 것일까. 삶의 방향에 대한 갈등으로(나의 짐작) 아버지와 불화하여 이십년동안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니 이런 거장에게도 가정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자신이라는 존재를 자리매김해본다. 이런 글을 읽노라면 스무살에 정체성을 알고자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는 말은 얼마나 막연하게 느껴지는가. 생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가기 때문에 더욱이. p.93

 

 

 


알베르 까뮈가 <페스트>에서 그려낸 전염병의 질서는 다음과 같다. 처음엔 공포와 충격, 그다음은 짜증과 지겨움(불행의 단조로움), 그다음은 불신(타인을 필요로 하고 따뜻함을 원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 그다음은 좀처럼 뭘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그다음은 받아들임(전염병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체념). 정작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것은 그다음 단계다. 절망만 하고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라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그럼 어떻게 다시 삶을 시작할 것인가?" p.286


다시 시작하는 삶을 생각하게 되는 건 정말로.. 절망만 하고 있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희망을 그려내는 인류의 본능같은 것이 내 유전자에도 새겨져있는걸까.

*이 책 자체는 다른 책들의 줄거리 소개, 인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렇게도 책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다른 책을 소개해주는 측면에서는 좋았으나 쉽게 책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좀 아쉬웠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떤 것을 검색할 때 검색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영상을 검색한다는 신선한 얘기가 나온다. 정보나 이야기를 '읽고 쓰는'게 아니라 '보고 찍는'것으로 바뀌는 시대. 현재 우리는 그 시대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나도 가끔은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어떤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는 확실히 영상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령, 옷을 만드는데 셔츠의 카라를 단다든가 하는..) 영상이 주는 구체성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은 읽기가 주는 추상성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해서 인스타그램의 짧은 영상들로는 단순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재미없으면 꺼버리고 다른 영상을 볼 수 있듯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리터러시의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다. 소위 현재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는 86세대들이 그들만의 정의로 리터러시를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의 이러한 현상들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문해력 떨어지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저자들도 86세대이다보니(아마도?) 읽고 쓰는 쪽에 편을 드는 면은 있는 것 같다.

 

 

 

건강함이 곧 자산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렇듯 건강이란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 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코로나 이후에 건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저질환자에 대한 사소한 문장에도 실제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망자가 대부분 기저질환자라고 하면 건강한 사람들은 나는 기저질환자가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기저질환은 건강한 사람을 안심시키는 문장의 일부로만 사용된 것이다. 말과 글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좀더 민감하고 섬세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 많이 자주 말하게 되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아픔이 있더라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로 조금씩 변화해가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300명이 넘는 인물들의 전기,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그림, 작품 등을 3년에 걸쳐 수집하여 1913년이라는 역동적인? 한 해를 재현해낸다. 물론 읽고도 300명이 넘게 등장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도 그럴것이 나에게는 독일어권의 처음 들어본 인물들이 많고 사건들이 주로 사적인 부분들을 다루어 흥미도가 뒤로 갈수록 떨어지면서 1913년이 그렇게 중요한 해인가하는 의문점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로베르트 무질,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가 있다. 어휴 특히 카프카... 요즘 말로하면 너무나 찌질... 죄송합니다;;; 비슷한 구성의 벨에포크 시대를 다룬 메리 매콜리프의 책들이 더 재밌다.

 

 

 

이 책을 올해 독파(!)할 계획이신 분들이 이웃서재에 많다는 걸 알고 웃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국일미디어라는 지금은 존재하는지 모를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도 가지고 있다. 1,2권만 세월의 때가 묻은 채...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읽으니 예전보다 잘 읽히고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 여세를 몰아 올해는 꼭 다 읽기로 하자.

 

 

 

 

 

 

'꿈과 현실의 이중적 설화' 작품해설의 이 말은 잘 모르겠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와서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다. 나의 미카엘은 한나의 남편. 한나의 지난한 일상 속에 그려지는 미카엘의 나날. 결혼전 첫 만남부터 묘사되는데... 천천히 소설속으로 녹아든다. 녹아든다라는 이 표현이 딱이다.

 

 

 

 

 

 

 

 

 

 

 

 

 
책의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떠올린 어린이의 순수함을 그려낸 에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대가 달라 감동이 더 컸던 책.

어린이라는 존재를 통해 나의 편견을, 사회의 시선을 그리고 어린이처럼 약자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페이지 한장한장 울컥하는 감동이 전해져 온다. 김소영작가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다. 이런 선생님에게 독서를 배운다면... 아.. 나도 다시 배워보고 싶다.

