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일기
올레 토르스텐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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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목수가 의뢰받은 한 가족의 130년 된 다락을 개축하는 과정에 대한 투박하고 가감없는 이야기가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왜 이리 뭉클한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이 시대에 사라져가는 육체를 동원한 고전적인 일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자아내는 향수가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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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와 이디스 워튼은 둘다 뉴욕의 최상류층 출신 작가로 실제 생애 전반에 걸쳐 친하게 지낸다. 이디스 워튼이 <순수의 시대>로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자 헨리 제임스에게 비견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결핍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둘은 아무래도 상류층이라는 한정된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드라마를 통해 인간의 내적 욕망을 탐구하는 데에 천착한 작품이 많다. 이는 한계이기도 하고 그들의 강점이기도 했다. 경험은 작가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그 깊이가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례로 우리는 제인 오스틴이 거실에서 창조한 세계를 결코 폄하할 수 없다. 

















19세기 전반의 명망 있는 의사 슬로퍼의 고명딸 캐서린이 집안의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청년 모리스에게 한눈에 반하며 아버지와 갈등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한 마디로 나쁜 남자한테 빠진 딸의 어리숙함을 못 보아 넘기는 꼰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여주인공 캐서린은 정말 답답한 캐릭터다. 아버지도 연인도 그녀의 확답을 듣지 못한다. 자신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하는 아버지에게도 섣불리 반항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랑하는 모리스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캐서린의 모습은 언뜻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어 보인다. 헨리 제임스는 여기에서 기지를 발휘한다. 바로 그 인물의 현실성이다. 사실 어떤 딜레마 속에서 시원한 결단을 내리고 그 길로 질주하는 모습은 현실에서 쉽게 보기 힘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시간만 보내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누구나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의 과거 한 조각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헨리 제임스는 우리의 못난 구석, 근사하지 않은 부분을 불러온다. 


















이디스 워튼은 <순수의 시대>의 남자 주인공 아처에서 캐서린을 변주한다. 그 또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대신 사회의 압력에 굴복한다. 그도 캐서린처럼 사랑을 포기한다. 그러나 중년이 되어 회고하는 그의 젊은 시절의 선택은 캐서린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어리석은 사랑에 빠졌던 자신의 과거를 의아하게 돌아보는 캐서린과는 달리 뉴랜드 아처가 회고하는 자신의 사랑은 끝내 포기했던 "인생의 꽃"이었다. 그럼에도 여기 현실에 남아있기를 선택하는 자신의 모습 또한 그는 인정한다. 끝내 죽는 순간까지 딸에 대한 권위와 구속을 포기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시원하게 반기를 들지 못한 캐서린과도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헨리 제임스와 이디스 워튼 또한 평생을 자신들이 가지고 태어난 것, 속한 계층의 한계 안에서 마음으로 원하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의 긴장 관계에서 살았다. 그들의 삶이 작품의 기본 구조와도 만나는 부분이다. 


이곳 아니면 저곳, 여기 아니면 저기, 이것 아니면 저것의 사이 그 어느쯤에 그렇게 우리들도 모두 갈등하며 나날들을 보낸다. 무엇이 옳았는지를 회고할 수 있을 시점이 오면 마무리를 준비해야 한다. 한없이 허무해지지만 깊은 설득력 있는 이야기들을 나란히 놓고 본다. 어떤 선택도 회한이 남는다. 그 선택을 한 자신, 그러한 것을 견인한 환경, 어느 하나도 부정하지 않는 게 성숙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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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30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블랑카님, 저 안그래도 주문해서 워싱턴 스퀘어가 어제 도착했습니다만, 블랑카님이 이렇게 똭- 페이퍼 적어주시네요. 아아...독서인생이란 무엇인가요?

