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속으로 - 더 자세한 쓰기, 사라짐의 쓰기에 대하여
리디아 데이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에트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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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와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살기‘에 대한 통찰이 농밀하게 배어있다. 아무도 안 읽어도 괜찮다지만, 결국 모두가 읽게 되어버리는 숨겨진 마력을 지닌 책. 모든 무용해 보이는 것들에 바치는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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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7-03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목만 보고 필리핀 세부 여행관련 책인줄 착각했어요^^

blanca 2026-07-03 10:39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ㅋ 그럴 수 있겠네요.

2026-07-09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09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제 뭔가를 좀 알까 싶은데 이런 앎의 유효 기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짧다. 우리는 뭔가를 향해 평생을 달리기도 하는데, 그 종점은 어처구니없게도 죽음이다. 이런 부조리가 또 있을까. 모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를 욕망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 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더 나이 들어 노년의 삶을 사는 사는 사람들은 이런 부조리와 실존의 비극을 어떻게 삶과 화해시킬 수 있는 걸까. 종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일상을 충실히 영위할 수 있는 그 용기가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존경스럽다. 내게는 각자의 고단한 운명을 감내하며 묵묵히 살다 죽는 일 자체가 영웅적인 행위로 보인다.
















리디아 데이비스의 <세부 속으로>는 예일대 문학상 재단에서 출판하는 '나는 왜 쓰는가' 시리즈 청탁으로 완성된 책이다. 통상, 이런 테마 선집 청탁에 의해 나오는 책은 아무래도 기대되는 틀 안에서 작가의 또렷한 개성이 발휘되기 힘들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리디아 데이비스의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칠십 대의 노작가가 자신의 쓰는 일의 의미를 풀어나가며 대뜸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제목의 책, '수레바퀴 제작인의 작업실'을 들이민 것은 큰 복선이었다. 독자와 시대의 요구에 영합하지 않는 우직한 내 세계에 대한 천착과 기록이 결국 '쓰기'의 의미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이 모든 쓸모없고 작은 것들의 가치는 결국 죽어 사라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에 몰두하고 사랑하고 시간을 들이는 삶의 그 무용해 보이는 아름다움과도 만난다. 젊은 시절 처절하게 굶주림과 사투를 벌이는 <굶주림>을 써냈던 크누트 함순이 말년에 <풀이 무성한 오솔길에서>의 일상의 산책기를 툭 던져 놓고 가장 중요한 재판의 결말은 밝히지도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그 무심함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수용시설에서 130킬로(13킬로가 아니라)미터를 걸어 집으로 갔던 존 클레어의 시에 대한 이야기는 언뜻 이 책과 어떤 접점이 있는지 노골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공명한다. 


결국 좋은 에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원대한 사회학적 장광설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 미시사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그 누가 독자로 와도 개인적인 읽기가 가능한 글 말이다. 사소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테마를 불러내는 작가의 필력에 처음부터 끝까지 마법처럼 걸려들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책 안에서 인용한 이 짧은 민속시가 이 책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빨간 털실로 이 손모아장갑 뜨기를 시작하는 게 아니었는데.

장갑은 이제 완성했지만,

내 인생은 끝나버렸네.

-러시아 민속 시(세부 속으로-리디아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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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ebooks 2026-07-03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의 몽상가님. 저는 에트르 출판사의 편집자 나희영입니다. <세부 속으로>를 읽으시고 이렇게 아름다운 후기를 써주셔서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읽기와 쓰기 그리고 살아감에 대한 리디아 데이비스의 통찰이 넘 깊고 흥미로워서 처음 이 원고를 읽고는 크게 감동이 밀려왔더랬습니다. 다락방의 몽상가님께서 데이비스의 생각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생각을 이러한 스타일과 필력으로 밀어부친 그의 문장에 깊이 공명하신 듯해 참 반갑고 감사합니다.