<어린이책 읽는 법>도 읽어보고 있다.

 

 

 

 

 

 


 

이런 책들도 읽었다. 벌써 3월이다. 뜨....

 

 

 

 

 

 

 

 

 

오래전 학창시절에 어떤 선생님께서 사람이 자시(11시-1시)에는 꼭 자야한다고 말씀하신걸 잊지 않고 있었다. 자야 하니까 자시~지. 이렇게 재밌게도 표현해서 결코 잊어먹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2시에서 4시 사이에는 꼭 자야 한다고 한다. 아, 잘못 알고 있었는가?? 알라딘에 쓰던 글이 날아가서 너무 걱정(?)이 되어 1시에 눈이 떠졌다. 이 정도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대한.. 알라딘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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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피필름 2021-03-04 0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막시무스님, 제가 글을 실수로 삭제하고 다시 작성하는 바람에 달아주신 댓글도 사라져버렸네요 ㅠㅠ 벌써 3월이지요? 늘 바라지만... 좋은 책들과 함께 행복한 봄 맞으세요 고맙습니다 ^^;;

막시무스 2021-03-04 08:14   좋아요 1 | URL
별 말씀을요!ㅎ 좋은 리뷰 덕분에 장바구니 든든해졌어요!ㅎ 정혜윤님의 글은 처음 봤는데 내용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ㅎ 즐건 하루되십시요!

mini74 2021-03-04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쥐들이 슬슬 돌아다니는 시간이라고 한문선생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반가운 책들도 많고 스파피필름님 글 보니 읽고 싶은 책들도 생기네요. 3월애도 즐거운 독서, 좋은 책 많이 만나시길 *^^*

스파피필름 2021-03-04 15:04   좋아요 1 | URL
쥐들이 슬슬 돌아다니는 시간도 재밌네요.. 요즘은 쥐 보기도 힘들어요 ㅋㅋ 곧 봄이 올 것 같아 설렙니다. 3월에도 행복한 독서하세요~~!!^^
 
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평생을 집사로 살아온 남자 스티븐스. 달링턴이라는 영국 귀족을 모시며 삼십오년을 살았고 지금은 패러데이라고 하는 미국인을 모시고 있다. 삼십오년이라는 긴 생활동안 휴가 한번 안내고 살아온 그는 패러데이가 준 육 일의 휴가동안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여행의 시간동안 그는 집사로서의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집사'라는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어 신기했다. 소설에는 집사의 '집사다움'에 대한 프로페셔널의 관점이 나온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p.58


 스티븐스가 말한대로 그는 제 아무리 놀라운 외부사건들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저택에서 역시 집사로 일했던 아버지가 쓰러지고 이후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에도 그는 저택에서 열리는 매우 중대한 행사에 본인의 역할을 다하느라 냉정함을 유지한다. 총무로 일하고 있는 켄턴 양과도 일종의 썸을 타지만 집사의 프로다움을 잃지 않으려 마치 모든 감정을 없앤듯한 태도로 눈앞의 사랑을 바로 보지 못한다. 