순수의 시대는 저 너무 좋아해요. 마음속 성소란 말을 되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blanca 2020-06-30 19:04   좋아요 0 | URL
헉, 아, 이 책 나온지 좀 됐는데 어떻게 이렇게 동시에? 다락방님도 <순수의 시대>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너무너무 좋아서 두 번 읽었어요. 이디스 워튼 정말 좋아요. 삶까지. <이선프롬> 도 너무 좋았어요. 헨리 제임스는 음, 저는 솔직히 아주 좋다, 이렇진 않은데 그렇다고 그 작품이 안 좋은 건 아니고.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좀 답답한 캐릭터를 묘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도 같고요. 그래도 <워싱턴스퀘어>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랍니다. 다락방님이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한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와닿지 않았고 때로는 언어들의 과잉과 생략이 껄끄러웠다. 한 마디로 잘 읽히지 않아 잘 안 읽었다.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그저 쏟아내는 것이 아닌 청자에게 속살거리는 듯한 말투가 정겹다. 잘 읽히고 감각적이고 쳥량하다. 제주에서 혼자 살고 뭍에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그녀의 "수국의 즙 같은 말투"에 한동안 중독되어 읽고 또 읽었다. '시'란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그 응축된 언어의 집 한 채로 독자에게 때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문간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이전과는 같아질 수 없다. 그 전환은 반가운 일이다. 그 집을 통과해서 보는 세상은 부조리하거나 비합리적이지만 무의미하거나 마냥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법이다. 덥고 끈끈하고 답답한 나날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맞은 느낌. 시를 연이어 읽고싶게 만드는 마력을 몰고 오는 시집이다. 시가 안 읽히는 시대, 이런 시인은 여전히 태어나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복간된 책이다. 시집이 아니라 저자의 삶의 이야기와 그녀가 읽은 마흔여덟 편의 시가 함께 실린 책이다. 한 마디로 삶과 시의 독법을 보여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이런 류의 책들은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가벼울 줄 알았던 한 중년 여성의 시읽기는 깊고 예민하고 예리하고 진중하다. 내가 요즘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을 들킨 듯 삶의 속살에 대한 천착이 빛난다. 늙음과 소멸, 이 사회의 지배적인 자본주의 가부장주의에서 소외되고 왜곡되는 사람들의 본질에 대한 애정은 이 시읽기가 자칫 개인주의적 감상으로 한정되지 않도록 한다. "삶의 기본값으로 주어진 설움과 청승을 어떻게 품고 갈까"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물음은 우리가 사랑하고 암송했던 시들이 줄 수 있는 답이 아니지만 그것을 묻고 답을 궁금해하는 시간은 값지다. 또한 학생들이 버린 노트에 소녀 감성으로 일기를 적는 환갑의 청소 노동자와 "지팡이가 아닌 낙엽에 기댄" 구순의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올드걸'을 발견한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비단 특별한 계층, 종족에게만 허용된 특권이 아니라 이 처연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 우연적인 삶이 던지는 화두를 응시하는 것과 통하니 말이다. 


다시 시를 읽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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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_Hebuterne 2020-06-29 0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즈음 저도 시를 읽으려고 하는데..이 시집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접하니, 얼른 사서 옆구리에 끼고 다니고 싶어져요. 응축된 간결하면서도 좋은 리뷰 고마워요 블랑카님♡

마지막 줄, 제 마음이 그러했는데 블랑카 님 리뷰를 읽으면 ‘느낌의 공동체‘라는 말이 절실해져요.

blanca 2020-06-29 15:20   좋아요 1 | URL
쟌느님, 저는 사실 시집은 잘 안 사요. 특히 최근 시인들의 시집은요. 그냥, 집중이 잘 안 되고 자꾸 잡념이 몰려와서... 시적인 인간이 아닌게지요. 그런데 요즘 다시 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왜 이리 좋습니까. 이건 두 번, 세 번 읽게 되네요. 그냥 내가 잊어버렸던 표현못했던 감정들이 명확해지는 느낌이 시원해서 좋아요.
 