blanca 2026-07-05 15:00   좋아요 1 | URL
오, 안녕하세요. 리디아 데이비스는 원래 믿고 보는 작가지만, 이번에 또 한번 느꼈네요. 어떤 기획이라도 이 작가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는 걸요. 좋은 책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26-07-05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과 겹쳐 읽었어요. 두 권의 책에 나온 핵심을 엮으면서 ‘쓸모없는 세부 사항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 언급된 ‘진지한 관찰자’가 글을 쓰면 남들보다 더 자세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죠. 저는 알라딘 서재가 없어질 때까지 ‘무용한 글쓰기’를 하려고 해요.

blanca 2026-07-06 09:26   좋아요 1 | URL
오, cyrus님 이미 읽으셨군요. 네, 우리 오래도록 여기 남아 무용한 글쓰기를 합시다!
 
올빼미의 낮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5
레오나르도 샤샤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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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목격하고 진실을 얘기하는 건 생각만큼 간단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다. 하필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닐 때, 그리고 나머지 모두가 다 함께 침묵할 때 그걸 깨고 나오는 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비겁하고, 복잡한 존재다. 


레오나르도 샤샤의 <올빼미의 낮>은 백오십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 이 정도 분량이면 앉은 자리에서 집중하면 두어 시간 정도면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며칠에 걸쳐 집중해서 읽어야 사건의 내막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가까스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다층적인 결과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재미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점의 변화가 계속되긴 하지만, 단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농밀한 페이지터너다.


첫 장부터 귀를 찢을 듯한 총성이 울리며 시작한다. 바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이다. 시칠리아 팔레르모행 버스에 올라타려던 건설협동조합장의 죽음 이후 이 사건을 맡게 된 군경 벨로디 대위는 정보원 파리니에두에게서 연이어 벌어진 농부의 실종 사건까지 연결 고리를 찾게 된다.


이 사건의 정점에는 '마피아'가 있다. 우리가 영화 '대부' 같은 곳에서 떠올리는 그 끈끈한 혈족 같은 마피아의 유대는 이탈리아에서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것은 하나의 금기로 작용한다. 바깥에서 보듯 낭만적이고 미화된 캐릭터의 어두운 뒷 배경 정도가 아닌 것이다. 작가 샤샤는 이 소설의 분량이 이렇게 줄어든 데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마피아의 거대한 영향력이 있었음을 작가 노트에서 고백한다. 덜어내고 또 덜어낸 이유를 솔직하게 항변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마지막에 덧붙인 작가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하나의 눈속임 장치인지도 모른다. 즉, 이 정도로 두려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비겁한 공모의 풍자일 수 있는 것이다. 


정의를 믿고 그것의 실현을 추구하는 청년 장교와 노인이 된 마피아의 대화 장면은 영화의 한 씬처럼 인상적이다. 노인은 사회, 국가, 법망의 외부에서 하나의 힘이 된 그 불의의 세력을 이 청년에게 이해시키려 해보지만, 물론 실패한다. 그러나, 그가 이 파르티잔 출신의 청년에게 '인간'이라고 칭한 것은 그 젊음이 가지는 무모한, 무해한 희망에 대한 일종의 경의 또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올빼미의 낮>의 미덕은 이것이다. 이 복잡다단한 인간과 그 인간들이 엮어내는 그 역동의 가운데에서 섣불리 판단, 재단하려 하지 않는 작가의 신중함이 결국 독자들에게 저마다의 감상을 살아내기를 바라는 것. 절대악을 성토하는 것으로 납작하게 눌러버리지 않고 그 악을 눈앞에 갖다댐으로써 어떻게 대결해야 할지를 개인 각자의 교훈으로 남겨두는 틈에서 작품의 깊이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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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19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피아는 소문으로만 존재합니다…! 🤣
저도 이거 생각보다 읽는 데 오래 걸렸어요.

