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라 캐더의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는 19세기 중반 뉴멕시코 교구 사제로 온 장 마리 라투르 신부의 서사적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사제의 이야기지만 종교적 틀 안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선교를 펼치는 지역의 멕시코 원주민과 인디언들의 토속 신앙과 관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흩뿌려져 있다. 사제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태생과 문화, 심지어 신앙을 가지고도 교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 접목의 지대에서 돋보인다. 이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작가의 선구자적 통찰과 포용력이 없이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확장의 영역이다. 뿐만 아니라 윌라 캐더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장대한 풍경의 묘사가 일품이다. 마치 사진을 찍어 보여주듯 그녀의 묘사적 언어는 날카롭고 찬란하다. 언어가 상기하는 감각적 심상의 폭과 깊이가 경이롭다.
자연을 자신의 편의대로 가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각과 그것에 어떤 변형이나 훼손없이 공존을 도모하는 인디언들의 시각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 죽음을 어떤 불가피한 종말이 아니라 하나의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관조하는 사제의 모습은 이 이야기의 백미다. 또한 사제에게서 세속적 욕망을 제거해버리지 않음으로 하나의 온전한 인간상을 창조해 낸 것 또한 미덕이다. 인간적인 욕망, 무언가를 건설하고 남기고 싶은 마음은 낯익은 것이다. 그 낯익음 속에서 지향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공감을 얻는다.
주교의 인생에 있어 마지막 몇 주일 동안, 그는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은 지나간 <과거>였다. 미래는 미래 스스로 저저로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어 가는 것에 대해 지적인 호기심이 있었다. 한 인간의 믿음과 가치의 척도에 있어 일어나는 그 변화에 대해...... 점점 더 생각할수록 그에게 인간의 삶은 자아의 경험, 말하자면 자아 그 자체가 아니라 자아가 겪는 경험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확신은 그의 종교적인 삶과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윌라 캐더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p.323
인간의 삶은 자아의 경험"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지나가는 모든 일들을 통과하며 견딜 수 있다. 그 일들에 잠식되거나 무릎이 꺾이거나 하는 대신 그 모든 일들을 경험하고 그것이 과거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것들을 회고하게 될 것이다. 그때의 선택과 행위를 섣불리 심판하는 대신 그 불가피함 속에 오롯이 견뎌낸 자신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종국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