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0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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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미리 정해진 일이었다. 나는 우리 인생이 트럼프 카드와 같다고, 누굴 만나고 누구와 사랑에 빠지는지는 카드가 어떻게 섞이는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운명의 손에 들려 게임 판으로 나간 카드는 버려지기도 하고 다른 손에 넘어가기도 한다.

- 대프니 듀 모리에 <몬테베리타> 중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편들은 농밀하다. 압축적이다. 일상의 균열로 그 사람의 삶 전체에 건 헛된 기대와 믿음을 배반하는 이야기들이다. 상대를 의심했는데 결국 문제는 나였다. 나만 소외되어 세상은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 결국 우리가 기대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허룩한지 허약한지를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남기고 가는 나머지는 결코 '내'가 아니다. 이 모든 무자비한 우연성, 비논리성, 불합리가 나마저 해체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미스테리적 긴장을 놓치지 않으면서 삶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시선을 유지하는 미덕은 흔한 것이 아니다. 대프니 듀 모리에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다.


<지금 쳐다보지 마>에서 '나'는 아이를 잃고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쌍둥이 노자매의 허무맹랑한 신비한 예지 능력에 기대는 아내를 비판한다. 아내는 나약하고 나는 강인하다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전은 그것마저 하나의 허상임을 일깨운다. 나는 결국 나의 미래를 본 것이라는 각성은 뼈아프다. 


히치콕 감독의 <새>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동명의 단편을 영화화한 것이다. 대자연의 재앙은 인간의 대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일상의 견고함 또한 그렇다.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들, 내가 믿는 사람들, 내가 나라고 여기는 것들의 지반 자체가 흔들릴 때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서 나를 덮친다. 심지어 내가 살고 있다고 여기는 시간, 공간적 공간 또한 미심쩍다. 과거를 회고할 때 흔히 우리는 그 시간, 그 공간에 나로 있었던 나날들조차 실재했었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푸른 렌즈>에서 여주인공 마다가 시력 복원 수술을 하는 동한 임시로 꼈던 푸른 렌즈는 주변 사람 모두를 끔찍한 동물들 형상들로 변모시킨다. 마다는 모두를 의심하게 된다. 그들의 선의, 배려 등도 그 렌즈를 통과하면 미심쩍고 사악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거대한 은유다. 우리가 모두 사회적 페르소나를 입고 사회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 아래 맨얼굴은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 놀랍다. 


마지막 <몬테베리타>는 감동이 있는 진지한 모색이다. 동양적 이상향인 무릉도원이 연상되는 '몬테베리타'로 떠나버린 여인을 끝까지 잊지 못하는 두 남자의 삶. 한 사람은 여전히 세속에 발을 담그고 나머지 한 사람은 결국 세속과 몬테베리타의 경계에서 헤매다 죽음을 맞는다. 우리가 있는 여기를 '홍진'에 비유한 것, 거기에서 바라보는 이상향인 몬테베리타 또한 일종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거기에 도달해서 버리고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냉정한 직시, 직관이 빛나는 작품. 산다는 것과 꿈꾸는 것의 경계에 선 작가의 성찰이 뭉클하다. 결국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거나 누릴 수 없다는 한계의 자각에서 우리는 다시 출발한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여전히 놀랍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며 진지한 고민을 하는 방법을 아는 영리한 작가다. 그녀를 읽는 일은 결국 우리 삶의 독법과 만난다. 허무하고 시간 낭비가 아닌 일. 읽기의 무게를 여전히 실감하게 하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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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06-26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http://www.cinecube.co.kr/news/notice_view.jsp?b_idx=2&uid=10092&rnum=1
씨네큐브에서 히치콕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레베카는 7월 1일 저녁에 하네요.우리 벙개할까요? ㅋㅋㅋ

blanca 2020-06-27 09:03   좋아요 0 | URL
흑, 아쉽게도 번개는 못하지만 테레사님 보시고 오시면 꼭 후기 부탁드립니다.!!!

