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줄 것이 없어도 내가 역할을 못 해도 나는 여전히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 거기에 확신이 없다. 무언가 능력과 가치를 입증해야 어엿한 사회의 성원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강박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심지어 연인, 부부, 성년의 자식과 부모 관계에서도 이 의심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에게 설명하기 힘든 모호한 불안을 항상 품고 살게 한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평가받는 사람도 그러한 것들을 잃었을 때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전적으로 환대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세계는 판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게 잘못된 것일까?  무의미한 것일까?







놀라운 책이었다. 입소문은 들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책을 알아봐주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이 사회에 희망이 생겼다. 제목처럼 '사람', '장소','환대'의 세 키워드로 우리의 존재, 관계, 삶, 갈등을 고찰하는 책이다. 치열한 탐구와 성찰, 적확한 언어, 적절한 비유가 가독성과 읽는 재미, 앎의 즐거움을 함께 제공하는 책이다. 자신의 분야를 제대로 정성들여 진지하게 탐구한 학자가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허영이나 자기 과시에 빠지지 않고 일반 대중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이것을 해내려고 애쓰고 성취를 이룬 저자의 노고가 곳곳에 보인다. 


노예제, 전쟁, 사형제도, 외국인의 대우, 안락사, 장기공여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공리주의 혹은 각자의 가치 체계에 바탕하여 은연중에 사람의 목숨과 그 가치의 경중을 매기고 있는 것을 드러내며 저자는 그것이 대단히 위험하고 모순된 생각임을 지적한다. 그것은 우리도 어느 순간 그 기준에 따라 분류되어 이 사회에서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나갈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가능성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그 떨쳐내기 힘든 불안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결국 저자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사람이게 하는 것은 그 어떤 전제조건도 상정하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무조건적인 환대라고 얘기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물론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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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1-04 1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았어요. 전 앞면인가 23쇄 보고 너무 감명 받아서요.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라는 블랑카님 말씀, 100% 공감합니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은 아침이거든요.

무조건적인 환대에 대해서라면 온 사회가 고민할 문제이지만, 저는 집 근처의 큰 건물이 죄다 요양원이 되어 가는 현실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무조건적으로 환대받았잖아요. 죽음에 가까이 갔을 때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이제 고민을 시작하고 다같이 말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blanca 2020-11-04 17:59   좋아요 1 | URL
아, 단발머리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그건 우리 자신들의 얘기이기도 할 거고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모두가 피하려고 하면서 철저하게 고독하게 가게 하잖아요. 이 책이 모든 질문에 답을 준 것은 아니지만 쉬쉬하던 질문들을 가감없이 드러낸 용기가 참 좋았어요.

수이 2020-11-04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 읽었는데 무조건적인 환대가 타인과 타인 사이에서_ 접점들이 하나라도 생기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옥 같은 세상인지라 연이어 계속 비극들만 쏟아져 나오는데 눈과 귀를 막는다고 해서 내 세상이 핑크빛으로만 물들여지는 것도 아니고. 이런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많이 읽히고 더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찾으면 좋겠어요. 힘들 것이지만 그럼에도_ 블랑카님 말씀 다시 인용하면서.

blanca 2020-11-04 18:01   좋아요 0 | URL
수연님, 안 그래도 읽으실 때 같이 읽으려 했는데 저는 이 책 안 읽어보고 무지 지루하고 어려울 줄 알아서 시작하기 힘들더라고요. 물론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부담스러워할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코로나로 특히나 더 많은 생각이 들어요...기침 했다고 할머니 구타한 젊은이 기사 읽으니 그 이십대가 경험하는 지금 이 세상도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서로를 환대하기는 커녕 적대시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다락방 2020-11-04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도 읽으셨군요! 좋은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들려주고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다른 이의 감상을 읽는것은 너무 즐거운 일입니다. 게다가 저도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게 바로 ‘무조건적인 환대‘ 였거든요.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입니다. :)

blanca 2020-11-04 18:05   좋아요 0 | URL
아, 읽을 것이다, 맨날 생각만 하다 이제서야 읽었는데 그때 다 같이 읽을걸(다락방님 읽으실 때) 좀 후회가... 몇 대목이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이런 책이야말로 독서모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서로의 감상, 경험도 나누고...곱씹으며 메모하며 읽어야 할 책이더라고요. 이 작가가 참 개인적으로 궁금해질 정도로 놀라운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