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수정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글이 삭제되어 다시 올립니다. 알라딘앱에서도 이제 수정이 가능하네요? 늘 PC에서 하다가 모바일로 하려니 이런 일이..
다행히 뒤로 뒤로~ 누르니 글이 보여 클립보드에 복사할 수 있었네요. 이력이 남아있는 사이버세상이여~~ 정말 간담을 쓸어내렸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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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온이 올라갔다. 공기까지 좋으니(이제 대기질이 좋은 것도 날씨가 좋다는 것에 포함된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동시에 여러권을 읽는 습관을 좀 없애고 한 두권을 집중해서 빨리 읽어야겠다고 새해에 다짐했는데 다시 여러 권이 책상위에 쌓여있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으니 정신이 좀 분산되는데 좋은 점은 어떤 시점에서는 읽기가 끝나가는 책들이 동시에 발생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쉽게 버리기 어려운 습관이다. ㅠㅠ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저자는 한 도시를 젊은 시절 여행했을 때와 중년이 되어 여행했을 때의 소회를 나란히 배치했다. 마지막에는 서울에 대해 서술되었는데 어딘지 서울의 모습이 베를린과 파리와 빈과 다르지 않다. 어디에 살든 삶의 모습은, 인생의 중반쯤 되었을 때 오는 깨달음 같은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나에게 두번째 도시 두번 째 여행이 되는 곳도 가보고 싶고, 아직 시작도 않은 무수히 많은 첫번째 도시들도 가보고 싶다. 바이러스여, 여행을 허락해 달라! 노명우 작가가 운영하는 니은서점을 알게 된 덕분에 독서생활이 풍성해지고 있다.
어쩌면 여행보다 여행준비가 더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정말 열심히 여행지를 추천해주고 다녀온 사람이 좋았던 여행지에 대한 큰 감사를 전하는데, 사실은 저자가 다녀온 것이 아니라면... ㅋㅋ 정말 재밌게 읽었다. 간단한 여행회화 정도의 색다른 언어를 준비한다거나 언제고 떠날지 모를 곳을 위해 늘 여행준비를 한다면 진짜로 여행한 것만큼 설레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드가는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거대 도시의 모습, 도시 속의 사람들, 도시가 낳은 유흥과 구경거리를 그렸다. 인상주의는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향유하던 유파라고 여기기 쉽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이 모습을 갖춘 대도시가 낳은 유파이고, 대도시가 제공하는 새로운 감각적 경험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그런 점에서 인상주의는 플라뇌르의 예술이고, 드가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상주의적인 화가이다.
p.133
드가는 진정한 플라뇌르였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특히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는 여성들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다. 드가하면 떠오르던 발레리나를 많이 그린 화가라는 모호한 이미지가 이 책을 통해 걷혔다.
여기저기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읽었다. 시인답게 문장이 섬세하다. 그런 섬세한 시각들로 일상을 바라보고 글로 그려낸다. 이것이 진정 모국어의 기쁨이 아닐런지.
하루키는 아버지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인생도 반추해보고 싶은 것일까. 삶의 방향에 대한 갈등으로(나의 짐작) 아버지와 불화하여 이십년동안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니 이런 거장에게도 가정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 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자신이라는 존재를 자리매김해본다. 이런 글을 읽노라면 스무살에 정체성을 알고자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는 말은 얼마나 막연하게 느껴지는가. 생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가기 때문에 더욱이. p.93
알베르 까뮈가 <페스트>에서 그려낸 전염병의 질서는 다음과 같다. 처음엔 공포와 충격, 그다음은 짜증과 지겨움(불행의 단조로움), 그다음은 불신(타인을 필요로 하고 따뜻함을 원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 그다음은 좀처럼 뭘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그다음은 받아들임(전염병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체념). 정작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것은 그다음 단계다. 절망만 하고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라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그럼 어떻게 다시 삶을 시작할 것인가?" p.286
다시 시작하는 삶을 생각하게 되는 건 정말로.. 절망만 하고 있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희망을 그려내는 인류의 본능같은 것이 내 유전자에도 새겨져있는걸까.