유부만두 2020-06-30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침에 다 읽었어요. 매우 옛 이야기 같은데도 긴장감이 대단하네요.
은근 무서워서 한 호흡에 다 못 읽고 재미를 아껴가며 읽었어요.
읽고 나서도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고요. 듀 모리에의 다른 소설을 더 읽어야 겠어요.

blanca 2020-06-30 19:06   좋아요 1 | URL
그죠, 유부만두님. 저 다 읽고 나니까 아까울만치 좋았어요. 안 그래도 저 지금 또 다른 책 대기중이랍니다. 대프니 듀 모리에가 비교적 작품이 많아 다행입니다.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중략>


김사인 <화양연화>


살아보니 결국 승자는 돈도 권력도 열정도 사랑도 노력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무화시킨다. 변화시킨다. 심지어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본질 그 자체까지 때로 흔든다. 스무 살의 나보다 마흔 살의 타인과 더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사인의 <화양연화>를 읽으며 문득 서글퍼졌다. 덧없고 속절없는 느낌. 그가 예언했듯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그러한 시간을 맞는 것도 기대되지 않는다. 애닯고 애타는 것도 특권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던 탓이겠지. 기다리며 울던 시간도 그 시간만의 추억이 될 것임을 모르고 무너지려 했던 시간들. 


















아이가 어렸을 때 집앞에 걸어갈 수 있는  대학교가 있었다. 학교 안에는 서점이 있었고 분야별 신간과 아기자기한 문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도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였다. 내가 다니지 않았던 이공대 안을 그렇게 세 살 아이와 함께 아무리 보내도 끝날것 같지 않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종종 가곤 했다. 그 구내서점에서 처음 본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당시의 김연수 만큼 젊은 생기가 있는 소설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 날들도 나름대로 힘들었지만 '화양연화'였던 셈이었다. 스마트폰은 아직 초창기였고 사람들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을 특이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는 그러한 얘기를 하면 심드렁하다. 그 서점에서 강아지 스티커를 매일 사서 아예 재고를 영으로 떨어뜨렸던 기억은 없단다. 그 스티커는 침대 헤드를 점령해서 집에 오는 사람마다 경악하게 만들었었는데. 기억에 없다니. 


김연수가 오랜만에 신간을 냈다. 그의 전작을 읽어보려 했던 시간들이 있었고 모두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같이 나이들어간다는 실감이 가장 큰 작가다. 나보다 앞질러 살아보고 했던 얘기들을 뒤늦게 경험하며 정말 맞구나, 하던 시간들도 많았다. 문학을 문학으로 남겨 놓으려는 순정의 대목이 그의 장점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학교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구내식당에서 혼자 들썩였던 그의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내 기억에 포개진다. 그런 날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을 복기하는 날도 온다. 애달픈 시간들이 쌓여 애닯지 않은 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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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19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블랑카님. 결국 시간이었다는 것도 저 역시 깨닫고 있고요. 시간이 변화시키는 것도 저 역시 요즘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보는 눈도 그래요. 이게 이렇게 좋았던가, 이게 이렇게나 끔직했던가, 하고 늘 보던 것을 그리고 익숙한 것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돼요. 나이가 같다고 다 그렇진 않겠지만, 블랑카님과는 세월의 흐름과 변화를 보는 눈,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같이 가고 있다고 느껴요. 오늘 페이퍼 정말 좋습니다, 블랑카님. (아, 김연수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요.)

blanca 2020-06-20 08: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게 정말 세월, 나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게 ˝이게 나야, 내 생각은 이래˝라고 주장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낯설어요. 자꾸 변하고 닳아요.

다락방님 글 읽다 때로 깜짝깜짝 놀랍니다. 어, 이거 내가 느낀 건데, 이러면서. ㅋㅋ 그리고 시기도 비슷해요. 잘 나이들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나이들어가기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