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김희영의 번역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6권 이후로 소식이 없어 아쉽다. 번역 속도에 맞추어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출간 간격이 길어지다 보니 앞선 내용과 인물 구도를 이제 거의 다 잊어버려 이런 식으로 읽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다른 출판사 것으로 읽을까 싶다가도 그마저도 그렇게 되지 않고...프루스트의 묘사는 때로 장황해져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어찌나 예리한지 인간 내면 심리를 거의 해부하다시피 하여 개인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모호한 감정을 프루스트를 통해 짐작하게까지 한다. 그 때 그 감정은 질투였구나, 그건 좌절된 욕망이었어, 이런 것 같은. 질투, 욕망, 비교, 온갖 속물적인 감각은 다 주저하지 않고 프루스트 그만의 언어로 잡아끌어 펼쳐 놓는다. 그 그물망은 너무 촘촘하고 넓어 벗어나기 힘들다. 그는 이야기꾼이라기보다는 철저한 관찰자다. 탐사가다. 















반면 편혜영 작가는 서사에 대한 감각과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야기는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힘이 있고 이건 작가로서 분명 큰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묘사하고 형상화하는 것도 분명 작가가 가져야 할 재능의 일부이지만 역시 이야기 자체를 만드는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 더불어  작가의 측면 사진이 참 좋다. 















나는 관찰력도 묘사력도 별로라 이런 작가의 책을 읽으면 거의 경이롭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사물에 대한 촘촘한 묘사가 사진이나 동영상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까지 시각적 이미지 재생에 기여한다. 이게 과연 후천적 노력으로 가능할까? 소설 중간 중간 나오는 건축가 중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한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 도서관에서 그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니 어린이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 있어 빌려왔다. 오히려 그의 삶을 한눈에 조망하기 좋았다. 개인적 삶에 대한 논란이 많은 예술가다. 예술적 성취와 삶의 도덕성이 어우러지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건축가 관련 이야기다 보니 평소에는 생각 없이 지나쳤던 건물의 외관이나 내벽을 살펴보게 되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이걸 언어로 묘사할 수 있을까? 자문하고 고개를 흔들곤 한다. 반이나마 왔는데 아까워서 천천히 읽는다. 번역도 놀랍다. 어휘가 풍부하고 적확하고 생생하다.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면 그것을 통해 태어나는 작업도 그 자체로 하나의 성취가 되는 것 같다.
















서머싯 몸은 뭐랄까 분명 개인적으로 알았다면 존경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캐릭터인데 자꾸 끌리는 유형이라고 할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때로 자학하면서도 자랑질을 이렇게 세련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인간의 절망적인 속물성을 서머싯 몸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작가가 있을까? 삶도 죽음도 결국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보다 더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그도 끊임없이 열등감과 한계를 느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체적으로도 약했고 체구도 작았고 문장을 세련되게 잘 쓰는 능력에도 부족함을 의식했던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조차 절묘하게 합리화하는 그의 문장을 <서밍 업>을 통해 즐길 수 있다. 아직 초반 정도에 와서 글쓰기에 관련된 세계관 이야기도 좋지만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도 더 듣고 싶다. 작가 지망생이 읽어도 좋을 듯한 조언이 많다. 











언어는 어떨 때 보면 전부인 것도 같고 지극히 사소한 일인 것도 같다. 그 사이로 난 길을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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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7-13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찰력도 묘사력도 별로라시니 블랑카님 너무 겸손하세요.
저는 블랑카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근처라도 갔으면 좋겠는걸요~~~.^^;
늘 멋진 글 잘 읽고 있어요~~.^^

blanca 2018-07-14 02:19   좋아요 0 | URL
아이, 이런 칭찬은... 정말 좋네요. ㅋㅋ 고마워요. 뜨거운 여름 라로님 덕분에 힘이 나네요. 잘 지내시죠?

수이 2018-07-13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절절해요. 그래도 흐느적거리면서 계속 걷는 게 좋아요.

blanca 2018-07-14 02: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을 읽을수록 나이가 들수록 뭔가 더 알고 성장해 간다는 느낌보다는 더 오리무중인 것 같아 혼란스러워요. 나이가 들면 더 어렵고 고쳐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stella.K 2018-07-13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스트 많이 달라졌네요.
글자 좀 커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편혜영 저렇게 사진 밖아 놓으니 무슨 프랑스 작가 같습니다.ㅋ

저도 프루스트에 도전해 보려고 하는데 여간해서 짬이 안 나네요.ㅠ

서머싯 몸은 저도 좋아하는 작간데 서밍 업이 번역됐군요. 좋아라!
근데 언제 읽을지 모르겠습니다.ㅠㅠ

blanca 2018-07-14 02:23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저도 잔 글씨는 정말 괴로워요. 오죽하면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라도 딱 펼쳤을 때 글자 작고 자간 좁으면 그 책 자체가 싫어진다니까요. 노안이 왔나 싶었더니 아직은 아닌데 전조일 수도 있다고 해요. 참, 악스트 글씨와 자간은 이제 보기 좋을 정도로 개선되었답니다. ^^ <서밍 업> 작가 지망생이나 글쓰는 일 하시는 분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초반 정도 왔는데 천하의 서머싯 몸도 작가로서 자기 한계를 많이 느꼈다는 점이 참 생소하네요.