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열한 시 불타는 떡볶이와 김말이 및 각종 튀김을 폭식한 덕택에 한 시간 동안 고통에 허덕이며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일이 좀 될라치면 딸아이가 문을 벌컥 열고 "노래불러주까?"를 반복. 그 순간은 세상 모든 영화도 다 덧없어지는 것이다. 복통에 시달리지 않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조리 부러워진다. 그 후로 컨디션은 계속 난조다. 부글부글 끓는 배를 움겨잡고 소세키의 단조로운 <마음>을 건성으로 읽으니 집중이 될 리가 없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를 읽고 퍼지는 백합 향기에 취한 것은 다 옛날 얘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합체가 되어야 하는데 건전하지 못한 장운동과 은은하고 단조로운 <마음>은 불협화음 그 자체였다. 리뷰를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건성으로 까리하게 손톱 세우며 끝냈다. 몸컨디션이 안좋을 때 소설은 집중이 안되고 자꾸 날을 세우고 허구의 빈약함을 끄집어 내게 되어 논픽션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진실로 빈약한 장르 이동의 근거를 내세워 본다.
장바구니를 채웠다 끄집어 냈다 난리 부르스를 쳤다. 원래의 장바구니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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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살다 보니 결국 읽는 책도 서재지기님들의 추천의 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말콤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는 하이드님 서재에서 보고 서점에서 실물도 직접 보았는데 유명인들의 성공에 얽힌 뒷얘기에 확 구미가 당겼다. <제1권력>은 진지함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리뷰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JP모건과 록펠러로 대변되는 미국의 두 독점자본이 어떻게 미국을 중심으로 세게 전역의 정치,경제, 군사, 사회,언론, 사법, 자원 등를 교묘하고 은밀하게 지배한 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다. 저자인 일본인 히로세 다카시는 반전 평화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이 책은 한동안 일본에서 외압으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 케네디 암살 사건의 배후를 파헤친 작은 책자를 읽은 적이 있는데 주로 미국의 군수산업의 복마전의 암시만을 흘리다 끝냈다면 이 책은 그 군수산업 자체를 근원적으로 조종한 자본의 각축장에 대한 얘기다. 앞서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책의 저자도 일본인이었는데 거대한 미국의 헤게모니 앞에서 진실의 실체를 발굴해 내는 역할을 자처할 수 있는 국력의 방증인지 아니면 저널리즘에 대한 성향 탓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들은 장바구니에서 다 빠지고 정작 몇 번 들어왔다 나갔다하다 결국 주문하게 된 것은 <부의 제국 록펠러>다.
<제1권력>과도 맞물리는 지점이지만 록펠러의 유년기부터 98세로 (와우!) 죽을 때까지(목표는 백살까지 사는 거였다고 한다. 대단하다. 수명도 목표를 세워놓고 거진 이루어 낸 그의 주도면밀함이)의 생애 전체를 천 삼백여 페이지에 걸쳐 철저하게 고증하고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저자인 론 처노는 시사 평론가로서 J.P. 모건과 금융 권력의 이동에 대한 책으로 국내에서도 큰 호음을 받은 전력이 있다. 록펠러와 J.P.모건이 미국인들에게 가지는 체감적 의미는 바깥에서 우리가 머리로 느끼는 것과는 그 무게와 감응도가 하늘과 땅 차이일 것 같다. 그럼에도 한 인간의 생애를 전면적으로 파헤치고 해부하여 죽음까지 천착하는 그 과정을 훔쳐보는 것은 인생의 편린만을 디딜 뿐인 우리가 유일하게 삶 전체를 총체적으로 그것도 가장 성공했다는 신화로 남은 한 사내의 인생을 조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매혹적이다. 자서전과 평전은 그래서 언제나 나름의 의미와 감동을 보장하는 것 같다. 한 인간의 삶이 물론 자서전이나 평전의 대상으로 간택됐다는 데에서 평범한 우리들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시시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삶의 결속에 들어가 버둥대다 다른 차원으로 가거나 혹은 마침표를 찍는 과정을 펼쳐 보면 그 하나로 대하소설의 전범 같다.
그러나 이 두께. 이 가격의 압박. 멀미가 나서 몇 번이나 망설이고 집 앞 대학교 구내서점까지 마실가서 들었다 놓아도 보고 중고서점의 그 간질간질한 지금 아니면 놓쳐 버릴 것만 같은 초조함에도 낚여 결국 주문했다. 요즘 책값들의 상승추이를 보면 대체로 권당 만오천원 선에 근접한 것 같다. 그렇다면 여러가지로 할인받아 이 정도 두께와 저자의 노고가 들어간 책을 구입하는 것도 낭비는 아닐 것 같다고 자위해 본다.
이 책을 포기하지 않고 다 읽고 마침내 리뷰를 쓸 수 있을까? 난망시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