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언급하기 좀 뭣한 그것을 하고 그 다음에도 인간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결국 소통이라는 미명 하에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항상 시작되는 그 매력적인 화제는 바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뒷담화되겠다. 물론 자제심과 절제의 미덕을 가진 아주 세련된 포장술에 익숙한 이들은 그 뒷담화를 듣기만 함으로써 주동하거나 공모하지 않았다고 합리화한다.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의 상처를 자극하는 기제는 다양하다. 그런 결핍이 과하게 노출된 사람도 그런 결핍 자체가 없는 사람도 결국 비난하고 투사하는 대상이 된다. 우리는 항상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지만 온전하게 그럴 수 없는 부분을
남들에 대한 비난 내지 거론으로 갈음하려 한다.  

서머싯 몸은 세속적인 성공과 예술적인 성취를 어느 정도 양립하여 이루어 낸 작가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그의 앙분에 찬 독설의 향연이 그의 여성에 대한 혐오감, 비평가들에 대한 적의, 문장력에 대한 머뭇거림 등과 머물려 아주 질펀하게 펼쳐진다.  

제인 오스틴, 스탕달, 발자크, 찰스 디킨드, 플로베르, 에밀리 브론테, 도스토예프스키, 심지어 톨스토이까지 그 앞에서는 아주 난자하게 해부된다. 온갖 추문과 작품의 허술한 부분이 다 들춰진다. 천재가 가지는 치명적 결함과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부터 듣는 재미는 또 색다르다. 다만 이 뒷담화에 탐닉하다 보면 결국 내가 좋아했던 바로 그가 가진 가장 큰 결함이 인간에 대한 절망어린 시선과 교묘한 위장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전염되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결국 서머싯 몸은 이 일단의 불멸의 작가들을 칭송하는 듯 하면서 결론적으로 교묘하게 폄하하고 있는 작업에 성공했다.

 

작가들의 사생활이 출생 배경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증에 의하여 세세하게 펼쳐지고 다음에는 그 작가들의 대표작의 구리고 허술한 틈새에 가차없이 메스를 들이댄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방금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읽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중독에 빠져 허우적댄 것도 결국 그의 예술적 광기와 유약한 심성 탓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었던 나에게 기실 그는 미천한 계급 출신들을 그 면전에서 면박주고 비하했으며, 하층 계급 여자를 강간한 것을 자랑삼아 떠들고 다녔다는 대목을 들이댄다면 멈칫할 수밖에 없다.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된 것은 악덕덕택이고 그가 창조한 인물들은 지배하려는 욕구와 굴종하려는 욕망, 부드러움이 결여된 사랑과 악의에 가득 찬 증오로만 구성되어 있는 단순함의 극치라는 평가에 이르러서는 몸이 주는 것 없이 미운 인간이라고 지목했던 대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리뷰에서 대화문의 압박이라는 평을 읽고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에서 그 이유가 나온다. 바로 도스토예스프키가 이야기를 장황하게 끌고 가는 버릇을 자기 스스로도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화에 한번 빠졌다 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단다. 

 

 

 

 

 

 

 

 

그리고 <보봐리 부인>의 플로베르. 무슨 ~부인 시리즈가 주는 끈적한 기대에 기대어 읽었었지만 단조롭고 힘든 독서였다. 몸의 해설 덕택에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몸이 낭만주의자이자 리얼리스트라 칭한 그는 아주 성실한 작가여서 자신의 문체를 다듬고 또 다듬는 데 열성이었다고 하니 원서가 아닌 번역서로 그의 전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몸 자신도 플로베르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며 그 한계를 수긍하고 있다.플로베르에게는 아주 절친한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아주 독점욕이 강했다고 한다. 두 친구 부이예와 뒤 캉은 그가 낭독하는 작품을 며칠에 걸쳐 듣고 함께 토론하고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두 친구가 눈을 지그시 감고 플로베르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바로 그 장면과 며칠에 걸친 그 세 친구의 변주가 막을 내리고 함께 노곤한 잠에 빠져드는 그 순간이 다가와 앉는다.

