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모래바람이 미친X   널뛰듯하는 날 힘겹게 폭풍의 언덕(정말이다)위 집에 아이를 끌고 밀며
힘겹게 당도하고 한참이나 지났는데
씩씩거리는 경비아저씨의 목소리. 
 

"아침에 집에 있었어요? 없었다구요? 근데 택배왔다는 얘기는 못들었어요?
 거 참 웃긴 놈이네."
아저씨는 화풀이를 할 건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애먼 택배기사들을 괴롭히는 재미에 한창 심취중이시다.
물론 그 무거운 책박스를 연락 한 마디 없이 경비실에 맡겨버린 그 사람도 한 소리 들을 만하긴 하지만. 

"저녁에 가지러 가면 안되나요??(소심하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 왜요!"  

이쯤되면 무섭다. 다시 그 황량한 언덕을 모래 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니 기다렸다는 듯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냉큼 박스를 치워버린다. 남편의 미니미는 무거운 택배 박스에 얼굴까지 가려진 엄마는 보이지 않고 그 추위 속에서도
이곳 저곳 다 참견하고 다 지체하며 속을 태운다. 심지어 이 기괴한 날씨 속에서도 그네를 열심히 타고 있는 한 언니를
발견하고는 놀이터로 줄달음쳐주신다. 솔직한 심정으로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입구에서 표정으로 다그치다 안 먹혀들어 다시 낑낑대며 상자를 이고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봤지만
막무가내다. 저 언니는 할아버지가 재미나게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데 그 언니의 반의 반 줌이나 될까 말까한 자기는 왜 그네를 타서는 안되는지(사실 내가 춥고 힘들어서였으니)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구원투수의 등장.
그 언니. " 너 몇 살이야! 몇 살이야? 안되. 이거 타면 무서워!" 

그 한 마디에 바로 미니미는 놀라는 시늉까지 하며(능청은 ㅋㅋㅋ 평소 잘만 타면서) 되돌아온다.
까무잡잡 유쾌하게 생긴 아홉살의 그 언니는 할아버지의 허리에 매달려 콧소리로 과자를 사달라며
다리를 질질 끌며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온다. 미니미는 언니가 맘에 들었는지 연신 되돌아 보고 좋아한다.
무엇보다 슈퍼가서 과자 사달라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그녀가 반가웠나 보다.
더 웃긴 것은 폭풍의 언덕 아래받이에서 오버하며 미끄러지는 그 언니의 모션과 거의 동일한 시점에
미니미도 같이 넘어지며 더없이 즐거워하는 것.
한 마디로 가관이었지만 두 마디 더 얹으면 참 귀여운 풍경이었다. 

그 아이 덕분에 나의 아이와 실갱이를 벌이지 않아도 될 수 있어 좋았다.
둘째가 아니라 항상 그 연배의 미니미를 귀여해 주는 첫째가 어디서 뚝 떨어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내가 항상 언니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혼불이 왔다. 누군가 나에게 혼불을 구해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정말 기적처럼 혼불을 적당한 가격으로 만났다.
새 책이나 진배없는 상태에 안티 링클 팩까지 동봉해 준 그 센스에 감동받아 당장 수령확인을 했다. 

이제 나의 상반기 책 구입과 독서는 이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다.(제발 그랬으면)
그 옆의 쿤데라의 <농담>과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는 좀 뒤로 미루어 두고.
차근차근 깊게 젖어들며 그녀가 끌로 새기듯 엮어냈다는 이야기들에 묵주신공을 바치듯
짚어가고자 한다. 

잘 할 수 있을지 독서가 고행이 되지나 않을런지 우려도 되고.
하이드님 신간마실에서 자꾸 읽고 싶은 책들이 튀어나오니
괴롭고 그런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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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1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워더링 하이쯔에 사시는군요.^^
혼불~ 아직 읽을 준비가 안돼서 책구입도 못해요.
하지만 오래전에 KBS스페셜을 보고 언젠가는 꼭 읽고 말리라 다짐했어요.
구간은 글씨가 작아서 저는 읽기 힘들어요. 이젠 글씨 작은 책은 내겐 '쥐약'같아요.ㅜㅜ

blanca 2010-03-17 14: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저는 무슨 운명 같이 학교란 학교는 죄다 언덕. 집이란 집도 다 언덕입니다. KBS스페셜이 정말 대단했나봐요. 블로그마다 다 그 얘기가 있던데. 꼭 찾아 보고 싶어요. 안그래도 저는 벌써 ^^;;그래서 2009년도판으로 구했는데 너무 읽기 편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조정래샘 책들과는 달리 책 한 권의 분량이 적은 편에 속해서 되레 금방 읽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이드 2010-03-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원에 가기는 아주 술술 넘어갈텐데.. 눈깜짝할 사이에 읽어버릴꺼에요. 읽으면서 막 페이퍼거리가 우수수 떨어질지도. 아, 이런거, 아 이런거. 하면서요.

