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발력이라고는 없어서 상황의 변화, 임기응변, 무질서 이런 것들에 취약하다. 그런데 이제 십육 개월 들어선 녀석은 나를 시험에 들게 하신다. 누나는 전혀 관심없어했던 변기와 신발장에 이 아이는 거의 탐닉 수준이다. 하루의 반나절은 현관에나가서 신발을 만지고 맞지도 않는 자기 발을 꿰어 넣어 안방으로 달려오고 막간에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 속 물을 휘젓는다. 몇 번이나 훈육을 한답시고 정색도 해 보고 심지어 맴매 시늉도 해보지만 그 때 뿐이다. 다른 말귀는 척 하니 알아들으며 이러한 긴요한 지시 사항은 못 알아듣는 척 하는 내공도 보인다. 그래서 안으로 들여놓으면 서랍이라는 서랍은 다 열어 내용물을 다 꺼내 바닥에 늘어 놓고 높은 곳이라는 곳은 다 올라가서 각종 위험한 묘기를 부린다.....
그러다 보니 나는 가택 연금 상황이다. 막간의 독서는 유일한 정돈된 세계다. 현실이 너무나 불안하니 책 속 세계에 더 빠져드는 기현상이다.
아, 좀 전에 다 읽었는데 토마스 하디는 천재가 분명하다. 하녀인 어머니와 석공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신부의 꿈을 좌절당한 그가 소설가로 어마어마한 선금을 지급받을 만큼 명성과 그에 비례하는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며 일생을 보내다 말년에는 시인으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도 마치 <테스>의 주석 같다. 어떻게 보면 시골의 절세 미녀가 그 미모로 인해 자신의 삶이 파란만장해지는 조금은 진부한 스토리라인임에도 그 클리쉐의 결마다 배어든 하디의 문장들과 그 스토리를 엮는 손길이 눈부시다.
그들은 계속 만났고, 만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날마다 그 이상스럽고도 장엄한 중간 지점,
즉 여명에, 보랏빛이나 분홍빛 새벽에 만났다.
-p.200
남녀의 만남을, 그 만남 속에 소리 없이 살그머니 스며드는 사랑의 묘사를 이런 문장들로 엮어 낼 수 있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여주인공의 질곡의 삶은 처절한 비장미가 느껴지지만 옹색하지 않다.
그녀가 지나갈 때 이 작은 물웅덩이 위로 별빛도 재빨리 지나갔다.
그곳에 반사된 별빛을 보지 못했더라면 머리 위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음을 몰랐으리라.
거대한 우주가 그렇게 하잘것없는 곳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p.349
현실이 너무 단조로워서(사실 이제 단조로운 게 얼마나 감사한 지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테스의 사연 많은 삶의 곡절에 몰입되어 그녀가 너무 가엾게 느껴졌다. 부적절한 시기에 너무 늦게 만난 사랑으로 계속 좌절되는 그녀의 소망,꿈들의 나약함이 눈물겨웠다. 스물 언저리의 여자, 아니 청년들이라면 세상의 그 허술한 얼개 틈에 발을 빠뜨리는 실수를 곧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운이 나쁘면 그 실수가 발목을 잡는다. 테스의 삶이 슬픈 것은 하디가 바로 그 청춘의 그 나약한 지점을 너무나 절묘하게 포착하여 형상화해 낸 힘에 기댄 바가 클 것이다. 삶은 리허설이 없다,는 그 가혹한 진실의 민낯을 조금은 광포한 결말로 다시 한번 마주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이 정돈될 수 없는 일상에 기대게 된다. 나중엔 눈물나게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머리 위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음을 기억하기로 하자, 나에게 하는 말. 바닥에는 온갖 물건들이 채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