*이 책 자체는 다른 책들의 줄거리 소개, 인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렇게도 책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다른 책을 소개해주는 측면에서는 좋았으나 쉽게 책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좀 아쉬웠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떤 것을 검색할 때 검색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의 영상을 검색한다는 신선한 얘기가 나온다. 정보나 이야기를 '읽고 쓰는'게 아니라 '보고 찍는'것으로 바뀌는 시대. 현재 우리는 그 시대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나도 가끔은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어떤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는 확실히 영상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령, 옷을 만드는데 셔츠의 카라를 단다든가 하는..) 영상이 주는 구체성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은 읽기가 주는 추상성을 결코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미 충분히 복잡해서 인스타그램의 짧은 영상들로는 단순화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재미없으면 꺼버리고 다른 영상을 볼 수 있듯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다.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리터러시의 개념은 계속해서 변화되어 왔다. 소위 현재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는 86세대들이 그들만의 정의로 리터러시를 받아들인다면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의 이러한 현상들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문해력 떨어지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저자들도 86세대이다보니(아마도?) 읽고 쓰는 쪽에 편을 드는 면은 있는 것 같다.
건강함이 곧 자산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렇듯 건강이란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 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코로나 이후에 건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저질환자에 대한 사소한 문장에도 실제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망자가 대부분 기저질환자라고 하면 건강한 사람들은 나는 기저질환자가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기저질환은 건강한 사람을 안심시키는 문장의 일부로만 사용된 것이다. 말과 글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좀더 민감하고 섬세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아픔에 대해 많이 자주 말하게 되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아픔이 있더라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로 조금씩 변화해가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300명이 넘는 인물들의 전기,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그림, 작품 등을 3년에 걸쳐 수집하여 1913년이라는 역동적인? 한 해를 재현해낸다. 물론 읽고도 300명이 넘게 등장했나,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도 그럴것이 나에게는 독일어권의 처음 들어본 인물들이 많고 사건들이 주로 사적인 부분들을 다루어 흥미도가 뒤로 갈수록 떨어지면서 1913년이 그렇게 중요한 해인가하는 의문점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상적인 인물을 꼽자면 로베르트 무질,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가 있다. 어휴 특히 카프카... 요즘 말로하면 너무나 찌질... 죄송합니다;;; 비슷한 구성의 벨에포크 시대를 다룬 메리 매콜리프의 책들이 더 재밌다.
이 책을 올해 독파(!)할 계획이신 분들이 이웃서재에 많다는 걸 알고 웃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국일미디어라는 지금은 존재하는지 모를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도 가지고 있다. 1,2권만 세월의 때가 묻은 채...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읽으니 예전보다 잘 읽히고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다;; 여세를 몰아 올해는 꼭 다 읽기로 하자.
'꿈과 현실의 이중적 설화' 작품해설의 이 말은 잘 모르겠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와서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다. 나의 미카엘은 한나의 남편. 한나의 지난한 일상 속에 그려지는 미카엘의 나날. 결혼전 첫 만남부터 묘사되는데... 천천히 소설속으로 녹아든다. 녹아든다라는 이 표현이 딱이다.
책의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떠올린 어린이의 순수함을 그려낸 에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기대가 달라 감동이 더 컸던 책.
어린이라는 존재를 통해 나의 편견을, 사회의 시선을 그리고 어린이처럼 약자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페이지 한장한장 울컥하는 감동이 전해져 온다. 김소영작가는 정말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다. 이런 선생님에게 독서를 배운다면... 아.. 나도 다시 배워보고 싶다.
<어린이책 읽는 법>도 읽어보고 있다.
이런 책들도 읽었다. 벌써 3월이다. 뜨....
오래전 학창시절에 어떤 선생님께서 사람이 자시(11시-1시)에는 꼭 자야한다고 말씀하신걸 잊지 않고 있었다. 자야 하니까 자시~지. 이렇게 재밌게도 표현해서 결코 잊어먹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2시에서 4시 사이에는 꼭 자야 한다고 한다. 아, 잘못 알고 있었는가?? 알라딘에 쓰던 글이 날아가서 너무 걱정(?)이 되어 1시에 눈이 떠졌다. 이 정도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 대한.. 알라딘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