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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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두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몇 주를 고생하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찾아간 신경외과에서는 별일이야 없겠지만 이제 뇌 MRII를 한번쯤 찍어둘 나이가 됐다고 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된 건가? 이후에 나의 짱구 머리 사진을 판독해 준 나보다 젊은 의사는 아직 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의 나이에 대한 이 상반된 해석은 결국 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이야기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해 준 셈이다. 언제나 많을 줄 알았던 머리숱의 급감과 노안은 더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 나는 차곡차곡 나이를 먹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내 삶 전반에 끼친다. 아무리 영혼과 내면과 의지의 이야기를 해도 결국 나는 내 몸 안에 갇혀 존재의 환각을 느끼는 존재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몸을 넘어서거나 이길 수 없다. 인정해야 한다.


이 소설은 192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화자가 딸에게 유산으로 남긴, 자신이 열두 살 때부터 여든여뎗 살 마지막 때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장치로서의 몸에 관해 쓴 일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 연령에 따른 몸의 미묘한 변화와 성장, 각종 성가신 질환들, 노화,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적 형식의 보고서는 어떤 세대의 독자가 읽어도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육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한층 더 생생하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내 나이 즈음의 일기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세상은 원래 무게보다 더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면 피로 속에 불안이 침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무겁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나 자신, 무능하고 헛되고 거짓된 내가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친 내 의식의 귀에다 대고 불안이 속삭이는 말들이다.

-pp.238

암울한 전망이다. 노안의 이야기도 있다. 사춘기 아들과의 대치에 관한 이야기도 심지어 갑자기 출몰하는 이명에 대한 충격도 있다. 얼마 전 나보다 두 살 어린 지인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예고 없이 나타난 그 육체적 쇠락의 징후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놀라워했다. 거기에 이명도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알고 보면 오십, 육십, 심지어 팔십에 이르기까지 아직 본격적인 노화의 관문에는 다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더 많은 더 어려운 성가신 것들의 전시가 주르륵 펼쳐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 애송이다. 결국 "왕관들을 빼앗기는 거다." 이미 쓴 적도 없다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지만.


몸이라는 극지에서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굉음도 내지 않고 조용히. 늙는다는 건 이 해빙을 겪어내는 것이다.

pp.362


"늙는다는 건 이 해빙을 겪어내는 것이다." 절묘한 문장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요새는 노인들이 다르게 보인다. 시간과 세월은 그저 지나가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몸은 늙고 그 안의 존재는 그 미미한 껍질을 붙잡고 분투하며 마지막까지 견뎌내야 하는 과업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승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을 나날이 견디는 중이니까. <몸의 일기>는 그러한 과정의 위대함을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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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18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페낙을 좋아하게 됐어요
~♡

blanca 2022-02-18 20:18   좋아요 0 | URL
<학교의 슬픔>도 참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다른 책들도 찾아 보려고요.

stella.K 2022-02-18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그렇게 노화를 거침에도 불구하고
또 장수하며 지탱하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지금 내 몸을 생각하면 내가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싶은데 그분들을 보면 나도 버티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늙으면 어떻게 살까 싶은데도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blanca 2022-02-18 20:18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저도 그렇게 느껴요.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어요.

coolcat329 2022-02-18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화 죽음...저도 거의 매일 생각하는 단어입니다.
두통이 얼마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저도 제 가족의 고통을 곁에서 봤었기에 조금만 머리가 아파도 가슴이 덜컥합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blanca 2022-02-18 20:19   좋아요 1 | URL
저는 사실 두통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프니 너무 두렵더라고요. 통증이라는 게 한번 몸을 점령하면 그게 전부가 되어 버리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라로 2022-02-18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네요,,, 그나저나 노년은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겐 두려움 그 자체인 것 같아요. 하아~

blanca 2022-02-18 20:21   좋아요 1 | URL
아, 그 책도 너무 좋죠. 신체가 차차 기능이 떨어지고 다들 나를 할머니로 생각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요. 사실 지금의 제 모습도 낯설어요. 누가 아줌마, 그러면 ㅋㅋ 아줌마 맞는데 기분은 별로라니까요. ㅋ

기억의집 2022-02-18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통은 더 이상 없는 거죠!! 저도 두통이 있는 사람이라.. 어떨 땐 게보린 세개도 먹고 그랬거든요. 저도 검사해서크게 이상은 없다고 하니 한편으론 맘이 놓이는데… 블랑카님도 다행이예요 나이 들면… 그렇죠 저는 제 손을 볼 때마다 속상해요. 너무 쭈글쭈글해서… 다 노화의 과정이겠지만,, 이제 더하면 더 할테니 맘을 부여잡아야겠어요

blanca 2022-02-19 09:58   좋아요 1 | URL
지금은 괜찮은데 저는 두통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여튼 앞으로 건강하게 잘 늙고 싶은데 늙는다는 것 자체가 몸이 허약해지는 거라 심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