blanca 2026-06-20 13:52   좋아요 0 | URL
이 말 충격이죠. 마피아는 소문으로만 존재한다니...이 작가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둘째 아이가 열네 살이 됐다. 목소리도 변하고 체구도 커졌지만, 무엇보다 부모와의 관계가 변했다. 이제 더는 내가 절대적 보호자나 아이 앞에서 절대적인 권위자가 될 수 없다. 사사건건 대립하자면 끝도 없다. 어제의 아이는 없고 매일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 내가 적응하는 수밖에. 급변하는 이 시대에 아이의 성장은 '데미안'의 알을 깨고 나오는 투쟁을 밖에서 지켜봐야 하는 어른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말 그대로 '줄탁동시'의 어미닭처럼 안에서 부리로 알을 쪼고 있는 병아리를 시의적절하게 도와줘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며 서두르지 않아야 하는데, 바깥 세계는 그런 잠깐의 여유를 용납하지 않는다.



미국의 흑인 노예제와 남북전쟁을 다룬 문학은 많지만, 몇 대에 걸쳐 한 가문을 뚫고 내려온 유장한 역사를 짊어진 한 소년의 성장기를 이토록 아름답고 치밀하게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소설은 포크너만이 쓸 수 있지 않을까. 똑같이 존엄한 인간을 단지 피부 색깔로 나눠 차별하고 한 가문의 노예로 종속시킨 백인의 오만함은 대지, 노동, 야생의 자연과 맞물려 그 윤리적 패배의 업,속죄, 수치심과 섞여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유장한 가문의 연대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단 하나 아이의 '성장'에는 주인도 노예도 신분도 차별도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하고, 모두가 한 가족처럼 협력하여 하나의 지도를 그린다. 포크너 자신이 투영된 것만 같은 소년의 성장기가 그렇다. 


여섯 편의 연작 소설은 따로 분리된 것 같으면서 연결되어 있다. 가장 중심적인 인물인 아이작 매캐슬린의 탄생 비화를 풀어내는 <옛일>을 필두로 그 소년이 샘 파커스라는 흑인 노예 노인으로부터 야생에서 첫사냥을 배우고, 곰을 대면하게 되며 성장을 이뤄내는 이야기인 <곰>과 그 소년이 노인이 되어 후손들을 지켜보게 되는 <삼각주의 가을>로 이어지고, 다시 몇 대를 내려와 그 매캐슬린 가문이 흑인 노예 집안의 손자를 장사 지내주는 <내려가여 모세여>로 마무리된다. 외형적으로는 엄격하게 주인과 노예로 양분되어 있는 두 집안이 수 대에 걸쳐 서로 얽히고 설켜 살아나가는 대서사시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계층, 계급을 만들고 삶과 사회를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해도, 인간의 생명과 삶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나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전인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세속적인 경계선 일거에 지워버리고 진짜를 기민하게 인식하는 직감이 있다. 이 이야기 속 소년의 평생을 지배한 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런 통념까지 다 부수어 버리고 난 대지에서 야생의 숲을 향해 전진하는 법을 가르쳐 준 흑인 노예였다. 
















일본에서는 어느덧 우리에게도 익숙한 용어인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세대도 나이를 먹어 50대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돼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80대가 된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사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소설은 중학교 시절 등교 거부 이후로 7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게 된 히키코모리 아들과 뒤늦게 그 아들의 가해자들을 향한 학폭 소송을 진행하게 된 50대 아버지의 이야기다. 초반부에는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들과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가정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아들의 칩거의 원인을 간파하게 된 아버지가 법적 투쟁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과 그 마무리가 여러 의미 있는 질문과 생각 거리를 남기는 소설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어른들이 선호하지 않는 비학군지 지역 학교 출신 젊은 변호사 다카이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 아이의 성장에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십대의 성장이란 안온하고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을 야생숲 곰사냥을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안의 핸드폰 앞에서 홀로 고립되는 현대의 아이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시간, 부모는 아이의 열리지 않는 방문 앞에서 망연히 서성인다. 성장이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일 텐데, 오늘도 이런 고립된 가정들이 겪고 있는 성장통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는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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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데 완벽한 이야기. 그렇게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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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5-15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래 리뷰는 나중에 읽어야 할 것 같아요!

blanca 2026-05-15 12:23   좋아요 1 | URL
스포일러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