 사람이 정확히 노동에 대한 댓가를 받는 일을 언제부터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그에 대한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일이 너무나도 즐거워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스티븐스의 직업에 대한 태도를 보면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은 과히 모범이 될 만하다. 이 소설의 묘미는 그런 그의 태도가 자신의 인생에서 놓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그의 삶에 있어서 스티븐스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 때문에 놓쳤던 많은 것들로 인해 그의 인생이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삶의 모습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저 인생의 말미에는 그가 조금은 다리를 뻗고 편한 마음으로 쉴 수 있길 그런 여유가 그의 마음에 허락되길 바랄 뿐이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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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사실 에세를 읽다보면 서술이 두서없고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써야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런 일관성 없는 것은 에세 자체가 2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쓴 책이기 때문이다.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사람의 사고라는 것은 당연히 변하게 마련이고 몽테뉴는 초고를 수정하기도 하고 새로운 소재를 추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에세이를 정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저작권법이 없었기 때문에 남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이 문학 기법으로 높이 평가 받기도 해서 여러 사람이 쓴 책으로 존재하기도 했고 일부분만 발췌하거나 글 전체를 축약, 확대, 심지어 삭제해서 다른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1662년 제2판이 나왔을 때 이 책이 반종교적이고 위험한 책이라는 이유로 거의 180년간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에세 초판이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헬레니즘의 핵심인 스토아주의, 에피쿠로스 주의, 회의주의 덕분이었다.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갈 때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모든 일이 꼬일 때에도 실의에 빠지 않으면서 냉점함을 유지해야 한다거나 영원불멸하는 진리가 있다고 단정짓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의심해 보는 것 등 에세 전반에 나오는 몽테뉴의 사상적 배경은 헬레니즘의 영향이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대는 허약한 왕권, 탐욕스러운 경쟁, 경제적 어려움, 종교적 갈등의 고조로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계속되는 내전이나 전염병 때문에 고생한 것을 보면 그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 어떤 마음 자세가 필요했을지 어렴풋이 짐작해볼 따름이다. 그와 중에도 이런 고전을 남겨 후세들이 곱씹어 시대마다 다른 해석들을 낳는 것, 이것이 바로 고전이 주는 매력인 것 같다. 에세를 읽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으로 훌륭한 책이다. 에세의 내용 뿐 아니라 책이 나온 시대적 배경, 몽테뉴의 생애까지 두루두루 알 수 있는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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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왔다. 다시 1이 되니 뭔가 출발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예전과는 다른 날들일꺼라는 느낌이 오기도 한다. 근처 동네에 새로 개관한 도서관이 생겨서 주말에 가봤는데 와~ 돗대기 시장을 방불케했다. 딱히 어디 갈데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특히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책이 전부 새책이여서 혼자 서가를 오가며 흥분했는데 서가에 꽉찬 책들만 보다가 새로 연 곳이라 텅텅빈 서가를 보니 낯설었다. 공부를 하는 곳은 없고 서가 옆으로 카페처럼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게 좋았다. 걸어서는 올 수 없는 거리라 다시 오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지역의 도서관으로 잘 자리잡기를 바란다. 더불어 알라디너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북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고흐가 책을 정말 열심히 많이 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설교자에서 화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사회생활을 한 10년간 지독한 독서, 공부를 통한 사회적 인식때문이었다. 책에는 이런 표현들이 종종나온다. '~탐욕스럽게 읽었다.' '남김없이 읽어치웠다'  이런 표현들에 마음이 들썩이는건 나에게 지적인 허영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일까.

목판화에 관심이 많아 직접 구입한 목판화 목록을 손으로 치밀하게 기록하여 남기기도 했고, 잡지에 실린 그림을 두꺼운 종이에 붙여 스크랩하기도 했다. 모으고 정리하고 책읽고 공부하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고흐의 그림이 그당시 유럽에 유행했던 자포니즘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강렬한 색대비나 노란색 배경에 검은 색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모두 일본의 영향이다. 죽는 날까지 함께 했던 독서에 대한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책이고 무엇보다 책이라는 물성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출간된 박홍규의 <독학자, 반고흐가 사랑한 책>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여자가 도시를 걷는 일이 평범하지 않았던 시대에 만날 수 있는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소피 칼 등의 인물을 한 도시에 매칭하여 서술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고자 파리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태어난 곳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사는 곳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삶에 '사는 장소'가 차지하는 부분은 거의 다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나는 이미 여러 가지로 안주한 삶이지만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날들이길 바라본다.

 

뿌리를 경계하라. 순수함을 경계하라. 고정성을 경계하라.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을 경계하라. 유동성, 비순수성, 혼합을 받아들이라. "집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집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홈(집)-이'라는 이름의 놀라운 비평가는 말했다. p.409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잠실동 사람들>의 작가 정아은의 책이다. 많은 육아서들이 사실은 엄마용 자기계발서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 결론을 미리알고 나는 통쾌(!)하기 까지 하다. 속으로 웃음이 난다. 미리 알았으니 헛고생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며 말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경험과 다양한 책이 등장하며 정말 술술~ 읽었다. 때론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며.. 흑..

아이가 울면 또는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설거지하던 것을 바로 중단하고 달려가라는 식의 각종 육아서에 지친 사람들이 읽어본다면 정말 통쾌할 책! 좋은 엄마는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는 단순한 문장에 마음이 가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여러번 반문해본다.

 

 

 

 

스토리는 허무맹랑하게 전개되기도 하지만 소설이 주는 따뜻함에 이래서 소설을 읽지,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각 챕터에는 단편소설을 읽은 에이제이의 감상평이 쓰여있는데 이게 정말 좋았다. 겨울과 잘 어울리는 소설!

