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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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몇 달 전부터 몽테뉴의 수상록을 생각날 때 마다 읽고 있다. 이십대에 읽으면서는 전혀 감흥이 없었는데 요즘엔 예를 드는 것 하나하나 까지 재밌는걸 보면 나도 세월의 연륜이 쌓였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이먹는다는 것이 좋지 만은 않지만 그 나이때에 새롭게 의미를 깨닫게 되는 그런 책들이 무궁무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얼마전에 읽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 인용이 있어서 알게 된 책이다. 그야말로 몽테뉴의 일대기를 아주 얇은 책에 적어 놓은 것인데.. 가끔 수상록에서 본 듯한 문구를 만나면 기쁠 수가 없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몽테뉴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교육이다. 이 대가는 알고보니 그냥 개천에서 용난 경우가 아니었다;; 무려 몽테뉴의 아버지는 교육을 위하여 인문학자들을 소집하여 교육플랜을 세운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 유모에게 맡겨 지는 것이 아니라 벌목꾼에게 보내진다. 말 그대로 요즘 말로 하면 현장체험학습??을 하였는데 '단순하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으로 키우면서도 신체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서 였다. 더불어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아량까지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인문주의의 열쇠인 라틴어를 배운다. 일부러 프랑스 말을 전혀 못하는 학자를 가정교사로 삼았고 집안의 모든 사람은 라틴어 이외의 말을 해서도 안됐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중심이 바로 서고 세태에 초연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은 아마도 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보다 쉽지 않았을까, 부러울 따름이다.

 

몽테뉴가 죽는 그날까지 스스로에게 물었던 것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로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경직된 주장을 싫어한 유연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수상록에 계속해서 나오기도 한다. 읽다가 요즘 나에게 딱 적용하고픈 구절을 만나 옮겨둔다. 몽테뉴에게 관심있는 사람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은 장소에 묶여 있는 사람은 작은 근심에 빠진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몽테뉴는 언제나 거듭, 우리가 근심이라 부르는 것은 자체 무게를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키우거나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그 자체의 무게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에 부여한 무게를 지닌다. 가까이 있는 것이 멀리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근심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작은 척도로 움직일수록 작은 것이 더 많은 근심을 만들어낸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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