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가수 요조가 서점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과 함께 동네 서점을 후원하는 프로젝트에 소액을 후원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약속했던 동네서점 지도 링크가 왔지만 챙기지 않았다. 대학가인 여기에도 동네 서점은 전무하다. 동네 서점은 이미 동네 서점이 아닐 거라는 체념. 지도를 나는 쓸 수 없을 테니까.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상용화되기 전의 유년기, 청소년기 친정 동네에는 버스 종점 근처 나란히 두 개의 동네 서점이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책을 구경하러 갈 수 있었다. 사지 않고 나오는 마음은 어린 나도 불편했다. 머리가 벗겨진 주인 아저씨는 괜찮다고 의자까지 내어주었다. 그 괜찮다는 마음도 왠지 책을 사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미안했다. 그래서 어쩌다 아버지가 교보문고에 데려가 주면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마음껏 책을 둘러보고 한참을 머물러도 부책감이 없는 그 자유가 너무 좋았다.

 

아직 지은서점은 친정 동네에 남아 있다. 오롯이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이 반갑지만 왠지 힘들어 보여 짠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마음껏 책을 들춰보고 할인,적립금 혜택에 하루만에 배송받을 수 있는 온라인 서점, 대형 서점의 틈바구니와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 다수의 사람들을 잠재고객층으로 가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동네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라딘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서평가 금정연과 책 얘기를 마치 사람처럼 머뭇거리며 친근하게 해서 자신의 소설보다 더 사람들을(나 포함) 사로잡는 소설가 김중혁이 듣고 옮겼다.

 

 

 

 

 

 

 

 

 

 

 

 

 

 

 

 

 

 

정말 <유어마인드> www.your-mind.com

 

독립출판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 서점에 가려면 무려 오층을 올라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없다. 기대를 너무 안 하고 문을 열어 기대보다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란다. 이 서점에 가면 책만 보다 사지 않아도 (물론 권장되는 상황은 아니다) 큰 부담은 없을 듯하다. 주인장이 쿨하다. 과잉 친절로 고객을 얽매지 않는다. 적어도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어설픈 커뮤니티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더위에 오층 계단을 밟아 이 서점을 탐방해 보고 싶게 한다. 너무 많은 관계과 형식적인 친절이 권장되는 과잉의 시대에 더위를 식혀 줄 듯하다. 주인장이 서점을 닫는 그 살풍경을 아직 상상하지 않음으로 이 서점은 건재한다.

 

 

 

정말 문학만 취급한다고? 고요한 서사가 있는 <고요서사> blog.naver.com/goyo_bookshop

 

해방촌 언덕에서 문을 연지 일 년이 되지 않았다. 편집자 출신의 주인장은 고즈넉하다. 한강 작가의 팬이었는데 강연회에 가서 인사를 나눈 후 우연히 정말 한강 작가가 이 언덕의 서점을 방문해 주었다. 재정적으로 유연하게 서점이 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점을 연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한다.

 

 

 

만일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이러한 책들을 읽어준다면 <만일>

 

'기본적으로 인간답게 먹고사는 방식'을 테마로 한 인문 서적 전문 서점의 주인장은 단아한 인상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이 '만일'에 와서 많이 나갔다.

 

 

 

나를 위해 먼저 멈춘다, <일단멈춤> stopfornow.blog.me

 

여행 전문 서점은 내일도 문을 열리라는 보장이 없다. 주인장은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자신을 잘 추스른다. 여행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오니 떠나고 머물다 그 다음을 섣불리 장담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잘 지키는 모습에 소설가 김중혁은 칭찬을 보낸다. 당연히 누구나 자기를 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사는 일은 그러한 장력을 때로 허물어뜨린다.

 

 

아직도 건재한다, <한강문고>

 

한강문고는 망원동에 위치한 우리가 어린 시절 가던 바로 그런 중형 서점이다. 주인 할아버지는 깐깐하기도 하고 인자하기도 하다. 주로 문제집을 사고 시험이 끝나면 어린이 문고 코너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최낙범 대표는 연륜 만큼 현 출판계와 시장에 대한 해석이 날카롭고 무게가 있다. 서점 뿐 아니라 자영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조언이 많다.