 

 

 

 

 

 

 

 

 

 

 올리키 키터리지가 나오고 이 책이 다시 나올 때까지 올리브는 어디에선가 계속 자기 삶을 살았고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리브는 여든이 넘어서까지 살게 되고 그 올리브스러움을 결국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올리브는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하면 그도 아니다. 올리브는 생에 대해 아무것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살면서 겪는 어떤 일화들속에 어렴풋한 깨달음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 문장들을 옮겨보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내내 키득거리게 만든 책. 독서 중독자들이 사는 일상이란 이렇다. 보통 저자 프로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데 이 작가는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 책 날개에 아무런 프로필이 없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 ㅋㅋ 꼭 읽어보세요 너무 재밌습니다.

 

 

 

 

 

 

 

 

 

 

 

 

 

 

 

 

 

 

 

 

 

 

 

 

 

 이런 책들도 읽었고,

 

 

 

 

 

 

 

 

 

 

 

사라 베이크웰의 몽테뉴에 관한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은 참 오랫동안 읽었는데 내용이 많아 다음에 리뷰로 남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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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04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왠지 몽테뉴에 관한 책이 느낌이 좋을거 같아요! 즐건 독서하시구요!

스파피필름 2021-01-04 23:41   좋아요 1 | URL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저같이 몽테뉴의 두꺼운 에세를 못 읽은 사람들을 위해 아주 좋더라구요. 막시무스님 올 한해 즐거운 독서하세요!

초딩 2021-01-04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몽테뉴요~~~ ㅎㅎㅎ
좋은 저녁 되세요

스파피필름 2021-01-04 23:43   좋아요 0 | URL
저도 몽테뉴는 관심은 많은데 에세는 너무 두껍고 번역때문인지 읽기를 시도하다가 매번 포기를 했어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지 오래되었지만 이 책 좋습니다^^ (2012년도에 나온 책이네요)

scott 2021-01-0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스럽고 남김없이 읽어치운 ‘빈센트‘가 사랑한 책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양서들 2021년 새해 독서 목록으로 최고네요

스파피필름 2021-01-04 23:45   좋아요 1 | URL
네 책이 정말 예쁘고 묵직하기도 합니다. 도판 질도 좋고 고흐가 특히 테이블 위에 책 더미를 그린 그림들이 좋더라구요. scott님도 올 한해 즐거운 독서생활 누리세요~^^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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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이런 책을 읽게 되었고 리뷰까지 쓰게 된다. 2020년 한해동안 우리들을 힘들게 했고 현재 진행중이기도 한 코로나19 때문이다. 관심도 없었던 집단면역과 같은 용어들이 이제 새삼스럽지 않은 걸 보면 통제할 수 없는 감염병이 주는 공포, 공포를 넘어선 무기력감이 일상화 된 듯하다. 어제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이 대역병을 뚫고 병원에 다녀왔는데... 이비인후과 의사의 중무장에 놀라움을 넘어서 어떤 슬픔이 느껴졌다. (머리에는 수술할 때 쓰는 모자 같은 것, 마스크는 당연 기본, 페이스 쉴드에... 환자와 의사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지도록 배치되어 있는 의자의 위치 등)

우리집에 아기가 생기기 전에 나는 한번도 독감예방백신을 맞아본 적이 없다. 백신을 불신한다거나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관심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와 함께 살게되니 이 백신이란 것이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그 양에 놀라게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쭈욱 맞히게 되는 백신 스케줄에 와 이렇게 많은 주사를 이렇게 작은 아기에게 맞혀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도 그럴것이 아기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약간의 열이 나서 내가 밤새 아기를 감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를 온갖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띤 어떤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저자 역시 아기를 키우게 되면서 백신, 면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자는 백신접종을 찬성하는 입장이다. 집단면역이란 것은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공공보건의 개념이라고 한다. 한때 백신에 유해한 물질(과학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이 들어있고 자폐 등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주장 때문에(나중에는 허위사실로 밝혀졌지만) 백신접종을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이 건강한 아이들이 본인은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면역은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 몸이라는 외피에 둘러싸인 우리 모두는 서로 의존적으로 이어진 하나의 생물체, 공동체 같은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루에 수건씩 받고 있는 코로나 확진 문자에 집단감염, 가족간 감염 몇 명이라는 말은 우리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이어져있는가 놀라게 한다. 인간이 이토록 사회적인 동물이었는가 절절히 느끼게 한다. 이 책에는 면역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가 시종일관 흐른다. 의사 아버지와 시인 어머니의 영향아래 이 책이 태어났을까. 사년전 나온 책이지만 2020년에 읽는 너무나도 시의적절한 독서에 귀와 코가 막힐 따름이다. 

아무쪼록 무사히... 이 힘든 시간들을 다같이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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