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시안 블루, 베로네즈 그린, 유황색, 카르민, 코발트색, 시에나, 양홍색, 카드뮴... 
헉헉, 반고흐, 영혼의 편지에 등장하는 색깔들 중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색깔들을 메모했다.
여명이나 노을을 보다 너무 아름다워 문자들 속에 가두어 두고 싶어도 색감이 기본적으로 부족해서
기껏해야 오렌지, 타는 듯한 붉은 빛, 이러고 앉아 있다. '태백산맥'에서 지리산 노고단의 여명을 묘사한 대목의
그 문자들이 내 눈 속으로 다 걸어들어 오는 착각에 베껴 써보기까지 했다.
무언가 너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쓰고 싶고 말하고 싶은데 그것을 적절하게 묘사하는데 풍부한 색채들을 동원하고
싶은데 역부족이다.  

그림과 글을 아주 동떨어진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주 일란성 쌍생아다. 본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을
묘사할 때 기본적으로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이나 해석이 부족하면 얼크러진다. 그래서 조정래샘의 또다른 꿈이
화가였나 보다. 나의 경우 예체능은 항상 평균을 깎아 평평하게 만들어 주는 얄미운 놈들이었고. 
대학가서 제일 기뻤던 것이 더이상 미술이랑 체육을 강제로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으니.

색깔 공부좀 해야겠다.
오죽하면 인터넷 쇼핑하는데 옷색깔이 시에나라길래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했다지.
나중에야 그게 일종의 벽돌 색깔로  이탈리아의 지명인 것을 알았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색깔 분류표가 안나온다. 아놔, 책사보라는 얘기만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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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09-12-10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키니 중에 시에나스키니라는 게 있죠.^^
저는 글과 음악, 그림은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쭉 해왔어요.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고,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
찾아보면, 예쁘고 신기한 색깔 진짜 많죠.
저마다 느낌이 다르고, 가진 의미가 다양해서 두루두루 관심이 가던.
쇼핑몰의 옷 색깔이 한정적인 것에 괜히 짜증냈던 저였죠.(웃음)

blanca 2009-12-11 14:54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고 있답니다. 맞아요. 빨주노초파남보만 있는 줄 알았는데 ㅋㅋ 시에나라니 갈색은 있는데 이게 모지? 했다니까요.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사내가 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지향했지만, 끊임없이 물감과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허덕였고, 시대와 사람들과
불화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영혼을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했던 그.
그 미완의 소망과 함께 산산조각 분해되어 버린 그의 슬픈 영혼은 그러나 결국 후세에 하나의 신화가 된다. 

그리고, 그 사내를 온전히 감싸안고 그의 고뇌, 절망, 심지어 간헐적인 발작까지 이해하고 사랑하였으며,
그가 무엇을 먹는지, 사람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는지, 기분은 어떤지,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지까지 세세하게 궁금해하고
부족한 점을 챙겨주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내가 원했던 지향에 이르는 가장 투명한 길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가 밤하늘의 별이 되었을 때 바로 그 통로에서 그를 배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마저 따라갔던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사내와 그, 바로 빈센트 반 고흐와 네 살 연하의 동생 테오다.
테오가 없었더라면 고흐는 하나의 신화이자 전설이 아닌, 변두리 정신병원에 감금된 부랑자로서 죽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 인간 안에 양존하기 힘든 천재적 예술성과 세상에서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해 타협하고 조율하고 적응해야
하는 기제가 고흐와 동생 테오에게 따로 따로 떨어져 있었기에 그들은 세상의 이해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이해받기를
단념하고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침잠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 견고하고도 슬픈 몰이해의 벽이 허물어지고 우리는 고흐가 그렇게도 원했 것처럼 
그 고뇌에 찬 그의 모습을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다.  

아주 좋은 책이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668통의 편지 및 동료화가들에게 보낸 편지를 선별해서 엮고
거기에 언급된 그림과 더불어 그의 인생을 시간 순으로 간략하게 개관한 구성이 퍽 깔끔하다.


