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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몰이
조에 부스케 지음, 류재화 옮김 / 봄날의책 / 2015년 9월
평점 :
이 책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어떤 특정 규격과 기준, 범주에 넣기 곤란한 책이다. <달몰이>의 작가 조에 부스케는 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했다 독일군의 포탄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되어 남은 생을 자신의 침실에 갇혀 지내게 된다. 나는 그러한 자기 상황에 대한 절망, 연민, 승화의 개인적 경험담일 거라 여기고 책을 펼쳤다. 구체적인 고통의 현시들이 줄을 이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이야기와 멀다. 그보다는 자유로운 몸으로 산 세월보다 침실에 유폐되어 보낸 시간이 더 긴 작가가 내면으로 침잠하여 삶과 고통, 죽음에 대하여 사색하여 길어낸 진실들에 대한 거대한 산문시에 더 가깝다. 그 발견들과 그것을 표현한 언어의 깊이와 밀도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나는 지금 산문을 읽는 것인가, 시를 읽는 것인가가 가끔 헷갈릴 정도로 정제된 언어의 향연이다.
"그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에 비로소 그가 시인이라는 것을 안다."는 그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진실이다. 스무 살에 포탄을 맞고 "나의 유령"이 된 조에 부스케는 그 순간부터 시인이 된다. 그는 그에게 일어난 재난을 그의 바깥에 흐르고 있는 삶의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 사실들을 관통하며 우리는 생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경험한다. 우리에게 우리는 실재가 아니다. 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다. 과거의 내가 겪은 일들은 내 바깥에 있다. 나는 생을 통과한다. 나는 결국 허무로 수렴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불행들은 특수한 것이 아니다. 불행은 나를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와닿아 떠나간다. 내 앞에 선 사람들, 내 옆에 선 사람들, 내 뒤에 올 사람들 모두가 경험하는 생의 근본적 속성이다. 조에 부스케는 자신의 불운을 이렇게 해석한다. 자신의 생을 특별하거나 특수한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거대하고 심원한 하나의 본질에 합류되는 것으로 전제한다면 그 고통마저 그러한 차원의 것이라고.
네 고통도 의인화해야 그것을 이겨내는 격조차 생긴다.
'나'와 '나의 세계'와 '나의 삶'을 혁명적일 만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하게 하는 책이다. 고통의 심연에 빠져 마땅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야망을 "사는 것"으로 치환하는지 보여주는 전범 같은 책.
"우선 내가 내 심장에서 뜯어낸 책 한 권을 다시 만드는 일"이 바로 이 <달몰이>다. 내가 초래한 것들이 삶이고 내가 사는 것이 나의 삶이라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 그 경계를 뛰어넘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을 시인의 빛나는 언어로 보여준다.질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에서 발췌된 조에 부스케의 덧붙여진 해석은 멋진 미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