  

 

 

 

 

  

 

<고리오 영감>의 발자크는 몸이 주저없이 천재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빚독촉에 시달릴 때라만 글 쓸 생각을 했다는 발자크의 땅딸보 체격의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잠깐 서기로 일했던 법률사무소에서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까 사무실에 나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는 부분에 이르러서야 몸이 과연 발자크의 천재성을 기탄없이 인정한 까닭을 알게 될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은 현대 로맨스 영화들의 그 밀고 땡기는 도식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아니다. 독신으로 살았던 이 재기발랄한 작가 아가씨에 대한 얘기는 그 자체로 예쁜 칙릿 소설 같다. 언니 카산드라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들은 재치있는 뒷담화들로 가득하다.  

독신녀들이 가난해진다는 무서운 경향이 있어. 이것이 결혼을 추구하는 매우 강력한 이유중 하나야. 

홀더 부인이 돌아가시다니! 불쌍한 사람 같으니, 세상 사람들이 더이상 험담을 늘어놓기 못하게 할 유일한 방법이 그 길뿐이었던 게야. -p.80

 

톨스토이 아내 소냐는 소크라테스의 악처 크산티페처럼 알려져 있다. 귀족 출신 톨스토이가 만년의 물적 소유물들과 각종 저작권들을 사회로 환원하려 했던 시도에 그녀는 반발한다. 그녀에 대한 톨스토이의 미움이 너무 커서 임종시 입회조차 못했다고 들었는데 몸의 얘기는 또 다르다. 여기에서 그가 어느 정도 객관적이려고 노력한 모습이 엿보인다. 그녀와 톨스토이 사이에는 무려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고 이들은 다 경제력이 없었다. 무일푼으로 가족들을 방기하려는 의도를 소냐가 납득할 수 없었음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몸은 톨스토이가 스스로 던진 메시지에 갇혔다고 표현했는데 아주 예리한 지적 같다. 이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톨스토이에게 그들의 비대해진 고상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투사했다. 톨스토이가 모든 것을 버리고 기부하고 성자처럼 살기를 바랐다. 몸은 톨스토이가 주저주저한 것은 그가 충분히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귀족 출신의 세계적으로 추앙받게 된 작가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가족까지 내던지고 고결한 가치를 위하여 살아주기를 바랐던 동시대인들 모두가 치사한 공범자 같다. 왜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그 누군가에게 잔인하리만치 해 주기를 조르게 되는 걸까.  

그가 아내에게 그 많은 아이들을 다 모유수유하기를 고집했다는 사실은 <안나 카레니나>에서 젖을 주는 여자의 심리와 육체적 변화를 어쩌면 그토록 섬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 지에 대한 묘한 근거가 된다. 그것은 그가 진정으로 여자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그 예리한 눈으로 가차없이 그것에 대한 집착적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농노의 아내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를 자신의 아들의 마부로 부리는 엽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저질렀다고 한다. 인간의 비루한 품성은 극복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지, 온전히 선하게 타고 나지 못했다고 비하하고 체념할 일은 아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되면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작중 인물인 레빈이 무신경하고 이기적이었던 과거를 회개하고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하여 애정어린 천착을 하는 대목에 압도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결국 톨스토이는 레빈을 통해 회개하고 있다. 몸이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작가의 삶과 그 자체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그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은 위대한 작가가 문장력도 겸비한 것은 아니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작가에게 있어 특히 소설가에게 문장력은 부수적인 것이다. 그것보다는 인간과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력과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혐오하기 때문에 그것의 묘사에 성공했던 사례를 몸은 여러 번 제시한다. 몸은 인간과 삶에 대하여 냉소적이고 어느 정도 절망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두운 시선이라고 해서 속살을 드러내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가지고 가고 싶은 얘기들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 다음과 같은 얘기들은 철학적 식견을 전파하는 소설가로서의 역할을 거부했지만 그 자신이 가장 완벽하게 수행한 것 같다.

만약 타인으로부터 기대할 것은 거의 없으며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점을 처음부터 깨닫도록 가르칠 수 있다면, 또한 재산 명예 사랑 명성 등 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에 대한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리고 이에 더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본래의 가치보다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데 지혜의 대부분을 발휘하도록 가르칠 수 있다면<중략>-P.70

서머싯 몸의 뒷담화를 듣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누구나 염증스런 부분이 조금씩 있다. 그것이 전체를 압도해서 그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조금 덜 기대해도 된다. 그게 삶이다. 그게 삶에 대한 관용이다. 그러니 이 독서는 참으로 유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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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23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겠는데요.. 지금 다시 도전하려고 책을 사놓았지만, 예전에 <카라마조프->를 도전한 적이 있었죠. 한사람이 떠들기 시작하면, 몇페이지는 혼자 이야기 합니다. 그 기억이 떠올라 쿡하고 웃었네요..