 

 

고마워요 <땡스북스>www.thanksbooks.com

 

홍대 앞에 있다는 소규모 서점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회자된다는 <땡스북스>도 녹록한 사정은 아니다. 책판매만으로는 서점을 유지할 수 없다. 주인장들은 글을 쓰거나 북디자인을 하거나 각종 가외의 일들로 서점을 유지한다. 이것은 슬프지만 오늘날 자영업의 수익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고 내일을 전망케 한다. 어떤 것을 표방한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복합적인 시대를 통과하는 나날들. '망설여진다면 하자'는 주인장의 신념이 서점의 성격을 보여준다. 부럽다. 진짜 하고 싶지 않아서 하지 않는 것인지 변명거리가 많은 것인지 엉덩이가 무거운 많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을 무색하게 한다.

 

 

 

작은 서점들은 처절하게 분투하고 있었다. 마진율은 형편 없고 그마저 잘 팔리지 않는다. 조언을 하고 충고하고 간섭하려는 사람은 넘쳐난다. 그럼에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적어도 자신을 알아가고 성장하고 자신을 배반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이 시대를 통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조금 세속적이고 디테일한 얘기들도 부끄럼 없이 나눌 수 있는 건강한 모습이 눈부셨다. 김중혁 작가의 '천천히 잘 소멸하자는 건데, 우리는 비겁하고 품위 없고 비루하게 소멸해 가고 싶지 않으니까요'라는 말은 우리 모두의 가슴 밑바닥의 그것을 건드린다. 당연한 건데 당연하게 취급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일본 서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이들과의 이야기, 부록처럼 덧붙인 서점 용어 코너도 모두 이색적으로 좋았다. 서점 뿐 아니라 그 어떤 것을 시작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찰떡처럼 붙을 이야기들이 웅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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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6-07-3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좋아서하는 일은 처절함도 달큰한 향이 돌지 않을까. 글 잘 보았습니다-.

blanca 2016-07-31 10:03   좋아요 0 | URL
분명 어떤 포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얻는 힘이나 보람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요.

수이 2016-07-3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갱지님의 댓글에도 절대공감이고_ 잘 소멸하자는 김중혁 작가의 저 말도 좋네요. 그 어디에서건 좋아하는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에게 든든한 응원을.

blanca 2016-07-31 10:03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며 <야나문>도 떠올렸습니다. 야나문이 더욱 더 번창하기를 바라 봅니다.

마녀고양이 2016-07-3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사가 아닌 맘으로 서점을 운영해야 하는 시대네요. ㅠㅠ
저희 동네 서점도 하나 있는데, 교과서 중심으로, 참고서가 아니었다면 그 조차도 망했을 것 같아요.

슬픈 일이지요.

blanca 2016-08-01 09:55   좋아요 0 | URL
동네 소형 서점은 특히나 참고서 의존도가 높다고 하는데 이게 마진율이 너무 낮아서 전체 수익성에 정말 안 좋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희 동네는 아예 서점이 없어요. 대학교 안에 영풍문고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철수하고 다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어서 너무 아쉬워요.

transient-guest 2016-08-04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고민이 아닐까요? 책나뭄도 그렇지만, 자영업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시대인데, 서점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래도 유명한 곳들이라도 이렇게 남아 명맥을 이어주고, 언젠가 다시 서점의 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책읽는 문화도, 작은 서점들이 개성있게 존재하는 문화도.

blanca 2016-08-04 15:09   좋아요 0 | URL
여기에 나온 작은 동네 서점들도 공통적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얘기해서 안타까웠어요.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섣불리 서점에 다가가긴 힘들 정도로요. 그럼에도 동네 서점의 명맥을 유지하고 때로는 이러한 어려운 와중에도 새로운 서점을 열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한편 부러운 점은 힘들긴 하지만 어떤 경지의 희열이 있어 보였어요.

2016-09-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3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