그림 하나하나마다 거기에 녹아들어간 사연들과 고흐가 덧붙인 설명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가독성도 좋지만,
무엇보다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자체가 가지는 예술적 성취가 놀라워서 빛난다. 어설프게 마구 써갈겨
편집이 필요한 서간문이 아니라, 한 편 한 편 속에서의 그 심도있는 자신의 예술관을 유려한 필치로 써내려간 그의
문학적 소양이 놀랍기만 하다. 테오도 만만치 않다. 고흐가 불 같은 정열과 성마르고 급한 목소리를 질러댄다면,
테오는 마치 손위 형처럼 담담하고도 너그럽게 그의 감정들을 받아 그러모아 재해석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형제 간의 그 끊임없는 사랑과 이해, 신뢰도 부럽지만 그 둘 간의 심도있고 아름다운 소통의 영역이 샘날치만큼
부럽다. 

마을 주민들이 감금시켜야 한다고 연판장까지 돌릴 정도로 사회적 부적응자로 낙인찍혔던 그를 끝까지 사랑하고
믿어주고 존경했던 테오의 우애는 단 한 명의 팬을 가졌을 지라도 고흐가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던
하나의 동인이었다. 형이 죽자 자신의 저서 전부를 불질러 버리려고 했던 정약용 형제와 닮아 있는 것도 같다.
세상 전부가 등을 돌려도 단 한 사람이 자신을 지지해 주고 이해해 준다면, 그리고 그가 친동기라면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 결국은 승리하고 마는 것일까? 

가슴이 저릿저릿한 대목이 많아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는 책이지만 고흐의 그림을 보고 고흐가, 테오가 하고 싶어
못견뎌했던 얘기들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을 시작해 볼 것을 권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보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갑자기 끊임없는 발작을 억누르며 고통으로 허우적대던 그의 모습이 지나가며
하나의 거대한 눈물의 호수로 화하는 모습. 그 찰나에 갑자기 예술이 지향하는 저 별에 잠시 닿은 듯한 환상적인
착각이 몸을 휘감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보여주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서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니.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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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10,900원 → 9,810원(10%할인) / 마일리지 540원(5% 적립)
2009년 12월 08일에 저장
구판절판
이 책은 한 사람의 일대기이다. 한 시대의 성찰이다. 주류가 만드는 역사, 그러나 그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의 초라한 죽음은 결국 그도 유약한 하나의 인간이상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무모한가.
유러피언 드림-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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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무미건조할 수 있는 내용들을 휴머니즘으로 감싸 안아 하나의 성취를 이룬 책. 그 분의 책상 위에 마지막까지 펼쳐져 있던 바로 그 책.
체호프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순진 옮김 / 일송북 / 2008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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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필요없다. 정말 너무 재미있다.
유년의 뜰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9년 12월 08일에 저장
구판절판
이후의 유년 소설들은 이 소설에 빚진 바가 많다. 눈부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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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흥분하는 성격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흥분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자신이 없어져 버린 그 순간부터 분노하는 그 자유를 잃어 버렸다.
대학시절 누군가의 빡빡한 간섭을 비난하다 친구와 동시에
"그런데 그게 아니면 어떡하지?"라고
반문했던 기억은 불길한 복선처럼 결국 그게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 그 비난의 대상에 속죄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경험이 있다.
그에게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우리의 단죄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한전총리의 금품 수수설을 또 예전의 그 방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열을 내다 배설처럼 뱉어 버린 짧은 글에
"그런데 그게 아니면 어쩌시려구요?"라는 리플이 달렸다. 보도한 언론이 사실이면 어쩌려고 그러냐는 그 리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정작 나의 글은 허공으로 떠 버리고. 내가 건진 것은 한전총리를 믿고 싶고 믿고 있는 나의 재확인과,
또 그게 아니면, 이라는 그 아픈 가정.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면.