그간 신간마실이 좀 모였으니, 내일 정도에는 페이퍼 쓸지도 모르겠네요. 서점도 다녀올꺼구요. 새로나온 푸엔테스의 책. 책 안 사는 와중에도 덥썩 샀던 책이에요. 그 책 정도면 블랑카님이 혹하실지도.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 (먼산)

전 이제 막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을 끝내고, 오늘은 안나 카레니나나 읽다가 자려고 합니다.


blanca 2010-03-17 14:1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을 신간마실만 보면 장바구니가 터질려고 합니다. 안나 카레니나 드뎌 시작하셨군요.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다 읽고 나면 심장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더라구요.(제가 과장이 심한 건 아시죠?ㅋㅋㅋ)

푸엔테스의 책이라구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하이드님 아니었으면 저한테 안기지 않았을 그 수많은 완소책들을 둘러보니(정말 하이드님은 지름신) 또 동할 것 같군요.

어제 <그녀에게 말하다>에서 출판디자이너 정병규 얘기를 읽으며 하이드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마쓰오카 세이코 얘기도 하고.

마녀고양이 2010-03-1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구입하셨군요. 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지금 급히 읽을 책에 밀려서 당분간 포기인데. ㅠㅠ
여하간 책이 많이 쌓여있는거... 행복하지 않으세요?
혼불 읽고 리뷰 꼬옥~ 네?

blanca 2010-03-17 14:20   좋아요 0 | URL
근데 주르륵 열 권 꽂혀 있는 거 보면 괜히 해야 될 숙제 쌓여있는 것 같아 괜히 부담스러워집니다. 1권 시작했는데 의외로 재미 있어요. 지루하다는 평이 좀 있어서. 오히려 이게 책 값을 줄일 수 있는 편법일지도 모르겠어요. 당분간은 책을 사지 못할테니까요^^;;

기억의집 2010-03-17 19:32   좋아요 0 | URL
당분간 책을 사지 못할텐데요, 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마 블랑카님 손이 근질근질할걸요. 책주문도 가만보면 마약중독처럼 끊을 수 없나봐요. 전 진짜 안 사야지 책 사야지 했는데, 그래서 한 며칠 잘 참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큰 건 저지른걸요. 정경화 40주년 기념박스세트로요!

흑흑 저야말로 미친X 지 뭐예요! 아무래도 중독치료 센터를 들어가던지 해야겠어요.

요즘은 택배 사고가 많아 경비실에 맡겨두라는 추세잖아요. 저의 애아빠는 알라딘이든 뭐든 무조건 경비실에 맡기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10권은 집앞까지 배달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힘드셨겠어요!

마녀고양이 2010-03-18 09:22   좋아요 0 | URL
ㅋㄷㅋㄷ, 책 사기는 중독이라는 말씀 절대 공감합니다.
이상하단 말이예요, 도박, 술, 담배 이런 중독은 안 걸리는데... 커피와 책 구매 중독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중독은 보통 순간 충동 조절 실패라는데.. 에공. 그래도 이런 중독 한두개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것도 없다면, 인생을 무슨 재미로~ ^^

기억의집 2010-03-18 10:13   좋아요 0 | URL
하긴 그래요. 중독된 것이 책이 아니고 옷이였다면 아마 파산했을 거에요. 어제 학부모총회 있어서 옷 좀 사 입었는데 옷은 티쪼가리에 하나에 만원도 넘더라구요(좀 이쁜 티요!). 좀 비싼 책도 있긴하지요. 요 며칠 눈독 들이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건 3만원 후딱 넘어서 현재 망설이고 있어요. 사실 남들 눈에는 종이쪼가리일 뿐인데...... 왜 제 눈에는 책이 보물단지로 보이는지..이걸 콩깍지라고 하나봐요.

blanca 2010-03-18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커피와 책 중독 알라디너들의 공통점이 아닐까요? 그걸로 살아가는걸요. 그중독이 아님 다른 나쁜 중독들에 또 빠졌을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살아갑니다.^^

꿈꾸는섬 2010-03-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불, 정말 좋겠어요. 저도 보고 싶은데 아직은......님 읽으신거 보면서 마음 동하면 저도 사서 볼거에요.^^

blanca 2010-03-23 22:12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저 2권까지 보고는 10권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졌었는데 지금 완전히 빠져서 마지막 세 권 아까워서 읽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정말 정말 아... 다 읽고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