뒷담화.. 술자리의 윤활유죠. 그러나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뒷목이 서늘해지며 제가 형편없는 인간이라는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후회가 들고는 했습니다. 그걸 공개적으로 책으로까지 낸 서머셋 몸에게 박수를.

blanca 2010-02-23 22:1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저는 몇 번이나 사려고 했는데 리뷰가 좀, 읽기 힘들다는 평이 많아서 나중으로 미루어 뒀어요. 대화문의 압박이 정말 사실이군요 ㅋㅋ 그래도 언젠까는 꼭 읽을 거라고 다짐하고 있답니다.

뒷담화.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결국은 돌려서 완곡하게 아닌 것처럼 다 하더라구요^^;; 저는 사실 서머싯 몸 다시 봤어요. 아주 걸쭉하게 하던걸요. 못생기고 배나왔다는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더라구요. ㅋㅋㅋ

프레이야 2010-02-23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참 좋아요.
담아갑니다.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관용을 베풀 여유를 조금 갖게 될까요?^^

blanca 2010-02-23 22:14   좋아요 0 | URL
아이쿠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요즘 사람은 다 비슷비슷하고 다 그 나름대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너무 좋아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더라구요.

stella.K 2010-02-2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책 딱 내 꽈군요. 왜 이제야 알았을까요?
서머셋 몸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0-02-23 22:15   좋아요 0 | URL
저는 이런 책인줄 몰랐는데 읽다보니 포복절도하게 되더라구요. 남의 얘기는 언제나 재미있는 것 같아요.^^

L.SHIN 2010-02-23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군요.^^

blanca 2010-02-23 22: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참 인상적으로 읽어서 꼭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비로그인 2010-02-2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히터의 자서전이 생각나는군요. 무지막지하게, 거침없이, 주변 동료들 이야기를 했지요. 뒷이야기를요. 문제는 그 동료들이 하나같이 우리가 우러러보는 거장-이를테면 카라얀 포함-이라는 것.
어지간하면 요즘은 빌려 읽는데,(도서관) 이 책은 사서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저랬다니 저랬다니 저랬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blanca 2010-02-23 22:18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부분은 저도 충격받았답니다. 완전 욕을 바가지로 하고 있더라구요. 심지어 그의 작품까지도. 그래놓고 그래도 위대한 작품이라고 덧붙여 주는 센스까지 ㅋㅋㅋ 사실 욕먹는 사람보다 욕하는 사람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놀라움이 더 크더라구요. 예전의 피아노 선생님이 카라얀을 존경한다고 하셨는데....사람을 욕하려고 들면 소재가 무궁무궁하지요.

순오기 2010-02-24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뒷담화는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는군요.ㅋㅋ
도스토옙스키를 톨스토이와 비교한 책도 있는데, 그는 여러가지로 썩 괜찮은 인간은 아니었어요.
다만 그의 작품이 썩 괜찮은 것이지요. 돈이 필요할때면 순식간에 휘갈겨 썼다니, 그는 확실히 천재영역에 속한 사람 같아요.

blanca 2010-02-24 14:41   좋아요 0 | URL
무릎팍 도사에서 윤여정씨가 나와서도 돈이 급할 때 가장 연기가 잘 된다고 하더라구요. 무언가를 아주 대단하게 잘 하는 사람이 그럴 듯한 명분으로 그래 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인 것 같아요.

후애(厚愛) 2010-02-2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년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 책들을 보관함에 담아 두었다가 삭제를 했었는데 다시 보관함에 담아 두어야겠어요. ㅎㅎ 그리고 <마담 보바리>도요.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종종 놀러 오겠습니다.^^

blanca 2010-02-24 14:42   좋아요 0 | URL
후애님! 오셨군요. 보봐리 부인은 재미는 없더라구요--;; 하지만 민음사 번역본이 정말 훌륭하다고 하니 다시 읽어 볼까 생각중입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저절로 2010-02-2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르고 싶은건 질러줘야 한다. 고로, 시방 지릅니다요.

blanca 2010-02-24 14:43   좋아요 0 | URL
책은 좀 질러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저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