잘 모르기 때문에 분노할 수 없다.
그런데 이건 자칫 비겁해질 수 있는 아주 모호한 지점이다.
아니면 알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행동하지 않는 나 자신을 설득해 보려는 하나의 방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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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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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에 들어갔던 1,000억 상당의 대원각(당시는 요리집으로 개조)을 법정스님을 통해
기증하여 길상사로 바꾸게 한 김명한 할머니가 시인 백석과 한 때 청진동에서 함께 살며(동거라는 단어를 피하고 싶다)
사랑을 나누었던 김자야 여사이자 이 책의 저자이다. 그녀는 또한 나머지 현금을 백석 문학상 제정에 도움이 되고자
기부하여 실제 문학상의 설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팔순이 되어서도 백석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절절이 끓는 가슴을 부여잡고 애달파 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첫눈 오는날 유골을 길상사의 마당에 뿌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그렇게나 평범함 속으로 녹아들기를 바랐던 사랑의 결실을 꿈꾸며 떠난다. 

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와 있던 백석과 만나 보낸 3년 여의 시간은 아름다웠고, 신분의 차를 둘러싼 봉건주의의
한계로 서글펐다. 청진동에서 둘이 보낸 시간들에 대한 회상은 노인이 노인으로 태어났을 것이라는 그 젊은이들의 무지렁이 같은 오해를 한숨에 씻어내고도 남을만치 영롱하고 아름답고 상쾌한 사랑들이다.
이후 그녀가 죽는 그 날까지 이 사랑은 그녀가 회상하는 과거의 시간들의 갈피짬마다 속수무책으로 스며들어 그녀 인생 전체를
관통한다. 과거회상밖에 할 도리가 없다는 그 주어져 넘쳐 버리는 시간들 속을 뚫고 들어오는 기억들은 거기에서 정지하여
수만번 다시 쓰이고 또 다시 쓰여 새로운 결말로 다시 태어나려 몸부림친다. 그녀는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백석이 만주 신경으로 떠나던 날 끝내 따라가지 않은 자신의 결정과 그가 쉽게 찾지 못할 거처를 따라 이리저리 헤매인 그 무용의 노력을.
하지만 자야 여사가 죽는 날까지 백석을 그리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덕택이 아닌가 싶다.
진부한 설명이지만 완결되지 못하고 묶여서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 부려놓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기억 속에서
절대적 아름다움의 권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랑이 가족이라는 성과물로 치환되고 노년 서로 등을 긁어주는
안온함으로 변모되었을 때도 우리는 사랑 그 하나로 하루를 온전히 채우며 감정의 후달림에 전율할 수 있을까?
설명되지 않은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된다. 개개인에게.
손 한 번 제대로 흔들지 못하고 떠나 보낸 그 아이는 영원히 첫사랑의 눈동자가 되어 나를 흔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순한 사랑의 결정체라고 미화하고 또 기만해도 그건 나의 삶을 그럴 듯한 것으로
격상시키고 싶은 치기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백석시인과 자야 할머니의 사랑은 하나의 화석이 되어 문학사에
스며들어 많은 사람을 흔드는 질료가 되어 버렸다. 이루어졌다면 못들을 얘기들이다.  

사랑을 회상하며 떠나가는 사람의 얘기를 백석의 시전집을 간행한 이동순 시인이 다듬고 엮었다.
자야 여사의 삶처럼 처연하면서도 값어치 있는 아름다운 사연들이다.
오버코트 속에 작달만한 그녀를 쏘옥 넣고 마구 줄달음 치는 백석을 상상하며 그들의 웃음소리가 가르는 찬 공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주변 자체가 청명한 차가움으로 상쾌해진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얘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싫증나지 않는 낭만적인 유희이다.
눈이 오는 날 가까운 길상사에 가서 자야 할머니의 흔적들을 도닥거려 주고 싶다.
영롱하지만 가냘펐던 그 사랑과 곡절이 많았지만 사회적 기여로 승화 확대된 삶의 결말이 꽁꽁 얼어 있는 그 마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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